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공주의남자

공주의남자, 민초들은 왜 세희공주의 민담을 퍼트렸을까

Shain 2011. 10. 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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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천륜, 의리, 우정, 사랑은 너무도 중요한 가치입니다. 공주에서 관비로 몰락한 경혜공주(홍수현)를 쫓아가는 은금(반소영)의 의리나 세령(문채원)이 어떤 고생을 해도 뒤따르는 여리(민지)의 마음, 또 김승유와 함께 하는 길은 죽음 뿐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뒤따라가는 조석주(김뢰하)의 우정은 사람이 사는데 재물과 목숨 보다 더욱 소중한 것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무엇 보다 세령과 승유, 또 경혜공주와 정종(이민우)이 보여준 목숨을 초월한 사랑은 그 어떤 귀한 것보다 가치있는 미덕이기도 했습니다.

그 평범한 사람들의 반대편에 선 수양대군(김영철)은 자신의 힘으로 모든 걸 손에 거머쥔 인물입니다.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형제들을 죽였고 그 왕권을 사수하기 위해 다시 신하들과 그 식솔들을 잔인하게 처벌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왕으로 만들기 위해 함께 했던 동료들은 권력자인 수양대군과 우정이나 의리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한명회(이희도)나 권람(이대연), 신숙주(이효정)가 아들 의경세자(권현상)의 병약함을 거론하고 나올 때 수양은 배신감을 느꼈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피로 이룬 권력의 자연스러운 질서일 뿐입니다.

즉위 말년의 수양대군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손에 피를 묻히며 권력을 손에 쥔 수양대군, 또 자신의 소중했던 사람들을 위해 원수를 갚으려 하는 남자 김승유. 자신을 암살하러 온 김승유를 잡은 수양대군의 말처럼 그들의 칼자루에 피를 묻힌다는 점은 마찬가지인지 몰라도 사람들은 어쩐지 힘겨운 김승유의 복수를 응원하게 됩니다. 허나 살인귀처럼 살생을 저지르며 아버지 김종서(이순재)와 사육신들이 이루고자 했던 그 뜻을 지켜보고 싶어하지만 원한의 무게는 나날이 더 무겁게 승유를 짓누를 뿐입니다.

실제 역사 속에서도 수양대군은 자객에게 죽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피부병에 걸려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았고 그의 자식들도 천벌을 받아 모두 요절했다고 수군거렸지만 그는 여전히 후손에게 왕위를 물려준 '세조' 임금입니다. 또 계유정난을 함께 일으킨 신숙주를 비롯한 공신들은 후대에까지 떵떵거리며 살았고 사육신들은 직계후손이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백성들은 꾸준히 수양대군이 정말 천벌을 받았길, 딸에게 조차 비난받는 삶을 살았던 임금이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복수의 굴레에서 벗어난 승유와 아이를 낳은 세령은 행복해 보인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인다는 건 생각 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요즘이야 미디어의 발달로 잔인하게 여러 사람을 죽이는 그런 내용의 영화와 드라마들이 흔하게 등장하지만 보통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타인의 생명을 끊으려 쉽게 마음 먹을 수도 없을 뿐더러 죽어가는 사람이 흘린 피 한방울에도 동요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학살하는 위정자들을 사람들은 악마라 손가락질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천사처럼 해맑게 웃던 초반의 김승유가 보통 독한 마음을 먹지 않고서야 야음을 틈타 암살하는 자객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평범한 이들은 또 궁금합니다.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만 봐도 가슴이 터질 것같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라 며칠을 시름하기도 하는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권력자가 된 저 사람들은 어찌 그리 즐겁게 웃으며 권력이 주는 달콤함에 빠져들 수 있는가. 자신을 칭송하는 많은 사람들의 아부가 그들의 죄책감이나 양심 마저 모두 빼앗아버린단 말인가. 허나 피를 제물로 정점에 올라간 사람들에게 그런 죄의식의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수양대군을 닮은 현대사의 누군가도 아무렇지 않게 아직까지 살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금계필담의 이야기가 널리 회자된 이유?

드라마 '공주의 남자'의 원이야기는 많은 분들이 아시는대로 '금계필담'이라는 민담집입니다. 그 책 때문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전부터 민간에 널리 퍼져 있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잔인한 수양대군의 큰 딸이 공주가 되어서도 아버지의 잘못을 비난했고 그에 격노한 아버지 수양대군이 그 공주를 쫓아내 버렸다. 백성들이 좋아하던 그 이야기처럼 정말 세조 임금에겐 세조에게 반기를 든 의로운 딸이 있었을까?

사실 아버지가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는 악당이거나 범죄자일지라도 그 자녀가 아버지를 직접 비난하고 나서거나 반기를 들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실제 역사 속에서도 아버지를 죽이고 권력을 차지한 아들은 있어도 그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고 나서 반대편에 섰던 인물은 찾아보기가 매우 힘듭니다. 천륜을 어길 것이냐 의를 따를 것이냐 홀로 고민하다 죽는 한이 있어도 아버지에 반대한다는 패륜은 쉽게 저지르기 힘듭니다. 그런 자연스러운 감정 덕분에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세령의 입장이 늘 어중간했건 것이기도 하구요.

아버지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지아비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겉으로 보면 세희공주와 김종서의 손자가 사랑한 이야기는 운명 조차 막을 수 없었던 뜨거운 사랑 이야기같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딸이 자신의 아버지, 그것도 만백성의 임금을 비난하고 나선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유달리 수양대군의 형제들이 대가 꼿꼿한 성정을 타고난 사람들이 많아 죽을 줄 알면서도 형에게 대든 그런 핏줄이 많다고는 합니다만 또 태종 이방원 때부터 목숨걸고 형제들끼리 반목한 그런 집안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아버지를 직접 비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또 '조선왕조실록'의 특성상 한 임금의 장녀를 흔적없이 삭제한다는 건 생각 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세종의 장례기록에 수양대군에게 2녀가 있단 기록이 있다지만 왕위에 오를 때 쯤엔 그중 한 딸이 죽었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한 듯 합니다. 나이차이나 그 무엇을 생각해도 세희공주의 존재는 실제 수양대군의 딸이라기 보다는 창작된 이야기 속 가상의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를 비난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지만 비공식적인 공주라는 것도 이상하다는 이야기죠.

하여튼 백성들은 무서운 현덕왕후의 저주를 널리 퍼트린 것처럼 수양대군의 큰 딸 이야기도 널리 퍼트립니다. 아버지 수양대군을 끝내 거부하고 사라져버린 큰 딸의 존재가 피부병에 걸려 고생하던 임금 세조의 죄책감을 끝까지 자극했다는 이야기. 수양대군이 부정하게 얻으려 했던 권력이 결국 딸과 절연하게 만들었고 고통스러운 말년을 맞게 했다는 이야기. 백성들은 가족들까지 죽인 패륜의 말로가 외롭고 비참했다는 이야기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 사랑을 선택하여 백성들 사이로 숨어든 김종서의 자식과 세희공주는 민초들의 삶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해묵은 원한은 결국 정희왕후의 인정으로 마무리 되는가

정희왕후(김서라)가 자식대까지 잇지 않겠다고 말한 업보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말년의 수양대군은 피부병 때문에 불교에 귀의하고 피부병에 좋다는 온천을 찾아다닐 만큼 고생했습니다. 자식들이 대부분 요절했다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이고 민심이 내린 천벌을 받긴 받은 것 같은데 현대사의 수양대군들은 그것에 비하면 참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것도 같네요.

이제서야 말이지만 극중 세령의 역할은 너무도 애매합니다. 세령은 평범한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의리, 사랑, 인정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권력에 눈이 먼 아버지를 두고 있습니다. 그 어느 쪽도 쉽게 편들 수 없지만 자신의 원칙도 포기할 수가 없기에 늘 그렇게 납치당하고 끌려다녔나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정희왕후의 도움으로 야사의 결말도 완성하고 김승유가 눈이 멀어 복수를 포기하고 두 사람의 사랑을 완성하는 이야기, 야사와 사랑을 모두 만족시킨 결말이란 점에서 꽤 만족스럽습니다. 여담인데 여리의 남편은 대체 누구인가요. 혹시 수양대군의 수호무사였던 여운(유하준)인가요.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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