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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각시탈'은 촌스러운 반일 드라마일까

Shain 2012. 6. 1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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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자체가 끔찍하고 비인간적인 행위이지만 그중에서 가장 언급하기 싫은 비극이 바로 '인간 방패'입니다. 과거 이라크전이나 걸프전에서 다국적군 포로를 인간 방패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최근 리비아에서도 정부군이 주민들을 인간 방패로 삼았다는 기사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전의 '인간방패'는 방패라기 보다는 협박이자 인질의 의미가 강합니다만 과거 임진왜란 때 왜군이 조선인들을 화살받이로, 징기스칸이 전쟁중 포로를 화살받이로 이용했다는 것은 현대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일입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관점이 현대와 과거가 얼마나 달랐는지 알 수 없어도 한때 자신의 동료이자 친구로 정을 나누던 사람에게 활을 겨누고 총을 겨누는 건 사람이 할 짓이 못됩니다. '인간방패'는 차마 아군을 공격하지 못하는 심리적 약점을 이용해 상대방을 동요시키고 전열을 흐트러지게할 목적으로 이용된 전략입니다. 같은 인간끼리 승부를 겨루다 죽이는 것도 못할 짓인데 동료들까지 죽여야 한다면 당연히 그 원망이 지휘관에게 향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가족들을 지키고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전쟁이라면 그나마 버티겠지만 명분없는 전쟁이라면 더욱 흔들릴 수 밖에 없겠죠.

드라마 '각시탈'의 주인공은 친일 앞잡이 이강토 형사이다.

사실 드라마 '각시탈'에 등장하는 친일 앞잡이들의 속성이 이런 '인간방패'와 많이 유사합니다. 점령한 국가에 대한 약탈 행위를 저지를 때 직접 나서는 것보다 앞잡이들을 활용하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릴 수 있습니다. 현지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앞잡이'들은 능숙하게 현지를 관리할 것이며 지배당하는 쪽에서도 자신과 같은 민족이 자신들을 괴롭힌다는 점에 무력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앞잡이를 두고 '저 일본의 똥개'라고 욕을 퍼부어봤자 같은 민족끼리 싸우고 있다는 자괴감에 감정적으로 우울해지는 것입니다.

또 극중 이강토(주원)처럼 앞잡이로 나선 사람들은 더욱 독하게 동족을 닥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경제적인 부와 출세를 바라고 한 일, 충성심을 보이자면 남들 보다 더 눈에 띄어야 할 것이고 같은 민족을 배신했다는 손가락질을 버티려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해야 합니다. 조선 후기에 소작인들을 관리하던 마름이 양반네 보다 더욱 못되게 굴며 양반이 들어야할 욕을 고스란히 차지한 것처럼 일제 강점기 때 이런 '앞잡이'들이 일본인들 보다 더욱 증오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이런 심리적인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현대판 '각시탈'의 주인공은 일제 앞잡이 이강토

그렇다고 앞잡이들, 현대사에서 '친일파'라 부르는 이들의 행동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죠. 극중 우에노 히데키(전국환)의 명령으로 이강산의 아버지 이선(이일재)을 배신한 최명섭(권태원)이나 이시용(안석환)같은 인물들은 강토같은 일개 앞잡이와는 '격이 다른' 친일파입니다. 인력거를 끌고 사람들에게 두들겨 맞으며 형의 학비를 벌었던 강토가 형이 고문받다 미쳐버리자 강력계 형사가 된 것과 히데키 무리들이 이권을 위해 저지른 악행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한쪽은 '살기 위한 친일'이었다는 변명 조차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과거의 일제 강점기를 묘사한 드라마들은 항일투쟁을 벌이고 혹은 일제의 수탈에 고통받는 백성들을 묘사하며 반일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신들은 점잖게 한발 뒤로 물러나 각종 이익을 취하면서도 뒤로는 앞잡이들을 내세워 각종 수탈을 자행하는 그들의 행위는 보는 사람들의 분노를 들끓게 만들었습니다. 그 시대에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몰라도 일제 강점기 때 입은 피해로 집안이 몰락하거나 가족들을 잃었던 사람들은 더욱 그런 감정에 공감을 하곤 했죠. 그러나 요즘에는 그런식으로 반일 감정을 내세운 드라마들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며 역풍을 맞는다고 합니다.

자신의 손으로 형을 죽인 이강토. '앞잡이'가 '각시탈'로 거듭나는 이유가 된다.

물론 만화 '각시탈'에서 묘사된 초인적 영웅이 존재하기는 힘듭니다. 이강토가 자신의 상황을 극복할 수 없어 앞잡이 노릇을 선택했던 것처럼 한 사람의 인간이 '조선'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란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한 인간 '이강토'가 죽어버린 형 이강산(신현준)을 대신해 각시탈을 쓰려면 그만한 동기가 있어야 하고 그만한 슬픔이 복받쳐 올라야 가능한 일이니 현대극으로 거듭난 '각시탈'은 나라를 잃은 전민족의 슬픔을 가족 모두를 잃은 강토의 슬픔으로 대치시킨 것입니다. 쉽게 와닿지 않는 '애국'을 강조하기 보다 현대인들이 납득할만한 동기 부여를 한 셈입니다.

또한 반일 감정으로 가득찼던 과거 드라마들과 달리 사교댄스를 삽입하고 서커스 공연과 액션을 신경쓰는 등 볼거리에 좀 더 치중하고 착하고 인간적인 일본인 기무라 슌지(박기웅)을 등장시켜 '일본 사람은 무조건 나쁘다'는 과거의 공식을 탈피합니다. 지독한 일제 앞잡이와 평화주의자인 일본인의 조합 만큼이나 시대가 변한 것인지 드라마가 자연스러워진 것인지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반일 감정' 코드는 흔하디 흔한 현대 드라마의 소재 중 하나이며 과거와 달리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것입니다.



애국주의 마케팅이냐 구시대적인 민족주의냐

일제 강점기를 겪었던 세대들은 자연스럽게 일본인을 '왜놈'이라 불렀습니다. 각시탈 속에서도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을 왜놈이라 낮춰 부르곤 합니다. 억압받던 국민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지만 한때 학교 현장에서는 '쪽바리'나 '왜놈'같은 표현이 외교 마찰의 원인이 된다며 자제하라 교육했던 적도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인을 '조센징'이라고 부르는 것이 잘못된 것처럼 한국인들도 그들을 그리 지칭해서는 안된다는 상식이었으나 할아버지 세대를 비롯한 윗세대들은 '쪽바리를 쪽바리라고 부르지 뭐라고 하냐'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각시탈'이 이런 반일 감정에 편승해 호응을 얻고 또 '애국주의 마케팅'을 통해 각광받을 수도 있었음에도 반발을 사게된 가장 큰 원인은 방영전 발생한 보조출연자 사망사고 때문입니다. 계약관계가 이중, 삼중으로 얽혀 있다는 사정은 충분히 감안해도 도의적인 책임을 지도 앞장서서 사건을 해결해야할 KBS가 뒤로 물러나 있다는 점은 한국이란 나라의 불공정한 노동환경을 보여주는 듯해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한류스타'라서 '각시탈' 출연을 거부했다는 일부 스타들에 대한 의견까지 비난받는 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70년대에 태어난 만화 '각시탈'과 21세기 드라마 '각시탈'은 왜 다른가.

덧붙여 일부 평론가들은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드라마를 구시대적인 컨텐츠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대적으로 반공, 항일 등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여러 TV 드라마나 영화가 있었고 때로는 그 내용이 너무 과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와 사회 곳곳에서 기득권이 되어 있는 친일파 청산이나 국민중심의 애국주의는 여전히 한국 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숙제입니다. 때로는 그 형태가 바뀌고 때로는 그 이름이 바뀌더라도 '애국지사 각시탈'이 처단해야할 악의 무리는 언제나 함께 존재해왔던 것입니다.

헐리우드 영화 속의 수퍼맨이나 스파이더맨은 지구를 구하는 수퍼 영웅이고 국민을 괴롭혔던 일제 권력자들을 처단하는 가상의 영웅은 촌스러운 민족주의인 것일까요. 세대가 달라 서로를 이해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치더라도 아직까지 일제강점기 피해자가 이 나라에 공존하고 있는 이 시대에 '애국주의' 자체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부당하지 않을까요? '각시탈'을 보며 느끼는 평범한 시청자들의 애국심이 일부 극우파들의 '애국'과는 다른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굳이 반일 감정이 아니라도 시대에 잘 맞는 드라마

개인적으로 방영 초기, 보조 출연자의 교통사고를 KBS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억울한 조선 사람들이 많던 시대에 탈을 쓰고 변절자들을 처단하던 '각시탈'을 재현한다는 KBS에서 영웅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부끄럽지 않은 행보를 보였으면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드라마 자체는 흥미롭게 잘 만들어진 편입니다. 배우 주원과 신현준의 멋진 연기는 보는 사람들 마다 극찬할 정도로 감동적이었고 천호진을 비롯한 출연자들의 연기도 수준급입니다.

가족을 잃은 이강토의 슬픔 반일 감정이 아니라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에는 당연히 모두가 이해할 수 있던 반일감정이지만 요즘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 감정이라는 게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친일파와 각시탈'의 대립구조는 여러가지 다양한 관계를 대입해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해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인, 경제인, 의료인, 법조인, 경찰의 담합이라던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동료들을 배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현대 사회에 적용해 봐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갈등 관계라는 것이죠. 조선의 주권을 빼앗겼던 그 시대에 대해 잘 모르고 또 일제강점기에 대한 느낌이 와닿지 않는다면 굳이 드라마를 '반일 감정'의 연장선에서 해석할 까닭은 없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강산(신현준)의 죽음으로 손수 복수하기 위해 나선 이강토. 일제 강점기를 겪지 않은 세대라 해도 그의 피끓는 울분은 충분히 공감이 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머니를 잃고 형까지 잃게된 이강토가 남몰래 '각시탈'로 변신해 활약하는 내용에 묘한 기대감을 갖게 되기도 하지요. 일제 강점기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기 때문이 아니라 또 일본이 미워서가 아니라 힘이 없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당해야했던 슬픈 심정을 현대인이라면 누구든 느끼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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