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영화 이야기

Bobby Kennedy, 정치에 꿈을 가졌던 그 시절

Shain 2010. 9. 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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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든 21세기의 어느 해든 서민의 삶은 그리 변하지 않는다. 그들이 즐기는 오락거리와 유행이 바뀌고, 조금쯤 그 카테고리가 추가되었다 한들 알 수 없는 변수에 휘둘리는 서민 일상이란 점에선 과거와 차이가 없다. 그런 서민들은, 혹은 사람들은 시대별로 어떤 정치인을 선호했고 어떤 희망을 품었을까?  영화 'Bobby(2006)'는 미국 60년대를 조명하며 그들이 '꿈'이라 불렀던 로버트 케네디, Bobby란 애칭을 가졌던 그의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미국의 60년대를 관심있게 조명하는 드라마와 영화들은 수없이 많다. 미국의 현재를 있게 만든, 가장 많은 정치 사회 변화가 있었던 시절, 그리고 각종 전쟁으로 부유해진 미국이 최고의 성장 가도를 달리던 그 시절. Kennedy가문의 JFK와 RFK는 당시 가장 인기있던 정치인이었고,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들이었다. 형인 JFK 사망 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 차기 대통령이 되려 했던 Robert Kennedy.

백인, 흑인, 라틴, 젊은이, 노인, 예술가, 노동자, 남자, 여자, 혹은 사회주의 국가의 기자가 RFK를 기다리고 있다.


케네디가 형제들과 자손들의 비극 이야기는 새삼스럽지 않다. 암살당하고 요절한 그들의 이야기는 수없이 영화화되었고, 그들의 출신과 숨겨진 가십들도 전설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만(마릴린 먼로 이야기에 빠지지 않는게 케네디이다) 이 영화 Bobby는 단순히 그런 이야기거리들이 아니다. 이 영화는 케네디들의 개인사가 아니라 그들을 선택했던 사람들을 화두로 삼고 있다. 42세에 요절한 정치인 Robert Kennedy. 미국은 그에게 어떤 희망을 걸었는가.

앰버서더 호텔에 묵던 사람들은 잘못된 화제 경보 때문에 새벽잠에서 깬다. 알콜중독인 가수 버지니아(데미 무어)와 그녀를 뒷바라지하며 돌보는 남편 팀(에밀리오 에스테베즈)


영화는 1968년, 앰버서더 호텔의 잘못된 화제 경보로부터 시작한다. 인기스타인 가수 버지니아(데미 무어)는 가운 차림으로 남편 팀(에밀리오 에스테베즈)과 함께 밖으로 나오고, 1921년부터 호텔과 함께한, 은퇴한 호텔 직원인 존(안소니 홉킨스)은 늦은 시간까지 호텔을 서성이고 있다. 지배인인 폴(윌리엄 H.메이시)은 정신없는 현장을 챙기기 바쁘다. 사만다(헬렌 헌트)와 잭(마틴 쉰) 부부는 LA에 도착해 호텔의 일대혼란을 지켜보고 있다.

그 호텔에는 또한 RFK의 대통령 후보 경선 운동에 자원한 많은 사람들이 근무하고 있기도 하다. 선거운동본부의 드웨인과 웨이드는 며칠째 밤잠도 자지 못하고 홍보에 열중하고 나사가 빠진듯한, 약간은 헐렁해 보이는 젊은이인 지미와 쿠퍼 역시 선거 운동을 위해 호텔을 들락거린다. 그들 외에도 호텔에는 바쁜 일상을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호텔을 채우고 있다.

베트남에 끌려갈 윌리엄(일라이저 우드)을 살리기 위해 결혼한 다이앤(린제이 로한), 그리고 남편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미용사인 미리엄(샤론 스톤)


68년의 미국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이다. 베트남에 군인으로 끌려갈 의무가 있는 젊은이들은 전쟁종식을 주장하는 케네디를 지지한다. 그들은 시대로 인해 무력감을 느끼며 방황하고, 혼란에 빠져 피셔(애쉬튼 커쳐)에게 마약을 구하기도 하며 극단적으론 살기 위해 결혼하기도 한다. 세계대전을 정의의 전쟁이라 불렀던 윗세대들은 그런 젊은이들을 나약하다며 이해하지 못하고 딸의 결혼 조차 축복하지 않는다.

멕시코계의 젊은이 호세는 양해없이 야간 근무를 시키는 대릴(크리스챤 슬레이터)때문에 짜증이 난다. 전 직원을 투표에 참가하게 하라는 지배인 폴의 말을 무시하는 대릴. 그덕에 호세는 어렵게 구한 역사적인 야구 경기 티켓(기록에 남은 댄 드리스데일의 경기)을 쓸 수가 없는 처지가 된다. 호세의 동료 미겔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호텔 내 라틴계 차별에 분노하지만 조금 더 나은 처지인 흑인 에드워드(로렌스 피시번)도 백인인 전화교환원 안젤라(헤더 그레이엄) 역시 또다른 권력자인 폴 앞에선 약자일 뿐이다.

누구 보다 열심히 RFK의 선거운동에 참여하는 드웨인과 그를 한눈에 알아보는 호텔의 전화교환원 패트리샤.


멕시코계 호세가 묵묵히 견디며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하는 반면 흑인 드웨인은 RFK를 지지하며 또다른 꿈을 꾼다. 흑인들의 투표를 저지하려는 암묵적인 움직임에 항의하고 루터 킹 목사의 죽음 이후 희망은 RFK 뿐이라 생각한다. 여전히 저임금을 받으며 고생하는 또다른 흑인 여성 패트리샤의 처지에 공감하기도 한다. 마약에 취해 미친듯이 호텔을 누비는, 백인 젊은이 지미나 쿠퍼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정의와 평화를 그리고 비폭력을 부르짖던 정치인 로버트 케네디에게 그들은 기대를 품기도 하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기도 한다. 굳이 진보란 이름으로 그들을 부르지 않아도 케네디가 주장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믿음은 그들의 삶을 바꾸기에 충분한 에너지가 되어준다. 우울증 때문에 고민하는 잭과 사만다 부부에게도, 은퇴한 넬슨과 존에게도, 다음 공연을 잡지 못하는 한물 간 가수 버지니아에게도.

로버트 케네디의 지지자들은 새로운 시대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RFK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이 영화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로버트 케네디가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혹자는 군대를 가기 싫은 철부지들이 지지한 대통령 후보, 사회의 루저들인 흑인이나 라틴계들이 지지한 정치인, 혹은 민주화의 열망을 가진 사회주의 국가에게 세계의 냉전이 종식될 거란 희망을 준 대통령이란 오판을 내릴지 모른다.

결국 RFK는 테러로 사망해버렸기에 그들이 정치인들에게 바랐던 모든 것들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 젊었던 후보가 과연 베트남 전쟁을 빠르게 종식시킬 수 있었을 지 그 가능성 조차 테스트해보지 못 했다. 인종차별의 문제는 조금 더 시간을 끌게 되었고, 사람들이 그토록 반대하던 베트남 전쟁은 75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아쉽지만,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었다 해서 그런 일들이 단번에 해결되진 않았을 지 모른다.

흑인들은 로버트 케네디를 푸른 눈을 가진 영혼의 형제라 부르기도 했다.


영화 마지막에 흐르던 음악, 미국의 60년대, 갈 길 모르던 젊은이들을 상징하던 음악,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는 그 가사 만큼이나 영화에 잔잔한 슬픔을 보태준다. 대화의 단절과 관계의 단절로 시작된 침묵, 점점 더 폭력적이 되어가는 세계에 희망을 던진건 그 사람들, 케네디를 꿈꾸던 그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희망이 RFK의 죽음으로 부서져버렸다는 슬픈 전설.

1968년 6월 6일 사망한 로버트 케네디. 중요한 건 그가 죽었다는 사실이 아닐지 모른다. 같이 생존하는 공동체에 대한 꿈을 꾸고 그것을 함께 이루어나가는 것, 그것이 정치이고 지금이 그런 유대감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 정치인은 늘 사라지지만 사람들은 꿈을 버려서는 안된다. 우리 나라의 누군가와 이미지가 겹치기에 약간은 우울하지만 의미있는 영화로 추천할만하다.


이미지 출처, 참고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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