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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연애의 모든 것, 국회의원을 쓰레기 취급해서 싫다고?

Shain 2013. 4. 1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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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 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내연모)'과 관련된 흥미로운 기사 한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내연모'의 진보당 국회의원 노민영(이민정)과 보수당 국회의원 김수영(신하균)의 로맨스는 통합진보당 이정희 의원과 홍정욱의 연애 만큼이나 불가능한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개인적으로 그 기사를 읽고 현실정치와 이 드라마를 비교하기 시작하면 이 드라마는 망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연모'의 최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은 로코물에서 거의 금기로 여겨지는 정치를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입니다.

소재 면에서는 그 어떤 로맨틱 코미디에서도 선택하지 않은 영역이니 참신함이 돋보이지만 정치 혐오증이 극에 달한 리 나라에서 현실 정치를 연상시키지 않고 드라마를 끌고 나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드라마는 현실정치를 날카롭게 풍자하고 꼬집어 드라마틱한 재미를 살리는 동시에 현실정치의 나쁜 점을 떠올리지 못하게 사랑의 최면을 걸어야하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됩니다. 아직까지는 잘난척 대마왕, 모두까기 인형 김수영(신하균)의 열연으로 그럭저럭 시선을 끌만하지만 '정치 현실'은 이 드라마 최대의 난관인 것같네요.

현실정치의 여러 장면들이 떠오르게 하는 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

그런데 이 드라마가 현실 정치와의 연결고리를 끊긴 꽤 힘들어 보입니다. 오늘 오전에 올라온 뉴스엔 기사에 의하면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은 이 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에서 나타난 국회의원의 모습에 대해 시정요구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안 그래도 첫회에 등장한 김수영의 대사가 과격하긴 했습니다. 진보 보수 상관없이 정치를 개혁해보겠다고 나섰다가 힘에 부친 김수영은 사퇴서에 '이건 일반 쓰레기도 아니고 박테리아 수준의 쓰레기 중의 쓰레기인지라 도저히 이 세균 덩어리들과 더는 얼굴도 맞대기 싫다'라는 말로 국회의원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보수당 의원들을 '괴물'이라고 표현하는 노민영에게 같은 녹색정의당 국회의원인 고동숙(김정난)은 '국민들 눈엔 자기랑 나도 똑같이 국회밥 먹는 괴물로 보여. 저 쪽은 쪽수많은 괴물 이쪽은 쪽수 적은 괴물'이라고 대답합니다. 거기다 굳이 그런 대사가 아니라도 '내연모'에 등장하는 국회의원들은 한심한 행동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어필합니다. 각종 법안 통과를 위해 날치기를 시도하고 통과를 막기 위해 몸싸움을 각오하는가 하면 소화기에 맞아 기절한 김수영의 별것 아닌 입원을 침소봉대해 여론 플레이를 하기도 합니다.

어제 방송분에서는 여당 국회의원인 문봉식(공형진)은 총리에 대한 대정부질문 시간에 자신의 질문지가 야당 국회의원의 것과 바뀌었다는 사실도 모른채 읽어나갑니다. 그가 원래 총리에게 하려던 질문은 '총리님 특유 성실성과 덕망으로 심심한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같은 것이었습니다. 노민영의 말대로 정치쇼인지 짜고치는 고스톱인 여당 국회의원들이 민망한 수준의 형식적인 대정부질문을 한다는 걸 풍자하는 내용입니다. 이 드라마를 지적한 손인춘 의원에 눈에는 이런 장면장면들이 매우 못마땅했던 모양입니다.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제기된 '내 연애의 모든 것'(이미지 출처 : 뉴스캡처)

오전에 올라온 해당 기사의 내용을 추가로 인용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손 의원은 이어 "300명이 넘는 국회의원과 보좌관, 관계자들이 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는 등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을 정 사무총장도 국회의원을 역임해서 알고 있지 않는가"라며 "국회 문턱을 낮춰 국민에게 다가가는 것은 맞지만 정치 혐오 시대에 국회 안방을 내주면서 국회를 오히려 욕먹이는 행위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은 배경을 국회로 삼기는 했지만 엄밀히 이야기해서 정치판에 대한 풍자가 드라마의 메인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드라마 속에서 묘사하고자 하는 정치는 김수영과 노민영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사랑을 힘겹게 만들기 위한 장애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밑밥을 깔아둔 것으로 보아 이 드라마 역시 정치 풍자 부분을 제외하면 다른 통속극들과 유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모두가 반대하는 두 남녀 주인공의 비밀연애와 보수 언론 신문기자 안희선(한채아)와 송준하(박희순)가 엮인 삼각관계에 살인미스터리, 출생의 비밀까지 모두 가능합니다.

짜고치는 고스톱. 현실정치를 콕 집어낸 듯한 유쾌한 현실 풍자가 재미있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드라마에 대한 시정요구가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논의될 사항인지 그것 조차 의문입니다. 국회 경내에서 드라마 촬영을 허용했다는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의 답변대로 책임을 가진 담당자가 충분히 고려한 문제인데다 이 드라마는 정치물이 아니라 로맨틱 코미디이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국회 출석도 하지 않으면서 월급만 받아먹고 야합과 밀실정치를 일삼는게 정치인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시대에 국회의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려한다면 오히려 이런 주장을 제기하지 않는게 낫지 않을까요.

(쉽게 믿기지는 않지만) 국회의원들 중에도 진짜 민생을 위한다는 큰 뜻을 가지고 쉴새없이 일하는 올바른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요. 그리고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종교와 같은 거라는 안희선의 대사처럼 가치관과 생활태도가 다른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 자체도 불편하긴 합니다. 배우 신하균의 귀여운 매력이 좋아서 꾸준히 보고는 있지만 이 드라마가 현실의 경계를 넘지 못하고 '우리 사랑하게 해주세요'같은 신파극으로 넘어가면 금방 채널을 돌릴지도 모르거든요. 그때는 고소한 양념같은 유쾌한 정치풍자도 별로 도움이 안될 겁니다.

어딘가 모르게 진지한 신하균의 눈빛만 봐도 이 드라마는 그냥 로맨틱 코미디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에 대한 문제가 '시정해달라'며 국회에서까지 논의될 사항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시간으로 트위터에 올라오는 글만 봐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 속의 정치인들을 '사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탓하기에는 국회의원의 생각과 현실이 너무 다른 것입니다. 오히려 찔리는게 있으니 저런다는 비판을 받거나 일할 시간에 이런 거나 논의하고 있다고 조롱받지 않으면 다행일거라 봅니다. 어떻게 보면 총리에게 수고가 많다는 인사를 하는 극중 문봉식의 행동과 별다르지 않구요.

주연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로코물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불과 5%입니다. 이 드라마의 시청률이 현실정치에 지친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그런 상황에서 현직 국회의원까지 시청률에 보탬이 되지 않는 행동을 한 것같아 이 드라마 제작진이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드라마 '내연모'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드라마도 아니고 국회를 배경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입니다. 괜히 언급했다가 현직 정치인이나 드라마나 모두 피해보기 딱 알맞은 상황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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