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공주의남자

공주의남자, 서글픈 경혜공주의 혼인과 세령의 눈치없는 사과

Shain 2011. 8. 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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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드라마니까 흥미롭다며 재미있게 시청하긴 합니다만 생각해 보면 계유정난과 수양대군의 반란은 어찌 보면 자신의 권력을 위해 친가족을 살해한 패륜의 이야기이기에 절대 미화해서도 안되는 역사라 봅니다. 로맨스가 가미되어 아름답게 그려질만한 이야기는 더욱 아니지만 드라마 '공주의 남자'의 주인공은 실제 인물 같은 가상의 인물들이라 그 비난을 비켜갑니다. 또 자신의 혈연까지 죽인 수양대군(김영철)이 친딸 세령(문채원)에게도 비정한 아버지일 수 밖에 없다는 부분은 수양의 잔인함을 부각시키기도 합니다.

극중 세령은 왕가의 딸로 태어났음에도 수양대군과 김종서(이순재), 그리고 문종(정동환)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자신의 친척들인 종친들도 문종을 따르는 무리, 수양대군을 지지하는 무리로 나뉘어 있고 큰아버지 문종은 죽음을 앞둔 상태로 경혜공주(홍수현)의 혼사에 자식들의 목숨이 달려 있다며 민감하게 행동하는데 아녀자라서 그런지 그런 일은 관심 밖입니다. 한마디로 영악하거나 민첩하게 시류에 반응하는 기질은 없는게 세령입니다.



경혜공주는 세령에게 했던 말대로 사랑놀음을 할 처지가 아닙니다. 아버지 문종의 병환은 나날이 깊어가고 어린 동생은 아직 스무살도 되지 않은 소년입니다. 수양대군의 기세는 더욱 더 등등해져 조정 여기저기에 손을 뻗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어떻게든 김종서의 자제와 혼인해 동생의 등등한 뒷배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혼인할 사람을 만나 보고 싶다던 세령의 소원을 들어준다는게 김종서의 아들 김승유(박시후)와 세령이 사랑에 빠지게 만든 셈이 되어버렸습니다.

궁녀에게 부탁해 옥사에서 승유를 만난 세령은 그곳에서 수양대군을 마주 치고 끌려 나옵니다. 승유는 미처 수양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평소 아버지가 문종과 단종을 해할리 없다고 믿어오던 세령은 아버지가 승유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경혜공주의 날서린 야단에도 굳이 승유 앞에서 세령을 궁녀라 지칭하며 두 사람의 사랑을 막으려 했을 때도 아버지가 그럴 리 없다며 쉽게 수긍하지 않던 세령도 연인의 위험 앞에서는 변화를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세령의 진심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경혜공주

실제 역사에서야 경혜공주와 김종서 아들의 결혼이 이뤄졌을리 만무하겠지만(당시 문종은 30대 후반, 김종서는 문종의 아버지 뻘로 나이차이가 상당합니다)  대부분의 극중 인물들은 시대 변화에 맞춰 적극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바꿔갑니다. 경혜공주가 아버지에 뜻에 따라 승유와의 혼인을 결심한 것도 그렇고 신숙주가 수양대군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문종을 배신한 것도 그러합니다. 신숙주의 아들 신면(송종호) 역시 세령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못하고 곧 수양대군을 적극적으로 따르게 될 것입니다.

경혜공주는 세령이 공주인 척 밖으로 나돌아다녔음이 알려지면 사촌 세령의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앞에 나서 승유를 살려달라 간청하면서도 세령의 일을 밝히지 않은 건 두 사람 모두를 염려하는 윗전의 자세였을 것입니다. 자신의 딸이 공주 노릇을 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경혜공주와 김종서를 압박하는 수양대군은 기가 세고 당돌한 조카 경혜공주를 망신준다고 생각했겠지만 왕실 종친인 세령의 문제는 조정 대신들의 비난을 받기 딱 좋은 문제였습니다.

서로를 알아보고 깜짝 놀라는 경혜공주와 정종


어부지리로 볼것없는 집안의 정종(이민우)가 부마가 되고 경혜공주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궁중에서의 혼례를 준비합니다. 어차피 아버지와 동생에게 도움이 되는 혼인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상관이 없다는 게 경혜의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정종은 또다른 '공주의 남자'로서 경혜공주에게 최고의 배필이 되어주겠지만 한 나라의 공주로 태어나 정략혼으로 보탬이 되지도 못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결혼을 한다는 점에 상심했을 것입니다.

문종이 김종서 가문과 사돈 인연을 맺지 못한채 오히려 김종서의 아들을 죽일 뻔한 일은 경혜공주와 단종의 안위를 위협할 수도 있는 문제였습니다. 언제 죽을 지 모르는 문종에게 김종서라는 사돈 마저 없다면 문종은 안심하고 숨을 거둘 수 없습니다. 뒷받침이 되어줄 세력을 만들지 못하는 건 수양이라는 맹수 앞에 어린 두 자녀를 먹이로 내놓은 것과 똑같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애써 외동딸의 혼례를 궁에서 올리라 청하고 딸의 모습을 바라보는 문종은 속이 타들어갑니다.

눈물로 하례를 올려도 바뀐 운명을 거스를 순 없다


한 여자는 이렇게 자신의 타고난 '책임'에 온몸을 내던지고 어떻게든 부모 형제를 살리려 애쓰고 있는 반면 오로지 말한번 타고 멀리 달려보는게 소원이었던 세령은 한때 스승이었고 이제는 연인이라 할 수 있는 승유가 세상의 중심입니다. 그를 살려달라 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애원하고 경혜공주에게 매달리는 그녀에겐 왕실의 일원이란 사실 마저도 크게 와닿지 않는 것 같습니다. 본 마음이 순수하고 신분과 지위에 구애받지 않는 성격이라 그렇겠지만 슬픈 결혼식을 해야하는 경혜공주에게 하례를 드린다는게 영 못마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외명부 일원으로 마땅히 공주에게 하례를 올려야 하니 세령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자신으로 인해 김승유와의 결혼에 실패한 경혜공주에게 그 축하인사가 조롱으로 느껴지는 건 당연합니다. 철없는 사랑놀음의 결과가 많은 걸 바꿔놓았으니 뻔뻔하다는 공주의 지적이 하나도 틀리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기뻐야할 혼례날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혼사를 최악의 날로 바꾸게 만든건 본인인데 그 자리에서 뺨을 맞는다 해도 누굴 원망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공주가 독하게 보이는 게 안됐을 정도입니다.



승유와 세령, 경혜공주와 정종

세령이 공주의 자리에 오를 지 오르지 못하게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드라마에서 말하는 '공주의 남자'란 김승유를 말하는 것일 겁니다. 그러나 또다른 '공주의 남자'는 바로 부마가 된 정종이라 할 수 있겠죠. 수양대군의 딸로서 김종서의 아들을 좋아하는 세령의 사랑도 비극이지만 한 사람의 공주로서 왕실을 지키고 싶었던 경혜공주의 사랑도 엄청난 비극입니다. 두 커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미래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공주 중에서 더 안쓰러운 쪽은 '빼앗긴 자'의 입장인 경혜공주 쪽이라 할 수 있겠죠.


댓글로도 누가 달아주셨지만 안타깝게도 김승유는 세령이 누구의 딸인지 모르고 사랑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후 세령의 정체를 알게 되고 배신감에 치를 떨며 복수를 다짐한다는데 세령 쪽의 사랑도 만만치 않은 파란을 예고하고 있는 건 사실이긴 하네요. 경혜공주가 궁 밖으로 나가고 문종은 지병이 악화되어 곧 숨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안타까운 네 사람의 사랑, 그리고 친구까지 배신하며 세령을 지켜보는 신면의 사랑이 더욱 더 치열하게 타오를 것 같습니다.

확실히 계유정난의 이야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씁쓸합니다. 한 나라의 공신으로 한두가지 구설에 오른 적은 있어도 그닥 부정한 인물이라 할 수 없었던 김종서는 일개 책사였던 한명회의 살생부에 올라 죽어가고 왕위에 오르기 위해 문종을 독살했단 의혹을 받는 수양은 조카에게 사약을 내리고 동생 안평대군(이주석)도 사사합니다. 세종의 후궁이자 단종과 경혜공주의 유모 역할을 했던 혜빈 양씨와 수양의 또다른 동생인 영풍군도 죽어갑니다. 사육신들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런 피비린내나는 세상의 로맨스라 그런지 볼 때 마다 아슬아슬하단 느낌을 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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