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골든타임

골든타임, 겁쟁이 의사 한 생명에 대한 책임을 말하다

Shain 2012. 8. 13.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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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자기 자신을 책임지기도 힘든 시대입니다. 한몸을 책임진다는 것도 생각 보다 쉽지 않아 힘겨워하고 한 가족을 책임지는 일이 버거워 결혼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책임'이 필요한 일들은 많아졌지만 '책임진다'는 말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책임진다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을 두고 '허세가 심하다'고 평가할 정도니 시대가 사람들을 겁쟁이로 만드는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또 '책임'이라는 말의 의미가 다양해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내 책임이고 어떤 부분이 남의 책임인지 알 수 없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의사는 보통 '사람의 생명을 책임진 직업'이라고 합니다. 약물을 잘못 처방해 환자가 사망하거나 오진으로 치료시기를 놓치는 환자도 있고 때로는 수술 중 일어난 사고로 환자가 죽거나 의사가 진료를 거부해 이송중 환자가 죽는 것을 보면 그들이 생명을 살리고 죽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는 것같습니다. 꼭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면 그 순간의 실수가 생명과 직결되니 '책임'을 피하고 싶은 이 시대에 가장 어깨가 무거운 직업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골든타임'에서 일하는 응급실 의사들이라면 더욱 그 마음의 짐이 버겁겠지요.

생명을 책임지는 의사, 그 무게를 버티는 사람들.

'골든타임'이 주인공 이민우(이선균)는 남다른 관찰력과 환자에 대한 관심 그리고 눈썰미와 감각이 좋은 의사이지만 한방병원 의사로 일하며 인턴 과정을 밟지 않았습니다. 의학에 대한 그의 지식과 관심은 남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평소에 즐겨 보는 드라마도 '트라우마'같은 미드이고 의과대학을 다니며 쌓은 지식을 미드 자막 제작에 써먹기도 합니다. '의사'로 사는 것이 그의 천직인 것 같은데 왜 인턴이 되려하지 않았을까요. 한방병원 의사도 의사지만 그가 하던 일은 고작 약처방을 위한 면허를 빌려주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가 두려워하던 것은 아마도 '한 생명에 대한 책임'일 것입니다. 다른 의사들은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요령있게 그 책임을 받아들이지만 무엇이든 진지하게 온몸으로 맞부딪히는 성격의 이민우는 그 생명의 무게가 너무 무서웠던 것입니다. 내가 잘못하면 한 생명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는 그가 전공의로 한발 내딛기 힘들게 만드는 장애였습니다. 반면 그가 존경하는 최인혁(이성민) 교수는 응급실 외과의로서 온몸을 바쳐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 남들이 꺼려하는 수술에도 자청해서 참가합니다. '책임'을 무서워하는 이 시대에 '책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모습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당연한 것 아닐까요.



한 목숨에 대한 책임, 그 진지한 시선

지난 9회의 마지막 장면에서 박원국 환자의 목숨이 위험해지자 이민우는 환자에게 심실 제세동기를 사용합니다. 환자의 생명이 위급하고 심장 박동이 멈춘 상황에선 당연히 사용하는 기계라 알고 있지만 박원국 환자의 정확한 상태를 잘 모르는 시청자들로서는 김민준 과장(엄효섭)이 왜 인턴들에게 화를 낸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이민우의 처치가 옳았다 옳치 않았다를 알 수 없고, '감히 인턴 나부랭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외과과장이니 경력많은 의사들의 소견도 듣지 않고 함부로 처치했다는 점에서 먼저 화를 냈을 수도 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는 노련하면서도 처세술에 능숙한 수많은 '과장' 의사들이 등장합니다. 승진도 놓치지 않고 명예가 뒤따르는 수술도 놓치지 않는 그들은 VIP 수술엔 적극적이지만 돈 안되고 어렵기만 한 수술에는 소극적인 의사들입니다. 사람은 무조건 살리고 봐야한다며 수술을 청하는 최인혁이 그들에게는 눈엣가시입니다. 그들은 의료현장에서 쌓은 다양한 임상경험과 지식이 있지만 그를 적극 활용하기 보다는 자기 한몸을 지키는데 이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턴 따위가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건 인턴의 실력이 모자라서일 수도 있지만 그 책임을 자신이 져야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박원국 환자에게 심실 제세동기를 사용한 이민우. 김민준 과장은 소리를 지른다.

이민우와 강재인(황정음)은 열정이 앞선 의사입니다. 환자에 대한 사랑이 넘치고 그들을 살리겠다는 마음에 누구 보다 먼저 응급실에 뛰어가는 의사들이지만 그들의 경험은 아직 미천합니다. 경력이 많은 의사들이 환자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부족하다면 이민우와 강재인은 한 생명을 '책임질 요령'이 부족한 셈입니다. 그들이 책에서 배운 지식만으로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산입니다. 최인혁이 수많은 응급환자를 처치하며 쌓은 현장 지식이 사람을 구하듯 그들도 수련을 마쳐야 '생명을 책임질 자격'이 생깁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배워야하는 건 요령있게 생명을 책임지는 법입니다. 응급사고가 생기면 무조건 환자를 받고 직접 시술하는 최인혁의 열정은 평범한 의사에겐 너무나 힘겨운 '책임'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의사가 응급실 주변에서 먹고 자느냐 늘 초췌한 모습으로 수술실에 나타나는 최인혁이 되기는 힘듭니다. 누군가는 성형외과로 빠지는 요령을 부려야 살고 누군가는 강대제(장용)처럼 병원이사장이 되어 병원의 경제적인 면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 책임을 두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그들이 어떤 의사가 되느냐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인턴이 이 의사들에게도 배울 점은 있다.

또 무조건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최선은 아닙니다.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와 환자를 살려달라 애원하는 가족들은 늘 병원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들에게 휘둘려 중요한 판단을 거스르게 된다면 그 역시 의사로서 자격없는 행동입니다. 그들이 호소하는 법적 문제 경제적 문제를 의사가 모두 해결해줄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냉정하게 때로는 객관적으로 환자를 대하는 법을 '과장급' 의사들에게 배워야 합니다. 훌륭한 의사가 된다는 건 어쩌면 의사가 되고자 했던 처음의 마음을 잊지 않은채 그 요령을 배워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시청자들은 아직 '책임질 자격이 없는' 인턴 이민우의 눈으로 세종병원을 보고 응급실을 봅니다. 인턴과 같은 마음으로 왜 응급실에 최우선권을 주지 않느냐 왜 과장급 의사들이 눈치를 보느냐 불만을 터트리고 그들이 처세를 위해 최인혁을 이용하는 장면에 분노하지만 강대제의 말처럼 환자 위주의 응급센터를 설치하려면 엄청난 적자를 감수해야 합니다. 이민우가 최인혁과 같은 '열혈 응급외과의'로 살아나가게 된다면 아직까지 의사로서 큰 위기를 경험해보지 않은 강재인은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응급센터의 재정적, 제도적 문제를 해결하는 스탭의 길을 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한 겁쟁이 의사의 진지한 시선. 생명에 대한 책임은 무엇인가.

'골든타임'이라는 드라마 제목 자체가 환자를 구하기 위해 놓칠 수 없는 시간을 뜻합니다. 그 어떤 명의가 와도 '골든타임'을 놓친 환자를 살려낼 수는 없습니다. 응급병원 당직을 섰던 이민우가 천식환자였던 어린 여자아이를 살려낼 수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생명을 책임진다는 모호한 말은 어떻게 보면 딱 알맞은 시간에 적절한 조치를 하라는 뜻입니다. '골든타임'이 아슬아슬한 환자를 두고 '우리 과 소관이 아니다'며 책임을 떠미는 의사들과 자신의 출세와 관련된 수술이 아니면 적극 나서지 않는 의사들은 '책임감'이 없기 때문일까요. 최인혁의 말처럼 그건 아닐 겁니다.

강대제는 '환자를 위한다'는 생각 만으론 병원을 운영할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김민준 과장이라면 '생명을 책임진다'는 건 자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 시스템의 차이 앞에서 '골든타임'이 촉박한 환자들은 외면당합니다. 책임을 두려워하지 않는, 박력있는 최인혁 교수가 멋있고 영웅처럼 보일지 몰라도 의료사고라도 일어나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 그의 처지가 불편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민우라는 '겁쟁이 의사'가 그들을 보며 배워야할 것은 무엇일까요. '생명을 두고 장난질'하지 않고 '생명에 대한 책임'을 말하는 그 진지한 시선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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