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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연예계는 가십과 화제의 중심에 있는 곳이지만 70, 80년대 연예계 역시 이야기거리가 끊이질 않고 계속 솟아오르나 봅니다. 강기태(안재욱)의 탈옥과 밀항으로 다소 주춤했던 드라마 '빛과 그림자'가 다시 본래의 그 생기를 되찾고 있습니다. 어제 등장한 홍콩 쇼브라더스의 란란쇼는 실존하는 홍콩의 유명 영화계 거물입니다. 또 정치권의 차수혁(이필모)과 장철환(전광렬)이 일본에서 돌아온 김재욱(김병기) 부장과 추진하는 파칭코(파친코, 빠찡코, 한국에서는 이런 표현 대신 슬롯머신) 사업은 80, 90년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정덕진 사건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 내용은 90년대 최고 히트 드라마 '모래시계(1995)'로 묘사되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잡을 수 없을 것같던 최성원(이세창)의 바람기는 이정자(나르샤) 앞에서 꼼짝 못하게 됩니다. 한국 최고 톱스타 이정혜(남상미)와 함께 영화를 찍는 자리에 이정자가 나타나 '내 남자' 타령을 하자 최성원은 망신스러워 어쩔 줄 모르면서도 도망도 치지 못합니다. 60, 70년대 스타 영화 커플이었지만 남자 쪽에 염문설이 끊기지 않자 도시락 싸들고 촬영장을 따라다니며 스캔들을 막고 주변 사람들에게 남편의 행동을 일러바치게 했다는 한 배우 부부가 떠오릅니다. 영화 좀 잘 찍는다는 최성원이 이제는 정자 덕분에 일만 잘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유채영(손담비)의 로비스트 역은 90년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백두사업이 떠오르고 장철환이 그 중간 브로커 역할을 맡는 모습은 박정희 정권 시절 경호실장을 맡았던 '노드롭 스캔들' 박종규가 떠오릅니다. 박종규는 차지철과도 성격이 매우 유사한 타입으로 어느 도지사가 각하에게 라이터로 담배불을 붙여주다 불이 너무 거세 각하가 움찔하자 박종규가 그 도지사를 두들겨 팼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1992년 동아일보에서 발간된 '남산의 부장들'이란 책 참조). 과거의 명예를 바탕으로 무기 중개를 하고 그 이익을 정치실세와 나누는가 하면 불법정치자금까지 감당했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박종규와 린다김의 인연은 남달랐다고 합니다. 내일 포스팅에서 언급할 예정이지만 무기중개상으로 린다김이 활약하게 된 것은 박종규와의 안면 덕이었다고 하죠. 린다김의 '과거' 역시 극중 유채영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70년대가 권력의 시대였고 경직된 시대였다면 80년대는 돈의 시대이며 로비의 시대입니다. 차수혁이 허화평처럼 5공화국의 브레인이 되고 장철환이 돈 밖에 모르는 괴물이 된 것처럼 시대의 흐름이 변했습니다. 강기태는 도대체 일본에서 누구와 인맥을 쌓았길래 란란쇼 회장이 송미진(이휘향)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일까요. 그건 서서히 밝혀질 이야기지만 일단 흥미가 가는 건 란란쇼의 한국방문입니다.
1907년생인 란란쇼(Run Run Shaw, 邵逸夫, 샤오이푸) 104세의 나이로 아직까지도 생존해 있는 전세계적인 영화 제작자입니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고령의 나이로 현직 생활을 유지하다 작년 2011년 12월에야 모든 지위에서 은퇴했습니다. 중국 상해 출신으로 1967년 홍콩방송국(TVB)를 설립하고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미디어계 거물로 활약하던 란란쇼는 1987년부터는 자신이 벌어들인 돈으로 육영, 자선사업을 실시 각종 병원, 학교, 도서관을 비롯한 수없이 많은 공공건물을 지어 중국인들에게 존경받는 재벌로 손꼽히는 사람중 하나입니다.
'빛과 그림자'에서는 80년대에 란란쇼가 한국 방문을 하고 기념파티를 열었던 것으로 묘사합니다. 란란쇼가 80년대 초반까지 한국과의 영화사업을 추진한 건 사실이지만 한국에 방문한 공식기록은 62년 뿐인 것같더군요. 62년 한국에서 열린 제 9회 '아시아 영화제'에 홍콩 수석대표로 참가한 것입니다. 영화제에는 미국 유명 여배우였던 '리타 헤이워즈(Rita Hayworth)'가 방문하기도 해 전후 한국으로서는 대단히 큰 규모의 국제 영화제였던 것같습니다. 당시 그는 한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합작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한번에 10편의 영화를 동시에 찍기도 했다는 70년대 배우들의 증언처럼 70년대 한국영화는 양적으로 팽창했어도 질적으로는 60년대 영화 보다 못한 것이 아니냔 평가를 받게 됩니다. 개정된 영화법으로 영화사는 국산 영화를 의무 편수 이상 제작해야 외화 쿼터를 배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홍콩 합작 영화라는 명분으로 국적 불명의 희한한 영화를 많이 만들게 됩니다. 영화 '킬빌'의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가 한국의 정창화 감독에 대한 오마쥬로 '죽음의 다섯손가락(1972)'의 한장면을 연출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그러나 '아시아 액션 영화의 스승'이라 불리는 정창화 감독은 홍콩에서 활약해 한국에서는 유명세를 타지 못했습니다.
란란쇼 감독은 한국에서 활약하던 정창화를 60년대 후반 자신의 영화사로 끌어들입니다. 란란쇼 감독의 '쇼브라더스'는 그때 이미 전속 감독도 50여명이었으며 헐리웃과 유사한 영화촬영장을 꾸며놓고 그 안에 시대물을 찍을 수 있는 오픈세트장, 동시녹음 시설이 있는 스튜디오, 제작진들이 살 수 있는 아파트까지 지어놓은 상태였습니다. 현장에서 대본을 수정하는 주먹구구식 촬영에 익숙해있던 정창화 감독은 기획자, 감독, 제작자가 시나리오를 조정하고 세트를 디자인하고, 배우들과 역할에 대해 토론하고 상의하는 사전회의를 보며 쇼브라더스의 이 시스템을 한국에 도입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의 영화 '죽음의 다섯손가락'은 워너브라더스에 의해 미국 배급되어 전미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영국에서는 '킹 복서'란 제목으로 홍콩에서는 란란쇼 사장에 의해 '천하제일권'이란 제목으로 개봉했지만 미국에서는 감독이 원한대로 '죽음의 다섯손가락'이란 타이틀로 개봉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영화 수입이 까다로웠던 당시 상황 때문에, 신상옥 감독이 이 영화를 '한국 홍콩 합작 영화'로 위장해 '철인'이란 제목으로 개봉합니다. 영화는 검열 통과를 위해 마구잡이로 편집된 상태였다고 하니 정창화 감독이 화를 낼만도 했겠죠.
결국 한국 감독이 전세계적으로 히트시킨 '홍콩 영화'인 '죽음의 다섯손가락'은 합작 영화도 아니고 한국 영화는 더더욱 아닌 셈입니다. 한국 내에서도 그의 성공을 축하하기 보다 '홍콩영화'가 미국에서 1위를 할 동안 한국은 뭘 했냐는 식의 잘못된 정보의 기사가 게재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최근에야 정창화 감독의 명성이 널리 알려진 셈입니다. 란란쇼와 11편의 영화를 만들고 1977년 한국에 귀국한 정창화 감독은 영화 제작 시스템을 바꿔 보려 노력했지만 5공화국은 그의 영화를 30분 이상 가위질하는 수모를 주었고 정창화는 만드는 영화 마다 실패하게 됩니다.
결국 한국 최초의 세계적인 감독 정창화는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한국에서는 제대로된 대우도 받지 못하고 명감독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2005년 칸국제영화제에서 그의 영화가 칸 클래식 부분에 선정되는 등 국제적으로 그의 명성은 여전히 전설인 것 같습니다. 란란쇼는 각종 '합작 영화'를 성사시키고 정창화 감독을 끌어들였지만 80년대 초반엔 한국영화에 대해 상대적으로 시들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란란쇼가 수입해간 한국영화도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도 못했구요. '헐리웃 진출'은 한국 영화 배우와 감독들을 계속 설레게 했지만 기대 만큼 성과를 거둔 사람은 없었습니다.
자, 아시아 영화계의 거물 란란쇼를 만난 손미진과 강기태. 그 옆에는 미현(김규리)이라는 송미진 사장의 조카이자 란란쇼의 통역인 조력자가 함께하고 있다고 합니다. 차근차근 장철환과 차수혁, 조명국에 대한 복수를 준비해온 강기태는 분명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습니다. 란란쇼가 순순히 송미진에게 초대장을 내어주었다는 점, 조태수(김뢰하)와 주고받은 비밀, 유채영과 주고받은 의미심장한 말, 김재욱 부장의 본심을 알 수 없는 미소가 뒷이야기를 궁금하게 합니다. 강기태가 숨기고 있는 비장의 카드는 무엇일까요. 그 궁금함 때문에 오늘밤도 본방사수해야할 것같습니다.
아무도 잡을 수 없을 것같던 최성원(이세창)의 바람기는 이정자(나르샤) 앞에서 꼼짝 못하게 됩니다. 한국 최고 톱스타 이정혜(남상미)와 함께 영화를 찍는 자리에 이정자가 나타나 '내 남자' 타령을 하자 최성원은 망신스러워 어쩔 줄 모르면서도 도망도 치지 못합니다. 60, 70년대 스타 영화 커플이었지만 남자 쪽에 염문설이 끊기지 않자 도시락 싸들고 촬영장을 따라다니며 스캔들을 막고 주변 사람들에게 남편의 행동을 일러바치게 했다는 한 배우 부부가 떠오릅니다. 영화 좀 잘 찍는다는 최성원이 이제는 정자 덕분에 일만 잘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박종규, 린다김, 중정 출신 로비스트 윤씨, 허화평. 그들을 보면 떠오르는 이름들.
그런가 하면 유채영(손담비)의 로비스트 역은 90년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백두사업이 떠오르고 장철환이 그 중간 브로커 역할을 맡는 모습은 박정희 정권 시절 경호실장을 맡았던 '노드롭 스캔들' 박종규가 떠오릅니다. 박종규는 차지철과도 성격이 매우 유사한 타입으로 어느 도지사가 각하에게 라이터로 담배불을 붙여주다 불이 너무 거세 각하가 움찔하자 박종규가 그 도지사를 두들겨 팼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1992년 동아일보에서 발간된 '남산의 부장들'이란 책 참조). 과거의 명예를 바탕으로 무기 중개를 하고 그 이익을 정치실세와 나누는가 하면 불법정치자금까지 감당했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박종규와 린다김의 인연은 남달랐다고 합니다. 내일 포스팅에서 언급할 예정이지만 무기중개상으로 린다김이 활약하게 된 것은 박종규와의 안면 덕이었다고 하죠. 린다김의 '과거' 역시 극중 유채영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70년대가 권력의 시대였고 경직된 시대였다면 80년대는 돈의 시대이며 로비의 시대입니다. 차수혁이 허화평처럼 5공화국의 브레인이 되고 장철환이 돈 밖에 모르는 괴물이 된 것처럼 시대의 흐름이 변했습니다. 강기태는 도대체 일본에서 누구와 인맥을 쌓았길래 란란쇼 회장이 송미진(이휘향)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일까요. 그건 서서히 밝혀질 이야기지만 일단 흥미가 가는 건 란란쇼의 한국방문입니다.
정창화 감독의 헐리웃 진출, 란란쇼와 한국영화
1907년생인 란란쇼(Run Run Shaw, 邵逸夫, 샤오이푸) 104세의 나이로 아직까지도 생존해 있는 전세계적인 영화 제작자입니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고령의 나이로 현직 생활을 유지하다 작년 2011년 12월에야 모든 지위에서 은퇴했습니다. 중국 상해 출신으로 1967년 홍콩방송국(TVB)를 설립하고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미디어계 거물로 활약하던 란란쇼는 1987년부터는 자신이 벌어들인 돈으로 육영, 자선사업을 실시 각종 병원, 학교, 도서관을 비롯한 수없이 많은 공공건물을 지어 중국인들에게 존경받는 재벌로 손꼽히는 사람중 하나입니다.
'빛과 그림자'에서는 80년대에 란란쇼가 한국 방문을 하고 기념파티를 열었던 것으로 묘사합니다. 란란쇼가 80년대 초반까지 한국과의 영화사업을 추진한 건 사실이지만 한국에 방문한 공식기록은 62년 뿐인 것같더군요. 62년 한국에서 열린 제 9회 '아시아 영화제'에 홍콩 수석대표로 참가한 것입니다. 영화제에는 미국 유명 여배우였던 '리타 헤이워즈(Rita Hayworth)'가 방문하기도 해 전후 한국으로서는 대단히 큰 규모의 국제 영화제였던 것같습니다. 당시 그는 한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합작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한국 방문한 란란쇼는 104세의 나이로 아직 생존중이다(오른쪽 사진이 진짜 란란쇼).
한번에 10편의 영화를 동시에 찍기도 했다는 70년대 배우들의 증언처럼 70년대 한국영화는 양적으로 팽창했어도 질적으로는 60년대 영화 보다 못한 것이 아니냔 평가를 받게 됩니다. 개정된 영화법으로 영화사는 국산 영화를 의무 편수 이상 제작해야 외화 쿼터를 배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홍콩 합작 영화라는 명분으로 국적 불명의 희한한 영화를 많이 만들게 됩니다. 영화 '킬빌'의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가 한국의 정창화 감독에 대한 오마쥬로 '죽음의 다섯손가락(1972)'의 한장면을 연출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그러나 '아시아 액션 영화의 스승'이라 불리는 정창화 감독은 홍콩에서 활약해 한국에서는 유명세를 타지 못했습니다.
란란쇼 감독은 한국에서 활약하던 정창화를 60년대 후반 자신의 영화사로 끌어들입니다. 란란쇼 감독의 '쇼브라더스'는 그때 이미 전속 감독도 50여명이었으며 헐리웃과 유사한 영화촬영장을 꾸며놓고 그 안에 시대물을 찍을 수 있는 오픈세트장, 동시녹음 시설이 있는 스튜디오, 제작진들이 살 수 있는 아파트까지 지어놓은 상태였습니다. 현장에서 대본을 수정하는 주먹구구식 촬영에 익숙해있던 정창화 감독은 기획자, 감독, 제작자가 시나리오를 조정하고 세트를 디자인하고, 배우들과 역할에 대해 토론하고 상의하는 사전회의를 보며 쇼브라더스의 이 시스템을 한국에 도입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란란쇼 감독의 한국 투자. 송미진과 조명국의 경쟁.
그의 영화 '죽음의 다섯손가락'은 워너브라더스에 의해 미국 배급되어 전미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영국에서는 '킹 복서'란 제목으로 홍콩에서는 란란쇼 사장에 의해 '천하제일권'이란 제목으로 개봉했지만 미국에서는 감독이 원한대로 '죽음의 다섯손가락'이란 타이틀로 개봉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영화 수입이 까다로웠던 당시 상황 때문에, 신상옥 감독이 이 영화를 '한국 홍콩 합작 영화'로 위장해 '철인'이란 제목으로 개봉합니다. 영화는 검열 통과를 위해 마구잡이로 편집된 상태였다고 하니 정창화 감독이 화를 낼만도 했겠죠.
결국 한국 감독이 전세계적으로 히트시킨 '홍콩 영화'인 '죽음의 다섯손가락'은 합작 영화도 아니고 한국 영화는 더더욱 아닌 셈입니다. 한국 내에서도 그의 성공을 축하하기 보다 '홍콩영화'가 미국에서 1위를 할 동안 한국은 뭘 했냐는 식의 잘못된 정보의 기사가 게재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최근에야 정창화 감독의 명성이 널리 알려진 셈입니다. 란란쇼와 11편의 영화를 만들고 1977년 한국에 귀국한 정창화 감독은 영화 제작 시스템을 바꿔 보려 노력했지만 5공화국은 그의 영화를 30분 이상 가위질하는 수모를 주었고 정창화는 만드는 영화 마다 실패하게 됩니다.
이정혜와 영화찍는 최성원. 혹시 홍콩에 진출하는 감독역까지?
결국 한국 최초의 세계적인 감독 정창화는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한국에서는 제대로된 대우도 받지 못하고 명감독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2005년 칸국제영화제에서 그의 영화가 칸 클래식 부분에 선정되는 등 국제적으로 그의 명성은 여전히 전설인 것 같습니다. 란란쇼는 각종 '합작 영화'를 성사시키고 정창화 감독을 끌어들였지만 80년대 초반엔 한국영화에 대해 상대적으로 시들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란란쇼가 수입해간 한국영화도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도 못했구요. '헐리웃 진출'은 한국 영화 배우와 감독들을 계속 설레게 했지만 기대 만큼 성과를 거둔 사람은 없었습니다.
자, 아시아 영화계의 거물 란란쇼를 만난 손미진과 강기태. 그 옆에는 미현(김규리)이라는 송미진 사장의 조카이자 란란쇼의 통역인 조력자가 함께하고 있다고 합니다. 차근차근 장철환과 차수혁, 조명국에 대한 복수를 준비해온 강기태는 분명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습니다. 란란쇼가 순순히 송미진에게 초대장을 내어주었다는 점, 조태수(김뢰하)와 주고받은 비밀, 유채영과 주고받은 의미심장한 말, 김재욱 부장의 본심을 알 수 없는 미소가 뒷이야기를 궁금하게 합니다. 강기태가 숨기고 있는 비장의 카드는 무엇일까요. 그 궁금함 때문에 오늘밤도 본방사수해야할 것같습니다.
이 두 사람이 숨기고 있는 비장의 카드 대체 뭐야.
* 유채영과 강기태가 만나던 장면에서 흐른곡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Barbra Streisand)의 'Evergreen'(1976)입니다.70, 80년대 팝은 이 만능 엔터테이너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뮤지컬, 코미디, 영화, 팝 등 무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대활약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노래들은 수십년이 지나도 사랑받는 전세계인들의 애창곡입니다. 이 곡은 특히 바브라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과 함께 주연하고 노래까지 부른 1976년 개봉 영화 '스타탄생(A Star Is Born)'의 대표적인 러브테마입니다. 유명 영화배우이자 가수인 노먼이 무명의 에스더를 발탁해 두 사람이 사랑하게 되지만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된다는 내용의 이 영화로 바브라는 아카데미 음악상, 그래미 어워드를 비롯한 여러 상을 거머쥐게 됩니다. 이 곡은 에스더의 녹음장면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사용되어 'The Way We Were' 등과 함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대표하는 노래가 됩니다. 뉴욕에서 뮤지컬 배우로 출발하여 승승장구하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시킨 영화이자 노래이기도 합니다.
* 이정혜와 차수혁이 만나던 장면에서 흐른 곡은 Stanley Myers가 작곡하고 세고비아에게 사사받은 John Williams가 연주한 'Cavatina(1971)'입니다. 이후 1976년 끌레오 레인(Cleo Laine)이 가사를 삽입하고 John Williams가 연주한 'He was beautiful'이란 곡이 발표되어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1978년 개봉한 영화 '디어헌터(The Deer Hunter)'의 테마로 더욱 잘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한 그 영화는 월남 전쟁의 상처를 그린 영화로 전쟁으로 상처입고 피폐해진 젊은이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던 명작이기도 합니다. 잔잔한 노래 가사와 아름다운 클래식 기타 선율이 복잡한 그네들의 심정과 잘 어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카데미 주제가 상을 받았던 곡이이기도 합니다.
* 유채영과 강명희가 만나는 장면의 팝은 Captain & Tennille의 'Do that to me one more time'(1979)입니다. 미국 출신 혼성 듀오 'Captain & Tennille'의 곡으로 'Make your move' 앨범 수록곡입니다. 두 사람은 부부였기 때문에 연인들 간의 애잔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이만큼 감미롭고 다정한 곡은 없는 듯합니다. 앨범 역시 두 사람의 사랑을 표현하는 사진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의외로 선정적인 가사랄 수도 있는데 한국에서는 무사히(?) 방송을 탔다고 하는군요. 남편 데릴 드래곤의 닉이 '캡틴'인 이유는 그가 항상 늘 선원 모자를 쓰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 신정구, 양동철이 순애를 만났을 때 흐른 곡은 James Taylor의 'You've Got A Friend(1971)'입니다. 원곡은 캐롤킹이 작사작곡하고 직접 부른 곡이지만 제임스 테일러의 앨범 'Mud Slide Slim and the Blue Horizon'에 실린 이 곡이 훨씬 유명합니다. 제임스 테일러의 대표곡이자 가장 널리 알려진 히트곡이기도 합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아름다운 가사와 잔잔한 목소리 등 기타소리가 오늘같이 춥고 비오는 날에 가장 어울릴 것 같은 팝입니다.
* 이정혜와 차수혁이 만나던 장면에서 흐른 곡은 Stanley Myers가 작곡하고 세고비아에게 사사받은 John Williams가 연주한 'Cavatina(1971)'입니다. 이후 1976년 끌레오 레인(Cleo Laine)이 가사를 삽입하고 John Williams가 연주한 'He was beautiful'이란 곡이 발표되어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1978년 개봉한 영화 '디어헌터(The Deer Hunter)'의 테마로 더욱 잘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한 그 영화는 월남 전쟁의 상처를 그린 영화로 전쟁으로 상처입고 피폐해진 젊은이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던 명작이기도 합니다. 잔잔한 노래 가사와 아름다운 클래식 기타 선율이 복잡한 그네들의 심정과 잘 어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카데미 주제가 상을 받았던 곡이이기도 합니다.
영화 '디어헌터(The Deer Hunter)'의 포스터. 러시안 룰렛을 하는 주인공.
* 유채영과 강명희가 만나는 장면의 팝은 Captain & Tennille의 'Do that to me one more time'(1979)입니다. 미국 출신 혼성 듀오 'Captain & Tennille'의 곡으로 'Make your move' 앨범 수록곡입니다. 두 사람은 부부였기 때문에 연인들 간의 애잔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이만큼 감미롭고 다정한 곡은 없는 듯합니다. 앨범 역시 두 사람의 사랑을 표현하는 사진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의외로 선정적인 가사랄 수도 있는데 한국에서는 무사히(?) 방송을 탔다고 하는군요. 남편 데릴 드래곤의 닉이 '캡틴'인 이유는 그가 항상 늘 선원 모자를 쓰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 신정구, 양동철이 순애를 만났을 때 흐른 곡은 James Taylor의 'You've Got A Friend(1971)'입니다. 원곡은 캐롤킹이 작사작곡하고 직접 부른 곡이지만 제임스 테일러의 앨범 'Mud Slide Slim and the Blue Horizon'에 실린 이 곡이 훨씬 유명합니다. 제임스 테일러의 대표곡이자 가장 널리 알려진 히트곡이기도 합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아름다운 가사와 잔잔한 목소리 등 기타소리가 오늘같이 춥고 비오는 날에 가장 어울릴 것 같은 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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