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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은 명성황후에게 좋은 시아버지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은 한미한 가문 출신인 명성황후를 무시하고 궁인 이씨의 아들 완화군을 세자로 세우려 하는가하면 명성황후가 스무살에 낳은 첫아들을 죽게했다고 합니다. 명성황후의 첫째 아들은 '쇄항'이란 증세로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었고 명성황후는 양의에게 보여 수술하자고 했지만 흥선대원군은 왕족의 몸에 칼을 댈 수 없다며 산삼을 먹게 했다고 합니다. 선천적으로 항문이 막혀 배설이 되지 않는 신생아가 며칠만에 죽은 것은 당연한 결과일테구요. 야사처럼 전하는 이 이야기가 두 사람이 척을 지게된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합니다.
의학의 기본 원칙은 증상에 알맞은 시술과 약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명약이라도 환자에게 맞지 않으면 독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칼로 째야하는 상처는 외과술로 다스려야하고 보양이 필요한 병은 약재로 다스려야합니다. 사실 여부는 정확하지 않지만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이야기는 '왕족의 몸에 칼을 댈 수 없다'는, 일종의 편견이 적절한 시술을 방해한 사례인 듯합니다. 요즘이야 간단한 수술 쯤은 우습게 생각하지만 과거에는 칼로 짼 상처는 잘 낫지 않아 죽는 경우가 많았으니 더욱 편견이 강해졌을테구요.
어제 방영된 '마의'에서 오규태(김호영) 대감이 완치된 것을 본 현종(한상진)은 그동안 쌓았던 분노를 이명환(손창민)에게 쏟아냅니다. 선발된 환자들을 치료하는 특별시료청이 내심 못마땅하면서도 두고본 것은 정성조(김창완)를 비롯한 정치세력의 입김도 입김이지만 특별한 명분없이는 담당자를 내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종은 특별시료청과 삼사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고 이명환을 수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려 했으나 인선왕후(김혜선)와 명성왕후(이가현)의 만류로 그만둡니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 청나라 수보(임병기)와 함께 등장한 백광현(조승우)의 귀환으로 이명환은 크나큰 위기를 맞게 됩니다.
역사서를 뒤져보면 한방에서 외과술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백광현 이전에도 '치종지남'을 펴고 치종청에서 일한 임언국이나 자신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침구경험방'을 펴낸 허임같은 외과의들이 있었습니다. 임언국은 양반 출신으로 어머니의 병을 직접 낫게 해주기 위해서 침술을 배운 특별한 케이스지만 허임은 백광현처럼 마의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대개 유학을 중심으로 의술을 공부하던 의원들은 대접을 받았으나 '마의'나 외과술을 하던 의원들은 천시하던 풍조가 있었습니다. 외과술은 실용적이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편견 때문에 차별을 받은 셈입니다.
이명환은 자신도 마의 출신으로 외과술을 잘 알고 있지만 신분 상승을 위해 기존 의술에 편승합니다. 의술이란 어떤 경우에 어떤 처방이 가장 적합하냐를 따져 즉 원칙적으로 환자에게 가장 알맞은 방법을 생각해내야하는 것인데 이명환은 그 근본을 잊고 외과술을 사술이라 주장합니다. 종기가 깊어 약으로 다스릴 수 없으면 째야 하고 사기가 빠져나오지 못하면 긁어내야하는데 그런 위험을 감당하기 보다 안전한 시술로 신변을 보장받고 싶어합니다. 의원 백광현이 맞서야했던 것은 원수 이명환이 아닌 외과술에 대한 편견이었습니다.
서은서(조보아)의 가족들과 양반층들이 유옹 시술을 반대하고 나선 건 반가 여인의 몸에 칼을 댄다는, 자신들의 상식과 어긋난 시술을 시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주만(이순재)의 부골저 시료를 반대한 것도 외과수술은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닌 죽이는 시술이라는 편견 때문입니다. 청나라 황비 우희(이희진)도 흉한 상처가 남는 외과술을 꺼려했고 오규태 대감도 어떻게 신체를 자르느냐며 백광현의 처방에 반발했습니다. 하긴 생각해보면 지금은 대수롭지 않게 하는 신장이식 수술이나 맹장수술을 40여년전만 해도 죽지 않을까 걱정했으니 조선시대에는 더욱 그랬겠지요.
백광현이 청나라 사신으로 온 수보의 도움으로 현종 앞에 서는 장면은 원수 이명환을 실력으로 이겨낸 극적인 장면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부분을 통쾌하게 생각했고 그동안 기다려온 보람이 있다며 속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백광현이 천한 마의 출신의 의원이 외과술로 사람을 살려 세상의 인정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기존 의원들이 천시하던 외과술로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환자들을 살려냈고 천한 마의가 무엇을 할 수 있겠냐는 편견을 이겨냈으니 이명환 보다 더 큰 세상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조선의 의원 백광현으로 우뚝 선 순간이기도 합니다.
상처를 째고 고름을 제거하는 방법은 가장 효율적인 종기치료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왕실 사람들은 몸에 칼을 대서는 안된다는 외과술에 대한 편견 때문인지 주로 탕약이나 온천 등을 이용해 치료해온 경우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조선 중기부터 외과술에 대한 서적이 있었으니 왕실에서도 외과술을 한번쯤 시도해봄직한데 상처를 침으로 찢었다가 낫지 않고 효종처럼 출혈이 멈추지 않아 죽기라도 하면 어의도 목숨을 잃으니 얼핏 이해가 갑니다. 무엇 보다 외과술 자체가 풍부한 임상경험이 필요한 시술이라 백광현이나 허임같은 민간 출신 의원이 더 활약했던 것일테구요.
현종은 백광현을 용서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어린 숙종(세자)의 종기치료를 과제로 주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청나라의 뒷배로 왕실에 들어온 백광현은 아직까진 조선의 죄인입니다. 그것도 처벌을 받지 않고 도망친 죄인이죠. 백광현을 용서하고 외과술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의료정책을 펴고 이명환을 내치려면 세자의 병을 낫게 했다는 공은 좋은 명분이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의술 공부 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세상의 편견에 맞서고 환자들을 설득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실존인물 백광현도 말이나 고치던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치료하냐는 편견을 이겨낸 극적인 케이스였습니다.
여담입니다만 극중 세자로 등극한 숙종의 나이가 10세 쯤으로 보이는군요. 인선왕후는 1674년 사망했고 현종도 같은해에 죽습니다. 숙종은 13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등극하니 드라마 상으로는 현종도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뭐 '마의'는 현종, 숙종을 모두 한 사람의 왕으로 엮어 처리하다 보니 이런 상황이 되버렸네요. 덧붙여 강지녕(이요원)과 백광현의 사랑이 애절해질수록 점점 숙휘공주(김소은)의 출연 분량이 줄어드는 것도 안타깝습니다. 백광현이 주인공이다 보니 왕실 사람들은 모두 대충 처리되나 봅니다.
의학의 기본 원칙은 증상에 알맞은 시술과 약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명약이라도 환자에게 맞지 않으면 독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칼로 째야하는 상처는 외과술로 다스려야하고 보양이 필요한 병은 약재로 다스려야합니다. 사실 여부는 정확하지 않지만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이야기는 '왕족의 몸에 칼을 댈 수 없다'는, 일종의 편견이 적절한 시술을 방해한 사례인 듯합니다. 요즘이야 간단한 수술 쯤은 우습게 생각하지만 과거에는 칼로 짼 상처는 잘 낫지 않아 죽는 경우가 많았으니 더욱 편견이 강해졌을테구요.
현종과 이명환을 깜짝 놀라게 한 오규태의 등장. 현종은 이명환을 질책할 명분을 얻는다.
역사서를 뒤져보면 한방에서 외과술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백광현 이전에도 '치종지남'을 펴고 치종청에서 일한 임언국이나 자신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침구경험방'을 펴낸 허임같은 외과의들이 있었습니다. 임언국은 양반 출신으로 어머니의 병을 직접 낫게 해주기 위해서 침술을 배운 특별한 케이스지만 허임은 백광현처럼 마의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대개 유학을 중심으로 의술을 공부하던 의원들은 대접을 받았으나 '마의'나 외과술을 하던 의원들은 천시하던 풍조가 있었습니다. 외과술은 실용적이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편견 때문에 차별을 받은 셈입니다.
외과술에 대한 편견을 이겨내고 의원으로 우뚝 선 백광현. 이명환은 깜짝 놀란다.
서은서(조보아)의 가족들과 양반층들이 유옹 시술을 반대하고 나선 건 반가 여인의 몸에 칼을 댄다는, 자신들의 상식과 어긋난 시술을 시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주만(이순재)의 부골저 시료를 반대한 것도 외과수술은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닌 죽이는 시술이라는 편견 때문입니다. 청나라 황비 우희(이희진)도 흉한 상처가 남는 외과술을 꺼려했고 오규태 대감도 어떻게 신체를 자르느냐며 백광현의 처방에 반발했습니다. 하긴 생각해보면 지금은 대수롭지 않게 하는 신장이식 수술이나 맹장수술을 40여년전만 해도 죽지 않을까 걱정했으니 조선시대에는 더욱 그랬겠지요.
청나라 수보의 도움으로 현종 앞에 나선 백광현. 세자를 치료하고 내의원에 들어갈까.
상처를 째고 고름을 제거하는 방법은 가장 효율적인 종기치료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왕실 사람들은 몸에 칼을 대서는 안된다는 외과술에 대한 편견 때문인지 주로 탕약이나 온천 등을 이용해 치료해온 경우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조선 중기부터 외과술에 대한 서적이 있었으니 왕실에서도 외과술을 한번쯤 시도해봄직한데 상처를 침으로 찢었다가 낫지 않고 효종처럼 출혈이 멈추지 않아 죽기라도 하면 어의도 목숨을 잃으니 얼핏 이해가 갑니다. 무엇 보다 외과술 자체가 풍부한 임상경험이 필요한 시술이라 백광현이나 허임같은 민간 출신 의원이 더 활약했던 것일테구요.
과연 현종은 어떻게 백광현을 받아들일 것인가.
여담입니다만 극중 세자로 등극한 숙종의 나이가 10세 쯤으로 보이는군요. 인선왕후는 1674년 사망했고 현종도 같은해에 죽습니다. 숙종은 13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등극하니 드라마 상으로는 현종도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뭐 '마의'는 현종, 숙종을 모두 한 사람의 왕으로 엮어 처리하다 보니 이런 상황이 되버렸네요. 덧붙여 강지녕(이요원)과 백광현의 사랑이 애절해질수록 점점 숙휘공주(김소은)의 출연 분량이 줄어드는 것도 안타깝습니다. 백광현이 주인공이다 보니 왕실 사람들은 모두 대충 처리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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