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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본처가 불륜녀 머리끄덩이 잡나요

Shain 2011. 9. 27.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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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종종 드라마에서 본처가 불륜녀의 머리끄덩이를 잡거나 두들겨 패는 장면이 연출되곤 합니다. 며칠전에 본 드라마 '애정만만세'에서도 남편 강형도(천호진)가 전처 오정희(배종옥)와 바람이 났다고 생각한 변주리(변정수)는 오정희의 머리를 쥐어뜯고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핸드백으로 두들겨 패기까지 합니다. 오정희의 동생 오정심(윤현숙)이 적극적으로 안 말렸으면 머리카락이 한웅큼은 뽑혔을 겁니다. 한때는 강형도의 아내였지만 이제는 새 아내가 있는 강형도이고 안 그래도 부정한 관계라는 자책감이 어쩔 줄 모르던 오정희는 수치스러워합니다.

오정희가 강형도의 아내였고 변주리가 불륜녀였을 땐 그런 짓을 하지 않았었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직까지 그런 식으로 남편의 불륜녀를 '응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같은 TV 드라마이지만 '천번의 입맞춤'의 우주영(서영희)는 우유부단하고 바람기 넘치는 남편 박태경(심형탁)을 원망하긴 해도 꾸준히 전화해서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양준희(이자영)를 괴롭히진 않습니다. 어찌 보면 변주리처럼 과격한 반응이 시대착오적인 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없어져야할 모습같기도 해요.

전처의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아내 변주리

물론 배우자가 바람피우는 모습은 남편이든 아내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한 폭행이 나쁘고 그 폭행이 범죄라는 차원의 문제도 문제지만 과연 불륜녀를 향한 분노가 정당한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배우자의 바람기를 두고 엉뚱한 사람에게 분풀이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부부 간의 문제는 부부끼리 그 앙금을 풀어내야지 아무리 개입을 했다고 한들 불륜 상대는 부부 문제에서 제 3자일 수 밖에 없는 건 아닐까. 계속 그런 생각이 들더란 말입니다.

누가 누구와 불륜을 저질러 이혼을 했다더라 혹은 지인이 배우자의 불륜 때문에 기가 막히는 일을 당해 속병이 났다더라.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런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됩니다. 한 가정이 불륜 때문에 풍비박산날 위기에 처했구나 싶어 안됐다 싶으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그닥 친하지도 않고 그들 속사정을 잘 모르는 제게도 전해진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불륜 드라마 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불륜이란 자극적이고 화제가 될 수 밖에 없는 사연인가 봅니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함께 하기로 한 약속이고 결혼전 뜨겁게 사랑했건 사랑하지 않았건 부부는 가정을 꾸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때로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듯한 삶이 싫어 게을러지고 때로는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려보는 일, 옳지는 않은 일이지만 한번쯤 겪을 수 있는 유혹이라고들 합니다. 요즘은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속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도 중요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불륜이란 이유로 매장까지 찾아와 행패부리고 망신주는 아내

70년대 영화나 드라마를 살펴 보면 알겠지만 아직 조선시대 유교적 가치관이 가시지 않았던 그 때에(그런 시대라 남편의 불륜이 압도적으로 많았죠) 본처의 대응방식은 두가지로 압축됩니다. 남편의 외도를 용서하고 불륜녀가 낳은 아이까지 받아들여 가정을 유지하는 선택이 첫번째이고 남편과 바람난 유부녀의 머리끄덩이를 잡거나 따귀를 치는 등 갖은 분풀이를 한 다음에 다시는 남편 앞에 나타나지 못하도록 겁을 주고 망신을 주는 방식이 두번째였습니다. '칠거지악'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던 시대라 그런지 조용히 처리하는 아내를 칭송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부부 사이의 약속은 두 부부에게나 중요한 것이지 제 3자에게는 하찮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왜 본처는 자신과의 약속을 저버린 남편의 멱살을 잡는게 아니라 사랑에 빠졌다고 우기는, 철없는 여자의 머리끄덩이를 잡는 것일까. 그 여자는 또 왜 생면부지의 본처에게 얻어맞으면서도 찍소리도 못하는 것일까.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결혼이라는 제도를 존중해야하고 인정해야할 도의적 책임이 있습니다만 비난을 받아야한다면 상대적으로 그 여자 보다는 남편에게 더 큰 비난이 가해져야 옳습니다.

이런 일을 볼 때 마다 삼각관계 즉 남자친구의 양다리 때문에 언쟁하던 친구들을 두고 선배언니가 했던 말이 종종 떠오르곤 합니다. 선배는 두 여자가 서로를 비난하는 사이 양쪽을 두고 저울질한 남자는 피해자처럼 침묵하고 어느새 두 여자만 악다구니하는 그 모습이 과연 옳은 거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원래 사귀고 있던 여성에겐 새로 나타난 여성이 적으로 느껴지겠지만 새로 사귀게 된 여성은 헤어져주지 않는 여자친구가 원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둘은 서로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남자에게 올바른 처신을 요구해야 하는데 왜 둘은 갈등하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못되게 구는 여자는 한번 때려주고 싶긴 하겠네요

물론 불륜녀가 밉기는 밉죠. 남의 남자 좋다고 작정하고 가정을 파탄내기로 작정한 여자들, '애정만만세'의 악녀 채희수(한여름)나 '천번의 입맞춤' 속 양준희는 제 3자가 봐도 정이 뚝 떨어질 정도로 얄밉고 밉상이긴 합니다만 어느 유머란에서 읽은 글처럼 시댁에 나날이 많은 돈을 부치고 남편과 가정을 꾸리기 위해 대출한 돈을 갚고 늘 뒷바라지 해줘야하는 아이들을 건사하고 기타 고단한 가정생활의 부담을 직접 책임지는 조강지처의 자리를 드라마 속 불륜녀들처럼 쉽게 감당할 여성은 그렇게 많지 않을 거라 봅니다.

왜 본처가 그런 행동을 하는 지 그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닙니다. 그건 남편과 배우자, 혹은 애인을 너무 믿었기 때문에 나를 두고 외도같은 건 저지르지 않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 여겼기에 불륜녀가 조신한 남편이 바람날 수 밖에 없도록 유혹했다고 믿고 싶은 한 여자의 마지막 몸부림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여자에게 몹쓸 짓을 한 그 남자를 일단 편들고 싶어지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그 여자가 아닌 내 남자가 두 여자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지 부터 일단 따져봐야하는 것 아닐까요. 머리끄덩이 잡는 모습을 볼 때 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여자끼리 싸우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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