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영화 이야기

아라비아의 로렌스, 푸른 눈의 피터 오툴

Shain 2010. 10. 7.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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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안소니 퀸의 정말 아랍인같은 아저씨 행색과 강렬한 인상으로 눈빛이 형형하던 오마 샤리프, 그리고 눈부신 하얀 옷을 입은 푸른 눈의 피터 오툴이었다. 로렌스라는 주인공이 사막에서 이루고자 했던 뜻도 그들의 상황도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배우의 푸른 눈 만은 선명하게 인상적으로 각인되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가 데이비드 린 감독의 1962년 영화였으니 아직까지 배우 생활을 하고 있는 피터 오툴(Peter O'Toole)은 평생을 영화와 함께 늙어온 셈이다. 그리고 그만큼 그의 외모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계속 그를 드라마와 영화에서 접해 왔음에도 로렌스 역할을 했던 배우란 점을 알지 못 했다. 물론 말많은 영화 칼리쿨라(Caligola, 1979)의 티베리우스가 그였단 사실도 잘 몰랐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피터 오툴 과 안소니 퀸


지금 생각해 보면 피터 오툴의 짙은 푸른 눈과 금발은 의도적인 선택이었던 듯하다. 검은 머리 아랍인의 강렬함과 거친 선을 강조하는 오마 샤리프, 안소니 퀸과 한눈에 대비되는 백인, 외모도 생각도 완전히 다른 사막에 떨어진 이질적인 존재같은 그를 부각시켜주기엔 금발에 푸른 눈 만큼 효과적인 것도 드물지 않나 싶다. 지금은 머리가 하얗게 세어 원래의 머리색이 어떤지 모르겟지만, 원래 금발이 아니었던 거 같다.

금발의 피터 오툴은 사막 안에서 영국과 아랍 사이에서 고군분투한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로 다시 태어난다. 후대에 기인에 마조히스트란 평가까지 듣고 있는 로렌스란 인물은 영화 속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따웁과 쉬막(아랍인의 사막 복장과 두건)을 입고 낙타 등위에 올라 사막을 내달린다. 그의 표정은 타올랐다가 일순에 식어버린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게 거의 20년전이다. 보는 사람을 입다물게 만드는 사막의 정적과 낙타의 질주를 보며 저 주인공이 사막에서 이루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곤 했지만 그때는 선명하게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아랍에서 근무한 실존 인물이었던 로렌스의 이야기도 기이한 부분이 많아 감독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부분과 차이를 느끼기도 했다.



하긴 100년도 전에 태어난 인물로 그 역사적 평가 조차 이제 신경쓰는 사람이 드문 사람이고, 그를 묘사한 영화가 이미 1962년의 고전으로 꼽히고 있으니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정서가,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배경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지 모르겠다. 특히 뒷부분에 이어진 주인공의 행동은 어떻게 보면 삶의 연륜이 쌓이기 전엔 깨달을 수 없는 허무함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로렌스의 캐릭터가(실제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가 아니라, 영화 속의 로렌스) 사막에 불었던 한때의 모래폭풍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열정도 역사적인 야망도 순수하고 격했지만 사막이라는 큰 힘 앞에 침몰해버리는, 아랍의 열기에 흡수당해버리는 일련의 과정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의 힘으로 뒤집어놓을 수 없었던 국제 정세 역시 그의 나머지 인생을 몹시 따분한 느낌이 들게 만든 것이 아닐까.

겨울 사자(Lion in Winter, 1968)의 출연 배우들. 맨 왼쪽부터 티모시 달튼, 피터오툴, 안소니 홉킨스, 나이젤 테리, 제인 메로우, 캐서린 햅번, 존 캐슬.



감독의 작품 제작이 뛰어나단 뜻인데 그렇다고 피터 오툴이 천재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자신 만의 능력이 거의 없는 무능한 배우였던 건 아닌듯 하다. 캐서린 햅번과 함께 헨리 2세 역을 맡았던 겨울사자(The Lion in Winter, 1968)같은 명작은 아직도 회자되는 고전 중 하나다. 캐서린 햅번에겐 오스카 상을 안겨준 기념비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2003년 패트릭 스튜어트와 글렌 클로스의 버전으로 다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자주 비교대상이 되곤 하는데 피터 오툴은 사자왕 리처드의 아버지로 아내와 아들과 왕국을 두고 다퉜던, 위대하고 유능했지만 개인적으로 불운했던 한 남자의 인생을 멋지게 표현해냈다.

The Tudors에 출연할 동안엔 키가 그리 큰 인물인줄 몰랐는데 지금 보니 188센티의 장신이다. 개인적으로 어린 시절에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감탄했던게 배우의 신체나 외모도 영화를 구성하는 '그림'의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했던거 같다. 닥터 지바고에서 러시아 혁명을 흥분된 표정으로 '느끼고 있는' 아랍계 오마 샤리프 연출은 지금 봐도 탁월하다.



2011년까지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2008년 방영된 SHOWTIME 'The Tudors'의 교황 바오로 3세(Pope Paul III)역이다. 헨리 2세의 영향인지 수장 역할을 맡을 때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원로 배우로 선이 굵은 역할이 필요할 땐 언제든 출연을 마다하지 않는 바쁜 배우 중 한사람이다. 올해도 촬영 중인 영화가 있다고 하니 내년 쯤엔 다시 스크린에서 얼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피터 오툴의 딸(Kate O'Toole, 1961년생) 역시 아일랜드에서 활약하며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


이미지출처, 참고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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