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지난 주 방영된 MBC 드라마 '닥터진'에서는 극중 등장인물인 기생 계향(윤주희)의 장례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부패한 안동 김씨의 부당한 요구 때문에 매독에 걸린 계향은 극중 이하응(이범수)을 지키기 위해 자결합니다. 춘홍(이소연)과 동료 기생들은 하얀 소복을 입고 장례 행렬을 뒤따르고 배경음악으로 기생들의 한이 서린 노래가 한곡 흘러나오죠. 이는 기생들의 역사와 삶을 다룬 유일한 책이었던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 1927)'에 실린 내용으로 제목은 '여사당자탄가(女社堂自歎歌)' 즉 여사당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내용입니다.
판타지 사극 '닥터진'에는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흥미로워할 여러 설정이 등장합니다. 대원군 아내 민씨가 천주교도였다던가 이하응이 자주 갔다는 춘홍의 기생집같은 것 말입니다. 그러나 여자 기생의 한스러움 즉 자신의 정인도 아닌 남자들과 함께 하는 한탄을 담은 그 노래는 본래 몸을 팔던 여사당을 위한 노래였습니다. 드라마 '추노(2010)'에 등장한 설화(김하은)가 남성들에게 입술로 돈을 받고 강제로 색을 팔던 그 풍경처럼 조선 시대 여사당은 기생 보다 훨씬 더 천한 여성들로 여겨졌습니다. 아무리 이하응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팔린 계향의 슬픔을 강조하고자 했다지만 조금 과장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천민은 본래 상여를 쓸 수 없었죠.
'여사당자탄가'의 내용은 현대인들이 들어도 자못 안쓰럽고 공감이 갑니다. '한산 세모시로 잔쥬름 곱게 곱게 차아입고 / 안셩 쳥룡으로 샤당질가셰 / 이내 숀은 문꼴인가 이놈도 잡고 져놈도 잡네' 한산 세모시로 곱게 차려입고 청룡사로 사당질 가서 이 남자 저 남자에게 손을 잡히고 입술을 주는 여사당의 한탄가는 이런 드라마가 아니라면 쉽게 접할 수 없는 내용으로 소외된 음지의 역사로로 여겨지던 '해어화' 풍습 즉 기생 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어쩌면 TV에서 가장 환영받는 오락물 중 하나인 '사극'의 재미는 이런 부분에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닥터진'같은 류의 '사극'은 기존에 우리가 보아왔던 사극과는 좀 많이 다릅니다. '타임슬립' 설정으로 판타지를 끼워넣었다는 부분 뿐 아니라 기존의 '사극'들과 달리 스토리 위주로 이야기를 창작해 접근성이 용이합니다. 기존의 '사극'은 일정 부분 역사 지식이 필요한 장르였던 것던 것이 사실입니다. '사극'을 통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알아간다기 보단 흔히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시대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인물에 대한 재평가를 감상하는 것이 그 재미라 할 수 있습니다. '닥터진'은 그런 역사 보다는 시간 이동의 미스터리에 초점을 맞춰 부담없이 볼 수 있도록 만든 타입의 드라마입니다.
편의상 '사극'이라 부르긴 합니다만 적당히 고증도 신경썼고 역사 속 인물도 등장하는 '닥터진'을 과연 '사극'이라고 분류할 수 있을까요. 흔히 현대인의 복장이 아닌 과거의 복장을 입은 출연자들이 등장하면 모두 '사극'이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극(史劇)'의 본래 정의는 역사 속에 있었던 사실을 토대로 만든 극을 뜻하는 말로 최근 유행하는 '퓨전 사극'들 대부분은 본래 사극의 정의와는 많은 부분 동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선덕여왕(2009)'이나 '광개토태왕(2011)'같은 '사극'은 극중 내용이 반이상 창작된 것인데다 역사 속 사실 마저 임의로 순서를 바꿔놓아 이것을 과연 사극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도 합니다.
특히 위작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를 근간으로 만들어진 '선덕여왕'의 경우 주인공 미실(고현정)과 덕만(이요원)의 정치적 대립은 상당히 현대적인 관점의 묘사입니다. 힘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공포정치와 백성들 스스로 따르게 하는 민주정치를 상징하듯 두 사람의 대립은 다분히 작위적인 면이 있습니다. 이는 작년에 인기리에 방영된 '뿌리깊은 나무(2011)'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으로 과거를 중심으로 드라마를 꾸미지 않고 현대인들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사극을 제작한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역사 중심의 사극은 TV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속 사실을 토대로 만든다는 '사극'의 정의를 보다 광범위하게 바꿔야할까요. 그렇지 않으면 이런 류 '재미있는' 사극들을 '시대극'이라 부르며 기존 정통 사극과 거리를 두는 것이 맞을까요. 확실한 건 '역사'는 것이 후세인들의 입맛에 따라 다시 평가될 수 있는 '컨텐츠'라는 측면이 강해 드라마 속 '사극 코드'가 변질되는 것 만은 막지 못할 것이란 점입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조명해본다는 '사극'의 역할 을 강조한다면 지금의 선택이 '틀렸다'고 만은 할 수 없는 점도 있구요. 판타지이든 재해석이든 과거의 인물들이 TV 안에서 태어난다는 점은 환영할만도 합니다.
그런데 MBC에서 방영중인 '무신'은 특이하게도 최근 유행하는 사극과는 다른 면이 있습니다. 물론 등장 인물 최우(정보석)와 김준(김주혁)의 영웅성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이 마저 역사 왜곡 아니냐는 논란이 있고 극중 송이(김규리)와 안심(홍아름)의 이야기가 막장이란 평가도 나옵니다만 1인 2역으로 등장한 월아의 개입이나 아무대나 끼어드는 김준만 빼면 드라마 내용은 모두 '역사적 사실'입니다. 고려사에 적힌 대로라면 최우의 딸 최씨가 남편 김약선(극중 이주현)을 배신하고 서자인 최항(극중 백도빈)에게 최우의 권력이 이어지도록 만든 과정을 설득력있게 묘사하기 위해 김준과의 삼각관계를 엮은 것도 그럭저럭 괜찮은 설정이구요.
흥미롭게도 '무신'은 퓨전사극 같으면서도 정통사극의 껍질을 추구하고 있는 셈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주된 내용으로 연출하면서 곁가지를 창작하는 방식인 것이죠. 최근에 방영된 사극들 중에서는 원래 '사극'의 정의에 가장 부합하는 드라마는 '무신'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신'과 '닥터진'을 같은 사극으로 분류하고 두 드라마를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애초에 '역사성'을 의식한 '무신'과 일본 원작을 한국 현실에 맞춰 역사가 끼워넣기식으로 편집된 '닥터진'은 전혀 다른 장르의 드라마라 할 수 있으며 '같은 사극'은 아니지 않나 생각됩니다.
두 작품 속 인물에 대한 '사관'을 평가한다면 비교 못할 것도 없겠지만 이미 한쪽은 창작된 스토리 위주의 판타지 드라마고 나머지 한쪽은 역사에 충실한 사극이다 보니 비교할 수 있는 건 극히 일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시청률을 의식한듯 잔인하고 보기 끔찍하게 연출되었다는 송길유(정호빈)의 고문 장면 조차 고려사에 적힌 장면을 그대로 표현한 것인데 이 부분을 '닥터진'의 수술 장면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현대극과 사극을 비교하는 것 만큼이나 아귀가 맞지 않습니다. '재미있다'와 '재미없다' 또는 '연기를 잘한다', '연기를 못한다'같은 문제로는 비교대상이 될 수는 있겠습니다.
분명 이제는 역사를 중심으로 생각하던 '사극'의 정의가 바뀔 때도 된 것같단 생각도 들고 또 최근 '정통사극'류에서 강조하는 남성적이고 영웅적인 가치관들은 다소 시대착오적인 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닥터진'과 '무신'을 동일한 '사극'으로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모종의 합의로 '사극'의 정의가 바뀌지 않는 한 '무신'은 사극이지만 '닥터진'은 사극이라기 보단 그냥 '시대극'입니다. 창작이 중점이 된 드라마와 역사를 중심으로 창작된 드라마는 분명 달라야하지 않을까요.
판타지 사극 '닥터진'에는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흥미로워할 여러 설정이 등장합니다. 대원군 아내 민씨가 천주교도였다던가 이하응이 자주 갔다는 춘홍의 기생집같은 것 말입니다. 그러나 여자 기생의 한스러움 즉 자신의 정인도 아닌 남자들과 함께 하는 한탄을 담은 그 노래는 본래 몸을 팔던 여사당을 위한 노래였습니다. 드라마 '추노(2010)'에 등장한 설화(김하은)가 남성들에게 입술로 돈을 받고 강제로 색을 팔던 그 풍경처럼 조선 시대 여사당은 기생 보다 훨씬 더 천한 여성들로 여겨졌습니다. 아무리 이하응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팔린 계향의 슬픔을 강조하고자 했다지만 조금 과장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천민은 본래 상여를 쓸 수 없었죠.
'닥터진'에 등장한 기생 계향의 장례 장면, 여사당자탄가를 구슬프게 부른다.
'여사당자탄가'의 내용은 현대인들이 들어도 자못 안쓰럽고 공감이 갑니다. '한산 세모시로 잔쥬름 곱게 곱게 차아입고 / 안셩 쳥룡으로 샤당질가셰 / 이내 숀은 문꼴인가 이놈도 잡고 져놈도 잡네' 한산 세모시로 곱게 차려입고 청룡사로 사당질 가서 이 남자 저 남자에게 손을 잡히고 입술을 주는 여사당의 한탄가는 이런 드라마가 아니라면 쉽게 접할 수 없는 내용으로 소외된 음지의 역사로로 여겨지던 '해어화' 풍습 즉 기생 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어쩌면 TV에서 가장 환영받는 오락물 중 하나인 '사극'의 재미는 이런 부분에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닥터진'같은 류의 '사극'은 기존에 우리가 보아왔던 사극과는 좀 많이 다릅니다. '타임슬립' 설정으로 판타지를 끼워넣었다는 부분 뿐 아니라 기존의 '사극'들과 달리 스토리 위주로 이야기를 창작해 접근성이 용이합니다. 기존의 '사극'은 일정 부분 역사 지식이 필요한 장르였던 것던 것이 사실입니다. '사극'을 통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알아간다기 보단 흔히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시대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인물에 대한 재평가를 감상하는 것이 그 재미라 할 수 있습니다. '닥터진'은 그런 역사 보다는 시간 이동의 미스터리에 초점을 맞춰 부담없이 볼 수 있도록 만든 타입의 드라마입니다.
편의상 '사극'이라 부르긴 합니다만 적당히 고증도 신경썼고 역사 속 인물도 등장하는 '닥터진'을 과연 '사극'이라고 분류할 수 있을까요. 흔히 현대인의 복장이 아닌 과거의 복장을 입은 출연자들이 등장하면 모두 '사극'이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극(史劇)'의 본래 정의는 역사 속에 있었던 사실을 토대로 만든 극을 뜻하는 말로 최근 유행하는 '퓨전 사극'들 대부분은 본래 사극의 정의와는 많은 부분 동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선덕여왕(2009)'이나 '광개토태왕(2011)'같은 '사극'은 극중 내용이 반이상 창작된 것인데다 역사 속 사실 마저 임의로 순서를 바꿔놓아 이것을 과연 사극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도 합니다.
막장스러워 보여도 김준이 안심과 불륜이었던 것도 최씨가 남편을 죽인 것도 역사 속 사실이다.
특히 위작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를 근간으로 만들어진 '선덕여왕'의 경우 주인공 미실(고현정)과 덕만(이요원)의 정치적 대립은 상당히 현대적인 관점의 묘사입니다. 힘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공포정치와 백성들 스스로 따르게 하는 민주정치를 상징하듯 두 사람의 대립은 다분히 작위적인 면이 있습니다. 이는 작년에 인기리에 방영된 '뿌리깊은 나무(2011)'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으로 과거를 중심으로 드라마를 꾸미지 않고 현대인들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사극을 제작한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역사 중심의 사극은 TV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속 사실을 토대로 만든다는 '사극'의 정의를 보다 광범위하게 바꿔야할까요. 그렇지 않으면 이런 류 '재미있는' 사극들을 '시대극'이라 부르며 기존 정통 사극과 거리를 두는 것이 맞을까요. 확실한 건 '역사'는 것이 후세인들의 입맛에 따라 다시 평가될 수 있는 '컨텐츠'라는 측면이 강해 드라마 속 '사극 코드'가 변질되는 것 만은 막지 못할 것이란 점입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조명해본다는 '사극'의 역할 을 강조한다면 지금의 선택이 '틀렸다'고 만은 할 수 없는 점도 있구요. 판타지이든 재해석이든 과거의 인물들이 TV 안에서 태어난다는 점은 환영할만도 합니다.
그런데 MBC에서 방영중인 '무신'은 특이하게도 최근 유행하는 사극과는 다른 면이 있습니다. 물론 등장 인물 최우(정보석)와 김준(김주혁)의 영웅성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이 마저 역사 왜곡 아니냐는 논란이 있고 극중 송이(김규리)와 안심(홍아름)의 이야기가 막장이란 평가도 나옵니다만 1인 2역으로 등장한 월아의 개입이나 아무대나 끼어드는 김준만 빼면 드라마 내용은 모두 '역사적 사실'입니다. 고려사에 적힌 대로라면 최우의 딸 최씨가 남편 김약선(극중 이주현)을 배신하고 서자인 최항(극중 백도빈)에게 최우의 권력이 이어지도록 만든 과정을 설득력있게 묘사하기 위해 김준과의 삼각관계를 엮은 것도 그럭저럭 괜찮은 설정이구요.
과거를 묘사한다고 해서 '같은 사극'이 될 수는 없다.
흥미롭게도 '무신'은 퓨전사극 같으면서도 정통사극의 껍질을 추구하고 있는 셈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주된 내용으로 연출하면서 곁가지를 창작하는 방식인 것이죠. 최근에 방영된 사극들 중에서는 원래 '사극'의 정의에 가장 부합하는 드라마는 '무신'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신'과 '닥터진'을 같은 사극으로 분류하고 두 드라마를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애초에 '역사성'을 의식한 '무신'과 일본 원작을 한국 현실에 맞춰 역사가 끼워넣기식으로 편집된 '닥터진'은 전혀 다른 장르의 드라마라 할 수 있으며 '같은 사극'은 아니지 않나 생각됩니다.
두 작품 속 인물에 대한 '사관'을 평가한다면 비교 못할 것도 없겠지만 이미 한쪽은 창작된 스토리 위주의 판타지 드라마고 나머지 한쪽은 역사에 충실한 사극이다 보니 비교할 수 있는 건 극히 일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시청률을 의식한듯 잔인하고 보기 끔찍하게 연출되었다는 송길유(정호빈)의 고문 장면 조차 고려사에 적힌 장면을 그대로 표현한 것인데 이 부분을 '닥터진'의 수술 장면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현대극과 사극을 비교하는 것 만큼이나 아귀가 맞지 않습니다. '재미있다'와 '재미없다' 또는 '연기를 잘한다', '연기를 못한다'같은 문제로는 비교대상이 될 수는 있겠습니다.
분명 이제는 역사를 중심으로 생각하던 '사극'의 정의가 바뀔 때도 된 것같단 생각도 들고 또 최근 '정통사극'류에서 강조하는 남성적이고 영웅적인 가치관들은 다소 시대착오적인 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닥터진'과 '무신'을 동일한 '사극'으로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모종의 합의로 '사극'의 정의가 바뀌지 않는 한 '무신'은 사극이지만 '닥터진'은 사극이라기 보단 그냥 '시대극'입니다. 창작이 중점이 된 드라마와 역사를 중심으로 창작된 드라마는 분명 달라야하지 않을까요.
728x90
반응형
'TV Inside > 오락가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간접광고, CF도 드라마처럼 드라마도 CF처럼 (2) | 2012.07.24 |
---|---|
감동적인 '추적자' 그리고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4) | 2012.07.18 |
댄싱위드더스타, 중년의 힘 선우재덕 탈락 이변없는 1위에 정해진 탈락자 (0) | 2012.05.26 |
흥미로운 드라마 속 '기억상실' 그 나쁜 예와 좋은 예 (3) | 2012.05.25 |
선정적인 이미숙 불륜 폭로 그 본질은 故 장자연 사건 (7) | 2012.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