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마의

마의, 갈라진 두 마의의 운명과 마지막 걸림돌 인선왕후

Shain 2013. 2. 2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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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팽년의 손자인 실존인물 박비와 그를 대신해 관아의 노비로 보내진 여종의 딸은 참 기이한 인연의 끈을 타고났습니다. 남의 운명을 대신 산다는 것 만큼 드라마틱한 일도 없지요. '마의'의 백광현(조승우)은 본래 죽을 목숨이었지만 자신의 운명을 대신 살아준 강지녕(이요원)으로 인해 목숨을 건지고 의관이 되었습니다. 운명을 바꿔준 양아버지 백석구(박혁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절대 지녕의 비밀을 폭로하지 않으리라 맘먹습니다. 동갑내기 광현과 지녕의 운명은 마치 한쌍인 듯 특별하게 엮여가고 있습니다.

광현과 지녕의 운명 만큼 대조적인 것이 바로 마의 백광현과 이명환(손창민)의 삶입니다. 광현처럼 천재적인 마의였고 똑같이 혜민서 의생이 되었으나 어떻게든 마의 출신임을 숨기고 양반층에 편입하려 했던 명환은 소현세자(정겨운) 독살에 연루되면서 사람을 살리는 의원이 아닌, 의술을 탐욕에 이용하는 의원이 됩니다. 그는 자신은 천한 마의로 태어나 어쩔 수 없다했으나 자신 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서도 사람을 살려내고 고난에 맞서는 백광현을 보며 질투와 자괴감을 느낍니다. 친구의 아들인 백광현이 죽을 듯이 미운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똑같이 마의로 출발했지만 달라진 두 사람의 의원. 백광현은 지녕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시도를 한다.

지금은 수의 이명환을 좌상 정성조(김창완)와 인선왕후(김혜선)가 아슬아슬하게 돌봐주고 있으나 현종(한상진)이 백광현의 의료 철학을 선호하고 의원으로서 사람을 살리려고 목숨거는 백광현에게 동조하는 한 그의 자리는 위태롭습니다. 거기다 이형익(조덕현)을 침으로 죽이고 그 죄를 백석구에게 뒤집어씌운 혐의로 조사받는 중이니 언제 몰락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최형욱(윤진호)을 죽여 숙휘공주(김소은)를 해한 죄를 덮으려 했지만 그마저 실패했습니다. 탐욕을 선택한 마의와 사람을 선택한 마의. 갈라진 두 마의의 운명이 곧 그 결말을 드러낼 때가 됐습니다.

그럼 백광현은 언제 어의가 될까요. 조선왕조실록에는 백광현이 글을 모른다며 그의 현감 임명을 반대한 신하들의 반발이 적혀 있습니다. 기록을 살펴보면 백광현은 글을 모른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의학의 기본이 의서라 의관들은 지식을 쌓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했고 의서를 근거로 윗사람들을 설득하자면 글자를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시대 유학자들이 각종 유교경전을 읽고 깨치기 위해 배운 한자가 보통 수만자를 넘으니 전문적으로 유학을 공부하지 않은 백광현이 장원급제자도 제수받기 힘든 현감 자리를 받는다는게 못마땅해 글도 모른다고 폄하한 것입니다.

왕족이 믿을 수 있는 어의를 두는 일은 필수적인 안전조치였다. 인선왕후의 이유있는 백광현 '디스',

그러나 백광현을 현감에 제수한 숙종은 아무나 현감을 시키는 만만한 왕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남아 전하는 현종이나 숙종의 글씨를 보신 적이 있는 분들은 편지를 쓴 왕들의 성격이 보통 아니겠구나 했을지도 모릅니다. 마치 인쇄로 찍어낸 듯 반듯한 글씨체와 줄맞춤을 보면 저 정도 글씨를 쓰기 위해 평생 연습했을 거란 생각도 들고 성격도 보통 꼬장꼬장한 게 아니었을 거라 짐작됩니다. 극중 오규태(김호영) 대감의 실존 모델인 윤지완 역시 강력하고 화려한 필체를 자랑하던 엄청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숙종이 백광현을 현감으로 지목한 건 다 이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마의'에서 가장 미움을 받는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인선왕후입니다. 효종의 아내로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고 북벌론을 지지할 정도로 강경하고 담대한 왕후였다는 인선왕후는 사이코패스 최형욱 보다 훨씬 미움을 받습니다. 현종과 고주만(이순재)을 치료할 때도 세자(강한별)와 숙휘공주를 치료할 때도 광현에게 가장 반발한 사람이 인선왕후였습니다. 비합리적인 이유로 이명환(손창민)과 정성조(김창완)를 밀어주는 인선왕후는 시청자들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습니다. 인선왕후 역의 배우가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고 정치적 발언 논란으로 구설에 올라 더욱 미움을 받는 것 같습니다.

지녕의 안전을 보장하고 이명환을 몰락시키면. 그 다음 백광현이 해야할 일은 인선왕후의 종기치료.

극중에서 잘 표현이 안되어 그렇지 인선왕후가 그런식으로 행동하는데는 역사적 근거가 있습니다. 일단 종기치료를 받다 죽은 남편 효종때문에 의관과 외과술에 의심이 많은 인선왕후는 칼로 짼다는 행위 자체를 혐오하는 평범한 왕실 여성입니다. 두번째로 왕가에서 어의를 선택한다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인 행위였습니다. 사대부들이야 의관이 중인이며 천하다고 무시하지만 왕족들은 어의가 자신들의 생명줄을 쥐고 있으니 최대한 대접합니다.

고치지 못하면 신료들 뜻에 따라 처벌하지만 잘 고쳐주면 승진시켜주고 상을 주며 공을 치하합니다. 독살설이 나도는 왕실에서 의관만은 왕의 편이어야 마음이 편합니다. 어의가 믿을만해야 물심양면으로 편안해진다는 것입니다. '실력이 아닌 뒷배로 세를 얻으려 한다'며 백광현을 미워하는 인선왕후는 이명환은 절대 자신의 편이라 믿지만 백광현은 출세욕에 눈이 먼 천한 마의로 취급합니다.

실제로는 인선왕후의 정치성향이 어땠는지 자세한 기록을 본적이 없으나 극중 인선왕후는 정성조와 같은 세력입니다. 이명환의 말을 무조건 믿고 따르는 이유도 같은 편이니 절대 왕을 해할 리가 없다는 믿음이 기본적으로 있기 때문이죠. 효종이나 소현세자 독살설이 도는 궁안에서 아무 의관이나 믿으면 안된다는 게 기본적인 왕실 여인의 태도입니다. 내의원 의관도 아닌 최형욱을 받아들인 것도 믿고 있는 이명환이 추천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실제 숙종(이 드라마에서는 현종)이 백광현을 치하하며 높은 벼슬을 내린 것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실력있는 어의였기 때문입니다.

백광현이 어의가 되기 위한 마지막 걸림돌 인선왕후. 아주 커다란 침으로 그녀의 종기를 쨌다는데...

꼼꼼하고 정치적인 득실을 제대로 판단하는 현종이 백광현을 쉽게 받아들일 리도 없거니와 기본적으로 왕실 사람이니 쉽게 신뢰하기 시작한 것도 아닙니다. 현종이 절대 백광현을 처벌할리 없지만 이명환을 치려는 속셈을 숨기고 자신을 파면해달라 청한 백광현의 청을 흔쾌히 들어준 것도 모종의 믿음 때문입니다. 왕의 믿음을 얻은 백광현, 성공한 마의 백광현은 이제 어의가 되어 승승장구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몹시 신경질적이 되어 숙휘공주 조차 친절히 대하지 않는 인선왕후의 종기만 치료한다면 말입니다.

실존인물 백광현이 어의가 된 시기는 현종이 죽고난 이후인 숙종 초로 알고 있습니다. 현종 4년에 천거로 의관이 되긴 했으나 실제 공을 세우기 시작한 건 현종 11년 경으로 인선왕후도 그때쯤 치료했습니다. 인선왕후의 종기 치료야 말로 백광현이 어의로 등용되기 위한 마지막 단계이자 실질적인 출세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편견으로 가득찬 인선왕후는 답답할 정도로 앞뒤 꽉 막힌 '최종보스'라 아무리 사람을 최고로 여기는 백광현이라도 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인선왕후에게 엄청나게 큰 침 정말 말에게나 쓸법한 거침을 들이댔다는데 그걸 용납할 수 있을까요.

왕실 사람들은 한번 의관을 믿기 시작하면 무엇이든 용납하지만 한번 불신하기 시작하면 좀처럼 그 신뢰를 회복하기 힘듭니다. 정치적 흥망과 목숨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눈치를 보아하니 최형욱도 사암도인(주진모)과 백광현에게 돌아설 것 같긴 한데 백광현의 진심이 어떻게 인선왕후를 설득할 것인지 그 다음 과정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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