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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앨리스, '이상한 나라'로 현실도피하는 우리들의 모습

Shain 2013. 1. 2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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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사회풍자적인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 '하트퀸'이 그렇습니다. 정원을 관리하는 트럼프 병사들은 그녀가 빨간 장미를 심으라 한 곳에 실수로 흰장미를 심자 흰장미에 빨간 칠을 하다 여왕에게 들킵니다. 입버릇처럼 참수를 명하는 여왕은 정원사들을 곧장 참수시킵니다. 여왕은 살아있는 홍학과 고슴도치로 크로켓 경기를 하고 트럼프 병사들이 만든 골대는 여왕이 친 공 즉 고슴도치를 골대 안에 넣으려 알아서 움직입니다. '하트퀸'은 절대권력자를 상징하는 역할이라 남들 보다 머리가 크고 기이하게 생겼죠.

'청담동 앨리스'는 '청담동'이라는 부자 세계를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에 빗대 설정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청담동'의 하트퀸일까요. 계약직 한세경(문근영)의 서민 안목을 지적하고 예쁜 얼굴로 올케가 된 서윤주(소이현)를 무시하는가 하면 로얄그룹 후계자인 쟝띠엘샤(박시후)와 '비즈니스'를 추진하는 신인화(김유리)가 당연히 하트퀸처럼 보입니다. 그녀의 타고난 신분과 계급은 서윤주의 한세경을 끝장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원천이고 타미홍(김지석)같은 출신들을 무시하는 이유가 됩니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생각이 몸속 깊히 배어있는 캐릭터죠.

'하트퀸'인줄 알았던 신인화도 돈 앞에서는 트럼프 병사에 지나지 않았다.

마치 트럼프 병사를 참수하듯 윤주와 세경을 처리할 수 있다 믿었던 신인화의 착각은 일단 저지되었습니다. 신인화의 아버지 신회장(박영지)은 로얄과 아르테미스의 사업을 쉽게 포기할 수 없어 서윤주를 미끼로 작업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세경은 한세경대로 '네가 모든 걸 망쳤다'는 차승조의 원망을 듣고도 '진짜 나를 보여주겠다'며 공항까지 뒤쫓아갔습니다. 알고 보면 신인화도 이상한 나라에서는 '공작부인'같은 캐릭터였을 뿐 여왕은 아니었던 거죠. 청담동이라는 이상한 나라의 하트퀸은 어쩌면 '돈'이라는 무형의 가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자기 힘으로 해결하기 힘든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드라마 '내 딸 서영이'의 서영(이보영)은 신데렐라를 꿈꾼 적도 없고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하고 싶었던, 된장녀와는 전혀 거리가 먼 성실한 여성이었지만 아무리 죽어라 돈을 벌어도 아버지의 빚잔치에 모은 돈 모두를 퍼부어야하는 자신의 처지를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함께 하고 싶다는 강우재(이상윤)의 달콤한 고백 앞에 아버지가 죽었다고 대답해버린 서영은 순간의 거짓말로 현실도피를 꾀한 것입니다. 서윤주나 한세경이 꿈꾸던 부자와의 결혼은 본질적으로 이런 현실도피와 다르지 않습니다.

가장 심각한 현실도피 증세를 보이는 차승조. 그의 '이상한 나라'는 산산조각난다.

한세경은 남자친구 소인찬(남궁민)과의 이별로 촌스러운(?) 고생 끝에 현실도피를 선택했지만 서윤주는 너무나 쉽게 '이상한 나라'로 들어갔습니다. 기껏 잡은 차승조라는 재벌 아들은 고질적인 애정결핍증으로 서윤주와의 사랑 보다는 아버지와의 갈등을 이겨내고 싶은 욕구가 훨씬 강했습니다. 가난 보다 힘겨운 차승조라는 장애 때문에 서윤주는 현실도피를 선택한 것입니다. 비록 눈치보는 아슬아슬한 삶일지언정 서윤주는 남들 보다 빠르게 성공했다며 세경을 놀렸고 노력해도 안되는 세상에서 이런 지름길이 최고라는 자기합리화로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디자이너 타미홍 역시 고졸에 국내파라는 자신의 약점을 '마담뚜' 노릇으로 극복한 케이스입니다. 무릎꿇고 빌고 사정하고 애원해도 청담동 사람들은 학벌도 돈도 없는 타미홍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남들의 사랑을 저울질하는 '마담뚜'로 성공한 것은 타미홍 나름의 현실도피였습니다. 그마저 지앤누리 사람들과의 갈등으로 무너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비즈니스 세계에선 사랑 따윈 없다며 도망쳤던 그들에게 사랑이라는 환상에 빠져 사는 '차승조'는 시계토끼인 동시에 골치덩어리였습니다. 승조가 믿었던 사랑의 진실, 승조 보다는 돈을 사랑했다는 내용의 동영상이 공개되면 차승조는 망가지고 맙니다.

현실도피를 선택한 그들의 '이상한 나라'는 어이없게 깨져버렸다.

'장띠엘샤'가 진짜 앨리스가 아닐까라고 생각한 것은 차승조가 누구 보다 심각한 현실도피로 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냉정한 차일남을 아버지로 둔 승조는 버린 장난감을 힘들게 찾아올 정도로 집착이 강했습니다. 서윤주가 떠나자 폐인처럼 아무것도 못하고 복수라는 일념으로 성공한 것도 윤주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처음 봤을 땐 바리바리 들고 있는 명품 때문에 '된장녀'라 단정했던 한세경 조차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라 믿어버렸습니다. 세경에게도 한때 돈 때문에 흔들렸던 마음이 있을거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차승조의 '순수한 사랑'에 대한 환상은 파도치면 무너져버릴 모래성같은 것입니다. 자신 만의 세계에서 사랑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현실을 무시하며 도망치는 차승조. 차승조는 그 안에서 빠져나오기엔 아직 너무 여리고 현실을 모릅니다. 그에겐 진짜 세상에 맞설 수 있는 힐링이 필요하지만 이번에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도피를 선택하려 합니다. 프랑스에는 차승조에게 현실을 직시하라며 강요하는 누군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세경이 그런 승조를 잡아 정면돌파를 선택한 것도 어떻게든 그를 사랑이라는 '이상한 나라'에서 끌고 나오기 위해서입니다.

세경에 의해 강제로 '이상한 나라'에서 빠져나온 차승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극복할 수 없는 위기에 닥쳤을 때 많은 사람들은 '지름길'이 있다고 착각합니다. 극중의 서윤주처럼 유리천장에 부딪힌 젊은 사람들 중에는 시집 잘가서 남편에게 의존해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보자하는 여성들이 있는가 하면 남을 괴롭히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는게 살아남는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혹은 차승조처럼 '사랑'이라는 환상에 빠져 자신 만의 세계를 구축해 현실을 외면하고 그것 이외에는 아무 상관없다는 태도로 현실을 잊거나 무시하려 합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두가지 현실도피적인 선택을 합니다.

맨살로 부딪히기엔 아프고 힘든 세상에서 '사랑' 마저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네 주인공들의 모습. 그들이 각자의 '이상한 나라'에서 빠져나와 순수한 사랑이라는 현실을 마주칠 수 있을까요. 차승조와 한세경의 결론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 증거로 울지 못했던 승조가 눈물을 흘리고 분노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드라마 속 네 주인공들에겐 어떤 형태든 현실적인 답이 주어질테지만 진짜 현실에 사는 우리들에겐 아직 도피 수단이 절실합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상한 나라를 꿈꾸는 것이 꼭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구요. 그래서 더욱 그들 나름의 '해피엔딩'을 절실히 바라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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