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공주의남자

공주의남자, 시선 빼앗는 화려한 퓨전사극 연기력은 글쎄?

Shain 2011. 7. 2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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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역사는 남자들 만의 역사라할 정도로 여성들을 배제한 역사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기존 조선시대 사극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궁중에서 암투나 벌이는 미욱한 존재들이거나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던 수동적인 존재들이었습니다. 가장 귀하다는 무품의 존재, 왕의 딸인 공주라 해도 그 처지는 별반 다르지 않아 본명이 제대로 기록된 경우가 드뭅니다. 왕의 정치적 목적에 정략혼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왕의 사위가 되길 부담스러워해 힘들게 혼사를 치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밖으로 나간 공주들은 때로 힘겨운 사가의 생활을 견디지 못해 고생하다 요절하기도 합니다. 영조가 총애하던 딸이었던 화완옹주는 그나마 노론들에게 대접이라도 받았는데 바람피우는 남편에게 구박 받다 비참하게 죽어간 공주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타고나길 귀하디 귀한 신분이라 해도 바깥에서까지 그 대접을 받긴 힘든 일인지라 공주로 태어난 자체가 행복과는 거리가 먼 일일 때가 많았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공주라는 덕혜옹주의 삶이 그랬듯 말입니다.


저는 정통사극을 좋아하는 만큼 퓨전사극도 아주 좋아합니다. 다만 최근 종영된 '근초고왕'처럼 정통사극의 탈을 쓴 창작극을 싫어할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름 만 기록에 남아 전하는 공주와 가상의 인물들로 창작된 '공주의 남자'는 제법 흥미로운 퓨전 사극이 아닌가 싶습니다. 왕자들에 비해 전면에 나서지도 못했고 그 삶도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공주들의 이야기라면 퓨전 사극을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소재입니다. 더군다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원수 집안의 자녀들이 사랑하는 내용이라니 드라마로서도 흥미로운 작품이 탄생할 듯합니다.

문종의 장녀이자 폐위된 단종의 누이였던 경혜공주(홍수현)와 조카를 밀어내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김영철)의 장녀로 등장한 이세령(문채원). 이 두 사람이 여주인공이고 단종을 지지하고 지키려하던 김종서(이순재)의 아들 김승유(박시후)가 남주인공입니다. 조선의 영웅이었던 김종서는 수양대군의 쿠데타로 후손들이 200년이 넘도록 등용되지 못하는 역적 취급을 받게 됩니다. 그런 집안의 자손과 사랑에 바진 수양대군의 딸이라니 듣기만 해도 드라마틱합니다.



이세령과 김승유는 모두 가상의 인물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소재로 한 수양대군과 단종의 이야기는 과거엔 사극에서 자주 다뤄진 적이 있지만 최근 시청자들에겐 몹시 생소한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얼핏 삼촌이 조카의 왕위를 빼앗았단 이야긴 알고 있어도 문종에게 딸이 있었는지 세조에게 딸이 있었는지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세조의 아내였던 정희왕후나 세조의 며느리인 인수대비는 그나마 유명한 인물이지만 그들의 딸들 중 역사에 영향을 끼칠 만한 인물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상 세조의 딸로 기록된 인물은 '의숙공주'로 정인지의 아들에게 시집가게 됩니다. 극중에서는 수양대군의 차녀인 세진(서혜진)이 의숙공주 역을 맡게 되는 걸로 보아 큰딸로 등장하는 이세령은 공주의 신분이 되지 못하거나 아버지의 반란 보다는 사랑하는 남자를 쫓아 떠도는 역할을 맡게될 듯합니다. 그러나 문종의 장녀로 기록된 경혜공주나 그의 남편 정종(이민우)은 실존 인물로 계유정난 이후 경혜공주는 관비가 되고 정종은 사사됩니다.

수양대군, 김종서, 문종

퓨전 사극은 역사를 기반으로 창작되는 사극이긴 하지만 정통 사극에 비해 드라마를 구성하기가 편리합니다. 사육신과 생육신, 수양대군과 단종의 이야기는 이야기의 다른 한 축으로 끌고 가되 중심 이야기는 가상 인물들이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왜곡 논란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고 극적인 재미도 살릴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퓨전 사극 특유의 기법으로 역사 속 인물들을 재해석하는 재미가 만만치 않습니다.

과거 야심만만한 수양대군에 비해 문종(정동환) 임금은 나약하고 동생만 믿던 무력한 왕으로 묘사된 적이 있습니다. 권력 앞에서 혈연 따윈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을 가진 수양에 비해 병약했기 때문에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었던 문종은 어떤 과정으로 죽어갔을까요. 그는 왜 죽기전에 수양을 비롯한 종친들을 무력화시키지 못했을까요. 한때는 영웅이었고 왕 보다 높은 권력을 누린다고 했던 김종서가 제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언젠가 무너질 수 밖에 없는 노인임에도 왜 그에게 단종을 맡기고 죽었을까요.

단종(노태엽), 정희왕후(김서라)

가상의 사랑 이야기와는 별개로 '계유정난'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다른 방향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이 드라마의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경혜공주, 이세령, 김승유, 신면(송종호, 신숙주의 아들), 정종의 피끓는 러브스토리도 볼만할 것같지만 수양대군을 중심으로 가차없이 휘몰아칠 피바람 속에 죽거나 승승장구한 많은 인간군상이 좋은 이야기거리가 되겠지요. 안평대군(이주석), 이개(엄효섭), 신숙주(이효정), 한명회(이희도)의 인물됨됨이를 어떻게 표현할지 기대됩니다.

다만 아쉬운 건 박시후와 문채원의 만족스럽지 못한 연기력인데 경혜공주 역의 홍수현이나 정종 역의 이민우 등은 이미 사극 연기 경력이 오래 되어 정통 사극에서도 그 능력을 발휘하는 연기자입니다. 수양대군을 비롯한 다른 출연자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세령과 김승우기는 현대극이라 해도 무방한 내용의 사랑 이야길 펼칠 인물들이라 그런지 종종 다른 인물들과의 대화가 어색할 때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느냐가 이 드라마를 살리고 죽일 관건이라 봅니다.


운명적인 사랑의 이야기가 시작됐는데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공주들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야사에서나 전했음직한 버려진 공주가 원수 집안 아들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은 흥미롭기 그지 없습니다. 이세령은 공주가 되었다가 자신의 지위를 포기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으면 처음부터 수양대군을 떠나는 걸까요. 김종서의 죽음 이후 김승유가 조직을 꾸려 복수를 계획하게 된다고 하는데 이세령이 어떻게 함께하게 될 것인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첫만남도 마지막 해후도 어쩐지 참 운명적인 커플이 되려나 봅니다.

가상의 커플, 역사 속의 커플 - 그들의 운명적인 만남

문종의 장녀로 동생 단종을 보호하고 싶은 경혜공주는 김승유에게 호감을 느낀 것도 물론이지만 아우에게 꼭 필요한 김종서의 며느리 자리를 포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 것없는 집안인 정종에게 시집가서 평생을 살게 될 운명을 타고난 공주입니다. 그런 말괄량이 공주를 대신해 김승유를 처음 만난 이세령이 말을 한번 타보려다 위기에 처하고 김승유가 그를 구해주는 장면이 감질나게 묘사되고 있더군요.

퓨전사극답게 의복이나 소품들이 시대 고증을 거쳤다기 보단 극중 이미지에 걸맞게 연출된 편으로 경혜공주의 화려한 의상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현대의 드레스룸이라 할만큼 화려한 의상실(?)도 제법 아기자기했고. 과거의 공주를 재현했다기 보단 현대인들이 알고 있는 공주를 사극 속에서 재탄생시킨 모습이라 나름 시선을 끌더군요. 로미오와 줄리엣, 두 남녀 주인공이 어떻게 이 이야기를 최고의 드라마로 만들어줄 지 그렇지 않으면 아쉬운 화제작으로 만들어줄 지 결정할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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