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골든타임

골든타임, 의학드라마에서 은근슬쩍 외면하던 의료비 문제

Shain 2012. 9. 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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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응급실에 한번쯤 가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 간 적도 있을 것이고 다친 가족 때문에 급하게 달려가본 적도 있겠죠. 그럴 땐 원인이 분명한 질병이나 외상으로 응급처치를 받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원인을 알 수 없어 여러 검사를 받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 역시 어릴 때 추락사고로 '큰' 병원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는데 뇌진탕과 골절이 의심스러워 각종 비싼 검사를 여러 차례 실시했다고 합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도 MRI에 들어갔다 나온 기억이 나고 응급실 의사들이 각종 테스트를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결국 저는 병실이 많은 그 '큰' 병원에 입원하지 못했습니다. 부모님 말씀으로는 각종 '쓸데없는' 검사를 잔뜩 해서 병원비만 올리더니 그 다음날 이 병원에 소아입원실이 없다며 다른 병원에 입원하라 하더랍니다. 진단은 가벼운 뇌진탕 증세와 골절이었고 추천하는 다른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당시는 의료보험제도가 일반적이지 않아 한번 다치면 병원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각종 검사비가 비싸서 아프면 빚낸다는 말도 있었을 때입니다. 아이가 다친 급한 상황이라 시키는대로 다 했지만 나중에 다른 의사들에게 들어보니 그런 도움안되는 검사가 아깝더라고 하시더군요.

의식저하 환자의 뇌경색을 의심하며 MRI를 권하는 담당 레지던트

제 조카 역시 응급실에 갔다가 '불필요한' 주사를 놓으려는 병원 때문에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습니다. 처음가는 병원이라 그곳에 소아과가 없다는 사실을 몰랐는데 다른 병원에 가라는 말을 하면서도 의료비를 청구하기 위해 수액 주사를 놓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응급실에 갈 정도로 아기가 아픈 상황에서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고 맞아도 될 수액주사를 굳이 처치하겠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죠. 다른 응급실있는 병원과의 거리가 5분도 되지 않는 곳에서 말입니다. 이외에도 고의로 비싼 약을 투여한다거나 의료보험이 지원되지 않는 약을 사용해 환자 부담이 가중되게 하는 사례는 종종 발생한다고 합니다.

물론 환자는 의사를 신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극중에 등장한 여러 요란한 환자가족들처럼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거나 의사를 협박하는 건 의료행위에 방해가 됩니다. 응급상황에서는 의사의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 판단에 따라 환자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환자에게는 의료비 역시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 생명을 놓고 돈 문제를 거론한다는게 비인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 환자를 살리고 죽이는 문제에는 의료비 역시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환자가 강대제(장용) 이사장처럼 과장의사들의 시술을 받을 만큼 넉넉한 형편인 것은 아닙니다. 서민들에겐 간단한 MRI 비용 백만원도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미드는 대부분 의료비 문제를 배제한다

'돈 때문에 치료를 하지 못한다'는 말처럼 서글픈 말도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똑같이 소중한 것이기에 최인혁(이성민) 교수는 유괴범과 형사를 가리지 않고 더욱 급한 환자를 선택했습니다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치료비가 없어 병원을 찾지 못하곤 합니다. 그리고 치료비가 아니라도 돈문제에 태연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 보다 많이 없을 것입니다. 강재인(황정음)의 고모할머니(반혜라)가 재인을 못마땅하게 보고 박금녀(선우용여)와 신경전을 벌이는 이유 중 하나도 강재인만 없으면 오빠 강대제(장용)의 재산이 자기들 것이 될 거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미국도 의료비 문제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정규직장에 다니는 동안은 직장의료보험으로 많은 의료비를 해결하고 또 65세 이상을 위한 메디케어나 저소득층을 위한 메디케이드를 이용할 수 있지만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조건의 사람들은 민간의료보험의 손을 빌려야 합니다. 그러나 민간의료보험은 커녕 이런 공짜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애매한 소득을 가진 계층이 생각 보다 꽤 많다고 합니다. 모두가 무료로 치료받는 건 아니니 당연히 치료비와 수술비 때문에 걱정을 하고 발을 동동 구르게 되겠지요.

의식저하 환자와 같은 시간에 실려들어왔지만 돈많은 강대제를 맡은 의사는 '어의'에 비유된다.

그러나 이런 저런 '미드'를 보면 특히 의학드라마들 경우에 의료비와 광우병은 일종의 금기같은 테마입니다. 갑자기 소득이 없어진 일부 중산층 가정 이야기를 묘사하는 드라마에서 과도한 진료비 때문에 고민하는 주인공 이야기가 언급되는 정도죠. 미드 '하우스'는 진단의학과를 중심으로 각종 의학사례를 펼쳐나가고 엄청난 비용의 각종 검사와 실험을 반복해도 그 의료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한다는 환자는 등장한 적이 없습니다. 환자가 부유하거나 엄청나게 비싼 의료보험에 가입했단 뜻입니다. 손가락 봉합 수술 때문에 의료비가 많이 나왔다고 소송을 거는 환자 이야기가 잠시 등장한 것같지만 뭐 핵심 이야기는 아닙니다.

보험이 있는 환자들은 보험사와 상담해 의료비를 감당할 수 있는 병원에 가니까 그런 장면이 불필요할 수도 있겠고 또 각종 의학 상황에 맞춰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면 돈문제는 집중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또 '프라이빗 프랙티스(Private Practice)'같은 건 멜로에 치중하고 배경 자체가 부유하기 때문에 의료비 문제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유사한 '그레이 아나토미(Grey's Anatomy)'같은 드라마는 종종 병원에 입원하고서야 남편이 실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에피소드가 묘사되고 뇌치료는 보장되지 않는 보험에 가입한 환자가 고민하는 내용도 등장하지만 10여년 가까이 방송된 전체 분량에 비하면 매우 적습니다.

따지고 보면 두 사람의 처지가 다른 것도 돈문제이다

미국 개인파산자의 60%가 의료비 때문에 파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돈'과 '의학'이 그들도 중요한 관련이 있을텐데 정작 드라마에서는 다분히 고의적으로 그 이야기를 외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유층만 상대하는 출장 의사 이야기를 그린 '로얄 페인즈(Royal Pains)'의 경우 주인공 의사를 비롯한 캐릭터들이 의료봉사(아마 퍼블릭헬스같은 것이겠죠)를 나가는 장면도 묘사되곤 하는데 그만큼 그런 치료가 절박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역시 이런 의료비 때문에 고생하는 환자 이야기는 많은 드라마에서 배제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올해 방영된 신경외과 전문의가 주인공인 드라마 '브레인'에서도 의료비 이야기는 거의 거론되지 않습니다. 과거 의학드라마 중에는 돈이 없어 치료를 할 수 없다며 신파극을 연출하는 경우도 있었고 병원이나 의사가 의료비를 부담한다는 '훈훈한' 이야기도 묘사하곤 했습니다. 의료보험이 자리잡은 요즘엔 개인 부담금이 어느 정도 되느냐가 의료비 문제의 핵심이 된 듯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 방영분은 조금이라도 환자의 검사비을 낮춰보려는 인턴 이민우(이선균)의 노력과 개인부담이 가중되는 신약 문제로 병원장(박영지)과 토론하는 과장의사들의 이야기가 와닿는 에피소드이기도 합니다.

한 환자의 검사비 부담은 해결해줬지만. 침울한 표정의 인턴 이민우.

아무리 의사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직업이라지만 최인혁 교수도 돈앞에서는 가끔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죠. 환자의 생명에는 조금도 관심없는 정치인이 와서 사진이나 찍고 가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정치인이 그나마 중증외상센터를 설립하는데 미력하나마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증외상센터를 병원이사장이 외면하려는 이유도 흑자 보다는 적자가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턴 이민우가 강재인이 '임금'과 비교되는 병원 이사장의 손녀이자 상속자라는 사실을 알고 씁쓸해할 수 밖에 없는 것도 그녀가 자신이 가까이할 수 없는 재력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골든타임'에서 제기한 개인부담금 문제는 한번쯤 진지하게 거론될만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응급상황에서 MRI같은 것이 꼭 필요하다면 의료보험에서 지원해줄수도 있는 문제인데 아직까지 그런 지원은 불충분한 것 같기도 하구요. 그리고 환자가 부담할 비싼 검사비를 고민하다 강재인 가족의 재산 갈등 문제를 조명하고 강재인과 이민우의 엄청난 환경 차이까지 '돈'을 중심으로 상황을 연결시키는 연출이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치료비가 없어 목숨을 잃는다는 극단적 설정 보다 이런 꼼꼼한 장면이 더욱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니 계속해서 '골든타임'의 '시즌제'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할 수 밖에 없군요. 어떻게 봐도 버릴 부분이 하나도 없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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