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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출생의 비밀, 감당할 수준을 넘었다

Shain 2011. 11. 1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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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애정만만세'의 곱슬머리 남다름(김유빈)네 집은 늘 유쾌합니다. 아버지 남대문(안상태)은 돈도 잘 못버는 홀아버지고 새엄마 될 정심(윤현숙)은 아버지 보다 나이가 다섯살이나 많은 이혼녀입니다. 높디 높은 산기슭 방 두칸짜리 옥탑방 얻을 돈 밖에 없는 남대문은 결국 처형 오정희(배종옥)의 집에 얹혀살기로 합니다. 처가살이 안되고 연상녀 안된다고 하던 남대문의 어머니(김영옥)도 아들 처지가 워낙 어려우니 흔쾌히 허락하고 말지요. 남대문네 커플은 복잡하고 힘든 처지를 그렇게 웃으면서 넘깁니다.

남대문은 요즘 자신을 무시하던 직장 상사 변동우(이태성)에게 흐뭇한 비밀이 생겼습니다. 변동우가 사귀고 있던 강재미(이보영)의 이모 오정심과 남대문이 결혼하면 변동우는 남대문의 조카 사위가 됩니다. 하루 아침에 아랫 사람에서 손윗사람이 된다니까 내심 기분이 좋은 겁니다. 매일 직장에서 얼굴 맞대며 일하던 사람이 알고 보니 이모부라니 이것도 나름대로 코믹한 관계의 반전입니다. 그런데 이런 신나는 '반전'은 재미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관계의 반전'은 유쾌하기 보다 불쾌한 장면들이 더욱 많지요.

늘 재미있고 유쾌한 곱슬머리 남다름네 집(애정만만세)

우리가 흔히 '막장 드라마'라고 부르는 한국 드라마의 특징(물론 일부 미국 드라마들도 이런 소재를 쓰는 건 마찬가지입니다만)은 재벌 출신 주인공, 출생의 비밀, 삼각관계, 등장인물들의 눈쌀 찌푸려지는 갈등 등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드라마 제작을 촉박한 쪽대본과 연기력 좋은 배우들에 의존하다 보니 제한된 시간 안에 인상적인 볼거리를 만들려면 자극적인 그런 설정이 낫다는 의견도 있지만 TV 마다 반복되는 유사한 설정은 시청자들을 질리게 만듭니다.

특히 최근 방영중인 '천번의 입맞춤'은 'Y모 작가 삼종 선물셋트'라는 별명을 얻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보고 또 보고', '하늘이시여', '아현동마님' 등에서 반복된 설정이 그대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알고 보니 오빠'라는 단순한 출생의 비밀을 더욱 복잡하게 발전(?)시켰다는 평도 듣고 있습니다. 즉 어린 시절 자매를 버리고 떠나간 한 어머니 유지선(차화연)의 이야기가 끝이 아니라 그 자매들이 사촌 형제와 사랑에 빠져 두 집안이 겹사돈이 되는 것입니다.

'출생의 비밀'이란 건 TV 드라마의 재미를 주는 훌륭한 극적 장치임에 틀림없습니다. 미친듯이 사랑했던 한 연인이 알고 보면 의붓 남매였다던가 결혼을 앞둔 약혼자의 친아버지가 알고 보니 원수집안이었다던가 이런 반전은 드라마를 더욱 재미있게 해주는 좋은 장치이고 극중 인물을 입체적인 캐릭터로 만들어주는 좋은 수단입니다. '에덴의 동쪽'같은 드라마는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 가문의 아들들이 서로 바뀐다는 엄청난 출생의 비밀이 드라마 전체를 이끌고 나가는 축이 되기도 했지요.

의붓남매인지도 모르고 결혼까지 한 두 사람(천번의 입맞춤)

대중 통속극의 일인자라 할 수 있는 김수현 작가도 이 출생의 비밀로 대 히트작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사랑과 진실(1984)'은 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효선(정애리)과 미선(원미경)이 친자매가 아니었다는 출생의 비밀을 밝히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부유한 집 출신의 효선은 친어머니의 사정으로 유모의 손에서 길러졌지만 어릴 때부터 잘나고 똑똑한 언니 효선 때문에 컴플렉스를 느끼며 자란 미선이 출생의 비밀을 속이는 바람에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하루 아침에 신데렐라가 된 미선과 출생이 바뀐 효선의 인생이 대조적인 드라마였습니다.

요즘은 출생이 뒤바뀌었다는 건 비밀이나 장애물 축에도 들지 못합니다. 최근 종영된 '미스 리플리(2011)'의 경우 거짓말을 하며 신분상승을 꿈꾸던 불나방같은 여자 장미리(이다해)는 어렵게 깨닫게 된 진실한 사랑이 '의붓 오빠'였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합니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가 재혼해서 얻은 아들을 오빠인줄도 모르고 사랑한 여주인공. 거짓말의 대가를 받은 장미리는 절규하지만 작가는 편리하게도 둘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여운을 남기고 싶었는지 장미리의 어머니가 이혼하도록 설정합니다.

알고 보니 의붓오빠와 사랑에 빠진 여주인공(미스리플리)

'미스리플리'의 경우엔 그나마 피한방울 안 섞인 남매로 재혼한 부모가 친자식으로 입양하지 않았으니 법적으로는 허락받을 수 있는 사이라고 합니다. 부부와 자식 사이를 마치 손바닥 뒤집듯 쉽게 헤어졌다 맺어졌다 한다는 것이 껄끄럽기는 해도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천번의 입맞춤'처럼 재혼으로 태어난 동생이 있을 경우입니다. 드라마 '하늘이시여'에서도 그랬듯 재혼한 어머니의 의붓아들과 결혼은 할 수 있지만 둘 사이에 동생이 있는 경우 그 동생은 남편에게는 동생이자 처제가 되고 아내에게는 시누이이자 여동생이 됩니다.

드라마 주인공 우주영(서영희), 우주미(김소은) 두 자매는 자신들도 모르는새 동복 여동생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심술궂은 캐릭터로 등장하는 장우빈(지현우)의 어머니 민애자(김창숙)가 모든 걸 받아들이는 착하고 순한 사람일지라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민애자의 동생이 유지선과 옛날에 바람이 났고, 우주영이 이혼하고 혼자 된 애엄마라는 건 다 용서해도 우주미와 장우진(류진)이 의붓 남매임에도 결혼해서 함께 살고 있다는 이 사실은 평범한 사람들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입니다. 민애자가 악역처럼 보이는게 이해가 안 갈 정도죠.

결혼하려는 이 남자가 아빠의 처남인데(애정만만세)

'애정만만세'에서도 같은 문제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주인공 강재미와 결혼하려는 변동우는 재미의 아버지 강형도(천호진)의 처남입니다. 강형도가 이혼할 때 재미를 데리고 가 변주리(변정수)와 함께 살았더라면 재미와 동우는 외삼촌과 조카 관계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의 이복 여동생 세라(박하영)의 외삼촌 변동우와 강재미가 지금 결혼하려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변동우가 크리스탈박(김수미)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출생'이 밝혀져도 재미는 여동생에게 '외숙모'라고 불리는 일을 피할 수가 없는 셈입니다.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셈이죠.

과거에는 '사랑과 진실'처럼 언니와 동생의 출생이 바뀌었다는 사실 하나로도 흥미진진했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얽히고 꼬인 관계를 보다 보면 멀미가 납니다.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애정만만세'의 남대문과 오정심같은 커플로도 충분히 멋진 이야기가 탄생합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출생의 비밀을 얽히게 해야하는 것인지 답답하기도 합니다. 웬만한 자극으로는 사람들이 눈하나 까닥하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일까요. 주말 드라마니 아무 생각없이 보자 생각하다가도 '이건 정말 아닌데' 싶어서 시선을 돌리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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