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마의

마의, 주황 처치법을 깨달은 백광현 인선왕후 돌아설까

Shain 2013. 2. 13.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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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마의'의 실존인물 백광현은 현종 보다는 숙종 때 활약한 기간이 더 깁니다. 이병훈 PD의 다른 사극인 '동이(2010)'에서 숙종 시기를 다뤘고 장희빈을 비롯한 숙종 시대 주요 인물이 이미 극화된 적이 있기에 '마의'에서는 현종을 선택한 듯합니다. 만약 극중 백광현(조승우)이 치료해야하는 왕실 가족이 현종(한상진)이 아닌 숙종이나 인현왕후, 장희빈이었다면 훨씬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만들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숙종 시대는 남인과 서인의 갈등이 극에 달하고 궁중 암투가 한참이던 시기이니 말입니다. 반면 그렇게 되었다면 백광현의 의학적 성장은 약간 등한시될 수도 있었겠죠.

왕실의 진료과정은 우리가 TV에서 보는 것 보다 훨씬 더 복잡했습니다. '마의'에서는 인선왕후(김혜선)와 이명환(손창민)의 천거를 받은 매골승 최형욱(윤진호)이 바로 세자 시료에 투입되는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절차와 자격을 중시하는 왕실 의학에서 그런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마찬가지로 일개 의생인 백광현이 현종의 담석을 치료하는 일도 불가능했죠. 아무리 내의원에서 병의 원인 조차 진단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수의 고주만(이순재)의 특별 천거가 있었다고는 해도 상당히 파격적인 조치이고 드라마 속 허구라 할 수 있습니다.

이명환의 청으로 인선왕후는 최형욱을 궁에 들인다. 약간은 이해할 수 없는 인선왕후의 처사.

'마의'의 초반부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지만 왕에게 병이 생기면 우선 그 증상을 어의를 비롯한 내의원 의관들이 진찰합니다. 이후 내의원 도제조를 비롯한 담당자들이 모여 병의 원인과 치료 방법 등을 논의합니다. 때로는 의관들의 의견이 일치하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는데 종기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대부분 탕약을 쓰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곤 합니다. 내의원엔 침의 자체가 드물기도 하지만 왕의 종기를 칼로 찢는 부담을 굳이 각오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후에는 임금의 병을 치료할 담당 의관이 정해지고 그의 주도하에 왕을 치료합니다.

병의 증상과 치료법을 논의하는 이 과정이 나름 합리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왕의 치료를 실패했을 경우 어의를 비롯한 의관은 최소 유배형을 받거나  때로는 목숨을 잃어야합니다. 형식적인 내의원 책임자 도제조의 자리도 까딱하면 잘릴 수 있어 신중하게 치료법을 거론했고 가장 안전하면서도 확률이 높은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끄러운 조정 신료들에게 시달린데다 병까지 치뤄야하는 왕의 입장에서는 빨리 낫게 해주는 확실한 치료법이면 좋지만 자칫 위험한 시술을 선택했다 여러 사람 괴로워지는 경우가 많으니 대놓고 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세자의 진료에 열중하는 백광현. 실제 내의원 의관들은 왕실 진료에 목숨을 걸어야했다.

궁중 여인들의 경우는 시료가 한결 더 복잡했습니다. 지금은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을 거의 연출하지 않지만 과거 사극에서는 후궁이나 대비 앞에 발을 치고 손목에 실을 묶어 진맥하는 어의를 자주 보셨을 것입니다. 외간 남자의 출입이 금지된 궁중에서는 내의원 의녀들의 활약이 꼭 필요했습니다. 의녀들이 공주나 왕후의 질병을 진맥하여 내의원에 전하고 내의원이 그 시료법을 내리면 그대로 처치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백광현이 인선왕후의 종기를 치료한 것처럼 증세가 다급할 경우 의관이나 어의가 직접 나서기는 했지만 드문 경우였죠.

어렵게 결단을 내려 종기를 찢는 쪽으로 방향이 정해져도 관상감에서 시술 날짜를 잡는 등 어지간히 소란을 떨고 난 후에야 시술이 가능했습니다. 왕의 목숨에 여러 사람의 운명이 달려있으니 정치적 입장 때문에 내의원은 과감한 시술을 꺼려하게 됩니다. 왕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빨리 낫게 해주는 의원이 고마워 자신를 치료한 의원들의 직급을 자꾸자꾸 올려주게 됩니다. 독살설로 신음하는 왕실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의원이 있다는 것은 왕에게 든든한 일입니다. 허준, 허임, 백광현 같은 민간 출신 의원들이 벼락출세를 한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정치적 입장도 입장이지만 극중 인선왕후가 외과술을 반대하는 건 효종의 죽음 때문이다.

극중 효숙대비 즉 인선왕후는 이명환과 정성조(김창완)의 편을 들며 고주만과 백광현의 대담한 시술법에 자주 반기를 듭니다. 극중 명성왕후(이가현)는 확실한 서인 쪽 사람이고 숙종이 등극한 후에도 홍수의 변을 일으키는 등 정치색이 선명한 여성이었기에 정성조와 손을 잡는게 얼핏 이해가 가지만 인선왕후는 효종과 마찬가지로 북벌론을 지지한 여성이었습니다. 청나라에서 오랜 볼모 생활을 겪은 탓인지 몹시 강인하고 강단이 있다고 하며 효종 못지 않게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인 왕후였습니다. 일설에는 꽤 몸이 뚱뚱한 편이라 종기의 원인도 그에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인선왕후는 종기 때문에 남편 효종을 잃었습니다. 수전증이 있는 어의 신가귀가 효종의 종기를 째서 치료하다 과다 출혈로 효종이 사망했습니다. 평소에 효종의 북벌론을 반대한 신하들이 많았기에 이를 두고 독살설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현종은 즉위하자마자 신가귀에게 죄를 물어 사형시킵니다. 의원 이형익에 의한 소현세자 독살설 만큼이나 유명한 이야기죠. 드라마 속 인선왕후 뿐만 아니라 실제 인선왕후도 이런 경험이 있는 만큼 종기를 찢고 째는 시술을 그리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백광현이 천(川)자 절개법으로 시술한 사람이 바로 인선왕후입니다.

숯을 보며 세자의 주황을 막을 방법을 알아낸 백광현. 이명환의 음모를 저지하면 인선왕후도 달라질 것이다.

극중 인선왕후는 세자(강한별)의 종기를 칼로 찢는 외과술로 치료한다고 하자 너무 위험하다며 반발했고 탕의인 이명환을 두둔하고 나섭니다. 세자의 시술이 성공적이었으나 지혈이 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까무라치기까지 했습니다. 종기 치료 중 사망한 남편의 사례가 떠올랐을 것이 분명합니다. 만약 현종이 종기치료를 하게 된다면 자신이 총애하는 백광현에게 시술을 맡길 가능성이 높은데 그를 제일 먼저 반대하고 나설 사람도 인선왕후일 것입니다. 극중에서도 고주만이 외과술 후유증으로 사망했으니 인선왕후에겐 충분히 그럴 이유가 있습니다.

현종에게 반대하는 극중 인선왕후를 볼 때 마다 실제 인선왕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해보곤 합니다. 왕실 여인은 수치 때문에 커다란 종기가 나도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녀는 종기를 절개하는 치료법을 허락했던 사람입니다. 어쩌면 드라마 속 인선왕후 보다 대담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는 극중에서도 백광현을 신뢰하게 되겠지요. 어쨌든 지금은 백광현을 반대하는 사람이고 최형욱과 이명환에게 힘을 실어줄 인물입니다. 백광현이 실제로 사용했다는 백반을 이용한 소독비방이나 '치종지남'에서 쓴 숯을 이용한 황랍구법을 개발한다면 인선왕후도 서서히 돌아서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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