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공주의남자

공주의남자, 민폐형 캐릭터 세령의 무심한 거짓말

Shain 2011. 8. 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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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작되는 퓨전 사극 연기자들 중에는 사극 특유의 발성과 억양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말이 사극이지 전체적인 구성과 내용은 현대 멜로물이나 무협물과 마찬가지라 시청자들이 편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현대극 말투를 쓴다는게 굳이 나쁜 일은 아니지만 때론 그 부분이 다른 사극 연기자들과 동떨어져 전체적으로 극의 통일감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 주연 배우들 역시 사극 연기를 한다기 보다 개화기 남녀들의 사랑을 보는 느낌도 줍니다. 왕실 장면을 촬영할 땐 정통 사극이지만 연인들의 로맨스 장면은 현대극과 별반 차이가 없더군요. 특히 사극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존대가 어긋나 수양대군(김영철)에게 김승유(박시후)가 '~하셨다'는 식으로 대답하는 세령(문채원)을 보니 현대극의 문제점이 그대로 사극에도 반영되고 있구나 싶기도 합니다.

주인공임에도 그 누구 보다 현실 파악이 더딘 세령


또 어제는 병 때문에 드러누워 있는 문종(정동환)에게 경혜공주(홍수현)와 정종(이민우) 부부가 절을 올립니다. 원래 병자가 있는 집은 제례를 올리지 않는다고 하고 누운 병자에게도 절을 하지 않는다는 금기가 있습니다. 와병 중인 사람이 죽으란 뜻과 마찬가지라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는데 희한하게 문종은 누운채로 절을 받습니다. 저는 '바람의 화원'에서도 '위대한 유산'에서도 괜찮은 연기를 보여줬던 문채원이 첫 사극에서 발연기 논란에 휩싸인 건 이런 현대극과 사극의 간극에서 오는 문제점이라 봅니다.

오랜 사극 출연으로 연기 경력을 쌓은 홍수현은 이번 드라마로 그 진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경혜 역의 홍수현은 정통 사극 출신으로 발음 하나하나에 왕족의 말투가 배여있고 위엄이 서린 감정 연기에도 익숙하지만 문채원은 역할 자체가 사랑에 빠져 눈먼 아가씨 역이고 약간은 맹하다 싶을 정도로 세상 물정에 어두운 여자입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 장면은 사극 말투와 현대극 어투가 대조적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날이 선 경혜공주와 어수룩한 세령의 차이가 선명히 드러나기도 합니다.


'차라리 내 뺨을 때리라'며 화를 내는 경혜공주에게 혼인 선물을 내미는 세령은 바보인지 악녀인지 모를 정도로 상황 파악이 안되는 여자입니다. 누가 봐도 문종과 김종서(이순재), 수양대군과 신숙주(이효정)는 네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 피터지는 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세령으로 인해 김승유와의 혼담이 깨어졌기에 경혜공주와 단종(노태엽)의 목숨이 위험해졌습니다.

왕권 다툼에서 패배한 왕족의 말로는 죽음 뿐이기 때문입니다. 정희왕후가 되는 수양대군의 아내 윤씨(김서라)도 후에 인수대비가 되는 수양대군의 며느리도 정치적 인물이었다는데 큰 딸 세령만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나 봅니다. 그 시대의 여인답지 않게 말을 타고 싶어하고 천방지축 여기저기 구경하러 다니길 좋아하는 적극적인 성격의 세령이 세상일에는 그렇게 둔하다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수양대군의 딸이란 걸 왜 밝히지 못하나

수양대군은 문종이 승하하자 조카 단종을 허수아비 왕으로 만들 계획을 착착 진행합니다. 문종의 또다른 동생인 안평대군(이주석)이 문종의 편에 섰고 문종의 마지막 유언으로 김종서를 좌의정에 올리긴 했으나 수양대군 중심으로 돌아가던 조정이 쉽게 무너질 리는 없습니다. 수양대군은 종친의 간섭을 막겠다는 김종서를 보며 그를 제거하리라 마음먹게 되고 명실공히 두 사람은 누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는 정적관계가 됩니다.

둘의 관계에 비하면 어떤 이유로 싸웠는지도 잊은채 대를 이어 대립했다는, 로미오와 줄리엣 집안의 다툼은 애교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의 명으로 자신이 누구의 딸인지 밝히지 않은 건 앞으로의 이야기를 비극으로 바꿀 수도 있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단종이 즉위한 이상 수양과 김종서는 목숨을 걸고 싸울텐데 자신의 아버지 손으로 죽일 지도 모르는 김종서의 아들에게 그 사실을 밝히지 않다니 말도 안되는 일이지요. 더군다나 김승유는 세령과의 연애 행각 때문에 죽을 뻔했고 아버지는 관직을 잃었습니다.

미안한 감정을 고백하면서도 절에 산다고 거짓말하는 세령


상황을 보아하니 누군가 댓글로 알려주신대로 김승유는 세령이 수양의 딸이란 것도 모른채 계속 사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신면(송종호)가 세령이 누군지 알고 있고 정종 역시 세령의 정체는 알고 있지만, 신숙주가 수양에게 붙어 음모를 꾸민단 사실을 숨기고 싶고 김승유와 세령의 사랑을 어떻게든 막고 싶은 신면은 비밀을 폭로하지 않습니다. 세령이 승유에게 '절에 산다'고 거짓말을 한 까닭에 후에 모든 것을 알게 된 승유의 배신감은 훨씬 더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에 빠지면 눈뜬 장님이 된다지만 상대방에게 해가 될 수도 있는 사실은 털어놓아야한다는 최소한의 이성까지 상실한 것일까요. 세령의 캐릭터가 문종과 단종, 경혜공주의 운명을 바꾸어놓은 민폐 캐릭터로 인식되고 사랑하는 남자인 김승유에게 조차 꼭 말해야하는 일을 말하지 않은 답답한 인물로 묘사되는 건 문채원의 연기력 논란을 더욱 부채질하는 원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령의 역할은 조카, 동생들을 죽게 하고 권력을 차지하는 수양대군의 유일한 아킬레스건입니다. 또박또박 친족까지 죽이는 그의 반정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김종서라는 영웅을 죽이는 것은 옳치 않다고 말해줄 똑똑하고 딱 부러지는 성격의 여인이 바로 세령입니다. 그런 그녀가 입바른 소리를 하게 되는 게 본인의 깨달음이나 영민함 덕이 아니라 김승유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울분일 뿐이라면 그건 단지 사랑을 이루지 못하게 만든 아버지에 대한 원망일 뿐입니다.

일부에서는 경혜공주와 정종의 사랑은 실제 역사에 기록된 사랑이기에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며 능숙하게 연기하는 홍수현과 이민우의 장점을 칭찬하기도 합니다. 착한 얼굴을 하면서도 상대방을 죽음의 위기에 몰아넣는 민폐형 캐릭터 세령 보다는 모든 걸 뺏기는 경혜공주를 더욱 동정하기도 하구요. 주인공 커플 보다 더 눈길이 간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고 도망쳐 나와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여성 세령. 그 캐릭터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역할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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