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공주의남자

공주의남자, 물로 쓴 연서가 뙤약볕에도 마르지 않네

Shain 2011. 8. 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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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왕족이 권력을 위해 혈연을 죽이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던 일입니다. 조선은 특히 개국 초부터 이방원이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고 동생들을 죽인 후 권력을 잡아 그런지 왕족이 서로 경계하는 경향이 강했던 것도 같습니다. 홍수현이 인목대비로 출연한 '왕의 여자'에서도 광해군이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 영창대군을 죽게 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외에도 많은 왕족이 때로는 누명을 쓰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휘둘려 자신의 혈족에게 죽음을 당하곤 합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태종 이방원의 성격은 다소 거칠었던 것 같습니다. 9월부터 방영될 SBS '뿌리깊은 나무'에서 묘사될 한석규의 세종대왕은 본래 다혈질에 고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직계 후손인 문종도 2년 만에 요절해 그렇지 화차를 개발하고 병권에 신경쓰는 등 상당히 공격적인 성격이었던 듯합니다. 이런 저런 기록을 살펴보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쫓겨난 단종도 '한 성격'하는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 등장하는 수양대군(김영철)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혈육을 죽인 사람이 아니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친가족을 살해한 남자입니다. 어찌 보면 핏줄을 살해한 그 어떤 조선 왕족 중에서도 최강의 인물이죠. 거침없이 휘몰아치는 태풍처럼 단칼에 반란을 성공시키고 옥좌에 앉기 위해 협잡꾼 한명회(이희도)는 살생부를 바치고 권람(이대연) 등은 몰래 키운 병력을 움직입니다. 좌의정 김종서(이순재)의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이고 단종(노태엽)도 곧 숨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수양대군에겐 문종(정동환)을 제외하고도 4명의 친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중 안평대군(이주석)과 금성대군은 단종을 지지하다 30대의 젊은 나이로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친형제를 그리 죽였는데 이복동생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드라마 속에서도 수양대군의 야심은 한여름 태양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수양은 자신이 아끼는 딸 이세령(문채원)의 사랑 때문에 잠시 흔들리지만 곧 김승유(박시후)를 죽이기로 합니다. 바야흐로 핏빛 광란의 시작, 계유정난(癸酉靖難)입니다.



사랑을 주고 받는 세령과 승유, 달콤한 데이트

수양대군이 단종을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어야 했던 필연적인 이유. 저는 그 근본을 권력욕으로 보고 있기에 핏줄까지 살해했던 그의 행동을 패륜 그 이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수양대군의 이야기는 그동안 자주 드라마로 태어났습니다. 특히 80년대 방영된 'MBC 조선왕조오백년 설중매' 편에서 수양대군의 정권 찬탈은 시대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인듯 묘사되기도 합니다. 윤리적인 비난 이외에도 살생부를 통해 반대파를 제거하고 반란에 참가한 소위 '공신'들이 권력자가 된다는 점에서 당시의 대통령과 수양대군은 많은 유사점이 있었으니 찬양할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어제 방송분에서는 수양대군의 쿠데타가 시작되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세령과 김승유는 두 사람 만의 데이트를 즐깁니다. 세령의 거짓말 때문에 김승유는 이세령이 '열이'라는 이름의 쫓겨난 궁녀라고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채를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마주 보다 키스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던 한편이기도 합니다. 세령의 아버지는 남모르게 군대를 준비하고 승유의 아버지는 언제 수양대군이 발톱을 드러낼지 몰라 긴장하고 있는데 두 사람은 철부지처럼 사랑하기만 합니다.


처음 세령이 공주 행세를 하며 김승유와 만났을 때도 두 사람은 함께 하기 힘든 애절한 감정을 나눴지만 앞으로의 사랑은 더욱 더 험난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수양대군이 칼을 들었으니 곧 김종서는 죽을 것이고 세령은 승유에게 원수 집안의 딸이 됩니다.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고 집에서 도망나오고 정혼자인 신면(송종호)와의 사랑을 거부한다 쳐도 그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승유 역시 가족들이 몰살당하고 나면 복수를 위해 남은 생을 불태울 것이니 두 사람의 사랑은 마음아픈 장면의 연속일 것입니다.

앞으로는 사랑하면서 서로를 토닥일 시간이 되기 보다 과거에 두 사람이 사랑했던 그 따뜻하고 평화로웠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살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의 아기자기한 사랑과 손가락 걸고 약속하는 장면이 더욱 애틋하게 보이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세령을 쫓겨난 궁녀로만 생각하는 승유는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그녀를 아내로 들이고 싶어하고 세령은 세령대로 아버지가 김종서와 김승유를 죽여버리는게 아닌지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승유는 바위 위에 물로 한자한자 사랑을 써내려 갑니다. '내 마음을 바꾸어 그대 마음이 되고 보니 비로소 서로 그리워함이 이리 깊었음을 알겠네' 세령이 다시 물로 글씨를 쓰며 화답합니다. '정이란 우리로 하여금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삶과 죽음을 허락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한다는 고백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향한 절절한 마음과 앞으로 미래를 영원히 함께 하고 싶은 깊은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평소 화려한 현대적 장신구 보다는 옥가락지같은 오래된 장신구가 좋고 직설적인 사랑 고백 보다는 은근하고 돌려 말하는 말을 좋아하는 편이라 어쩐지 웃음이 나는 두 사람의 물로 그린 필담(筆談)이 차분하고 다정한 것이 참 보기 좋습니다. 따가운 여름 햇빛이 물로 써내려간 연서를 지울 법도 한데 수양대군의 활활 타오르는 야심에도 두 사람의 연서는 말라버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놀리지 말라며 승유의 부채로 얼굴을 가린 세령이 참 예쁘네요.



열일곱 경혜공주의 짧은 사랑

'공주의 남자'의 주인공은 수양대군의 딸인 세령이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세령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대신 경혜공주(홍수현)과 정종(이민우)의 가슴아픈 사랑 이야기는 여러번 언급되곤 하지요. 잘 아시다시피 정종은 단종이 폐위된 후 복위를 도모하다 유배를 가고 사사됩니다. 경혜공주는 한때 노비가 되어 두 사람의 아이를 세조의 아내인 정희왕후(김서라)가 길러주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름은 정미수인데 성종, 예종 등과 잘 지냈던 사이로 역적의 아들임에도 제법 대접을 받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지금은 서먹서먹한 경혜공주와 정종이 후에 아들 딸 낳고 단란한 한때를 보내게 된다는 뜻인데요. 경혜공주는 1436년생이니 단종이 즉위한 1452년에는 17세쯤 되었을 것입니다. 계유정난이 1453년이고 정충경의 아들 정종은 1461년에 죽습니다. 두 사람이 혼인한 건 1450년, 11년 동안 부부로 살았지만 1455년부터 유배를 가 자주 만날 수 없었으니 두 사람이 사랑하며 아이를 가진 시간이 정말 짧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령은 김승유와 평생 함께 할 수도 있지만 경혜공주는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어머니가 마련해준 은가락지를 전해주며 쭈뼛쭈뼛 아내인 공주를 어려워하는 정종. 늘 사람좋게 웃고 있는 그가 언제쯤 경혜공주에게 연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어쩌면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는 그 시점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듬직한 남편으로서 아내인 공주에게 꼭 필요한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고 발로 뛰는 그런 남편이 되겠지요. 경혜공주 역시 36세의 젊은 나이로 고생만 하다 세상을 떠납니다만 아내와 처남을 위해 인생을 바친 정종의 사랑도 남다르고 애틋한 것 같습니다. 다정한 남편이 유배를 가고 나면 경혜공주는 그제서야 그 빈자리가 그립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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