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

태종 이방원, '이비'를 낳은 효빈 김씨, 태조가 일으킨 '조사의 난'

Shain 2022. 4. 9.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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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에서 살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조사의 난'은 사람들이 쥐도 새도 조용히 사라진 사건입니다. 역사에 기록된 인물들이 기록도 없이 일주일간 없어진 것이죠. 이방원은 한 일주일 정도 사관과 궁궐 사람들도 모르게 궁궐 안에서 사라집니다. 그리고는 동북면 일대에 나타나서 갑자기 군사들을 통솔하죠. 이 과정이 비밀리에 이뤄진 것입니다. 그리고 뜬금없이 태조가 나타나더니 갑자기 군대가 패해서 사라지기도 합니다. 아마도 태조가 군사를 끌고 직접 다른 곳에 다녀간 곳으로 추정합니다. 그때까지 북방에 대해서 그동안 소홀했던 건 사실입니다. 일단 관련된 일을 모든 일을 비밀에 부치기로 하고 사람들을 파견합니다. 조사의 난은 그렇게 감춰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태종의 반란 소식을 들은 정종은 자신이 허락해준 일이라 어쩔 줄 모른다.

 

현비(신의왕후, 예지원)는 조사의의 인척이었다고 합니다. 그게 현비 때문이라 핑계는 댔지만 명분이었지만 사실 그쪽 땅에 연고는 없습니다. 뭐 고려의 왕과 대부분 조용히 죽거나 사라져 흔적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지만 신덕왕후만큼은 고려의 인척이라 불사도 자주 드리고 정업원에서 불사를 드리는 일도 흔했죠. '이 일은 사사로운 원한으로 일으킨 반역'이라며 '태상왕 전하와 연결시키는 일은 삼가도록 하시오.'라는 명을 내립니다.

 

군대의 반란도 태상왕의 일도 평생을 날뛰던 태조는 이때부터 긴 칩거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태상왕의 반란을 그대로 조용히 묻어 버립니다. 이 일은 역사에 적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겠단 뜻입니다. 궁궐 안의 인물들은 일사불란하게 명을 따르죠. 그리고 입단속을 명합니다. 역사에 제대로 적히지 않은 역사상의 일들. 대부분 그런 일들은 시끄러운 일들이 많죠. 이방간(조순창)처럼 사고를 친 것도 박포가 죽은 것처럼 갑자기 아닌데 갑자기 죽으면 '아 무슨 일이 있었구나'하면 됩니다. 역사상 그런 일들이 몇 번 있었죠.

 

동북면, 서북면에 군사가 모이자 달려가는 일단 달려가는 태조.

 

이성계(김영철)는 청해군 이지란(선동혁)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오랜 시간 변방에서 같이 형님 아우 하던 정속 깊은 사이인데 갑자기 죽다니 서운하고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때의 일로 굉장히 서글퍼했다고 하죠. 그때의 일로 전쟁을 이방원과의 접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아무튼 같이 살아남은 사람은 이제 웬수같은 방원이(주상욱) 뿐일 텐데, 늙으면 눈물이 많아진다더니 70이 다 되어가 노인 이성계는 눈물을 글썽이고 맙니다.

 

한편 궁궐 안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온 일은 결국 조용히 넘어갈 모양입니다. 궁 안에 갇힌 아이들 때문에 놀라고 충격받긴 했지만 - 아이를 다섯이나 가둔 것이니까요. 어린 왕자들 셋이 졸라대니 태종도 어쩔 수가 없었나 봅니다. 경안 공주와 경정 공주까지 연금이 풀렸습니다. 아무리 왕가의 사람들이지만 자식을 다섯이나 둔 왕족을 처분하는 일은 쉽게 마음먹을 수가 없는 일이죠. 특히 양녕대군 같은 녀석은 하나만 있어도 골치가 지끈지끈 아픈 타입입니다(태종 성격이 태상왕이랑 똑 닮았죠). 당시 원경왕후는 궁궐 출입을 할 수 없었지만 궁궐 안의 사람들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태상왕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문이 귀에 들어가고 태조는 그에 대한 준비를 시작합니다.

 

원경왕후는 갇혀있던 아이들을 보내주고 궁궐의 소식을 듣는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이거이(차기환)는 조영무(김법래)에게 투덜댑니다. 아직까지 사병 파병 문제로 앙금이 남은 것입니다. 조영무는 드라마 상에서는 이거이와 조영무는 사병 혁파를 두고 끊임없이 불평을 쏟아낸 인물입니다. 더군다나 왕족입니다. 몇 번은 처벌을 받고 중단하긴 했지만 그런 사람들까지 잘라내기엔 조영무처럼 가까이 부릴만한 사람이 별로 없었죠. 이방원을 향한 이 투털 거림은 결국 정사에 남는 에피소드가 됩니다만 중요한 건 이제 쥐도 새도 모르게 일어난 조사의 난을 잠재우는 것이죠.

 

 

 

 

 

조선보다는 고려에 더 가까웠던 북방의 정서

 

북방에는 함흥차사(咸興差使)의 전설이 유명하죠. 사서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이 함흥차사 이야기의 출발이 '조사의 난'이란 설이 있죠. 떠도는 이야기를 전설로 만들었다 이런 뜻입니다. 1400년 태종은 즉위하고 함흥에 갔을 때 없을 이성계가 왕위를 맡기고 태상왕을 떠났습니다. 그때 성석린을 차사로 보내 이성계는 그 청을 받아들였고 한양으로 환궁합니다. 그리고 다음 해 11월 태조는 떠났다가 무학대사를 함흥차사로 보냅니다. 1401년 태조는 환궁하지 않고 소요산에서 머물다 성석린에게 다시 궁에 돌아오라고 하지만 태조는 돌아오지 않았죠. 마침내 1402년 '조사의 난'이 발생합니다.

 

결국 태상왕은 다시 궁궐로 잡혀오고 태종은 궁궐로 급히 돌아온다.

 

태조는 1398년 왕위에서 물러나 태상왕이 되었고 그때 여기저기 떠돌겠다며 산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함흥차사의 전설이 1402년 12월의 일이니 뭔가 시간대가 많이 어색합니다. 정사의 기록만 살피지 않고 야사의 이야기까지 합치면 모든 이야기의 합이 맞춰진다는데 당시 누가 사람을 보내도 계속 죽여버렸다는 이야기는 전혀 사실과 다른 이야기입니다. 특히 성석린은 몇 차례 한양을 다녀왔지만 죽은 사람이 아니었죠(더군다나 관직에 있던 사람입니다). 아무튼 반란이 일어났다는 사실 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태조는 왕위에 자식이 있는데 그 왕을 모시지 않는 꼴이 웃기니 여러 번 사람을 보냈을 테고 태상왕은 그 4년 동안 분노에 차서 이방원을 용서하지 못한 것입니다.

 

태종은 그 당시 북방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동북면에서 활개 칠 때는 한 번도 군사적으로 밀린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다시 군사를 일으키니 만만치 않습니다. 그 사이 나이가 꽤 많이 들었으니까요. 난을 일으켰으니 앞서서 전진은 하지만 이성계가 활기차게 지휘하거나 한 것 같진 않습니다. 왕자의 난 이후 5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정도전(이광기)을 죽이고 이방석(김진성)과 왕자들을 죽이고 이방간은 쫓아냈습니다. 진이 빠지고 이미 나이가 들만큼 들어 힘든 시간이 이성계에게도 찾아온 것이죠. 왕자들의 원한을 갚겠다고 선언했지만 예전만큼 기세가 왕성하지 않습니다.

 

진짜 함흥차사는 이 사람들 - 정작 박순, 송류는태상왕을 만나지 못했다.

 

북방의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차별과 소외의 상징이었죠. 조금 신경을 쓴다고 해서 그 처지가 크게 나아지진 않을 거예요. 북방에 신경을 쓴다고 해도 아마 마미 할 겁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북진 정책을 꾀하는 계기가 마련되긴 합니다. 4군 6진의 개척으로 가별초와 북방을 그리워하던 이지란(선동혁)에게 그 마음이 닿을까요. 이성계는 북방의 장수였고 항상 벌판을 그리워하던 인물인데 혼자서 저렇게 죽어가는 모습은 안타깝네요. 소설 상의 설정이지만 말입니다.

 

 

 

 

아들을 낳은 효빈 김씨 - 지금은 목숨이 위험하다

 

태종은 왕비를 내칠 필요는 없었습니다. 왕비를 들여 친정의 기세를 꺾고 왕자를 비롯한 왕권을 위협할만한 인물들을 밖으로 밀어내고 - 그 정도만 해도 충분했죠. 한편 효빈 김씨(효순 궁주, 이주은)는 갑자기 목숨이 위험해집니다.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궁궐의 여종들과 궁주 한 명까지 후궁으로 들였지만 아직까지 첫 번째 아이는 누군지 모르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알고 보니 태종이 궁궐에 들인 여종이 남몰래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송씨(이응경)와 민무구(김태한), 민무질(노상보) 등은 어떻게든 그 일을 없던 일로 하려고 합니다.

 

위험한 상황에서 남몰래 아이를 낳는 효빈 김씨, 그는 경녕군 비(裶)의 어머니다.

 

그런데 아이를 몰래 낳은 일로 민제(김규철)가 압박을 받는군요. 이미 후궁을 들이는 문제로 태종에게 경고를 받았습니다. 아이까지 몰래 낳다니 '킬방원' 펄쩍 뛸 일입니다. 민제는 사위의 눈치를 보면서도 민무구, 민무질 몰래 숨겨서 아이를 낳습니다, 그 아이가 아마도 양녕대군의 이복형제가 되는 경녕군일 것입니다. 그렇게 난리 쳐서 아이를 낳아놓고 낳고 난 다음에는 별로 거들떠보지 않은 듯해요. 원경왕후가 경녕군(이비, 李裶) 모자를 핍박했다는 그 말은 일단 조금 의아한데 궁궐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이라 어떻게 알았는지도 의문이죠. 아마 민무구 쪽 사람들의 일을 부풀리기 위해 더욱 그렇게 표현한 것 기도 합니다.

 

민씨들을 얼마나 미워했던지 '민씨(閔氏)들이 음참(陰慘)하고 교활하여'라는 글도 씁니다. 명분과 대의를 중요시하던, 그 때문에 여러 인물들을 입 다물고 조용히 살게 했던 시절의 일은 잊고, 자신들의 뜻에 거슬리는 민씨들 부터 처단하기로 마음먹은 듯합니다. 민제는 구박하던 태종 때문인지 오래 살지 못했고 그 뒤에 민씨들도 한둘씩 처형되기 시작합니다. 정말 한참있다 아이는 발견되죠. 그 사이 태종은 아이가 구박받는 일을 몰랐을까요. 모르는 애가 갑자기 귀한 아이가 되는 그 심리도 대단하고 딸, 아들 가리지 귀하게 여긴 태종의 처세를 알 것도 같네요.

 

민제를 앞에 앉히고 조용히 겁박하는 태종. 민제는 속병이 난다.

 

이 일은 태조 민씨를 대놓고 욕할 정도로 분노한 일인데 그렇다고 반대로 특별히 효빈이 총애를 받은 것 같진 않습니다. 태조실록에서 이렇게 분노하는 태종은 과연 속된 말로 '오버하는' 척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진짜로 머리끝까지 화가 난 것일까요. 확실한 좀 과도하게 분노하는 것 같다는 것이죠. 덕분에 원경왕후는 아버지 덕분에 속이 타고 사위인 태조는 그런 민제를 말려 죽일 심산인가 봅니다. 원경왕후는 얼마나 밉보인 것일까요. 원경왕후는 울고 불고 매달리고 하는 타입의 성격이 아닙니다. 배포가 남다른 여성이었죠. 처가 식구를 인질로 삼은 원경왕후는 그런 민제 때문에 앞으로도 애태울 것인데 이건 좀 비겁하고 안타까운 모습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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