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한국 드라마 보기

닥터진, 한드를 일드 기준으로 비난하는 건 부당하지 않을까

Shain 2012. 5. 2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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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드라마를 좋아해 평소에도 TV 드라마 채널을 항상 켜놓는 편이고 자주 보는 드라마는 돈을 들여 다운로드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몇년전만 해도 미국 드라마를 주로 시청하곤 했지만 최근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한드를 선호하게 되었고 간간이 명작이라 추천받는 일본 드라마도 골라보곤 합니다. 굳이 괜찮은 드라마라면 나라를 가리지 않는 편입니다. 간혹 '미드'나 '일드'가 소위 '막장 드라마'로 평가되는 한국드라마 보다 낫다는 평들도 있지만 각국 다양한 드라마를 접하면서 제가 느낀 점은 한 나라의 '드라마'는 그 나라의 축소판이라 할 만큼 그 나라의 특징을 잘 함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홍콩, 대만, 중국 드라마는 어쩐지 괴리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아 선택을 꺼리는 편입니다. 그러나 '일드'는 각종 사회문제를 다양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더군요. 한국 드라마에는 '삼각관계'가 없으면 드라마가 성공하지 못한다는 일반적인 공식같은게 있지만 '일드'는 딱히 멜로 코드를 넣지 않고도 히트하는 드라마들이 많습니다. 또 파격적인 주제로 다소 '만화스러운' 설정을 테마로 삼는 경우도 있고 잔잔한 삶의 단면을 그리는 드라마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장르도 연기자도 다양해서 그럭저럭 볼만한 내용이 많습니다.

일본 만화 'JIN-仁-'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닥터진'

미드 역시 다양한 장르와 주제로 제작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무엇 보다 스케일의 차이가 엄청나다고 해야할지 각종 연예계나 부유층 생활을 묘사하는 드라마에 동원되는 소품 비용만도 천문학적입니다. 규모가 큰 폭파장면이나 해외 로케도 망설이지 않는 걸 보면 이것이 드라마인가 영화인가 헷갈릴 때도 있습니다. 노골적이다 싶을 만큼 파격적인 관계 설정도 그렇고 뒷골목 건달부터 최상류층 부자까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들의 컨텐츠 제작 능력은 내용과 상관없이 눈길이 가곤 합니다. 드라마를 'TV Show'로 분류하는 나라답게 모든 것이 볼거리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우리 눈을 즐겁게 해주는 '일드'나 '미드'에도 단점은 있습니다. 일드는 때로 한가지 컨텐츠가 성공하면 만화, 게임, 드라마, 오디오 드라마, 극장판, 애니 등으로 같은 내용을 무한 반복하는 경우가 있고 한국 정서와 맞지 않는 감정 묘사와 연출이 거부감을 줄 때도 있습니다. '미드'는 볼거리에 지나치게 치중해 작품성과 상관없이 시청률이 좋지 않으면 제작 중단되는 경우가 많고 사회문제를 풍자하기 보다 왜곡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또 '막장'이라고 평가할 만큼 꼬인 관계가 미드나 일드에도 넘쳐납니다. 미드같은 경우 오히려 '막장 드라마'의 원조라 평가해도 될 정도로 막나가는 설정도 많죠.



비판은 한국 드라마 범주 안에서 해야하는 것 아닐까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도 많지만 저 역시 상당히 한국 드라마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 중 하나입니다. 멜로 코드와 삼각관계는 필수이고 꼼꼼하지 못한 전개에 노골적이다 못해 촌스러운 간접광고,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이 연인이 되는 막장 관계와 출생의 비밀이나 재벌이 개입하고야 마는 스토리는 보는 사람들을 질리게 만들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외국 드라마를 한드로 각색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라 아무리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일드'도 '한드'로 각색되면서 수없이 많이 잘리고 변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해외 시청자들이 꼽는 한국 드라마의 장점은 스피디한 전개와 무리한 스토리를 무난하게 이어가는 뛰어난 연기력 아닌가 싶습니다. 하루 아침에 연인이 남매 사이가 되고 또 불치병에 걸려 죽어버리고 기억상실증 때문에 옛날 연인을 못알아본다는 뻔하고 진부한 설정이 한국인들 눈에는 기가 막히지만 또 그런 설정이 묘하게 이야기에 생명을 준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자극적'이라는 말로는 쉽게 표현이 안될 만큼 맛깔나게 스토리를 이어가니 통통튀는 재미가 있달까요. 외국에도 한드의 그런 점을 장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원작으로 만들어졌지만 전혀 다른 드라마가 된 '로열패밀리'와 '인간의 증명'.

MBC '로열패밀리(2011)'는 일본의 인기 소설이자 드라마인 '인간의 증명'을 각색해서 만들어진 드라마입니다. 팬들이라면 잘 아시다시피 원작은 전혀 멜로 코드와 상관이 없고 재벌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모리무라 세이이치 원작의 소설은 한 흑인 혼혈 청년의 죽음을 계기로 정치인의 아내가 된 한 여성의 과거를 쫓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인간임을 증명하다'는 다소 어려운 주제를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동정적인 시선으로 지켜보는 이 내용은 꽤 추천할만한 소설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 그대로 한국에서 방영되었다면 실패작이 될 가능성이 높은 드라마아기도 합니다.

'로열패밀리'의 기본줄거리가 원작 유사함에도 '인간의 증명'을 시청한 일부 시청자들 중에는 두 드라마의 원작이 같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후원자인 김인숙(염정아)에게 애정을 품고 있는 고아 소년 한지훈(지성)의 설정과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굴지의 재벌 정가원의 재산싸움은 한국 드라마 특유의 '막장코드'임에도 드라마를 훨씬 더 극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거기에 염정아와 김영애의 뛰어난 캐릭터는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일본 드라마 특유의 탄탄한 스토리에 한국드라마 특유의 극적 연출이 합쳐져 매력적인 드라마 한편이 탄생한 것입니다.

일본 시대극인 'JIN-仁-'을 한국 드라마로 각색하려면? 복장만 봐도 곤란한 점이 많다.

'인간의 증명'을 일본 드라마로 모두 시청한 뒤에 '로열 패밀리'를 시청했음에도 전혀 한드가 일드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차이점을 짚어보는 건 재미있었지만 수준을 비교할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소설을 근간으로 그 나라 형편에 맞춰 아주 다른 두 작품을 만들어낸 셈인데 원작에 맞춰 비난할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일본 드라마가 한국에서 재탄생될 때에는 한국 내의 속사정과 현실, 문화, 생각을 모두 반영해서 각색되는 것이니 굳이 둘을 꿰맞출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히트한 일드라도 그대로 한국으로 옮겨오면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들은 명품 드라마 보다 막장 드라마 설정을 중요시 여기게 되었으며 왜 시청률 40%가 넘어가는 드라마들 중에는 '막장'이 많을까. 이 부분에 대한 정답은 아마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답답하지 않은 스피디한 전개와 룰을 파괴하는 속시원한 설정을 선호하면서도 달달한 멜로나 밀고 당기는 통속적인 사랑싸움도 보고 싶고, 판타지에 사회 풍자나 역사 반영까지 맛보고 싶은 복합적인 시청자가 아직은 다수란 사실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 드라마'가 일본 원작 보다 수준 떨어진다는 이유로 비난받아야하는게 아니라 한국 드라마로서 평가받아야한다는 뜻이지요.

한국 버전 '닥터진'은 그 나름대로 호평을 받고 있다. 굳이 일본판과 비교는 무리.

처음부터 원작은 '일본'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일본 전통의상을 입고 진행하는 시대극을 한국으로 옮겨놓은 걸 '원작이 이랬는데'라는 기준으로 비판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타임슬립 닥터진(JIN-仁-)'은 원작대로 최고의 작품이고 새로 만들어진 '닥터진'은 전혀 다른 드라마일 뿐입니다. 저는 이번주 첫방영된 '닥터진'이 비판받아야할 것은 '원작과의 비교' 부분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범수라는 명배우의 힘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대원군 이하응이 과연 현대에서 넘어간 진혁(송승헌)의 도움을 받을만한 영웅이었냐 라던가 하는 부분 말이죠.

거기다 어디서 본듯한 설정을 계속해서 반복시키는 것도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등장인물들의 연기력이나 표현력이 드라마 각본에 비해 충분치 못했다는 점도 이야기거리가 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극중 안동김씨의 최고 세력가로 등장하는 김병희(김응수)는 최고의 연기자로 권력자의 무서움을 잘 표현한 역할이지만 진혁 역의 송승헌과 종사관 역의 김재중의 연기는 계속 거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일드 닥터진'과 상관없이 이만하면 주말드라마로서 꽤 마음에 든다는 호평도 만만치 않게 많습니다. 이대로라면 한국 버전 '닥터진'도 꽤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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