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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지던트, 홍세화라면 어땠을까

Shain 2011. 1. 2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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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 중에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란 홍세화의 책이 있습니다. 홍세화는 'KBS 프레지던트'의 주인공 장일준(최수종)처럼 79년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었던 인물로 관련자들이 사형당하는 강경한 처벌을 받았지만 당시 파리에서 근무하고 있던 관계로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공소시효 만료 후 2002년 귀국해 이제는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지요.

프랑스 망명 중 출간한 책,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홍세화의 글을 읽으면 그와 친구들을 처벌했던 무식하리 만큼 잔인한 정권에 분노하게 되지만 진심으로 우리가 사는 나라를 걱정하는 저자의 우려를 보며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홍세화가 낯선 사람들만 가득한 프랑스에서 택시를 몰고 그곳에서 프랑스를 느끼며 떠올리는 건 자신을 버린 무자비한 나라입니다. 그런 처지에서도 내가 태어난 나라를 걱정합니다.


만화 '이글(Eagle)'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이 드라마에서 '홍세화'를 모티브로 주인공을 변신시킨 건 절묘하다 할 수 있기도 하지만 우려스러운 부분도 없잖아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원작 주인공 야마오카는 일본계 미국인으로 월남전에 참여한 해병 출신 의원입니다. 재벌 아내를 등에 업고 그가 구현하고자 했던 정치적 야망은 '프레지던트'의 주인공 장일준이 꿈꾸는 야망과 다를 것이 분명합니다.

'참전용사'와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피해자'는 어떻게 생각하는 점이 다를까요. 일부 각색되긴 했지만 두 주인공 모두 대통령 당선을 강렬히 원한다는 점만은 공통적입니다. 자신의 가족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정치판으로 달려드는 그들은 마치 가족 팔아 술마시고 도박을 했다는 중독자들의 모습같기도 합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신념을 포기하는 신희주(김정난)의 표현처럼 장일준은 이미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홍세화의 똘레랑스와 장일준의 화국

한국 정부에 대해 홍세화가 어떤 감정을 가졌을 지 저로서는 알 길 없지만 확실한 건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관 이외에도 한가지 변하지 않는 태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프랑스란 나라에서 배웠다는 '똘레랑스'입니다. 영어로는 '관용'이라 해석되는 이 단어 똘레랑스(tolerance)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와 다름을 용납하란 뜻이며 다름을 용납하지 않는 태도에 분노하란 뜻입니다.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는 책에서 표현한 것처럼 한국의 정치적 대립은 프랑스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게 사실입니다. 이념 대립 뿐만 아니라 경제적 입장의 대립도 심각한 곳이 한국입니다. 원론적으로 느껴지지만 한국 사회에 절실한 이 주제는 홍세화가 진정으로 바라는 한국의 모습일 지 모르겠습니다.


장일준은 꼿꼿하고 올곧은 길을 추구하는 신희주에게 '진정한 정치인'으로 각성하라 말합니다. 이는 나와 생각이 다른 다른 사람들 포용하고 가라는 현실적 요구이기도 하지만 잘못 해석되면 이익을 위해서 누구와도 타협할 수 있는 인물이 되란 뜻처럼 비치기도 합니다. 신희주의 선택이 왜 박을섭(이기열)이어야 했냐 하는 부분은 어떻게든 오점으로 남을 수 밖에 없습니다.

홍세화와 같은 경험을 한 장일준은 '화국(和局)'의 수를 이야기합니다. 바둑을 둘 때 흑과 백이 무승부를 이루는 걸 화국이라 하죠. 형님 장일도가 꿈꾸던 나라는 흑과 백이 조화를 이루고 상하가 반복하지 않는 모두가 잘 사는 나라였다는 장일준의 말은 왜 대통령이 되고자 했는지 의중을 일부 짐작하게 해줍니다. 자신과 뜻이 다르다 해서 버릴 수는 없다는 주장은 일면 이해가 가고 홍세화의 주장과도 부분적으로 일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형에게 사형을 하라 강력히 주장했던 청암 송학수의 도움을 얻는 것까지 그의 정치적 목적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가족까지 희생시키고 대권을 향해 달려가는 장일준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표를 얻겠다'며 필사적인 심정을 드러내지만 그의 목적이 그의 행동을 정당화시켜주는 것일까요. 똘레랑스는 잘못이나 비리까지 덮어주라는 뜻과는 매우 다릅니다.



정치인 신희주의 가슴 아픈 눈물

장일준의 아들 유민기는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의 정치 생활을 지켜보며 분노하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한동안 아버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기로 합니다. 그건 간간이 보여주는 장일준의 진심이 과연 무엇일지 궁금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청자 역시 이 비겁하고 비열해 보이면서도 인간적인 정치인의 진실을 알고 싶기도 합니다. 장일준이 유민기를 납득시킬 수 있다면 그의 정치는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있겠죠.

분명 장일준의 '남과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는 존중할만한 것입니다. 자신을 위기에 몰아넣은 주일란에게도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인물입니다. 이 젊은 정치인은 한발 앞서 손잡을 수 있는 인물의 범위를 가리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들의 머리 속에 있는 정치에 대한 선입견처럼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때를 묻히는 것'이 과연 정치인이 도달해야하는 정석일까요. 하긴 과거의 왕들은 나라를 위해서라면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 합니다.


그들의 참모 오재희(임지은)도 윤성구(이두일)도 그런 장일준의 모습은 바라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시원시원한 위기 탈출 능력에 감동하면서도 때로는 그의 선택에 역시나 불편한 감정이 듭니다. 자신의 형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정치인과도 한자리에 앉을 수 있는 철면피가 정치인가 싶습니다. '프레지던트'는 그 부분을 어떻게 시청자에게 설명해줄 것인가 궁금합니다.

'정치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며 박을섭과의 더러운 단일화를 이뤄낸 신희주는 꼿꼿했던 자신의 신념을 버려야하는 순간 눈물을 흘립니다. 한 정치인에게 가치관이나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이처럼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지방대 출신으로 입신양명한 신희주가 모교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신념과 정치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네요. 정치인의 타협은 어느 정도까지 용서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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