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빛과 그림자

빛과그림자, 호텔정치와 유채영의 사교클럽 술집없이는 정치도 없다

Shain 2012. 4. 1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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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드라마 '빛과 그림자'가 14회 연장되었다고 합니다. 출연 배우들이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촬영이 힘들어 연장에 반대했다는 이야길 들었는데 날마다 고공행진하는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MBC 파업'이 진행중인 까닭에 간판 인기 프로그램이 없는, 방송사 입장이 많이 반영된 듯 싶습니다. '빛과 그림자'의 후속 드라마 제작에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서 빨리 MBC 노조의 뜻이 반영되었으면 싶고 또 연장했으면 싶은 마음이 있으면서도 촬영하는 제작진들이 꽤 고생한다는 걸 알기에 대놓고 환영하기도 힘들군요. 최완규 작가가 시대극 특유의 재미를 살려 '못다한 이야기'를 잘 풀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시대는 1980년 봄입니다. 극중 차수혁(이필모)이 조명국(이종원)에게 광주에 친구들 있으면 모두 피하게 하라 조언하는 걸 보니 곧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을 것입니다. 12.12를 일으킨 신군부는 사전에 계획된 치밀한 전략으로 정권을 장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5공청문회에서 전두환과 그의 동료들은 '집권 시나리오' 같은 건 없다고 발뺌했고 검찰도 초반엔 구체적 물증을 확보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검찰은 지난번 드라마에서 묘사되었던 'K 공작계획' 즉 언론과 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80년 3월의 프리젠테이션을 집권 계획의 일부로 파악했습니다.

장철환의 '200만불'을 성공적으로 빼돌린 강기태. 정치권은 점점 더 심각해진다.


신군부는 그 계획에 따라 언론을 장악하고 회유, 해직하는 등 'K 공작'의 수순을 밟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언론들이 신군부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통폐합되었습니다. 95년 당시 검찰은 신군부의 집권 음모를 증명하기에 그만한 자료도 없지 않을까 생각됨에도 이 'K 공작' 계획은 신군부의 언론 대책일 뿐 '집권 시나리오'는 아니라 규정합니다. 그러나 그 이듬해(96년) '특별수사본부'는 전두환의 지시로 80년 보안사가 마련한 '시국수습방안'이 신군부의 집권 시나리오라 결론짓습니다. 계엄확대, 국보위 설치, 국회 해산 등을 그 방안에 따라 진행했다는 것입니다.

충분치는 않지만 전, 노 두 사람은 결국 그들의 죄값을 받습니다. '반란죄', '내란죄'와 '수뢰죄'로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던 권력자들도 동시에 몰락합니다. 그동안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죽어간 사람들이나 갑작스레 해고된 기자들의 억울함은 80년 이후 몇번의 봄이 와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사형은 피해자들의 심정을 상징적으로나마 위로할 수 있는 약소한 것이었습니다. 그뒤 그 둘은 특별 사면을 받긴 했으나 그중 한 인물은 영원히 '29만원'이란 별명으로 놀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타인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그 시절에 비하면 상당히 코믹한 모습입니다.



요정정치에서 호텔정치로 다시 사교클럽으로

강기태(안재욱)가 새로운 OST를 녹음해 엔딩곡으로 쓰고 있더군요. '김훈'의 바람을 리메이크한 곡입니다. '빛과 그림자' 첫회에서 기태와 동철(류담)이 풍전나이트 클럽에 갔을 때 흘러나온 곡이이도 하죠.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노래가 바뀌고 인기있는 연예인들이 물갈이하는 것처럼 정치의 유행도 시대가 변할 때 마다 바뀌곤 했습니다. 허나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는 정치권의 풍경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밀실정치'입니다. 대통령이 바뀌고 집권정당이 바뀌어도 정치인들 간의 이해관계가 오가는 밀담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인가 봅니다.

70년대는 이 '밀실정치'가 중정이나 청와대 주도 하에 각종 요정을 비롯한 술집에서 이뤄졌기에 '요정정치'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드라마 초기에 장철환(전광렬)과 차수혁이 나누던 대화를 기억하시나요? 중정 미림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즘도 민간인 사찰 문제가 최고의 화두로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 아주 예전부터 사회지도층에 대한 불법 사찰, 도청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2005년 극소수만 그 존재 여부를 알고 있던, 안기부 미림팀의 존재가 밝혀지고 그들이 각종 술집이나 음식점을 도청해왔다는 사실이 폭로되어 사회의 큰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장철환은 호텔에서 김부장은 룸살롱에서 자신의 업무를 본다.


본래 이 미림팀은 박정희 정부에서 출발한 비밀 조직이었습니다. 이 '미림'이란 단어 자체가 '요정'을 뜻하는 은어입니다. '아름다운 숲' 즉 예쁜 여자들이 많은 곳에서 흘러나온 정보란 뜻에서 '미림'이라 불렀다는 것입니다. 당시 중정은 요정 마담들과 접대원들을 이용해 정보를 수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도청, 감청 등의 첨단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식으로 했던 것이겠죠. '각하'의 하룻밤 일을 '승은'이란 은어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요정 정보를 직접 거론할 수가 없어 '미림' 정보라 불렀다는 것입니다. 이는 '안기부 X파일 사건' 때 조사를 받았던 미림팀장 공모씨의 진술로 밝혀진 내용입니다.

드라마 속 윤마담(엄수정)은 비밀요정을 운영하다 지금은 룸살롱을 운영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80년대에는 '요정 정치'가 '룸살롱 정치'로 탈바꿈했고 삼청각같은 요정은 다른 공간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룸살롱'은 고위층만 상대한다는 면에서는 '요정'과 그리 큰 차이가 없지만 현대적인 분위기에 회원제로 운영되는 출입제한 시설, 그리고 엄선된 접대원과 미로같은 밀실을 특징으로 했다고 합니다. 각종 연예인이 드나든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한편 요정에서 술판을 벌이고 비밀리에 담합하곤 하던 장철환이 자신의 주거지를 호텔로 바꾼 것도 인상적입니다. 이른바 '호텔 정치'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유채영은 고급 사교클럽을 열고 접대원들을 통해 정보를 모은다.


80년대 초엔 조선호텔같은 각종 유명 호텔에서 업무를 보는 일이 흔했습니다. 요정에서 친목을 다지고 접대하는 정치인들은 21세기까지 꾸준히 문제가 되었지만 호텔에서 주거를 해결하면서 화려한 업무 스타일을 과시하던 정치인들도 문제가 되곤 했습니다. 숙박의 공간이던 호텔이 각종 만찬회를 비롯한 사교 모임이 열리는 공간으로 탈바꿈합니다. 80년 집권한 신군부 역시 '서울북악파크호텔'에 작업반을 꾸렸고 '서울프라자호텔'에 본부를 차려 민정당과 민한당 창당 모임을 갖기도 했습니다. 민정당은 그뒤로도 꾸준히 사무총장의 전용객실을 프라자호텔에 두었다고 합니다.

정치인들의 호텔 이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다양한 목적으로 그곳에서 비밀리에 만남을 갖다 각종 구설에 오르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정치인들은 남의 눈을 피하고 친목이나 인맥도 관리할 수 있는 '사교클럽'을 선호하게 됩니다. 바로 유채영(손담비)이 추구하는 정재계 인사들과 경제인들을 위한 바(Bar) 말입니다. 유채영은 '배울 만큼 배운' 여성들을 고용해 손님들이 나눈 이야기를 요약해서 자신에게 전달하라 지시합니다. 아는 사람들 만 알고 찾아가는 '클럽'은 각종 고위층들이 만남을 갖는 장소이자 사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공간이 됩니다. 룸살롱도 아닌 요정도 아닌, 고급스런 공간으로 변모한 것입니다.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의 친목 공간인 호텔. 정혜와 강기태도 그곳에.


신정아 사건이 터졌을 때 언론이 쉬쉬했던 비밀 중 하나는 그녀가 고위층 사교클럽 '포야(Foya, 보름달)' 회원이란 점입니다. 사회지도층(?)과 매달 모임을 가지며 친목을 도모했다는 것입니다. 한때 비밀스런 회원제 룸살롱 '지안'이 문을 닫았다는 내용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정권 실세들의 비밀클럽인 '지안'은 로비스트로 유명한 린다김에게 팔려 현재는 한정식집으로 탈바꿈했다고 합니다. 드라마 '대물(2010)'의 대한민국 0.01%를 위한 사교클럽 헤리티지는 아트갤러리를 빙자해 돈세탁과 뇌물수수가 이뤄지는 공간으로 묘사됩니다. 공공연히 때로는 공개적으로 운영되는 이런 사교클럽은 실세들의 단합 공간으로 이용된다는 것입니다.

한남클럽, 서울클럽같은 사교클럽은 70년대부터 존재해왔다고 합니다. 채영이 운영하려는 그 공간이 그녀의 로비활동에 큰 역할을 할 것이란 점은 분명합니다. 문제는 강기태와 손을 잡은 유채영이 그 정보를 어디에 이용하느냐일 것입니다. 정치권의 각종 굵직굵직한 사건엔 '여인'들이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슬롯머신 사건'의 정덕진이 뇌물을 줄 때 동석했던 '홍여인'은 구설에 올랐습니다. 정권의 인척이었던 이철희에게는 장영자가 있었습니다. 로비스트 유채영이 또다른 '여인들'의 역할을 하게 될지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그곳에서 얻은 정보로 권력을 휘두를지 궁금한 부분입니다. 어쩐지 화려한 모습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유채영의 사교클럽에선 각종 정보가 오고갈 것이다. 어디에 쓸 것인가.


'오션스 일레븐(2001)'처럼 잘 짜여진 사기행각 그러고 보니 1973년 발표된 영화 '스팅(The Sting)'도 떠오릅니다. 마피아 두목에게 사기친 돈으로 다시 사기를 치던 로버트 레드포드가 떠오릅니다. 영화 주인공같은 강기태와 김부장(김병기)의 모습에 '스팅'의 OST 'The Entertainer'가 흘러나와도 이상할 것같지 않습니다. 유채영은 어쩌면 권력자 차수혁을 위기에 몰아넣기 위한 또다른 함정을 위해 새로운 장소가 필요했던 것일까요. 요즘처럼 유쾌하게만 진행된다면 20부가 연장된다고 해도 속이 시원할 것같긴 합니다.


* 손담비와 순애가 바에서 피아노를 치며 부른 노래는 'Autumn Leaves'입니다. 원곡은 1946년 발표된 이브 몽땅(Yves Montand)의 'Les Feuilles Mortes'입니다. 영화 '밤의 문(Les Portes de la Nuit)'에서 처음 발표한 곡입니다. 1947년 영어로 번역되어 팝과 재즈의 명곡으로 탈바꿈하게 되었습니다. 1950년에는 유명 샹송가수 에디트 삐아프(Edith Piaf)가 영어와 프랑스어 버전으로 발표하기도 했고 1956년엔 'Autumn Leaves'라는 영화에서 냇 킹 콜이 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영어권에서도 잘 알려진 샹송가수 세르쥬 갱스부르도 이 곡을 발표합니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비롯한 여러 여성 뮤지션도 이 곡을 녹음했지만 유채영과 가장 분위기가 어울리는 가수로 Doris Day의 'Autumn Leaves(1956)'을 소개해 봅니다.


* 이혜빈이 부른 노래는 나미의 '영원한 친구'(1979)입니다. 70, 80년대 대활약한 댄스가수 나미의 대표곡중 하나인 이 노래는 경쾌한 가사와 밝은 내용으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동두천 레코드 가게집 딸이었다는 나미는 1971년에서 1978년 사이엔 여성그룹 '해피돌즈'의 멤버로 미8군 무대에서 활약했습니다. 60년대 후반엔 '엘레지의 여왕(1967)', '미니 아가씨(1968)' 같은 영화에 아역으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두 영화는 각각 이미자와 윤복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나미는 노래 잘 부르는 아역 역할을 한 것입니다. 78년 '해피돌즈'가 해산하고 79년엔 '나미와 머슴아들'이란 밴드로 신곡을 발표했는데 그 노래가 바로 이 '영원한 친구'입니다. 콧소리가 들어간 독특한 목소리와 무대 위에서는 모든 걸 잊은 듯 열정적으로 공연하는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그녀는 80년대 중후반까지 '빙글빙글', '인디언 인형처럼'같은 히트곡을 발표했습니다.

The Raders의 앨범과 Orlando Riva Sound의 앨범.


* 이혜빈, 조태수, 최성원이 있던 바에서 흐른 팝은 'Indian Reservation' 입니다. 본래 1959년에 Marvin Rainwater가 'The Pale Faced Indian'이란 제목으로 발표했지만 1971년 'The Raiders'가 'Indian Reservation'이란 제목으로 다시 발표합니다. 부제가 'The Lament of the Cherokee Reservation Indian' 즉 체로키 보호구역 인디언들을 위한 애도입니다. 'Indian Reservation'이란 용어는 흔히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번역하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불모지인 한구석에 인디언을 몰아놓고 나오지 못하게 했던 것이므로 인디언 제한구역 쪽이 맞지 않나 생각됩니다. 인디언 입장에서 상황을 묘사한 이 노래는 묘하게 슬픔을 자극합니다. 1981년 발표된 Orlando Riva Sound의 버전도 흥미로운 곡입니다.

김훈이 출연한 영화 의혈문(1976)과 트리퍼스 앨범.


* 안재욱이 드라마 마지막에 부른 노래는 1980년 발표된 김훈의 '바람'입니다. 김훈의 1980년 발표한 '떠나간 그 사람'이란 앨범에 수록된 곡입니다. 가수 김훈은 '뽕짝 고고' 즉 '트로트 고고'의 4인방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최헌, 최병걸, 조경수). '나를 두고 아리랑(76)'이 대표작이고 영화 '의혈문'에 출연한 경력도 있습니다. '김훈과 나그네들'이란 그룹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거의 흔적이 사라진 스타가수라 아쉽네요. 본래는 71년 '트리퍼스'란 그룹으로 데뷰했지만 '트리퍼스(Trippers)'란 단어에 마약, 환각이란 뜻이 있어 '나그네들'로 바꿨다고 합니다. 76년 대마초 파동으로 썰렁해진 가요계를 '트로트고고'가 채워나갔고 그 기세를 몰아 TBC 남자가수 대상을 이연속으로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전국 배드민턴협회 부회장을 맡아 활동중이라고 하네요(댓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내용은 기자의 오보라고 합니다). 안재욱이 부른 '바람'은 첫회의 나이트 클럽 배경음악으로 쓰이기도 했죠(바람이 불어오네 외로움을 몰아 갈듯이 내 마음 깊은곳에 타오르는 사랑의 불꽃 그 옛날 그리움 외로움 아름다운 꿈이었어요 바람아 불어라 바람아 외로움이 이제는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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