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빛과 그림자

빛과그림자, 이세창의 배역 '최성원' 그 이름에 담긴 비밀

Shain 2011. 12. 7.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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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극을 보는 즐거움 중 하나는 지금은 사라진 과거를 어떻게 재현했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강기태(안재욱)가 기생집에서 목청껏 부르던 노래가 김추자의 히트곡이란 것도 기태 어머니 박경자(박원숙)가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던 바세린같은 미제를 구입하는 장면도 정말 그 시대에 그랬지 싶어 웃음이 납니다. 물론 디스코장 장면에서 나왔던 김훈의 '바람'이란 노래나 어제 유채영(손담비)가 무대 위에서 열창한 노래 'Hot Stuff'는 극중 배경인 70년도에 나온게 아니라 79년도 발표곡이라 고증에 어긋난 부분이 있더군요.

극중 국회의원 선거를 묘사하는 장면도 그렇고 이 드라마는 대부분의 시대적 배경이 70년대 초반에 맞춰져 있지만 극중 풍경은 80년대 초반과 훨씬 유사한 편입니다. 상대적으로 고증하기 어려운 시대라 그런 착오를 보인 것같기도 하고 스토리에 치중해 나머지 부분은 대충 뭉뚱그리려한 것같기도 합니다. 국회의원 장철환(전광렬)이 섬뜩하게 내뱉은 빨갱이 사냥 이야기도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로 극중 강기태의 집안이 몰락하고 아무것도 못하도록 발목잡히는 원인이 될 것같더군요.

빛나리 쇼단의 순양 공연, 사기성짙은 단장에 사고치는 배우.

빛나리 쇼단의 신정구(성지루) 단장이 김추자, 하춘화가 공연에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지방 공연을 자주 다니고 기획했던 사람들의 전형적인 속임수였습니다. 실제로도 80년대 초중반까지 유명 연예인을 지방 무대에 부른다고 해놓고 당일에는 개인 사정으로 오지 못한다는 식의 질낮은 공연이 있었습니다. 초대권을 비롯한 각종 티켓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들을 올려 호객 행위를 하고 당일에는 철지난 영화 한편만 틀어준 그런 웃지 못할 공연도 종종 있었습니다.

본래 일제 강점기 때의 유랑극단에서 출발한 쇼단이 전국을 떠돌며 극장 공연을 하고 호텔도 아닌 집 하나를 빌려 숙식을 해결하던 그런 풍경, 80년대에는 거의 사라졌지만 연예인들의 지방 출장이나 밤무대 공연은 여전히 인기를 끌곤 했습니다. 노상택(안길강)같은 인기 쇼단의 단장은 연예계의 큰손으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곤 했었죠. 다방 아가씨를 꼬시고 어떤 여자를 보던 유혹의 눈길을 보내는 '한물 간' 배우 최성원(이세창)도 정신차리라며 자신을 윽박지르는 노상택의 위협엔 꼼짝하지 못합니다. 물론 다음날 무대에는 늦게 나타나는 대형사고를 쳤지만 말입니다.



70년대 최고 남자스타들과 최성원

공연에 목마른 지방 사람들을 위한 스타들의 공연, 유채영의 화려한 공연에도 관객들은 왜 김추자, 화춘화가 오지 않느냐며 웅성대기 시작합니다. 강기태가 아무리 신정구를 닥달해도 전날 호텔에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최성원은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홍수봉(손진영)에게 시켜 쟈니보이(서승만)와 앵두보이(김동균)에게 시간을 끌게 하라고 시켜보지만 정작 본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말짱 헛수고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애가 타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난 최성원은 화려하게 등장하며 관객의 환호를 받습니다.

허둥지둥 급하게 무대에 등장했지만 당황한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고 차분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최성원. 손에 꽃을 들고 노래하는 그는 순식간에 관객들의 불만을 잠재웁니다. 진짜 탑스타의 힘, 공연의 힘이란 이런 것이겠죠. 극중 최성원의 역할은 극장 간판에 걸린 '미워도 다시 한번'의 주인공 신영균 만큼이나 지명도 높은 영화배우 역입니다.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은 1968년 첫제작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자 세번이나 추가로 제작된 인기작이었습니다. 당시 1970년에 신영균은 공화당 국민회의 초대의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세창이 맡은 '최성원'이란 이름을 처음엔 그냥 아무 생각없이 들었는데 그가 '꿈은 사라지고'란 노래를 부르는 걸 보니 저 이름을 아무 이유없이 지은 것이 아니겠구나 싶더군요. 그 곡은 바로 배우 최민수의 아버지로 유명한 '최무룡'의 노래였던 것입니다. 1959년 개봉된 그 영화에서 최무룡은 직접 OST까지 불러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이후에도 종종 무대에서 같은 곡을 불러 팬들의 환호를 받게 됩니다. 아들 최민수도 노래를 잘한다고 알고 있는데 최무룡 역시 노래와 연기 양쪽에 재능을 보였던 것입니다.

최무룡은 60년대 배우 김지미와의 불륜(당시 최민수의 어머니 강효실과 결혼한 상태)으로 스캔들을 일으켜 국민적 지탄을 받기도 했고 69년엔 김지미와 '사랑하니까 헤어진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다시 이혼합니다. 이후 김지미는 가수 나훈아와 결혼하는 등 화제의 인물이 됩니다. 이세창이 무대 위에서 연기한 '최성원'의 첫번째 모티브는 최무룡인 것입니다. 김지미는 당대 최고 배우들과 늘 함께 영화를 촬영해 무려 800여편에 작품에 출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남자배우 중 하나가 최근 자서전 문제로 도마에 오른 배우 신성일입니다.

신성일은 잘 생긴 외모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지만 최성원같은 '느끼남'의 원조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 대사 중에서도 닭살돋을 만큼 '버터 냄새'나는 '작업남' 멘트가 많았습니다. 영화 출연 당시 목소리 대역을 맡았던 성우 탓도 있었겠지만 유난히 바람둥이같단 느낌을 주던 배우였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한때 유행했던 '당신은 나의 꽃사슴'이란 대사가 원래 신성일이 한 것이었다고 하지요. 반짝이 옷을 입고 여성들에게 키스를 날리는 최성원은 주변 여자들은 다 끌어모을 만큼 잘 생겼으면서 작업 멘트를 날리는 그런 캐릭터입니다.

70년대 최고의 배우들, 최무룡, 신성일, 남궁원.

세번째 '최성원'의 모티브가 된 배우는 '남궁원'을 꼽을 수 있겠군요. 남궁원은 최근에도 '여인의 향기'에 출연하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고 홍정욱의 아버지로도 유명합니다. 80년대 초반엔 약간 활동이 뜸했지만 1970년대 초반엔 상당히 많은 영화에 꾸준히 출연했던 스타였습니다. 극중 최성원의 머리형은 남궁원과도 많이 유사한 스타일입니다. 젊은 남궁원의 매력은 이국적이면서도 남성적인 외모라 할 수 있습니다. 신성일이 한국의 알랭 들롱이란 별명을 가졌다면 남궁원은 한국의 그레고리펙이란 별명을 갖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결국 최성원이 모티브로 삼은 배우는 최무룡, 신성일, 남궁원 이 세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외모나 이런저런 주변 이야기도 유사하고 이름도 각각 한자씩 따왔네요. 스캔들 때문에 '훅 간' 배우로 묘사가 되지만 워낙 모티브로 삼은 배우들이 출중하다 보니 나중에라도 강기태랑 손잡고 최고 스타가 될 지 모르는 일이죠. 극중 이정혜(남상미)가 최고의 배우가 된다는 설정처럼 말입니다. 하여튼 이세창씨 어찌 보면 당시 분위기를 재현하는 복고풍의 연기가 참 어려울텐데 정말 잘 하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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