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공주의남자

공주의남자, 진짜 비극의 주인공은 경혜공주 정종 부부

Shain 2011. 8. 1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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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세종대왕의 아들들은 성격이 극성맞았다고 합니다.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이방원의 후손들이라 그런지 그것도 아니면 원래 그 왕조의 핏줄이 공격적인 성격을 타고났는지 아들들이 하나같이 대가 쎘다고 하지요. 어린 나이에 죽어간 단종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미완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제대로 왕으로서의 기개를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쫓겨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능성을 안타까워 합니다. 극성맞은 '세조'도 종종 성군이란 평을 받습니다만 조카가 성군이 될 기회를 빼앗은 숙부는 어떤 평을 받아야 마땅할까요.

어제 방영된 드라마 '공주의남자'에서는 잔혹하고 비참한 계유정난의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묘사되었습니다. 시정잡배에 조폭이라 할 수 있는 수하들을 데리고 김종서(이순재)의 집을 찾은 수양대군(김영철)은 김종서의 머리를 철퇴로 내리치게 합니다. 김승유(박시후)가 이세령(문채원)의 혈서를 받고 절로 피신한 사이 김승규(허정규)는 아버지를 감싸려다 죽습니다. 김종서의 집안이 피바다가 되버리고 조정대신들이 왕권을 차지하려는 한 야만스런 남자 때문에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갑니다.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드라마 '공주의 남자'의 메인 커플인 김승유, 이세령 커플, 일명 '유령 커플'이 현실 인식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철부지에 남들을 죽게 만드는 민폐 커플이란 평가가 내려지고 있습니다. 조선 왕조 최고 비극 중 하나인 계유정란에 목숨을 건 로맨스가 묘사되다 보니 역사와 환상 사이의 간극이 매우 커서 그런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는 듯합니다. 저 역시 개인적으로 수양대군을 '악인'으로 평가하다 보니 가족과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도 자신 만을 생각하는 듯한 두 연인이 마뜩치는 않습니다.

김종서와 수양대군의 아이들, 그 두 사람의 핏빛 로맨스에 괴리감이 느껴질수록 훨씬 더 비참하고 안쓰럽게 느껴지는 커플이 경혜공주(홍수현)과 정종(이민우) 커플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된 실제 역사 속 부부이기도 하고 공주이지만 사랑에 매진한 세령과는 달리 공주와 부마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포기한 커플이기에 더욱 애잔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야 말로 계유정난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진짜 비극의 커플이란 뜻입니다.



줄어든 경혜공주의 비중 아쉽기만 해

최근 경혜공주 역의 홍수현이 갈비뼈가 부러지는 큰 교통사고를 당했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부상의 경중 여부를 떠나 사고를 당하면 충분히 쉬어줘야 하는데 꽤 많은 방영분이 남은 사극이다 보니 최대한 빨리 촬영장으로 복귀했다고 합니다. 제작진으로서 홍수현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의 배려는 촬영 분량을 줄여주는 것 뿐이었겠지요. 덕분에 유령 커플 만큼이나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경혜공주, 정종 커플의 분량이 줄어들어 아쉬워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홍수현과 이민우 두 사람은 사극 연기자 출신답게 주인공처럼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홍수현은 철부지 공주인듯 자신의 미모를 믿고 건방지게 구는 10대의 아가씨인듯 새침하다가도 공주로서 단종(노태엽)을 다독이거나 수양대군에게 쏘아부칠 때는 단호하고 날카롭게 변신하곤 합니다. 이민우 역시 늘 웃기만 하는 바보같은 한량처럼 경혜공주에게 쥐어살다가도 자신이 남편으로서 해야할 일이 있을 땐 과감히 일어서 부마 역할을 해냅니다. 단종 퇴위 이후의 삶이 지조있는 선비로서의 삶 그 자체였던게 정종입니다.


아무리 금계필담에 세희공주와 김종서의 손자 간의 사랑 이야기가 전한다 해도 극중 세령과 승유의 사랑 이야기는 모두 꾸며진 것입니다. 계유정란이 일어나기 전에 만난 것으로 설정했으니 실제 전하는 이야기와도 다릅니다. 이 드라마가 본래 사극이다 보니 그 가상의 이야기와 실제 역사 간의 괴리가 너무 커 하루 아침에 아버지와 형을 잃은 김승유라는 인물이 불쌍하기 보다 아버지 김종서를 지키려다 철퇴를 맞고 쓰러진 실존인물 김승규가 훨씬 더 마음에 와닿습니다. 사극의 특성상 가짜 인물 보다는 진짜 존재했던 인물의 이야기가 더 안타깝더란 말이죠.

마찬가지로 경혜공주와 정종에게 사랑이 몰리는 이유는 10대의 어린 나이에 정종에게 시집왔지만 단 11년 동안 부부로 지내고 그나마 계유정난 때문에 나머지 반평생은 떨어져 살아야했던 안쓰러운 부부에게 동정이 가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가상 인물이 아무리 절절한 사랑을 나눠도 실제 커플의 이야기 보다는 사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죠. 새침하게 정종을 모른척하는 경혜공주가 얼른 정종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부부의 연을 맺기를, 두 사람이 하루 빨리 사랑에 빠지기를 바라게 되는 건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는 탓일 겁니다.

진짜 공주의 남자는 아내를 위해 희생한 정종


거기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가상한(?) 목적이 있었고 소위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 치더라도 수양대군과 이세령의 가족은 경혜공주와 단종에게 가해자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루 아침에 모든 보호막을 잃어야했던 10대의 남매는 어떻게 바라보아도 뿔쌍하기만 합니다. 평생을 한 나라의 신하로서 봉사한 김종서라는 늙은 대신의 죽음도 그러하지만 단지 어리다는 이유 만으로 숙부에게 모든 걸 빼앗긴 이 어린 남매의 운명이 두 사람의 사랑 보다는 더 눈길을 끌게 됩니다.

늘 아내에게 져주던 남편 정종은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음을 알게 된 후에는 다부진 모습으로 경혜공주를 막아서고 앞으로 나섭니다. 정종의 좋은 점을 알게된 경혜공주 역시 정종이 자신의 운명의 연인임을 이제서야 깨닫게 되겠지요. 계유정난이란 대혼란이 두 사람을 더욱 사랑하게 만들고 간절하게 그리워하는 연인으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경혜공주의 고난이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가상의 커플이 아닌 진짜 역사 속 비극의 주인공들의 사랑,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피로 쓴 혈서가 연인을 구했지만

김승유를 미끼로 김종서를 죽이기로 한 수양대군은 세령을 집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가족들의 목숨이 걸려 있기에 수양대군의 아내 윤씨(김서라)도 세령을 가둬놓고 꼼짝 못하게 합니다. 김종서의 집으로 달려가 사태를 막고 싶었던 세령은 실패하고 어떻게든 연인 김승유 만은 살리려 피로 쓴 혈서를 김승유에게 전달합니다. 덕분에 김승유는 목숨을 건지지만 아버지와 형을 살해한 수양대군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가게 되겠지요. 그는 단종 복위를 위한 핵심 세력이 되어 세상을 떠돌 운명입니다.

깜깜한 계유정난의 밤이 이렇게 지나가고


계유정란이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았으면 모를까 두 사람은 로미오와 줄리엣 따위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연인 사이입니다. 신숙주(이효정)가 수양을 선택했듯 세령을 사랑하는 신면(송종호)도 친구를 버립니다. 다소 세상 물정에 둔한 것처럼 보였던 세령이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설 때이기도 합니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유령 커플의 미래도 조마조마하지만 일단은 피로 물든 구중궁궐을 수습하는게 먼저입니다. 세령은 어떻게 아버지의 악행을 비난하고 나설까. 그 부분이 비난받는 세령의 캐릭터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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