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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향 동네엔 나이든 어르신이 많아서 40년대나 50년대에 일어난 일들도 곧잘 기억해 내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첩첩산중이라 90년대까지 흙먼지 풀풀 날리는 지방도를 걸어 다녔고 전기도 다른 어떤 지역에 비해 늦게 들어왔다고 했지만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그리고 4.19와 5.16까지 모두 겪으신 그 분들은 시대의 무서움은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세대는 소문으로만 듣던 '인민군'을 겪어본 분도 많고 북진하던 미군이 지나가며 초콜렛같은 걸 나눠주더란 기억도 있고 하여튼 격동의 6, 70년대를 몸소 겪으신 분들입니다.
사람들은 때로 기록이 남아 있는 일 조차 잘 믿지 못합니다. 60, 70년대에 이런 일이 있었노라 이야기하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고 정치적으로 편향된 지식이라 몰아부치기도 합니다. 증거 자료와 법정 자료, 증언이 충분함에도 쉽게 믿지 못할 때가 있지요.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 등장하는 군인 출신 장철환(전광렬)은 극중에서 김대중 신민당 대통령 후보가 박정희 후보와 선거에서 겨뤘던 이야기를 하며 김대중의 비서를 고문했다는 이야길 꺼냅니다. 실제 김대중 후보는 당시 유일한 박정희의 견제 세력으로 납치까지 당한 적이 있습니다(73년).
그 전해인 72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은 사실상 영구 대통령제나 다름없는 유신헌법을 통과시키고 유일한 반대 세력이라 할 수 있는 김대중의 측근을(당시 김대중은 일본에 있었음) 심하게 고문합니다. 극중 장철환의 말대로 선거에 도움을 준 비서를 공화당 편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고문으로 김대중 후보의 비리를 자백하게 만든 것인데 그 기록이 주한미군 대사 보고서에도 남아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박정희 군부에게도 전두환 군부에게도 모두 고문을 당해 장남 김홍일은 그 휴우증으로 파킨슨병과 유사한 증세를 보이며 투병중입니다.
극중 국회의원 장철환은 군인 출신으로 5.16과 함께 박정희 정부의 국회의원으로 등극한 정치인들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인물입니다. 빨갱이로 몰려 사주가 사형당한 '민족일보'를 비롯한 '부일장학회' 사건은 8-90년대나 되서야 언급할 수 있게 된 군부의 재산 강탈 사건이고 40년 동안 국가 사업을 핑계로 억울하게 자기땅을 빼앗겼다가 최근에서야 되찾은 가족도 실제 있습니다. 박정희와 함께 권력을 잡고 사적으로 재산을 축재한 소위 '측근'의 비리는 전두환 조차 인정했다는데 의외로 '박정희'가 청렴하다고 알려진 것이 코미디일 정도입니다.
당시 우리 나라는 한국전쟁 직후였기 때문에 '반공, 방첩'이란 표어가 공공건물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던 시절입니다. 국회의원 사무실 뿐만 아니라 극장 입구에까지 적혀 있는 '반공'이란 글자가 낯설게 느껴지신 분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5.16 이후 권력을 잡은 군부는 보다 효율적으로 국민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야간 통행 금지하는 등 여러 방법을 썼지만 '빨갱이'란 단어 만큼 효과적인 수단도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70년대에 조작된 간첩단 사건으로 꽤 오래 동안 외국 망명살이를 했던 분이 실제로 있으니 말입니다.
사실 '빨갱이'란 단어는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지 않은 비속어입니다. 그런 정체불명의 비속어를 사용해 특정인을 비방하는 인터넷 언론이 요즘에도 많다는 건 어찌 보면 슬픈 일입니다. 물론 이 '빨갱이 사냥' 자체가 냉전시대의 산물로 미국에서도 50-60년대에는 그 문제로 고생한 정치인들과 헐리우드 유명인사가 많았다지만 우리 나라 만큼 오랜 세월 지속되지는 않았습니다. 72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들(국회의원, 비서, 아들)이 끌려가 고문당할 때 제일 많이 들었던 게 '김대중이 빨갱이임을 시인하라' 였다고 합니다.
'빨갱이'란 단어는 상대방을 간첩으로 몰아 몰락시킬 수 있는 만능 키워드같은 것이었습니다. 명색이 대통령에 대항하는 유일한 정적인 김대중이 그 단어 한마디에 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시절'의 일들로 인해 아직까지 '빨갱이'란 누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불운한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국정원 직원들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고문당하고 빨갱이로 몰려 가진 걸 모두 잃고 마는 사람들이 정말 있었던 시절이 그때입니다. 반면 그런 시절의 부산물인 몰수 재산을 챙겨먹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자신을 돕지 않는 지역 유지 강만식(전국환)을 물먹이고 신민당에게 무료 초대권을 돌린 강기태(안재욱)에게 앙심을 품고 고발한 장철환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걸 못 믿겠다구요? 글쎄, 아무리 편파적으로 보려 해도 있었던 사실과 피해자들의 증언이 있는 한 부정하기 힘든 캐릭터가 장철환 아닐까요. 다만 특정인물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당시 시대적 특징을 집약해 장철환이라는 한 인물에 표현했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를 것입니다. 자신의 보좌관을 일렬로 세우고 발로 걷어차며 일본 군인처럼 '얼차려'하는 장철환의 모습은 어쩐지 낯이 익은 과거사이기도 합니다.
하여튼 북한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로 빨갱이로 몰리고 검은 옷입은 사람들에게 끌려간 강만식과 강기태는 이대로 전재산을 잃고 고생하게 될 것 같습니다. 잔인하게 고문하는 장면이야 나올지 안 나올지 그건 모르겠지만 살아남자면 재산은 포기해야겠지요. 장철환은 강기태가 끝까지 상대해야할 넘을 수 없는 힘의 상징이고 장애물이고 그런 인물이 될 것입니다. 혹은 유난히 연예인들과 여자들을 좋아했다는 정치인들 때문에 강기태의 연예 사업이 위기에 처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전에도 적었듯 무법과 합법이 공존하는(?) 70년대 만큼 연예계의 명암을 조명하기 쉬운 시대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 참 배우 안재욱은 직접 춤추는 가수로 출연하는 게 어떨까 싶을 정도로 노래를 잘 하는군요. CCR의 팝 'Proud Mary'를 번안한 조영남의 '물레방아 인생'도 현미의 노래인 '보고싶은 얼굴'도 구성지게 잘 불러재끼더니 70년대 한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외화 '5-0수사대(Hawaii Five-O, 1964)' 오프닝곡에 맞춰 춤도 추더군요. 유채영(손담비)와 풍전나이트에서 어울리는 장면은 정말 오래 기억날 듯 싶습니다. 무시무시한 '빨갱이 사냥'과 고통에도 한 시대를 마음껏 누리게 될 남자 강기태. 쇼의 맛을 제대로 알아야 멋진 쇼를 만들어낼 수 있겠죠.
사람들은 때로 기록이 남아 있는 일 조차 잘 믿지 못합니다. 60, 70년대에 이런 일이 있었노라 이야기하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고 정치적으로 편향된 지식이라 몰아부치기도 합니다. 증거 자료와 법정 자료, 증언이 충분함에도 쉽게 믿지 못할 때가 있지요.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 등장하는 군인 출신 장철환(전광렬)은 극중에서 김대중 신민당 대통령 후보가 박정희 후보와 선거에서 겨뤘던 이야기를 하며 김대중의 비서를 고문했다는 이야길 꺼냅니다. 실제 김대중 후보는 당시 유일한 박정희의 견제 세력으로 납치까지 당한 적이 있습니다(73년).
검은 옷 입은 사람들에게 순식간에 잡혀가는 강만식.
극중 국회의원 장철환은 군인 출신으로 5.16과 함께 박정희 정부의 국회의원으로 등극한 정치인들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인물입니다. 빨갱이로 몰려 사주가 사형당한 '민족일보'를 비롯한 '부일장학회' 사건은 8-90년대나 되서야 언급할 수 있게 된 군부의 재산 강탈 사건이고 40년 동안 국가 사업을 핑계로 억울하게 자기땅을 빼앗겼다가 최근에서야 되찾은 가족도 실제 있습니다. 박정희와 함께 권력을 잡고 사적으로 재산을 축재한 소위 '측근'의 비리는 전두환 조차 인정했다는데 의외로 '박정희'가 청렴하다고 알려진 것이 코미디일 정도입니다.
장철환, 사람 하나 빨갱이 만드는 거 쉽다
당시 우리 나라는 한국전쟁 직후였기 때문에 '반공, 방첩'이란 표어가 공공건물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던 시절입니다. 국회의원 사무실 뿐만 아니라 극장 입구에까지 적혀 있는 '반공'이란 글자가 낯설게 느껴지신 분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5.16 이후 권력을 잡은 군부는 보다 효율적으로 국민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야간 통행 금지하는 등 여러 방법을 썼지만 '빨갱이'란 단어 만큼 효과적인 수단도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70년대에 조작된 간첩단 사건으로 꽤 오래 동안 외국 망명살이를 했던 분이 실제로 있으니 말입니다.
사실 '빨갱이'란 단어는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지 않은 비속어입니다. 그런 정체불명의 비속어를 사용해 특정인을 비방하는 인터넷 언론이 요즘에도 많다는 건 어찌 보면 슬픈 일입니다. 물론 이 '빨갱이 사냥' 자체가 냉전시대의 산물로 미국에서도 50-60년대에는 그 문제로 고생한 정치인들과 헐리우드 유명인사가 많았다지만 우리 나라 만큼 오랜 세월 지속되지는 않았습니다. 72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들(국회의원, 비서, 아들)이 끌려가 고문당할 때 제일 많이 들었던 게 '김대중이 빨갱이임을 시인하라' 였다고 합니다.
국회의원의 말 한마디가 무섭던 시대, 선거법 위반으로 잡혀간 강기태.
자신을 돕지 않는 지역 유지 강만식(전국환)을 물먹이고 신민당에게 무료 초대권을 돌린 강기태(안재욱)에게 앙심을 품고 고발한 장철환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걸 못 믿겠다구요? 글쎄, 아무리 편파적으로 보려 해도 있었던 사실과 피해자들의 증언이 있는 한 부정하기 힘든 캐릭터가 장철환 아닐까요. 다만 특정인물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당시 시대적 특징을 집약해 장철환이라는 한 인물에 표현했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를 것입니다. 자신의 보좌관을 일렬로 세우고 발로 걷어차며 일본 군인처럼 '얼차려'하는 장철환의 모습은 어쩐지 낯이 익은 과거사이기도 합니다.
시대의 풍운아 강기태, 차라리 무대에 오르면 어떨까.
그건 그렇고 참 배우 안재욱은 직접 춤추는 가수로 출연하는 게 어떨까 싶을 정도로 노래를 잘 하는군요. CCR의 팝 'Proud Mary'를 번안한 조영남의 '물레방아 인생'도 현미의 노래인 '보고싶은 얼굴'도 구성지게 잘 불러재끼더니 70년대 한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외화 '5-0수사대(Hawaii Five-O, 1964)' 오프닝곡에 맞춰 춤도 추더군요. 유채영(손담비)와 풍전나이트에서 어울리는 장면은 정말 오래 기억날 듯 싶습니다. 무시무시한 '빨갱이 사냥'과 고통에도 한 시대를 마음껏 누리게 될 남자 강기태. 쇼의 맛을 제대로 알아야 멋진 쇼를 만들어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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