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공주의남자

공주의남자, 허허실실 전략 수양대군과 살생부의 원조 한명회

Shain 2011. 7. 2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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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에 사극에서 묘사되는 김종서는 꽤 다양하게 변해온 것 같습니다. 때로는 무식하고 여자 좋아하고 단순한 무인으로 그려지고 때로는 올곧고 사려깊은, 그러나 잔꾀를 부릴 줄 모르는 우직한 인물로 그려지곤 하는 김종서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지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확실한 건 그가 단종을 보호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 후손들은 수양대군으로 인해 200년이 넘게 관직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정치'와 '무도'는 다른 것이 아니겠냐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는 문종(정동환)이 아들을 지키기 위해 김종서(이순재)의 아들 김승유(박시후)와 딸 경혜공주(홍수현)의 결혼을 성사시키려 하는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정치적으로 그런 경우가 드물었다고 알고 있습니다(물론 이야기 자체가 가상이지만). 부마나 세자빈을 간택할 때 왕은 어떻게든 자신의 사돈이 왕권에 힘이 되는 사람이길 원하고 중심세력을 잡은 신하들은 자신의 가문에서 왕족의 배우자가 나오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힘없는 가문에서 간택되길 종용합니다.


최고 권력자라는 김종서의 아들과 공주가 결혼하겠다니 신하들이 반대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당연히 반발할 줄 알았던 수양대군은 문종의 뜻을 받드는 척 경혜공주와 김승유의 혼인을 위한 절차 즉 길례청을 준비하겠다고 합니다. 수양대군을 따르는 종친과 신하들에겐 본심을 알 수 없는 의아한 행동이고 수양대군의 반대파들에겐 의심스럽기만한 그 반응. 수양대군은 남들 앞에선 자신이 손해를 보는 척 하지만 뒤에서는 훨씬 무서운 간계를 꾸밀 줄 아는 진짜 전략가입니다. 제아무리 올곧은 김종서라해도 이런 책략을 따라갈 수 없었겠지요.

사촌인 이세령(문채원)에게 우호적이던 경혜공주가 김승유를 만나게 되고 이세령과 김승유가 가까워진 것을 알게 되자 그 둘의 사이를 질투하게 됩니다. 동생 단종(노태엽)을 위해서도 김종서의 아들인 김승유가 필요했고 첫눈에 반한 김승유가 자신의 남자란 생각이 들었기에 더욱 두 사람이 혼인하도록 용납할 수 없습니다. 수양대군과 김종서, 경혜공주, 정종이 정통 사극 분위기를 이끌어간다면 세령, 승유는 시대와 무관한듯 현대 멜로물처럼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수양대군이라는 호랑이가 이들의 삼각관계를 그냥 둘 리가 없겠죠.



신숙주는 실리적인 성격, 한명회는 모사꾼?

북한에서 제작한 드라마 '사육신(2007, KBS)'도 그랬지만 새로운 왕을 받들기 위해 결의한 사람과 현재의 왕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 건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파란만장한 드라마입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조카의 피를 보며 권력의 정점에 서려는 남자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 비정한 권력자의 주변에서 같이 모반을 꾸민 사람들은 과연 자기 한몸의 이익을 위해 수양대군의 편에 섰을까. 때로는 그들이 간신이 되고 때로는 그들이 운명의 개혁자가 됩니다.

수양대군 하면 떠오르는 간신은 칠삭동이 한명회(이희도)입니다. 극중에서는 꼿꼿하고 대가 쎈 신숙주(이효정)을 수양대군이 주목하는 것처럼 그렸지만 본래 신숙주와 수양대군이 먼저 알고 머리좋은 한명회를 수양대군에게 소개해준 것이라 합니다. 한명회와 신숙주는 그 뒤로 사돈이 되고 왕실 외척이 되어 세조를 왕위에 세운 덕을 톡톡히 보게 됩니다. 특히 한명회는 왕족 못지 않은 권력으로 딸 둘을 모두 왕비로 만들고 여럿의 첩을 두는 등 부러울 것없는 삶을 살다 갑니다. 대신 연산군 때 폐비 윤씨 사건을 막지 못한 죄로 시신을 절단하고 거리에 뿌리는 벌을 받게 되었죠.

수양대군의 양팔이었던 신숙주와 한명회

수양대군에 대한 평가가 다양한 것처럼 이들 신숙주와 한명회에 대한 평가도 다양합니다. 한글 창제 등에 공헌한 집현전 학자였든 신숙주는 비록 그 의리는 저버렸으나 학문에 대한 공과 신하로서의 능력은 재평가 받아야한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한명회 역시 세조, 성종을 지낸 노련한 재상으로 그의 정치 능력은 시대에 꼭 필요한 자질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안 그래도 현대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않는 시대이니 말입니다.

수양대군이 야심만만한 권력지향형 인간이었다면 한명회는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계유정난(癸酉靖難) 당시에도 반란을 성공하기 위해 꼭 죽여야할 인물의 명부, 즉 살생부를 작성하여 수양에게 제시하는 등 노련한 책사이기도 했습니다. 병력을 지휘할만 반대파들을 일찍 숙청하고 나면 아무도 그들의 반란에 대항할 수 없게 되어 좀더 빠른 시간 안에 단종에게 왕위를 양위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역사적 인물들의 행동 포인트를 잡아 캐릭터로 만들어내는 게 사극의 매력입니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간택 보다는 궁합을 봐야한다는 신숙주의 지적에도 허허실실 받아들이는 척 인심좋은 척 자신의 너그러움을 자랑하는 수양대군이 허허실실 전략으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인맥을 쌓았다면 한명회는 시정잡배를 모아 기생집에서 몰래 사람을 부리고 사채업을 하는 등 전형적인 모사꾼의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신숙주가 대쪽같은 신하에서 수양대군의 충신으로 변하는 과정도 꽤 흥미롭지 않을까 싶습니다.



핏빛 미래가 예고된 두 연인의 사랑

김종서가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듯 합니다. 대신 정치적으로 영악하지 못하고 술수에 능하지 못해 왕을 보필하는 인물로는 부족함이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정치를 하자면 김종서같은 인물도 필요하지만 수양대군과 한명회, 신숙주같은 인물들도 분명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이 한명의 왕을 두고 경쟁하는 사이였다면 좋은 짝이 되었을 지 모르지만 하필 수양대군의 야망은 타고난 권력자의 그것이었습니다.


다툼이 벌어지면 다치는 사람이 생기는 법이고 극중의 젊은이들이 그 두 사람의 대립으로 인해 고통받을 인물들입니다. 이 이야기의 원전으로 전하는 세희공주의 이야기는 그런 아쉬움을 담은 백성들의 바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세령과 김승유의 안타까운 사랑, 경혜공주와 정종(이민우)의 서글픈 운명은 반란 속에 사그라드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슬픈 미래가 예고된 커플들의 사랑이라 그런지 사랑하는 모습도 몽환적으로 묘사하고 있더군요.

문채원의 연기력 논란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길 하는 걸로 아는데 홍수현, 김영철을 비롯한 사극 출신 연기자들이 대사를 할 때와 문채원이 대사를 할 때는 상당히 분위기 차이가 많이 납니다. 상대 배우들의 똑똑하고 분명하고 성량좋은 발음에 비해 얼버무린다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흔히 사극 발성이라고 하는, 현대극과는 다른 어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다수이다 보니 문채원의 발성이 튈 수 밖에 없는 것이겠죠. 이세령 커플에 대한 묘사가 아무리 현대적이라 해도 최소한 사극에서 좀 더 연습을 한 후에 출연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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