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한국 드라마 보기

프레지던트, 왜 인기를 끌지 못할까

Shain 2011. 1. 20. 13:19
728x90
반응형
가족까지 희생하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는 주인공 장일준(최수종)을 보면 노련하다는 생각이 들기 보다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정치인으로 대통령 후보에 나선다는 것은 남에게 자신의 치부와 오점이 낱낱이 드러난다는 걸 감수해야한다는 뜻이지만 가족까지 '소모'하며 정치판에서 살아남아야하는 지 의문입니다. 이런 장일준에 대한 불편함은 꼿꼿하고 융통성없는 신희주(김정난)를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게 합니다. 주인공이 아닌 다른 후보를 지지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현재 'KBS 프레지던트'의 대권후보들 중 가장 '완벽'에 가까운 인물은 김경모(홍요섭)입니다. 장일준이 섹스 스캔들에 휘말려 엄청난 비난을 듣고 있지만 동참하지 않고 흑색 선전 보다는 정책 대결이 이어지는 선거였으면 좋겠다며 입바른 소리를 합니다. 장일준은 모종의 '목적' 때문에 그런 멋진 후보를 이겨 대통령이 되려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장일준의 양녀 장인영(왕지혜)는 장일준과 피가 섞이지 않은 남남입니다. 조소희(하희라)는 유민기(제이)와 그 어머니의 존재를 알고 있기에 한번 더 터진 섹스 스캔들에 분노하지만 자신이 가슴으로 낳은 딸이 일준의 부정으로 얻어닌 아이가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장일준을 경선 후보 4위로 만들어버린 이 스캔들은 주일란(조은숙)의 거짓 주장일 뿐입니다.

드라마 '프레지던트'는 상당히 잘 만들어진 드라마로 탄타난 짜임새를 갖추고 있고 캐릭터도 잘 만들어진 편입니다. 그러나 경쟁작 MBC의 '마이 프린세스'가 18.8%. SBS '싸인'은 15.3%의 시청률을 얻고 있는 반면 프레지던트는 10%를 쉽게 넘지 못하고 7.3%의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대신 고정팬들과 드라마 팬들의 지지율은 뜨거운 편으로 매니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살아나는 법

박을섭(이기열)의 불륜 사실을 폭로한게 장일준이란 사실은 윤성구(이두일)에 의해 백찬기(김철규)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윤성구는 빚을 진 신용불량자로 아이들까지 기르고 있기에 백찬기의 유혹을 거절하지 못 했고 그로 인해 장일준은 타격을 입습니다. 신희주와 단일화를 성공하지 못하면 승산이 없는 장일준은 고민에 빠지고 박을섭은 주일란을 언론에 공개해 일준에게 두번째 타격을 입힙니다.

캠프의 기수찬(김흥수)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결백을 증명하라고 대응책을 내놓고 다른 스태프와 아내 조소희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이번 스캔들을 막으라 조언하지만 장일준은 뻔뻔한 주일란의 인터뷰를 보면서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주일란 스캔들은 클린턴의 지퍼 게이트 못지 않은 파급력을 가지고 장일준 후보를 무너트릴 것입니다.


김경모의 신임을 잃은 일준에겐 사방이 적일 뿐입니다. 과연 백찬기다 싶을 정도로 날카롭게 일준의 약점을 짚어내는 그는 어떤식으로 그 약점을 활용할 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위기의식이 든 조소희는 주일란을 어떻게든 처리해보고자 무리수를 두고 장일준은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며 화를 냅니다.

이런 전략적 대응은 장일준의 평소 행동 패턴을 보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는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선 한발 더 나아가라는 고전을 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가해진 두번의 공격으로 큰 타격을 입었어도 그 싸움에 뛰어들어 이길 능력이 충분하지만 일단 그 위기를 방조하고 상대방이 공격하도록 내버려둡니다. 그 상황에서 마지막 카드를 내던지는 '묘수'는 상황을 반전시키고도 남음이 있죠.

주일란이 가져온 위기는 장일준이 신희주를 다시 잡고 박을섭을 저지시킬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정의로운 신희주는 간계에 능한 장일준을 탐탁하게 생각치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협상 테이블에 올라야겠죠. TV에서 자신의 추문이 공개되고 있음에도 동요를 전혀 보이지 않는 장일준은 정말 무서운 인물이죠.



이 드라마, 왜 인기를 끌지 못할까

간간이 등장하는 장인영과 유민기의 멜로는 그닥 드라마의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이는 그동안 멜로물에 지친 시청자들이 반가워할만한 구성으로 기존의 정치 드라마가 MBC '제 5공화국'같은 다큐 형태 뿐이던 우리 나라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SBS '대물'은 정치 드라마라기 보단 정치가 양념이 된 멜로 드라마에 가깝다는 단점이 있었지요.

프레지던트가 정치 드라마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 못한 건 'SBS 대물'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봅니다. 같은 대통령 당선이란 소재로 2010년 10월부터 이어진 정치 열풍은 한 드라마의 종결으로 끝을 맺었지만 프레지던트는 그 열기를 이어받지 못했습니다. 특히 1회에서 4회 분량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반영되어 '질 수 밖에 없는' 경쟁을 하게 됩니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같은 종류의 주제 반복이 달갑지 않을 수 있죠.

두번째 이유는 '정치'라는 주제를 관통하는 '진지함'이 오히려 시청자들에 부담으로 다가 오고 있습니다. '대물'이나 '프레지던트' 모두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대물'은 정치적인 치밀한 대립 보다는 코믹함이나 선악구도를 해결하는 시원시원한 에피소드 연출에 훨씬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대신 '프레지던트'는 각기 다른 가치관과 정책을 가진 정치인들이 '스포츠 경기'를 벌이는 양상입니다.


최근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치혐오증은 유난스럽다고 합니다. 정치 현실을 볼 때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힘겨운 국민들은 '마이 프린세스'가 주는 가벼운 카타르시스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정치는 현실이다'라는 극명한 교훈을 외면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죠. 혹자는 현실감없는 정치물로 인해 대한민국 정치에 실망한 사람들이 훨씬 더 늘어났다고도 합니다.

배우들이나 소재에 그닥 호감을 갖고 있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가치관 역시 가끔 거슬리지만 이 드라마는 깨나 잘 만들어진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잘 차려진 음식이지만 먹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죠. 정치에 대해 관심가진 사람이 많아 정치 소재로 만들어진 오락물을 즐기는 시대는 올 수 없는 것일까요. 역시 예술이나 문화는 해당 국가의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하게 되나 봅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