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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청선 군주나 청연군주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정식으로 이름이 남지 않은 사서 속 인물인 데다 대부분 이산 정조의 이름은 기억해도 군주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그네들은 이산 정조의 친동생이지만 서로 친밀하게 형, 아우 할 수 있는 처지들이 아니었다. 가족이라 해도 감히 왕의 자식을 함부로 부를 수도 없거니와 행여 친동생이라 해도 그들은 공식적으로 남보다 좀 가까운 사이였다. 그들은 그의 이름을 혜경궁 홍 씨라 불렀고 혜경궁은 그들은 할아버지였던 영조의 손자로 자랐다.

 

계례식 때문에 머리를 올린 성덕임. 계레식은 아주 중요한 행사였다.

 

그랬던 청연군주나 청선군주는 그나마 잘 살았다고 볼 수 있다. 큰 불행이나 슬픈 일을 당하지 않고 곱게 살다 죽은 것이다. 궁에서 태어나 궁에서 자란 그녀들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편지를 썼고 쓰고 읽었다. 극 중에서도 청연과 청선이 꽤 많은 편지를 쓰거나 대필해 준 것으로 등장하는데 그들이 사석에서 주고받은 편지도 궁금하거니와 어떤 내용의 안부를 주고받았는지도 궁금해진다. 10대나 20대 청춘들이 주고받은 내용의 편지들과 차이가 없었을까. 어찌 되었든 그들의 시간은 편지를 쓰면서 흘러갔다.

 

물론 청연군주의 삶이 평온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는데 가장 큰 불행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과 출산이었다. 임신 중에 아이를 가졌던 혜경궁은 그와 동시에 화재 때문에 큰 일을 겪게 된다. 불이 났는데 불이 사도세자 때문이라 생각한 영조가 그 일로 영조가 노발대발한 것이다. 그때부터 사도세자의 광증은 점점 심해졌고 결국엔 사달이 났다. 그 뒤로도 청연은 여자 문제로도 사고를 일으켰는데 왕손이 사돈이 됐으면 남들 입에 오르지 않게 행동해야 하는데 아무리 화완옹주가 일렀다고 하나 그런 일을 가볍게 입에 올린 사위 때문에 그는 구설에 오르게 된다. 청선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화완옹주는 왜 세손을 미워한 걸까

 

여기까지는 대충 누구나 아는 이야기고 그 후에 사람들이 구설에 오르고 연애를 하는 이야기는 대부분이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모르는 사람이 있다 한들 나머지 이야기는 인터넷으로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이 더 많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 그 시대를 살았던 궁녀들의 생활상이다. 예전에 실명을 찾아볼 수 있는 궁인은 한 명뿐이라고 적은 적이 있는데 사실 그것은 완역 전의 이야기이고 본명이 밝혀진 궁인은 한 명이 더 있다. 장희빈을 제외한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 중에 이름이 밝혀진 또 한명이 성덕임이다.

 

화완옹주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던 세손. 그는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는다.

 

사실될 수 있으면 성덕임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로 글을 꾸미려 하다 보니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영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미쳐버린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여러 작당을 꾸몄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사도세자는 생전에 꽤 여러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는데 그중 그들 하나가 숙의 문씨이다. 숙의는 남들의 말을 이곳저곳에 전해 꼭 한마디 싫은 소리를 듣게 만든 대표적 인물이다. 물론 자기밖에 모르는 성격이던 영조는 아들이 하나 뿐이든 말든 흠이 있으면 세손도 내칠 사람이었다.

 

극 중에서는 화완옹주를 이유 없이 미워한 것처럼 묘사되지만 사실 그녀가 처음부터 세손을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첫 시작은 영조 자신이었다. 영조 자신은 안 그래도 성격이 몹사 까탈스러워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왕이었고 그 때문에 영조를 점점 더 불편해했다. 간단히 그 사이에 거리가 더 벌어져 점점 남의 말을 더 신뢰하게 된다. 역사에는 귀를 씻었다는 말이 자주 등장했다. 화완옹주는 그 사이 혼인을 했지만 사별했고 이제 남의 손에 자신의 처지를 위탁하게 된다. 본래는 화완옹주와 친남매인 사도세자 사이가 원만했지만 영조의 총애가 화완옹주를 향하면서 그녀는 달라진다.

 

영조는 평소에도 까탈스럽고 문제가 많은 왕이었다.

 

혜경궁이 화완옹주에 대해 쓴 글에서 혜경궁은 친고 모인 자신을 경계하기도 하고 이상한 행동을 많이 했다고 적고 있다. 요즘 말로 자신이 세손의 라이벌인 행동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어린 세손은 화완옹주를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화완옹주의 이런 이유모를 경계에는 이런 한 가지 동기가 더 있다. 영조는 항상 세손이 미친 광기를 물려받을까 노심초사했다. 물론 그 광기란 완전히 것이 유전성도 아니고 누가 봐도 아상한 이야기지만(극 중에서도 이 부분이 자세히 묘사된다) 당시에는 그 점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화완옹주는 영조의 약점인 그 부분을 그 점을 집요하게 파고든 것이다. 결국 의기양양하던 그 때문에 벌을 받는다.

 

성덕임은 원래부터 청선군주, 청연군주와 친밀하게 지냈다.

 

세손의 성격은 어땠을까. 수많은 편지에서 세손이 글 쓰는 장면이 묘사되는데 어릴 때 쓴 글씨에서도 볼 수 있듯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이었다(묘하게 세손으로 등장한 인물의 글씨체는 정조와 유사하다). 개발 세발 쓴 글씨에서도 볼 수 있지만 평소 많은 연습과 수련을 통해 다스려서 그렇지 평소 심환지에게도 야단치고 심한 소리도 많이 했다. 원래 어찰은 태우는 게 관습이지만 유달리 정조 특히 심환지의 어찰은 많이 남은 편이다. 아마도 그대로 남았다면 많은 비난의 꼬투리가 되었으리라 싶다. 영조와 세손과 사도세자는 그렇게 닮은꼴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것은 궁녀들의 이야기다

 

궁녀와 공주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대부분 기록되어 있지 않고 추정해볼 수 있는 사례들만 있지만 대부분 죽은 사람들 이야기다. 중전 김씨(장희진), 서상궁(장혜진), 혜빈 홍씨(강말금), 제조상궁(박지영) 같은 인물들은 품계가 높아도 이름을 적는 경우가 거의 없디. 물론 세손이 그 험난한 환경을 뚫고 살아남은 것이나 손이 발이 되도록 빌 때 도움을 준 것도 사서를 찾지 못해 헤집을 때도 다 상궁들이나 궁녀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들은 글도 기록도 남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그렇게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실제로 꽤 글씨를 잘 썼고 그 기록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본문 참조). 실제로 어릴 때 궁녀가 키웠던 세자는 어릴 때부터 혜경궁과 자랐고 그때 글을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손은 꽤 여러 이유로 괴롭힘을 당했다. 성덕임은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한다.

 

이야기가 세손을 중심으로 흘러간다면 아마도 드라마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될 것이고 드라마는 짧아질 것이다. 홍국영(홍덕로, 강훈)이니 원빈이 등장한다면 이야기는 대폭 줄어든다. 대신 홍국영의 죽음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세손의 지밀 궁녀가 된 덕임이 할 일은 이제 꽤 많은 부분이 남았다. 큰 머리를 올린 걸 보면 곧 혼인식이 있을 것 같고 그 혼인식 때 무슨 일이 있을 낌 세다. 화완옹주가 그 맘 때쯤 둘의 화합을 극구 반대했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내가 사내였다면' 하는 표현이 옹주와 관계있는 일인 듯하다. 뭐 우리 덕임이는 어떤 일을 벌일 작정일까. 어쨌든 이 이야기는 궁녀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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