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빛과 그림자

빛과그림자, '의리'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 연예계 대부 최봉호

Shain 2012. 7. 4.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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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매니저 없이 TV 활동을 하는 연예인들도 많았는데 최근에는 연예기획사가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그 기획사들 중에는 연예계가 '더럽다'는 사람들의 편견 만큼이나 악행으로 물의를 빚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장자연 사건으로 불거진 고위층 성상납 스캔들이나 소속사 사장이 연습생을 성폭행했다는 뉴스 또는 인기 연예인들을 불리한 조건으로 장기 전속시키는 노예계약 파문 등 연예인들을 보호해주고 스타로 키워줘야할 그들이 오히려 연예인들의 약점을 잡아 괴롭히는 존재가 된 것도 같습니다. 요즘의 그들에게 '의리'라는 미덕은 구시대의 유물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전에도 적었듯 '빛과 그림자'의 강기태(안재욱)는 실존 인물인 최봉호라는 연예계 거물을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또 극중 등장인물 대부분이 그런식으로 실존 인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창작되었습니다. 드라마 속 캐릭터인 강기태와 최봉호씨의 인생이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드라마에서 묘사된 몇몇 에피소드는 최봉호씨가 실제로 겪었던 일들입니다. 그 최봉호씨가 이주일, 화춘화같은 탑스타들과 '의리'를 강조하며 잘 나갈 때나 못 나갈 때나 한결같이 대해줬고 또 서툰 연예인들을 대신해 해결사 노릇을 했다는 건 당시 활동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라고 합니다.

정치인은 하루아침에 몰락한다.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그들의 최후.


'빛과 그림자' 최종회에 대한 불만이 있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연예계 자체가 명암이 선명한 분야다 보니 극중 강기태의 실제 모델인 최봉호씨가 '성공'을 거듭한 인물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그의 인생도 상당히 굴곡이 있었고 결과도 좋지 않은 편이었죠. 그리고 연예계 자체가 사회적 분위기, 정재계의 압력에 영향을 많이 받아 힘있는 사람들의 약한 입김으로도 드라마 흐름 자체가 바뀌기도 합니다. 그런 연예계를 묘사하는 드라마가 4공화국의 최후에 빗대 부패한 장철환(전광렬)과 방황하는 지식인 차수혁(이필모)의 마지막을 선택한 것도 자연스럽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창작된 인물들 간의 갈등이나 연애사를 제외하곤 극중 묘사된 에피소드는 대부분 사실에 기반한 것입니다. 특히 어음사기사건이나 서울올림픽, 군수사업 관련 로비 등은 근거도 확실합니다.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인 셈이죠. 그러나 그런 '사실'도 '왜곡'이라며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이미 이 드라마의 공정한 최후는 불가능하다는 증거입니다. '의리' 없이 이 사람 저 사람 배신하는 정치인들은 뒤끝이 좋진 않지만 깔끔한 법적 처벌을 받진 않았죠. 장철환의 실제 모델인 차지철은 총에 맞아 죽고 박종규도 간암으로 사망했습니다.

故 이주일의 평생 매니저를 자처했던 최봉호씨. 부인 나미와 함께 인터뷰(이미지출처: 한국일보, 여성동아)


개인적으로 '최봉호'라는 인물에 대해 처음 들었던 것은 87년경입니다. 최봉호씨가 어떤 타입의 인물인지 또는 착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 하는 부분은 제가 판단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고 언급할 내용도 아닙니다. 그의 개인적인 스캔들도 자세하게 언급할만한 부분도 아니구요. 대중들이 '연예계의 대부' 최봉호를 접한 건 최고 인기가수였던 나미의 숨겨진 남편이자 후원자란 소문이었고 그 다음은 91년 발생했던 '청부살인사건'의 배후세력이란 뉴스기사였습니다. 수의를 입은채 두 손을 결박당해 검찰로 끌려가는 최봉호는 전국민의 관심을 끌어모았습니다.


조태수(김뢰하)가 아이 하나를 가진 이혼남으로 이혜빈(나르샤)과 결혼하려하는 것으로 등장하는데 실제 최봉호와 나미의 상황이 그랬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봉호의 장남(현재 뮤지컬 배우)은 아버지의 아내인 나미와 나이차이가 많지 않아 '누나'라고 불렀다는 점까지 동일합니다. 80년대초 나미는 삼호기획 소속으로 활동했고 84년 남모르게 아이를 낳습니다. 이후 85년 '빙글빙글'로 최고인기가수가 된 나미에게 임신 그리고 이혼남과의 결혼은 엄청난 스캔들이었습니다. 가족을 이루기는 했으나 남의 눈을 의식할 수 밖에 없었고 전국적으로 소문만 무성해진 것입니다. 최봉호의 구속으로 두 사람의 결혼은 공개되고 정식 부부가 됩니다.



그래서 최봉호의 의리는 시대착오적일까

극중에서는 배경음악으로 많은 팝음악이 나왔는데 노래를 부른 도나 서머같은 일부 가수는 이미 사망했거나 더 이상 가수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때 그시절에는 최고 인기 팝이었지만 이제는 흘러간 시대 속의 음악입니다. 때로는 깡패들을 시켜 업소를 관리하고 때로는 슬롯머신 사업으로 엄청난 이익을 누리던 최봉호씨가 어쩔 수 없이 권력자, 깡패들과 손을 잡았는지 아니면 탐욕스런 기획사 사장이었는지는 제가 판단할 부분이 아니죠. 어쩌면 그가 늘 입에 달고 살던 '의리'라는 말 때문에 사회의 그림자들과 함께 했는지도 모릅니다.

강기태가 모든 걸 올바르게 처리하는 정의의 사도 만은 아니었듯 최봉호가 연예계 최고의 인물로 성장했다는 건 권력이나 어둠과 손을 잡고 그 끊을 놓지 않는 융통성있는 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 극중 강기태처럼 각 분야의 능력자들을 발굴하여 일을 맡기는 인맥관리 능력도 뛰어났습니다. 최봉호를 자신의 평생 매니저로 부르며 친하게 지냈다는 故 이주일은 한때 최봉호와 함께 '삼호 축구회'라는 연예인 축구단을 만들었는데 이 조기축구단은 홍콩으로 국제친선경기를 떠나기도 합니다. 코미디언 이주일은 죽기전에 남긴 회고록에서 최봉호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평가합니다.

실제로 나미도 아이를 낳고 최고의 탑스타로 승승장구했다. 그들의 결혼은 비밀.


사업수단이 뛰어났던 최봉호는 국내 처음으로 연예인이 출연하는 밤업소 서울구락부(극중에서는 한지평이 운영하는 한양구락부로 표현되었지요)를 차리고 리버사이드 호텔, 롯데월드, 뉴월드 호텔, 북악파크의 나이트 클럽을 운영합니다. 타고나게 배짱도 좋고 머리도 좋아 각종 위기를 재치있게 넘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주일은 80년대 당시 홍콩에서 비싼 롤렉스 시계를 사오는 중이었는데 세관에서 검사할 찰라 최봉호씨가 배가 아프다며 구르는 시늉을 하는 덕에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고 회고합니다. 최봉호의 권유로 나이트클럽 사장이 되보기도 합니다.

저는 '빛과 그림자'의 출연진 중 하나인 최성원(이세창)의 모델이 최무룡, 신성일, 남궁원 이 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대요.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람기'있는 배우라는 인상이 있는 잘 생긴 배우 신성일은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무대 매너와 연기로 인기를 끌었고 한때 영화감독으로 나서 직접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또 초반에 연출된 최무룡의 밤무대 장면 즉 취객들이 시비를 걸고 싸움이 나는 그 장면은 신성일이 최무룡의 밤무대를 찾아갔을 때 실제로 목격한 일이라고 합니다. 결정적으로 '혼인빙자간음죄'로 고생하는 최성원을 꺼내준 것은 바로 강기태였죠.

진짜 있었던 연예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볼 수 있었던 드라마


최무룡이 김지미라는 유명 여배우와 간통 사건이 터져 고생하고 있을 때 각종 뒷처리를 해주며 그들을 도와준 당사자가 바로 최봉호씨였다고 합니다. 연예인들은 세상 물정에 어두운 경우가 많아 그런 일이 터지면 단속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매니저'도 없던 그 시대에 최봉호같은 의리있는 인물은 당연히 연예계에서 인정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최봉호가 못생겨서 절대로 데뷰할 수 없으리라는 말을 들었던 이주일을 발탁했던 이유도 이리역 폭발사고가 났을 때 화춘화를 업고 나온 '의리'를 인정했기 때문이라 합니다. 자신의 사람들을 믿고 지지하는 강기태의 의리, 빛나라기획이 어려워도 떠나지 않던 이혜빈의 의리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혜빈같은 연예인의 혼전임신이나 결혼을 왈가왈부하지만 혜빈과 조태수 사이의 아기자기한 사랑은 모르듯 인간 최봉호와 나미의 이야기, 그리고 그가 지킨 연예인들과의 '의리'는 우리가 쉽게 알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인간적인 판단'은 읽는 분들에게 맡기겠습니다. 어떤 과정으로 살인청부 혐의로 수사받게 되었는지나미와는 어떤 인연으로 부부가 되었는지는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쉽게 평가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확실한 건 더 이상 연예계에서 '의리'라는 덕목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는 점이죠.

그들의 성공은 그림자를 밟고 디뎌서 이루어진 것. 진실은 아무도 판단할 수 없다.


돈 때문에 그동안의 의리를 저버리고 소속사를 바꾸기도 하고 인기 연예인을 묶어두기 위해 약점을 잡아 협박하기도 하는 이 시대에 '연예계 대부' 최봉호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연예계의 '빛과 그림자'는 정치사의 명암 만큼이나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고 영원한 해피엔딩같은 건 바랄 수 없는 곳이 연예계인지도 모르죠. 또 앞으로도 연예계에 기웃거릴 속시커먼 경제인들과 정치인들은 넘쳐날 것입니다. 그런 만큼 '강기태'같은 의리파 돈키호테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동안 시청자를 즐겁게 해준 많은 연기자들에게 한번 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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