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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 악당 마강림과 의적 전우치의 불편한 대립

Shain 2013. 2. 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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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전우치'의 이야기가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동안 속시원한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좌상 오용(김병세)과 마숙(김갑수) 패거리에게 당하기만 하던 전우치(차태현)는 역모를 꾸미는 마강림(이희준) 일당을 피해 임금 이거(안용준)을 피신시킵니다. 궁궐 내금위장으로 부릴 수 있는 수하도 많고 오용에게 반기를 들기 위해 검계 패거리들도 양성해왔던 마강림은 전우치의 발목을 잡고 임금을 죽이려 합니다. 전우치에게는 홍무연(유이)과 중전 김씨(고주연)를 비롯해 지켜야할 가족들이 많으니 더욱 행동이 쉽지 않습니다.

마지막회를 앞둔 '전우치'는 초반부에 전개되던 내용과는 많은 부분 달라졌습니다. 방영 초기에는 다수의 민중 세력과 다양한 반란 세력의 대립을 기본으로 장난꾸러기 도사 전우치의 코믹한 활약상을 묘사할 생각이었던 듯 하나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산만해졌다는 지적을 의식한 탓인지 막개(김뢰하), 을이(정수영)를 비롯한 여러 등장인물들이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기획할 때의 캐릭터와 완전히 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오용과 강림은 역성혁명을 꿈꾸고 전우치는 의적 행세를 하다 임금을 지키는 충성스런 신하가 되었습니다.

왕 이거를 대피시키고 강림과 맞서는 전우치. 이거와 홍무연은 둥개와 마주친다.

한때 홍길동이 건설했다는 '율도국'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전우치에 대한 기록이 존재하는 것처럼 홍길동 역시 실록에도 전하는 실존인물입니다. 이런 저런 근거를 들어 홍길동이 바다를 건너 세웠다는 율도국은 오키나와(유구국)라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봉건 사회에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과는 달리 평등을 추구했다는 율도국에서 홍길동은 '이율배반적'으로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 역시 서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는데 스스로 왕이 되었다니 조금 의아하지만 당시 문화가 '평등'이란 개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일까요.

특이하게도 '마숙'이란 캐릭터는 그런 율도국에 반기를 듭니다.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율도국을 세운 홍길동은 조선의 왕에게 은광 지도를 건내주며 온갖 생색을 다 내고 마숙을 영원히 이인자 자리에 머물게 합니다. 천한 신분으로 무시받고 험하고 어려운 일은 혼자 다하면서도 왕이 될 수 없고 최고가 될 수 없는 마숙은 율도국을 무너트리고 조선을 차지하겠단 야심을 키워갑니다. 알고 보니 아들 '마강림'에게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였답니다. 권력자와 왕이 다투는 조선에서 천하제일 자리를 두고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숙의 부추김을 받은 오용은 왕을 밀어내고 자신이 왕이 되려 한다. 그 뒤를 치려는 마강림.

하루아침에 연인 홍무연과 율도국을 잃어버린 전우치는 스승(정진영)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과 도력을 회복하고 조선으로 옵니다. 이치(차태현) 행세를 하며 조보소 기별서리로 일하는 전우치는 마강림의 행방을 뒤쫓으며 복수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율도국을 무너트린 마숙 일당을 해치우고 독충을 먹고 꼭두각시가 된 홍무연을 살리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마강림을 뒤쫓던 중 마주친 여러 조선 백성들과 소칠(이재용), 중전 김씨, 서찬휘(홍종현) 때문에 의적 노릇을 하게되고 어느새 조선왕의 신하가 되어 버렸습니다.

큰 관점에서 보면 마숙과 마강림이라는 신분제와 봉건제라는 틀을 갖춘 조선의 틀을 공격하는 입장이고 전우치는 반대로 그 틀을 보호하고 지키려는 입장입니다. 마강림은 한술 더 보태 조선의 또다른 왕이 되려는 오용까지 제거하려 합니다. 부패한 권력자의 표본인 오용은 왕을 갈아치우고 자신이 조선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지만 그에 만족하지 못하고 마숙의 부추김을 받아 역성 혁명을 꿈꾸게 됩니다. 반면 전우치는 권력자들에게 시달리는 백성의 고통과 권력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조선의 현실을 똑똑히 보면서도 그 중심인 왕을 옹호하는 입장입니다.

마숙은 조선은 뒤엎으려 했으나 전우치와 동료들은 조선의 왕을 지키는 입장.

물론 전우치가 지키고자 하는 왕은 바르고 큰 왕이 되고자하는 뜻을 갖추고 있고 중전 김씨 역시 가난한 걸인들을 손수 먹여살릴 만큼 큰 뜻을 품은 여인이나 전우치는 조선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의문은 전혀 품지 않습니다. 그저 오용 대감의 수하들에게 당하는 백성들이 딱하기 때문에 구해주고 오용 대감이 부정하게 재물을 모았기 때문에 그의 재산을 모두 훔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뿐입니다. 현대의 언론에 해당하는 조보소의 소식이 차단당하는데도 주서 오규(박주형)는 놀리면서도 언로를 바꾸려 들지는 않습니다.

사복시 노비 봉구(성동일)는 한때 전우치를 배신하려했던 적이 있습니다. 노비로 살았던 봉구는 전우치를 잡으면 받을 수 있는 상금으로 면천하고자 하는 욕심에 눈이 멀어 전우치를 넘기려 했습니다. 봉구의 사람됨을 알기에 용서했으나 전우치에겐 봉구가 왜 배신하려 했는지 그 이유가 그닥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우치의 본래 이미지가 홍길동 보다 장난스럽고 '악동'에 가까우니 진지한 구석이 없는 것은 이해를 하는데 마숙이나 마강림의 인간적인 욕망과 대비되어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전우치가 비판없이 받아들인 '왕'이라는 체제가 현대인들에게는 최선의 답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겠죠.

악당이 된 개혁 세력과 왕을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의적. 어쩐지 불편한 이들의 대립구도.

더우기 이혜령(백진희), 철견(조재윤), 명기(김광규) 등과 어울려 가족처럼 서로를 위해주고 공동체 생활을 하던 전우치가 왕에게 백성과 똑같은 관점을 요구하지 않고 무조건 떠받드는 모습은 일방적인 권력자에 대한 신뢰 만이 백성을 위한 길인지 고민하게 합니다. 왕이 의심하고 질투할 때 마다 전우치는 도망칠 뿐 왕을 혼내고 바로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의적'은 시스템을 바꾸는 존재가 아니라 시스템을 희롱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마치 조선의 왕이 백성들을 위해 지켜야할 존재이고 어떤 경우에도 충성해야 대상인듯 행동하는 전우치가 가끔 답답하게 다가옵니다.

만약 마강림이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오용대감을 따르는 악당이 아니라 조선 사회를 뒤집고 싶어하는 반란 세력이었다면 이야기는 많은 부분 달라졌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개혁'세력과 '답습'(보수라고는 못하겠군요) 세력의 갈등일 수도 있는 구도를 '선'과 '악'의 구도로 설정했으니 이런 불편한 감정이 생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캐릭터 설정의 미스인지 아니면 워낙 스케일을 크게 잡아서 생긴 갭인지는 모르겠으나 홍길동이나 전우치는 본질적으로 가치관 정립이 가장 중요한 이야기의 얼개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흥미롭게 보던 드라마가 마지막회를 앞두고 이런 결점이 점점 커질 줄은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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