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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만만세, 이혼과 재혼 어디까지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나

Shain 2011. 8. 2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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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만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혼을 권장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충고하기를 웬만하면 애들 봐서 참고 살라 그랬고 또 이유없이 이혼한 남녀들이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부모가 이혼해서 한쪽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하는 아이들은 일부러 기죽이는 사람은 없어도 '저 아이 부모는 이혼했다'는 한마디에 괜히 주눅이 들고 그랬습니다. 그때 보다 더 오래된 옛날옛적엔 부부는 '백년해로'를 하는 것이라 여겼기에 헤어진다는 자체가 죄악이고 그런 시대였습니다. 요즘은 이혼율이 엄청나게 높아진 건 두말할 필요없고 '꼭 필요하면 할 수 있다'는 쪽으로 자세도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시대가 지나도 이혼이나 재혼에 수반되는 여러가지 현실적이고 정신적인 고통들, 즉 함께 쓰던 재산이 반으로 나뉘어 생기는 경제적인 부족함도 그렇고 아이들을 위해 헤어진 배우자와 어떤 관계를 유지하느냐 등은 여전히 명쾌한 해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격상의 문제로 이혼을 두 번 이상 반복한 한 남자는 육십이 넘어서도 새로 생긴 자식들의 뒷바라지와 생활고에 죽어라 돈을 벌어야하기도 하고 칠십이 넘어 자식 보다 어린 아가씨와 결혼한 할아버지는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자식들에게 아내를 어머니라 부르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런 문제들을 두고 혹자는 속된 말로 '쿨하게' 대처하라는 약간은 애매모호한 처방을 내려놓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엔 바람피운 배우자 때문에 헤어진 부부도 있을 거고 웬수같은 전배우자들이 남긴 상흔을 치료하느냐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인간 감정이 '쿨해진다'는 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지 알 수 없지만 그게 가장 나은 대처법이라고 합니다. 더군다나 둘 사이에 아이가 있으면 아이 때문에 꾸준히 상대방을 봐야하는데 볼 때 마다 속끓이는 거 보단 감정을 접는게 편하다는 조언도 합니다.

드라마 '애정만만세'에 등장하는 두 모녀, 강재미(이보영)와 오정희(배종옥)은 각각 남편의 불륜 때문에 이혼을 해야했던 모녀입니다. 오정희의 남편이자 재미의 아버지였던 강형도(천호진)은 자신의 외도를 책임지고 불륜녀였던 어린 여자 변주리(변정수)와 재혼을 했고 남들은 병원원장을 할 나이에 여전히 월급받아 생활하는 생계형 의사를 하고 있습니다. 강재미는 말도 안된다 싶을 정도로 뻔뻔한 남편 한정수(진이한)에게 사기이혼을 당하는가 하면 평생 노력해서 얻은 죽집까지 빼앗기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도무지 쿨해질래야 쿨해질 수 없는 이혼, 그런데 문제는 그것 뿐이 아닙니다.



가족관계 어디까지 쿨하게 받아들여야 하나

예전에 '스텝맘(Stepmom, 1998)'이라는 영화를 개봉한 적이 있습니다. 줄리아 로버츠와 수잔 새런든이 출연하는 영화였는데 극중에서 수잔 새런든은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 살고 있는 죽음을 앞둔 엄마, 환자 역할입니다. 줄리아 로버츠는 수잔 새런든의 전남편과 사귀고 동거하는 여성으로 양육권을 아이 아버지가 갖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의 자녀들을 직접 돌봐야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쿨하게 남편의 전 부인에게 아이들을 데려다 줄 때도 있고 아주 살갑지는 않지만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즐기며 친해져야할 때도 있습니다.

두 여자는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에게 컴플렉스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곧 죽어야할 지도 모르는 전부인은 남편에게 미련은 없지만 아이들이 새 어머니를 만나서 자신의 존재를 잊을까봐 가족의 인연이 끊길까봐 두려워하고 아이 어머니가 아닌 동거녀는 아이들이 아주 오랜 후에도 자신을 받아들여주지 않을까봐 마음 한구석이 싸해집니다. 아무리 정을 줘도 아이들이 새엄마는 남이라고 선언하면 그만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한국적인 정서에서 도무지 친해질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은 서로의 입장과 처지를 받아들이고 두 명의 엄마가 되기로 합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혼과 재혼이 꼭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지지고 볶고 죽어라 갈등하지 않더라도 이혼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아니 두 사람이 절대 수습할 수 없는 그런 상처를 주며 헤어졌더라도 부부 사이에 아이가 있다면 부부는 다시 만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굳이 만나야한다면 이왕이면 상처를 들쑤시지 않게 깔끔하게 감정을 접고 서로를 대하는게 편하겠지요. 영화 '스텝맘'은 그런 부분을 아주 잘 캐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드라마 '애정만만세'의 강재미는 이혼한 아버지를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습니다. 10대의 딸을 두고 사랑을 찾아 떠난 아버지를 예민한 나이의 딸이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습니다. 또 꼭 그런 걸 용납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구요. 더군다나 딸은 아버지의 뒤를 쫓던 어머니가 교통사고가 나서 다치는 것까지 목격하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만 두고 혼자 잘 살겠다고 집나간 아버지를 '쿨하게' 받아들인다는 건 정말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일 겁니다.


아버지 강형도는 이혼을 한 당사자기이긴 한데 오히려 이혼당한 오정희 보다도 힘들게 자신의 사랑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나이먹은 월급쟁이 의사 역할도 신물이 나는데 쇼핑광인 아내는 언제 철이 들지 변함이 없고 모든 집안 일도 자기 담당입니다. 그런 딸부부의 모습을 보는 직설적인 성격의 장모 크리스탈박(김수미)는 흰머리에 늙어보이고 자신과 나이차이도 별로 안나는 사위가 몇년이 지나도 불만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 찾아 떠난 형도의 인생이 말 그대로 가시밭길이지요.

반면 재미의 전남편 한정수는 쿨한게 지나쳐 속어로 '싸가지'를 상실한 남자입니다. 사기 이혼을 시도하는가 하면 불륜녀와 재미의 속을 뒤집어놓고 함께 일한 죽집의 특허권을 빼가는 등 '이혼하면 남'이라는 공식을 지나치게 철저히 몸소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둘 사이에 자녀가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런 행동이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재미는 과연 어디까지 아버지와 전남편과의 감정적으로 얽힌 관계를 정리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의 처남과 부부될 수 있나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남자 한정수, 아마 강재미의 전남편 한정수라면 아버지의 처남이라도 사랑한다면 부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지 모르겠지만 도무지 쿨해질 수 없는 관계의 아버지 강형도를 생각하면 주인공 재미와 변동우(이태성)과의 사랑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버지의 처남이면 재미에게도 법적으로 가족이라 봐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정희가 없더라도 변주리는 법률상 의붓어머니 서열이고 변동우는 외삼촌이 되는 것이니 말입니다.

스토리대로라면 이대로 재미와 변동우는 한정수와의 소송이 길어질수록 점점 사랑에 빠질 거 같고 재미는 아직 변동우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존재 조차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강재미가 변동우의 그런 문제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혼과 재혼에 아무리 쿨해진다 쳐도 힘들 것같은 부분이긴 합니다. 결혼하면 가족 이혼하면 남, 그게 한정수처럼 그렇게 칼같이 가능하다면 혹시 생각해볼 수 있는 일일까요. 아니면 사랑이란 말로 모든게 용서가 될까요. 어떻게 결론이 날지 흥미롭고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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