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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비버리힐즈 90210 - 조금은 엉뚱한 느낌의 컴백

Shain 2008. 9. 10.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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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모여산다는 업퍼 이스트 사이드(Upper East Side), 그곳을 상징하는 대표 우편번호(zip code)는 10021이고 종종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 자부심을 'I live in 21'이란 식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비버리힐즈에도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주소가 있다. 그게 바로 90210이란 Zip code이다. 과거 한국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Beverly hills 90210(1990)'은 그 부유한 마을에 이사온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새로 돌아온 '90210(2008)' 역시 이 포맷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동갑인 형제 애니 윌슨(Annie Wilson)과 딕슨 윌슨(Harry Wilson)은 아버지의 사정 때문에 텍사스에서 비버리힐즈 할머니 집으로 이사오게 되고 낯선 환경과 부유한 친구들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하게 된다. 다만 이번엔 아버지가 회계사가 아니라 비버리힐즈 하이 스쿨의 교장 선생님이란 점이 다르다. 보다 적극적으로 남매의 일에 개입한다는 이야기. 시각적으로는 훨씬 화사해졌고, 쌍둥이 대신 흑인과 백인 남매가 되버렸다는 점은 차이점. 출생의 비밀 같은게 아니고 입양된 형제다.


과거 '비버리힐즈 90210'에서는 영리한 쌍둥이 브렌다 월시와 브랜든 월시, 그리고 부자들의 일을 돕는 회계사인 아버지와 언론계에서 일하는 어머니, 고등학교 아이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거나 무언가를 도모하는 카페 피치, 초반부의 이야기는 부자들 사이에서 곤란을 겪는 쌍둥이의 문제가 많았지만 나중에는 그들이 벌이는 연애행각과 성장이 주된 이야기가 됐다. 당시 유행하던 미인상이던(소피 마르소와 닮았었다) 똑똑해 보이던 얼굴의 쉐넌 도허티와 금발 미인 제니 가스의 화려한 외모도 인기를 끌었다. 미국 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던 1시즌의 주연은 당연히 두 쌍둥이 남매.


Beverly Hills, 90210 오리지널 오프닝

2008년에 새로 찍은 '90210'에 나오는 남매의 친구들은 훨씬 더 문제아다. 약을 주고 받는 장면도 종종 묘사되고 예전 보다 더 비싼 외제차는 기본인데다 연예인이 되길 꿈꾸는 아이들도 많다. 윤리적으로도 그리 착하지 않지만 연애 문제는 훨씬 더 깊고 진지하다. 그렇지만 백인 위주로 선정되곤 했던 과거 주인공들과 다르게 약간은 히스패닉 느낌을 주는 배우들이 발탁되었다는 점은 차이점. 비버리힐즈 마을에 이제는 백인들만 살고 있는 건 아니란 점을 반영한 걸까? 그리고 부모 역을 맡은 배우들도 과거에 비해 훨씬 섹시하고 화려하다.



새롭게 공개된 90210 오프닝 - 오프닝이 짧아진 건 시대탓이다

과거 버전에선 미국 최고의 부유층이란 설정답게 주연 배우들도 백인 주류들로 설정되었는데 금발 미인 두 명에 전형적인 백인으로 설정된 드라마 컨셉은 요즘과는 조금 다른 시대상을 말해주고 있다(과거 미국 드라마에서 흑인이나 히스패닉 주인공을 보긴 힘들었다). 약간은 파격적이던 루크 페리나 제니 가스 등이 보여준 드라마 캐릭터는 당시 문제가 되던 청소년의 일탈을 부분적으로 엿볼 수 있게 해줬다. 그래도 성실한 캐릭터인 브랜든이나 안드레아를 동시 배치한 건 시대적인 제약이랄까? 그들의 일탈은 한계가 있었다.


드라마 내용처럼, 방황하는 청소년의 대명사처럼 그 과정에서 아주 어렸을 적부터 헐리웃 스타로 자란 배우, 쉐넌 도허티는 방황기를 버티지 못하고 중도 탈락해 버린다(어릴 때부터 스타였으니 실제 비버리힐즈같은 부유층이 아니었을까). '초원의 집(Little House on the Prairie, 1974)' 같은 유명 TV 시리즈에 1982년부터 출연하며 스타로 자란 쉐넌 도허티는 비버리힐즈 촬영 당시 잦은 지각을 하고 동료들과 충돌을 일으키곤 했고 결국 이 인기 시리즈에서 4시즌 만에 탈락하고 악녀 이미지를 굳히게 됐다(그녀를 악녀로 묘사한 책까지 출간된 적 있다). 헐리웃 스타로서는 상당히 아쉬운 자기관리였지만 본인에게도 타격이 컸던 모양이다.



Beverly Hills, 90210 시즌 5 오프닝


Beverly Hills, 90210 시즌 10 오프닝

덕분에 시즌 4에서 브렌다의 비중을 설득력있게 줄이는 작업이 시작되고 대학을 핑계로 멀리 떠나버리는 장면이 연출된다. 고등학생 쌍둥이 중심의 드라마가 다른 고교생 중심의 드라마로 바뀌고 그때부터 비버리힐즈 90210은 제니 가스를 위한 드라마가 되어버린다. 실제 쉐넌 도허티의 출연 분량은 전체 292 에피소드 중 111 에피소드가 고작이고 제니 가스는 10시즌까지 빠지지 않고 출연했다. 워낙 인기시리즈였기에 고등학생이 성인이 되어버렸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은 듯. 6시즌부턴 브렌든 조차 빠져버렸고 월시 가문은 비버리힐즈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우리 나라엔 아마도 4시즌-5시즌 정도가 소개되었던 듯.

과거의 주연이던 쌍둥이 남매 브렌다와 브랜든.


이번 새 시리즈는 스핀오프 형식으로 과거의 인물들이 등장한다고 했는데 나머지 구조는 예전 드라마의 포맷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월시가의 쌍둥이 남매를 대신해 윌슨가의 흑백남매를 배치시켰고 금발머리 제니 가스를 대신해 나오미 클락을 배치시키고 루크 페리를 대신해 이든같은 우유부단한 남학생을 배치시키는 등 예전 형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과거 드라마 시즌 10에서 제니가 등장했던 방식대로 켈리와 브렌다 역시 성인연기자로 이야기의 한 축이 된다. 과거 형태가 인기 있었다고 너무 노골적으로 따라간 건 아닐까?

전학온 고등학생 남매, 딕슨 윌슨과 애니 윌슨. 부유한 할머니의 비버리힐즈 저택을 보며 놀라는 장면.


새 시리즈에서 과거 극중 이야기 전개에 큰 역할을 했던 카페 피치라던지 신문부(방송부) 역시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친구들의 비중도 비슷한 편이다. 과연 같은 포맷으로 어떤 새로운 볼거리와 이야기를 끌고 나올 수 있을까 걱정은 되면서도 히로인 역할을 했던 쉐넌과 금발 미녀 역의 제니를 새로운 배역과 비교해볼 수 밖에 없다. 성격이나 배경은 많이 다르지만 일단 해야할 역할은 같다고 볼 수도 있다(?).

켈리 테일러 역의 제니 가스

나오미 클락 역의 애나린 맥코드


제니 가스는 아름다운 켈리 테일러 역으로 인기를 끌었다. 임신 중 살이 쪘던 그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던 팬들은 일상생활을 살고 있는 그녀를 믿을 수 없었다고 한다. 고등학교의 미녀 퀸 역할을 맡을 새로운 배우는 애나린 맥코드란 배우로 상당히 화려한 복장과 외모를 선보이고 있다. 현대적인 퀸은 어쩐지 애정을 줄 부분이 전혀 없어 보이고 예전에 출연한 도나와 켈리의 느낌을 섞어둔 것같기도 하다. 문제아 성향이 다분한 청소년으로 출연한 이번 금발머리 역시 히로인 애니와 모종의 꼬인 관계가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새로운 연인 애니와 이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원조 연인 쉐넌과 루크 페리


이번에도 주요 인물들 외의 친구들은 약간은 건전하게(?) 보이던 예전과는 달리 조금은 복잡한 가정사를 지닌 아이들과 부유층 특유의 문제들을 보이는 사람들도 채워져 있다. 영화계 진출을 꿈꾸는 뮤지컬부의 리더라던가 약간은 막장스러워 보이는 설정과 실버라는 캐릭터가 운영하는 가십 블로그에 올라오는 우스운 이야기들은 최근 유행하는 드라마 'Gossip Girl'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화려한 볼거리로 무장한 가십걸과는 다르게 90210 쪽은 건전한 부분을 훨씬 더 많이 포함(?)하고 싶어한다. 같은 포맷으로 재미를 주려면 그 캐릭터들이 인기를 끌어야할 것이다.

볼거리 면에서 비교가 될 것이라 여겨졌던 드라마 Gossip Girl. 하지만 역시 세레나가 한수 위다.


90년에 첫시작한 비버리힐즈 90210은 교훈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파격이라면 파격일 수도 있었다. 덕분에 브렌다의 악녀 이미지가 더욱 마이너스로 다가왔던 것이다. '비버리힐즈 90210' 없이는 'Gossip Girl'의 성공도 없었을 것이고 원조라면 원조 청춘 드라마인데도 불구하고 새로 만들어진 90210에서는 파격을 찾아보긴 힘들다. 약간은 구태의연한 그 설정에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과거의 추억을 떠올려주는 배우, 쉐넌 도허티와 제니 가스의 출연은 팬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을까?

원조 90210의 세 미녀 도나, 브렌다, 켈리.

제니 가스는 여전히 켈리 테일러란 이름으로 비버리힐즈 하이스쿨의 상담교사 역으로 출연 중이다. 그녀의 사생활, 과거, 로맨스도 드라마의 한 부분이 될 듯하다.

다소 나이든 얼굴로 첫등장한 쉐넌 도허티와 제니 가스. 고정출연진이 될 것인지 궁금하다.


이 리메이크 드라마에서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건 어른들의 관계다. 아버지 해리 윌슨은 이 동네 비버리힐즈에서 좀 놀던(?) 사람이고, 학부모 중엔 동창생도 있다. 상담교사 켈리 테일러 역시 원조 90210에서 한물 하시던 퀸이 아니던가. 이 어른들의 꼬임 덕에 쉐넌 도허티와 제니 가스가 출연할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원트리힐이나 다른 드라마에서 볼 수 있었던 출생의 비밀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뜻이고 어른들의 연애 문제도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는 뜻이다(실버의 정체 역시 마찬가지). 덕분에 약간 비정상적인 원로 여배우 할머니의 등장이 이상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구세대와 신세대의 기대를 받으며 엄청난 첫방 시청율을 기록했지만, 악평도 쏟아지고 있는 건 식상한 테마와 구태의연한 캐릭터 때문일 것같다.



이미지 출처, 참고 기사 :

* 90210과 Gossip girl OST를 주제로 팟캐스트를 녹음했습니다. 짧은 분량이지만 들어보시려면 http://www.podics.com/channel/channel_item_view.php?ci_id=116602&page=1 로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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