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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탈, 욱일승천기 하나 찢지 못하는 미완의 수퍼히어로

Shain 2012. 8. 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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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올림픽의 편파 판정 논란이 연일 네티즌을을 흥분시키고 있습니다. 전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킨 1초 오심, 편파 판정이라는 빗발치는 여론 속에서도 '나의 판정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바바라 차르 심판의 인터뷰가 보는 사람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같은 국민인 신아람의 눈물도 눈물이지만 어쩐지 이런 판정 문제가 국력을 반영한 건 아닌지 의심스럽기 때문에 더욱 동요하는 것 같습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피폐해진 우리 나라가 한때 극빈국으로 취급받던 때도 있어 그런지 유럽 여러 나라가 우리를 우습게 보고 그런 판정을 내린 것인가 싶어 안타까운 마음까지 듭니다.

거기다 신아람 선수의 특별상 문제로 구설에 오른 대한체육회의 자세는 여러모로 '약한 나라'의 수동적 처세는 아닌가 싶어 더욱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합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 올림픽 중계로 드라마 '각시탈'이 다시 결방을 했습니다.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이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는데 때마침 결방이라니 그 뒷이야기가 궁금하기만 합니다. 각시탈을 쓴 남자가 담사리(전노민)가 공개처형되는 현장에 나타나 폭탄을 터트렸는데 그 남자의 정체를 두고 네티즌들은 각자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각시탈'의 마지막 장면. 담사리를 구하고 자폭한 이 남자는 누구일까.


몸을 다쳐 누워 있던 진짜 각시탈 이강토(주원)가 다시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룸펜 기질을 보이던 이시용 백작(안석환)의 아들 이해석(최대훈)이 각시탈을 쓰고 희생한 것인지 시골로 내려가겠다고 하던 클럽 엔젤의 봉실장(백재진)의 마지막 선택인지 그것도 아니면 담사리를 구하러 온 적파(반민정)의 동료인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순사들이 조선 사람들을 두들겨 패던 그곳에서 속시원하게 폭탄을 터트린 그 남자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뜨거운 여름 태양 만큼이나 활활 타오르는 폭탄이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만든 수퍼히어로물입니다. 그것도 페니웨이님 표현대로 친일파 앞잡이 순사라는 어두운 과거를 가진 다크히어로 '각시탈'입니다. 시청자들은 내심 각시탈이 조선을 침략한 일본을 무찌르는, 거창한 복수를 기대해보게 됩니다. '수퍼맨'이나 '배트맨'이 악당을 물리치지 못하는 경우는 없었으니 '각시탈'도 그랬으면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름과 성격은 다르지만 '키쇼카이'와 유사한 성격의 무리들 그리고 극중 이시용에게 아부하던 친일파들은 아직까지 존재합니다. 역사를 거스르지 못하는 '각시탈'은 그래서 미완의 영웅인가 봅니다.



오동년은 총에 맞아 죽어가는데 멀쩡한 욱일승천기

담사리의 탈옥 장면을 보며 제일 먼저 떠오른 인물이 바로 백범 김구입니다. 동학농민운동을 지휘하던 젊은 백범은 동학운동이 실패하자 만주에서 항일운동에 참여하게 됩니다. 1898년에는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복수라며 한 일본군 중위를 죽이고 형무소에 갇혀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사형을 집행하기 직전 고종의 전화로 감형을 받고 수감되었으나 탈옥하여 한 사찰에서 승려로 잠시 은둔합니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셈입니다. 그뒤 백범은 3.1 운동 후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항일무력투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윤봉길 의사와 이봉창 의사 등이 참여한 한인애국단의 의거 뒤에는 백범 김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때 극중 담사리처럼 김구에게도 현상금이 걸렸는데 금액이 무려 60만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때의 60만원이면 현대의 돈가치로 환산하면 거의 200억에 가까운 거금이라고 하니 일본이 얼마나 김구를 잡고 싶어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 이강토와 이강산은 양반 집안의 자제였고 이강토는 집안이 어려워 일제 앞잡이를 선택했지만 이강산과 그들의 아버지 이선(이일재)은 독립운동에 자신들의 인생을 헌신합니다. 백범 김구는 담사리처럼 노비는 아니었으나 평범한 집안의 똑똑한 아이였다고 합니다.

이강토에게 잡혔지만 이강산의 도움으로 법정에서 탈옥한 담사리. 김구 역시 탈옥했다.


조선이 계급사회였던 만큼 양반층이나 부유층의 나라에 대한 책임감이 남달랐더라면 좋았을텐데 드라마에서 묘사된 것 만큼이나 그들은 친일에 열을 올렸습니다. 키쇼카이의 일원이었던 극중 최명섭(권태원)이나 경성일보 사장인 박인삼(김태영), 조일은행 조영근(고인범)같은 사람들이 우리 나라 정치, 경제, 언론. 교육 분야를 장악하고 민생을 외면했습니다. '일본이 그리 빨리 망할 줄 몰랐다'는 한 친일시인의 발언처럼 그들은 일본이 절대 망하지 않으리라는 믿음 하에 최대한 자신들의 재산을 부풀리고 일본에 충성했습니다.

담사리의 공개처형장에서 담사리를 죽이려거든 '나도 죽이라'며 항의하는 흰옷입은 사람들. 흰옷을 입지 못하게 하는 순사들을 피해 숨겨입은 흰옷이 피로 물듭니다. 조단장(손병호)과 오동년(이경실)같은 이름없는 백성들은 각시탈과 담사리같은 민족의 희망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기무라 슌지(박기웅) 쏜 총에 맞아 죽어가고 어두운 형무소 안에서 피가 터지도록 고문에 고통받을 때 그들은 희희락락하며 외제 커피를 즐겼습니다. 춘원 이광수는 '조선놈의 이마빡을 바늘로 찔러서 일본인 피가 나올 만큼 조선인은 일본인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글을 남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저 고깔은 일제강점기 사형수에게 씌우던 것. 많은 사람들이 담사리와 동년처럼 죽어갔다.


'각시탈'은 일제강점기를 묘사한 드라마로 한장면에서 가수 라라(한채아)가 기미가요를 부르며 등장합니다. 왜색 등의 이유로 그동안 우리 나라에서 금지되어왔던 노래입니다. 과거를 묘사하는 시대극이기에 그 정도 연출은 괜찮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일한합방'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일본의 조선 강탈을 기념하던 그 자리에서 각시탈은 욱일승천기 대신 현수막을 찢어야했습니다. 담사리를 구하기 위해 순사들 사이에서 폭탄을 터트리던 각시탈도 욱일승천기 만은 훼손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드라마라도 그 정도 연출은 눈치가 보였던 것이리라 말합니다.

이성적으로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위안부 소녀상 옆에 말뚝을 박은 그 일본인처럼 우리는 비상식적인 일을 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직까지도 일본의 극우파들은 무시할 수 없는 한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고 대한민국을 일제강점기 때처럼 '반도'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런 그들에 맞서 우리도 감정적으로 다른 나라의 국기를 찢고 훼손한다면 아무리 드라마라도 문제가 될지 모릅니다. 그점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왜 '드라마에서 조차' 안되는 것인지 가끔 답답해지곤 합니다. 각시탈은 슬픈 조선인들의 카타르시스, 수퍼히어로이기 때문입니다.

각시탈은 욱일승천기를 찢지 못했다.


오동년 역을 맡은 이경실의 연기는 죽음을 불사하는 평범한 조선 민족의 감정을 아주 잘 대변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총칼을 들고 무력으로 맞서지 못하더라도 삼일 만세를 부르며 독립을 염원하고 앞으로 나서 독립자금은 내놓을 수 없을지라도 독립투사를 구하기 위해 '나도 죽이라'며 나서는 한 백성의 아픔. 인정사정없이 오동년을 향해 총을 쏘는 기무라 슌지는 '조선을 사랑한다'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흰옷 입은 백성의 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욱일승천기를 찢어서라도 울분을 표현하고 싶었을 그들의 마음을 조금도 모르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도 사람들은 친일파가 살아있다고 말합니다. 일본의 입장에서 말하고 일본의 입장에서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득세하고 있다고 합니다. '각시탈'은 역사적으로도 드라마 속에서도 속시원한 복수를 못하게 된 셈입니다. 그러나 이강산이 죽고 이강토가 새로운 각시탈이 되고 오동년이 총에 맞아 죽고 또다른 각시탈이 폭탄을 터트리듯 어쩌면 각시탈은 수없이 다시 태어나는 영원한 '미완의 수퍼히어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라마 속에서는 욱일승천기 하나 찢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속시원한 응징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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