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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앨리스'가 새로 쓴 신데렐라 드라마의 공식

Shain 2013. 1. 28.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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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청자들은 유난히 '새드엔딩' 보다는 '해피엔딩'을 선호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영화에서 자주 보던 촌스럽고 작위적인 '헐리우드 해피엔딩'에 익숙한 까닭이기도 하지만 워낙 현실이 팍팍하다 보니 TV 드라마까지 우울한 것은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약간의 지식이 필요한 특수 장르 드라마 보다 통속극이 인기있는 까닭도 그 때문이라고 하죠. 덕분에 모든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는 나름의 공식이 있고 어떤 반전과 기발함으로 그 뻔한 해피엔딩을 연출하느냐가 시청률을 좌우하는 요령이라 합니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새드엔딩'이 싫으면서도 완벽한 '해피엔딩'도 뭔가 씁쓸합니다. 재벌 2세와 사랑 밖에 모르는 캔디 여주인공의 결합은 행복해 보이지만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가짜'티가 역력합니다. 일명 '신데렐라 이야기'로 압축되는 로맨틱 코미디의 결말은 오랜 꿈에서 억지로 깨어난 것처럼 어딘가 모르게 허탈합니다. 어차피 불가능한 이야기니까 그냥 보고 즐기기나 하라는 느낌이랄까요. 로또맞기전에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란 말처럼 찜찜합니다. 신데렐라 드라마가 폭발적 인기를 끄는 동시에 비난받을 수 밖에 없는 건 이렇듯 판타지와 현실의 차이 때문입니다.

현실과 판타지를 반쯤 섞어놓은 '청담동 앨리스'의 결말. '우리는 반쯤 눈을 감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반쯤 눈을 감고 자신이 이상한 나라에 와 있다고 반쯤 믿었다'는 한세경(문근영)의 대사처럼 환상과 현실의 차이를 인정하는 동시에 반쯤 눈을 감고 그 판타지를 즐길 줄 압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꿈속에서만 살고 싶어했던 차승조(박시후)도 한세경과 함께 반쯤 눈을 감고 현실 속의 사랑을 받아들입니다. '청담동 앨리스'의 독특한 해피엔딩은 우리가 흔히 보던 로코물의 해피엔딩과 얼핏 같은 것 같지만 해피엔딩 이면에는 '다음 삶'이 남아 있다는 현실을 잊지 않았다는 점에서 칭찬할만 합니다.

'청담동 앨리스(이하 청앨)'는 TV 속 뻔한 사랑이야기를 재미있게 재해석한 흥미로운 드라마였습니다. 기존의 '신데렐라'들이 운명같은 사랑이란 마약을 지속적으로 투약하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두 남녀주인공의 애절한 사랑을 강조했다면 '청담동 앨리스'는 '사랑'이란 판타지에서 어서 빠져나오라고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세경이 남자의 돈만 노린 '꽃뱀'이냐 아니냐 보다 중요한 것은 너라면 재벌 아들과 사랑에 빠졌을 때 돈 때문에 흔들리지 않겠느냐는 질문입니다. 기존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왕자 차승조의 사랑노래는 앨리스의 꿈같은 환상이었습니다.

전형적인 '로코물'의 비현실적인 왕자에서 꿈에서 깬 연인으로 변신한 차승조(살이 많이 빠졌군요).

덧붙여 '청앨'은 '로코물'에서 시도하지 않던 사회적 주제를 드라마 속에 담았습니다. 대형마트 때문에 무너지는 서민들의 삶과 진작에 사랑, 결혼, 출산을 포기해야하는 '삼포세대'의 서러움, 스펙과 경력을 쌓고 노력해도 깨고 올라가기 힘든, 두꺼운 유리천장의 현실을 신랄하게 묘사합니다. 한학기 등록금 보다 비싼 명품가방과 정장을 입고 대기업 면접에 나가는 서민 여성의 속사정이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타고난 행운인 아버지의 도움없이 혼자 힘으로 노력해서 성공했다는 차승조의 착각은 '드라마'에서 보여주지 않던 현실을 똑똑히 느끼게 해줍니다.

사랑이라는 환상에 빠져 왜 자신을 이용하려 했냐고 세경에게 따지는 승조와 노력하면 할수록 좌절하고 분노하고 행운 따윈 찾아오지 않는 자신들의 차이를 아느냐고 묻는 세경은 극단적으로 이분화된 우리 사회의 현실을 대변합니다. 기존의 로코물이라면 사랑이라는 순수를 추구하는 승조의 사랑이 더 가치있는 것으로 여겼겠지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차승조의 사랑은 모든 것을 타고난 신인화(김유리)가 말하는 '정의' 만큼이나 추상적인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사랑지상주의로 일관하던 '신데렐라 드라마'의 공식을 드라마 속에서 깨버린 것입니다.

'청담동'이란 꿈에서 현실로 돌아온 사람들. 기존 신데렐라 드라마가 생각하지 않았던 '다음 삶'.

반면 '청앨'이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전략적인 신데렐라 한세경도 애정결핍증 찌질 왕자 차승조를 사랑했습니다. 비록 상대방을 이용하고자 시도했을 지언정 한세경의 '추한 사랑'도 현실의 사랑입니다. 연인을 사랑함에 있어 어느 행동이 사랑이고 어느 행동이 이용해먹는 것이라 정확히 구분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애초부터 '꽃뱀' 논쟁 따위는 의미가 없는 일이었죠.

다만 차승조가 꿈꾸던 사랑처럼 이전 '신데렐라 드라마'에서 보여준 '마약성 진통제'같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한다'는 말로 모든 갈등을 해결하던 이상한 사랑이 아니라 진정한 대화를 시도했다는 점이 달랐습니다. 아버지 차일남(한진희)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승조는 서윤주(소이현)가 감당할 수 없는 교과서적인 사랑을 원했습니다. 상대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완전한 사랑'이 되어달라 애원하던 차승조는 한세경과의 대화로 현실을 깨닫습니다. 재벌 아버지가 자식을 걱정하는 평범한 마음을 알게 됩니다. 윤주와 세경이 자신을 속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는 결국 서로를 백프로 믿을 수도 없도 추상적인 사랑이 무엇인지도 증명할 수도 없고 입장 차이를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도 없지만 대화와 소통으로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차일남과의 관계를 서서히 회복하고 세경과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 차승조의 모습은 진정한 '힐링'의 의미를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환상속으로 도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꿈꾸는 것도 좋지만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반쯤 눈을 감고 꿈과 현실을 보는 어른들의 사랑.

무엇 보다 이 드라마는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였습니다. 상처받은 영혼을 감춘 찌질남 장띠엘샤는 팬들 사이에 매번 화제가 되었을 만큼 특별한 캐릭터였습니다. 서른이 넘는 나이까지 환상에 빠져살 정도로 어딘가 모르게 비현실적인 그의 캐릭터는 알고 보니 기존 로코물의 완벽한 왕자 코스프레였습니다. 그리고 남자친구 소인찬(남궁민)과의 이별로 지독한 현실에서 도망치고자했던 세경 역의 문근영도 박시후와의 완벽한 연기호흡으로 캐릭터를 잘 살려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처럼 딱 부러지는 성격이라면 하데스에게 잡힌 남자친구라도 지옥에서 꺼내올 수 있겠죠.

한편 청담동 사모님 룩으로 호평받은 소이현과 얄미운 청담동 마담뚜에서 한세경의 조력자가 된 타미홍 김지석의 캐릭터도 꽤 괜찮았습니다. 드라마가 현실을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반영해 보는 사람들을 가슴아프게 해서도 안되지만 또 지나치게 현실을 외면해 엉뚱한 판타지를 심어주어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청앨'처럼 '신데렐라' 이야기도 관점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충분히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드라마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건 작가의 시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청앨'의 마지막 장면처럼 반쯤 눈뜨고 현실을 보고 이상한 나라를 보게 하는 것이야 말로 진짜 드라마의 역할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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