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마의

마의, 경신대기근과 전염병 조선왕 현종을 울리다

Shain 2013. 2. 20. 14:19
728x90
반응형
조선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사건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같은 전쟁이 아닐까 싶지만 그것 보다 더욱 끔찍했던 것은 자연재해였습니다. 바로 현종 때의 '경신대기근(1670-1671)'과 숙종 때의 '을병대기근(1690-1691)'입니다. 이 시기는 소빙하기에 해당하던 때라 조선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대기근이 있었고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던 시기입니다. 조선 현종은 즉위 초반부터 계속된 가뭄과 흉작으로 끊임없이 속을 끓이고 고민했습니다. 오죽하면 현종이 후궁을 둘 수 없었던 이유가 백성들의 고통 때문이라 추정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현종 시기는 서인과 남인의 당파싸움, 예송논쟁이 한참이던 때이기도 합니다. 백성들은 굶어죽는데 신하들은 말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현종은 후궁을 두고 싶어도 머리가 아파 그럴 겨를이 없었을 것입니다. 실제로도 현종은 스트레스성 질병인 종기와 눈병으로 고생하던 왕이었습니다. 어제 '마의'에서 숙휘공주(김소은)의 두창으로 눈물짓던 현종(한상진)의 모습은 그때 그 시절의 현종이 살아온듯 하더군요. 기근과 전염병으로 조선의 백성들이 죽어가지만 차마 울지 못했던 왕이 여동생의 죽음을 앞두고 피눈물을 쏟아냅니다.

최형욱의 음모로 현옹이 온 숙휘공주. 현종은 조용히 눈물지으며 슬퍼한다.


두창에 걸린 숙휘공주는 가엽게도 최형욱(윤진호)과 이명환(손창민)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윤진호는 사향을 써서 숙휘공주의 두창을 악화시켰습니다. 그러고도 감히 목이 부은 숙휘공주를 위해 현옹 시술을 하겠다니 정말 최악의 의원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듭니다. 숙휘공주같은 왕족, 양반들은 두창에 걸려도 이겨낼 체력이 충분한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독한 약재를 써도 한달 쯤은 충분히 버틸 수 있고 경과를 지켜보는 의원들이 탕약을 먹이면 어떻게든 살아날 것입니다. 약재를 받아들일 힘도 없어 죽어나가는 혜민서 환자들에 비하면 운이 좋습니다.

천연두(두창)은 치료할 방법이 없는 질병입니다. 다만 발열, 발진, 수포, 화농의 단계에 맞춰 약재를 마시고 버텨내면 무사히 살아날 수 있는 병이니 백광현(조승우)은 가난하고 허약한 백성들을 위해 환자의 열을 떨어트리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혜민서에 들어온 환자들은 약이라도 한번 써보고 죽지만 혜민서에서 받지 못한 환자는 밖에서 기다리다 움막에서 죽고 의원이나 약방도 없고 약재도 구하기 힘든 지방에서는 마늘, 고추를 먹고 자물쇠를 채우고, 색동저고리를 입거나 팥죽을 먹는 등 효과도 없는 미신적인 요법에 기대 그저 무사히 살아나기만 기원할 뿐입니다.

백광현은 체력이 충분히 않은 환자들에게는 열만 떨어트려도 효과가 있단 사실을 깨닫는다.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어가던 백성들의 삶은 처참하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됐
습니다. 운석이 떨어지고 가뭄이 들어 농작물이 말라죽는가 하면 폭우가 쏟아지고 우박이 떨여졌고 냉해로 작황이 좋지 못한 곡식을 메뚜기 떼가 쓸어가기도 했습니다. 겨울엔 너무 추워서 얼어죽었습니다. 오죽하면 배가 고파 아이를 죽여 잡아먹은 어머니가 있다는 말에 백성들은 그럴만도 하다며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고 임진왜란 때 보다 지금이 더욱 참혹하다며 노인들은 탄식했습니다. 우박이 얼마나 컸는지 곡식들이 다 절단나고 아이가 우박에 맞아 죽었다고 할 정도니 무시무시한 자연재해입니다.

드라마 속 현종은 무기력하게 눈물 짓는 것처럼 등장했지만 실제 현종은 경신대기근 동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백성을 구휼했습니다. 조세로 거둔 곡식을 풀고 관리를 파견하는 등 최선을 다해 정책적으로 백성들을 지원합니다. 조선왕조실록 현종개수실록엔 현종이 자연재해 앞에서 탄식하는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가엾은 우리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아, 허물은 나에게 있는데 어째서 재앙은 백성들에게 내린단 말인가' 수차례 기우제를 지내며 발을 동동 구른 현종의 아픔이 느껴지는 말입니다. 그 시대엔 재해를 왕의 허물이라 생각한 경향도 있지만 현종은 정말 자기 책임인듯 체제 정비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기근과 전염병 때문에 정책을 펼치는 현종. 일부 조정관료들은 칭병하며 도망갔다.


반면 극중에서 묘사된 정성조(김창완), 박병주(나성균)같은 관료들은 병을 핑계로 등청하지 않고 전국 각지에서는 죽은 사람들의 숫자를 줄여 적고 허위로 보고하는 등 실망스런 부분도 많았습니다. 일부 양반층 중에는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해 곡식 좀 빌려달라 호소하는 관리들의 눈물도 외면하고 문을 걸어잠그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당시 조선 인구 500만의 1/5인 100만명이 기아와 역병으로 죽었다고 추측하는데 기록에 보고된 숫자는 그보다 훨씬 적습니다. 자신들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일부 책임자들이 병사에 들어온 환자만 보고하는 등 사망자 숫자를 축소해 장계를 올렸다는 것이죠.

왕이 아무리 노력해도 왕의 힘은 천민들과 백성들을 모두 구제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나라의 곳간을 다 풀어도 백성들의 병과 배고픔을 구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재위 기간 내내 기근과 전염병에 시달린 현종은 조세로 거둔 곡식을 유사시에 나눠주기 위해 조세 체계를 개편하고 지방의 조직을 손보는 등 많은 힘을 기울였습니다. 두창의 처치법이 실린 박진희의 '두창경험방'은 그런 현종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편찬된 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광현이 혜민서에서 두창을 치료하지 못해 겪는 고통은 왕도 의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당시의 시대 상황을 표현한 것입니다.

전염병과 기근을 헤처나가기 위한 현종과 백성들의 노력. 백광현은 현옹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영양결핍으로 인해 약재를 써도 죽어나가는 백성들. 전염병과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가요. '의원이니 아무것도 안할 수는 없고 그냥 죽을 때까지 뭐라도 해보겠다'는 최형욱의 이죽거림은 무기력한 인간의 한계를 비웃는 말입니다. 그러나 현종과 백광현처럼 사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왕과 의원이 있듯이 백성들도 손수 약재를 구해오겠다며 혜민서를 돕고 나서는 극복의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비록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더라도 모두가 그런 시기를 함께 겪고 이겨냈기에 전세계적인 재앙에도 영조, 정조 시기의 호황도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현종 시기의 예송논쟁은 왕권 보다 강력한 신권 때문에 불거진 일이기도 하지만 대재앙을 내탓이라며 자책한 현종과 왕의 부덕을 강조하던 신하들의 거센 입김 탓이기도 합니다. 종종 현종의 원칙적인 처분이 우유부단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탓일테구요. 사람을 살린다는 일은 기술적으로 뛰어나다는 뜻이 아니라 서로 교감하며 아픔도 기쁨도 함께 느낀다는 뜻입니다. 왕과 의원과 환자인 숙휘공주와 힘없는 백성들이 함께 눈물짓고 기뻐하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진 한회였습니다. 직접 숙휘공주의 현옹을 절개할 것인가 독성이 강한 약재를 쓸 것인가. 생명을 소중히하는 의원 백광현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궁금합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