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방송사에서 '킬미 힐미'와 '하이드 지킬, 나'라는 드라마를 방송한다는 걸 알았을 때 방송사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다중인격을 소재로 의학 드라마를 만드는 게 아닌 이상 또 멜로를 선택한 이상 두 드라마는 필연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도대체 어느 방송사에서 먼저 방송을 결정하고 경쟁작을 결정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MBC나 SBS 둘 중 늦게 결정한 방송사는 다중인격을 소재로 누가 이기나 덤볐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선택이 아닌가 싶다. 방송사끼리 서로 합의를 했는지 어쨌는지 제작진들끼리 의식하지 않는다고 해도 시청자로서는 상대 방송사의 드라마와 비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 역시 그런 이유로 관심을 가지고 '하이드 지킬, 나'의 첫방송을 기다려왔는데 솔직히 많이 실망스럽다.
기대했던 '하이드 지킬, 나'의 첫방송. 현빈 보다 갑자기 튀어나온 고릴라가 더 기억에 남다니.
물론 다중인격은 이 드라마 전체의 한 부분일 뿐이고 우연히 타 방송사와 시기만 같았을 수도 있다. 나는 같은 다중인격을 소재로 만든 드라마 '킬미힐미'를 의식하고 '하이드 지킬, 나'를 시청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최대한 이 드라마를 별개의 작품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이 드라마는 공중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로코물이고 '시크릿가든(2010)'처럼 현빈이 멋있게 나오는 드라마라 생각해보려 애썼지만 갑자기 사람이 달라지는 다중인격이 등장하는 이상 타방송사 드라마와 비교를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SBS는 같은 시기에 비슷한 소재의 드라마를 방송하기 시작한 것인가?
그런데 이건 뭐 비교할래야 할 수가 없는 수준이다. '하이드 지킬, 나'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다중인격 증세가 있는 한 '재벌' 남자가 한 여자와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지고 다중인격을 통합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구조는 '킬미 힐미'와 거의 유사하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별반 흥미를 끌지 못했다. 재벌 2세 구서진(현빈)이 나와 꿈 때문에 원더랜드 고객들에게 풍선들지 말라며 갑질을 해대더니 갑자기 고릴라가 뛰쳐 나오고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이 자기 땅 밟지 말랜다고 의과대학 건물에서 뜬금없이 줄타기를 한다. 이건 충격적이거나 신선하다기 보다 황당하다는 쪽에 가깝다. 고릴라가 뛰어다니기 시작했을 때 솔직히 이게 뭔가 싶었다. 다중인격 드라마의 화제성을 지나치게 의식한걸까?
반면 '킬미 힐미'는 다중인격 캐릭터를 하나하나 잘 살리고 있는 배우 지성의 연기로 한참 물이 올랐다. 평소에는 점잖고 차분한 차도현이었다가 한순간에 파괴적이고 박력있는 신세기로 변하는 지성은 갑자기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페리박으로 변해 유쾌하게 화면을 장악한다. 순간순간 확 달라지는 생기있는 얼굴이 드라마의 분위기를 확 달라지게 만든다. 지성의 연기가 그렇게 변화무쌍한 까닭에 시청자 역시 정신과 의사 오리진(황정음)이 차도현과 신세기에게 동시에 빠져드는 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같은 얼굴을 가진 다른 남자의 매력에 홀리는 것이다. 지성이 연기 잘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 매력적일 줄은 몰랐다.
이외에도 '하이드 지킬'이 반감을 사는 다른 이유는 있다. 원작 웹툰의 초반부만 봐서 잘 모르지만 '하이드 지킬, 나'는 원작이 지금 드라마처럼 재벌과 서커스단장이 아니라 인기 작가와 잡지사 편집부장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킬미 힐미'와 '하이드 지킬, 나'는 재벌가의 문제로 자신의 다중인격을 측근을 제외한 남에게 숨겨야한다는 점에서도 비슷한데 '킬미 힐미'의 차도현은 평소에 늘 겸손하고 자신의 다른 인격이 저지른 일을 뒷수습하고 미안해하며 굽히고 사는 반면 '하이드 지킬'의 구서진은 최근 여기저기에서 미움받고 있는 '갑질'의 표본이다. 자신의 놀이공원을 찾아온 고객을 함부로 대하고 아무에게나 안하무인인 태도는 아무리 캐릭터라지만 시기상 좋지 않았던 것같다.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킬미 힐미'가 이미 방송중이기 때문에 더욱 비교될 수 밖에 없었던 첫방송.
뭐 솔직히 '킬미 힐미'라는 경쟁 드라마가 없었다면 한지민 앞에서 춤추는 고릴라가 황당하고 장하나(한지민)의 줄타기나 호수에 빠지는 장면이 이상해도 로맨틱 코미디니까 발도장찍는 첫방송이니까 그렇다고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고 주인공 현빈의 이미지 하나면 다음 회에 대한 기대로 어떻게든 무마되었을 수 있다. 현빈이란 배우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으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같은 소재에 비슷한 구조로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경쟁작이 있어서 드라마 자체의 장점 보다 더욱 단점이 도드라지는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작가가 드라마를 잘못 썼던지 SBS가 드라마 전략를 잘못 선택했든지 어느 쪽이든 이건 아니다 싶다는 느낌.
만약에 같은 소재로 정말 대놓고 경쟁이라도 하고 싶었다면 두 방송사 중 하나는 재벌과 가난한 여주인공같은 진부한 설정 아닌 다른 설정을 선택했어야 했고 같은 날짜에 방송을 시작했어야 했는데 어쩌면 누가 봐도 늦게 시작한 쪽이 불리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인지 모른다. 같은 소재는 신선함을 어필할 수 없으니까. 또 어쩔 수 없이 지성과 현빈의 다중인격 연기 대결로 화제를 모았고 '시크릿가든'으로 큰 인기를 끈 현빈이라는 배우의 또다른 매력을 보고 싶었던 바람이 있었는데 현빈의 매력 보다는 고릴라가 더 기억에 남으니 이건 현빈과 고릴라가 보여준 또다른 매력이 될 것인가 굴욕이 될 것인가. 지금으로서는 당황스럽다는 쪽에 가깝다.
고릴라와 줄타기는 화제성을 의식한 선택인가?
'킬미 힐미'는 약간 산만하기는 했지만 첫회부터 차도현을 둘러싼 다중인격과 출생의 비밀을 하나하나 풀어놓기 시작했고 그 이야기와 사랑이 이제 슬슬 본 궤도에 진입하려 한다. '하이드 지킬, 나'는 다소 실망스러운 첫방송을 시작했다. 모든 드라마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있고, '하이드 지킬, 나'도 뭔가 드라마 자체의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구서진의 다른 인격인 로빈의 캐릭터가 드러나면 '하이드 지킬'도 앞으로 충분히 더 재미있는 드라마가 될 수도 있다. 배우들은 언제나 늘 제 능력을 발휘하니까. 그러나 굳이 비교될 수 밖에 없는 시기에 굳이 재벌의 다중인격이란 같은 소재를 선택해 '고릴라'라는 무리수를 둔 방송사와 제작진의 선택이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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