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빛과 그림자

빛과그림자, 국책영화와 반공영화의 시대 여배우들에게 결혼이란?

Shain 2012. 5. 23. 13:37
728x90
반응형
한국 영화계의 대표 원로 중 한 사람인 임권택은 총 100여편의 영화를 제작, 감독한 영화감독으로 2002년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고 그가 제작한 영화 '씨받이(1986)'와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의 여주인공 역시 국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박상민, 신현준이라는 굵직한 신인을 발굴해낸 '장군의 아들(1990)'과 판소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드높인 '서편제(1993)'는 한국 영화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서편제'는 특히 국내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동원(단일 개봉관 기준으로 실제로는 관객수가 더 많다고 합니다)한 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 영화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그 임권택 감독이 70, 80년대에는 정부가 지원하는 국책반공영화를 다수 제작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대적으로 어쩔 수 없는 면이 있긴 해도 임권택 감독 본인 역시 그 시기를 긍정적으로 회상하지 않습니다.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조명국(이종원)이 70년대에도 정부에서 적극 지원하는, 극 새마을 운동같은 각종 정책을 홍보하는 영화, 혹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고취시키는 반공영화를 만드는 장면을 기억하실텐데 실제로 70년 이후 87년까지 반공영화는 따로 '대종상'에서 수상 부문이 있을 정도로 정부의 지지를 받던 국책영화였습니다.

장철환의 제안으로 국책홍보영화를 제작하기로 한 조명국. 그의 노림수.


70, 80년대를 영화계의 암흑기라 평가하는 건 외화쿼터를 따내기 위한 숫자 채우기에 급급해 질떨어지는 국산영화가 대량 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국책영화는 만들기만 했다 하면 자본이 지원되고 최고 인기 배우와 감독까지 동원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제 수상이 보장되어 있었고 학교 단체 관람을 독려하는 등 일정 부분 수입도 보장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정권을 옹호하기 위한 '국책영화'가 가장 많이 제작된 시기는 대표적으로 독일 나치 치하와 일제 강점기 때입니다. 영화가 사회에 관심을 갖고 사회성을 담아야하는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권력을 옹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때에는 '찌라시'에 불과합니다.

극중 강기태(안재욱)는 이정혜(남상미) 주연의 영화를 만들다 이중검열을 당하게 됩니다. 극중에서는 개인적 원한 때문인 것으로 처리됐지만 이렇게 영화의 내용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잘리고 훼손된 원작은 당시 많은 영화인들의 사기를 깎았습니다. 각본을 검열하고 제작된 필름까지 검열하던 이중검열, 70년대 후반 만들어진 '호스티스 물' 즉 '영자의 전성시대(1975)'나 '별들의 고향(1974)'같은 영화들은 당시의 사회상을 가볍게 다룰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임권택 감독이 자신 만의 영화 세계를 발전시킨 건 상당히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겠죠.

영화가 가위질당하자 제작중단까지 고민하던 강기태. 결국 대본 수정을 결심한다.


강기태의 가족은 달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그런 가난한 사람들을 TV 속에 출연시키는 것도 규제 대상이었다고 하는데 서민층들의 삶을 그려 많은 공감을 얻고 인기를 끌었던 '달동네(1980)'같은 드라마는 딱 꼬집을 이유 이유없이 종영되기도 했습니다. 80년대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 판자촌, 빈민가 등이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할 수 없는 이유가 정부의 압력 때문이라 생각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극중에서 이정혜의 영화가 '커트'당한 이유 중 하나도 그것이었죠. 조세희 원작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81)'같은 시대상을 묘사한 영화가 유사한 일을 겪었다는 사실도 떠오르네요.

참고로 극중 송미진(이휘향) 사장이 강기태에게 소개해준 사채업자 공사장은 머리가 백발인 걸 보니 최완규 작가의 작품에서 자주 언급되는 '큰손'을 남성화시킨 역할같군요. 작년 친일파 논란이 일었던 '백선엽'의 사촌누이인 백희엽, 일명 '백할머니'로 유명한 사채업자는 현금왕으로 불리며 당시 많은 정재계 인맥과 거래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유채영(손담비)은 노드롭 사건에, 장철환은 어음사기사건에, 조태수(김뢰하)는 슬롯머신 사건에, 차수혁(이필모)은 각종 정치자금 사건에 연루된 이 시점에서 유일하게 '올곧은' 역을 해야하는 강기태는 이런 시대에 어떻게 정혜를 지켜주려는 걸까요.



결혼하는 여배우들에게 뒤따른 소문들

여배우들에게 '결혼'은 상당히 다양한 의미를 지닌 중요한 선택입니다. 몇년전 '장자연 사건'을 계기로 한국에서 여배우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재조명했던 한 시사다큐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없잖아 그런 면이 있지만 70, 80년대에는 더더욱 여배우에게 결혼은 곧 은퇴를 의미했습니다. 본인이 계속 연기 활동을 하겠다며 은퇴 의사를 밝히지 않아도 각종 CF나 드라마 주연 자리에서 밀려나기 때문에 탑스타로 활동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특히 '미인'의 대명사로 여겨진 화장품 모델을 기혼 여성이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 이정혜가 결혼 발표와 함게 주춤하게 된 것도 당연합니다.

드라마 '사랑과 야망(1987)' 최고의 인기를 끌던 차화연이 결혼과 동시에 은퇴할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고백한 내용을 보면 여배우들과 결혼의 상관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남편의 요구로 은퇴를 결정하기도 했지만 결혼하고 나면 탑스타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일만 남았다는 불안이 자신을 괴롭혔다고 합니다. CF가 들어와도 밥솥이나 조미료같은 주부용 CF 뿐인데 그나마 고두심이나 김혜자가 조미료 모델로 활약하던 '어머니' 역할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또 연기자로서도 운신의 폭이 좁아져 운 좋아야 '새댁' 역할을 맡는게 고작입니다.

행복한 결혼 발표 후에 각종 CF에서 밀려나는 이정혜. 당시의 현실이다.


유난히 80년대 대활약한 여성 연기자들 중에 미혼이 많았던 건 그런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녀들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인 '결혼'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그것은 물론 배우자에 대한 사랑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좋은 모습일 때 물러나야 한다는 압박감도 한몫을 것입니다. 시대적으로 여성들에게 '주부' 역할을 강조했고 또 여배우 본인들이 그런 가치관을 받아들였으니 자연스럽게 은퇴할 수도 있었던거구요. 그런데 너무나 급작스럽게 결혼을 하고 또 빨리 이혼을 하는 여배우들에게는 은밀한 소문이 돌곤 했습니다. 바로 권력자들에 상대하는 '성접대'를 피하기 위한 결혼이란 소문이었습니다. 유명 여배우들의 이혼 이유가 성접대 때문이란 가십도 덤으로 따라다녔습니다.

한 때 여배우들의 60% 이상이 성접대 요구를 받은 적 있다는 기사가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아무리 대한민국 최고의 탑스타라고 해도 그런 권력층의 요구가 왔을 경우 현명하게 거절하는 방법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기획사에서 적극적으로 그녀들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극중 강기태가 이정혜와의 결혼을 발표하며 정장군(염동현)을 거절하고 장철환(전광렬)의 음모에서 벗어난건 당시 떠돌던 '루머'를 생각하면 상당히 현실적인 설정이었던 셈입니다. 연예인들의 사생활에까지 정치가 관계한다는게 상당 부분 씁쓸하긴 해도 국책영화와 더불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과거 아닌가 싶습니다.

이정혜 지혜롭게 정장군에게 벗어나긴 했지만 결국 결혼으로 해결.


중요한 건 그런 각종 '루머' 중에는 사실이 아닌 것도 다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채영과 친밀했던 강기태와 궁정동에 갔었던 이정혜의 진실은 당사자 말고는 아무도 모르지만 박경자(박원숙)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이정혜를 고운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궁정동에 자기발로 걸어간 유채영을 선호합니다. 연예인들이 루머의 전부를 부정할 수 없는 건 실제 그런 사례가 있기 때문이지만 억울한 루머의 희생자들이 더 많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결혼을 수단으로 삼아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기 보다 그런 '흑역사'가 있었음을 공개하는 것이 연예인들 본인을 위해 낫지 않았을까요.

개인적으론 최근 '빛과 그림자'의 강기태 캐릭터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70, 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사회의 '정의' 보다는 '의리'에 더 초점을 두고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깡패들이나 더러운 정치인과도 협력할 수 밖에 없는 그때의 상황이 그들을 모두 범죄자로 만든 측면이 있습니다. 현대인의 눈으로 판단하면 다 부정이고 부패인데 주인공 강기태에게만은 그 시대의 가치관을 설정할 수 없으니 주변 사람들에 비해 강기태가 더욱 어정쩡해지나 봅니다. 드라마 마지막에는 등장인물 대부분이 쇠고랑을 차게 되는게 아닐까 걱정스러울 정도네요.

요즘 들어 강기태의 포지션이 가장 어정쩡하다. 슬롯머신 사업에 뛰어드는 조태수.


'시대의 그림자'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꿔놓습니다. 극중 간접적으로 등장한 정장군은 실존인물 '전두환'을 모델로 창작된 인물입니다. 청문회에서 전두환에게 명패를 던졌던 한 국회의원, 그 시대는 어떤 시대였기에 故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분노를 표시했어야 했는지 현대인들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5월 23일이 다시 찾아오고 보니 시간이 정말 빠르다는 걸 느낍니다.


(51회) * 강기태와 이정혜와 티파니에서 듣던 곡은 Rita Coolidge의 'We're All Alone(1977)'입니다. 동양스러운 느낌 마저 주는, 인디언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외모의 리타 쿨리지는 어머니 쪽이 체로키족 인디언 출신이라고 합니다.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 라이터이기도 했던 리타 쿨리지는 1969년 데뷰했습니다. 75년 크리스 크리스토퍼슨과 결혼하고 77년 발표한 'Higher and Higher'는 빌보드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 1위를 차지하며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외에도 영화 '007 옥터퍼시(1983)' 음악으로 유명한 'All Time High'도 리타 쿨리지의 곡입니다.

* 퍼플시스터즈와 이혜빈, 지애가 대기실에서 듣던 곡은 Boney M의 'Bahama Mama(1979)'입니다. 보니엠의 대부분 히트곡들이 그랬듯이 이 곡 역시 한국어로 번안되어 큰 인기를 끌었죠. 이 곡 역시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팝음악 중 한곡입니다. 퍼플시스터즈가 데뷰 무대에서 부른 곡은 이전에도 한번 등장한 적 있는 아이린 카라(Irene Cara)의 'Fame'(1980)입니다. 영화 'Fame'의 주제곡입니다.

Rita Coolidge와 J. Geils Band


* 빅토리아 룸에서 강기태와 조태수가 장철환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 흐른 곡은 'Come Back'으로 제이 가일즈 밴드(J. Geils Band)의 히트곡입니다. 제이 가일즈 밴드의 대표곡 'Centerfold'를 자주 들어본 분들도 많을 것이라 봅니다. 두 곡 모두 80년대 CM에서 자주 배경음악으로 쓰던 곡이란 공통점이 있죠. 귀에 익숙하지만 누구 노래인지 몰랐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1967년 데뷰한 제이 가일즈 밴드는 한동안 라이브 밴드로 활약했지만 1977년 'Monkey Island'란 곡과 'I do'란 곡이 히트하면서 인기를 끌게 됩니다. 블루스 락을 연주하던 밴드가 디스코풍을 가미시키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세 곡 모두 귀에 쏙 들어오는 쉬운 멜로디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외에는 영화 '프라이트 나이트(Fright Night)'의 주제곡 'Fright Night'도 널리 알려진 곡입니다. 1985년 공식적으로 해체되었습니다만 최근 함께 공연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 순애와 유채영이 클럽 마고에서 듣던 곡은 Billie Holiday의 'I'm A Fool To Want You(1958)'으로 앨범 'Lady in Satin'의 수록곡입니다. 빌리 홀리데이의 대표적인 곡으로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명곡이기도 하죠. '나는 당신을 원하는 바보'라는 가사가 유채영의 심정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52회) * 강기태와 이정혜가 카페에서 듣던 음악은 냇킹콜 원곡의 'L-O-V-E'입니다만 부르는 가수는 1985년생인 Olivia(王儷婷 / Wang Liting)입니다. '빛과 그림자'에 종종 시기에 맞지 않는 배경음악이 나온 건 가끔 있던 일이지만 이 곡은 그 중에서도 가장 고증이 어긋난 곡이 되버렸네요. 올리비아는 싱가폴 출생으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이 곡은 Oliva의 2006년 앨범인 'A Girl Meets Bossanova 2'에 실린 곡입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