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마의

마의, 백석구의 딸 강지녕이 관비가 되어야 하는 이유

Shain 2013. 3. 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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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에서 가장 악평을 받는 인물은 이명환(손창민)이 아니라 인선왕후(김혜선)입니다. 고집스레 백광현(조승우)을 막고 현종(한상진)과 대립하는 인선왕후는 연기력 논란과 더불어 이해불가능한 캐릭터란 의견까지 보태서 악역 아닌 악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천한 마의 출신으로 의관이 된 이명환은 드라마 초반부터 소현세자(정겨운) 암살에 연루될 수 밖에 없던 상황이나 강도준(전노민)과 달리 권력자들에게 편승할 수 밖에 없던 정황이 잘 드러났으나 인선왕후는 어떤 이유로 외과술을 반대하고 정성조(김창완)와 이명환 무리를 편애하는지 설명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의'는 숙종 시대의 기록을 현종 시대에 맞춰 극화했기 때문에 몇몇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는 실존인물과 맞지 않습니다. 인선왕후는 어떤 면에서 가장 손해를 본 캐릭터입니다. 실존인물 인선왕후는 종기 치료 중에 남편 효종을 잃었고 소현세자 암살설이 떠도는 궁중생활을 경험한 인물이라 외과술과 왕실 의원에 대한 불신이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북벌론을 지지하고 전쟁 준비를 위해 검소한 궁중생활을 가르칠 정도로 담대한 여성이었고 꼭 필요하다면 위험한 시술을 허락할 만큼 용감한 여성이기도 했습니다.

극중 인선왕후의 행동은 실존인물 보다는 '명성왕후'와 더 닮았다.

극중 인선왕후는 며느리 명성왕후의 기록과 더 비슷합니다. 드라마 속 명성왕후(이가현)는 시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숙휘공주(김소은)를 잘 모시는 인자한 중전으로 묘사됩니다만 실존인물 명성왕후는 극성스럽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젊은 숙종은 정치적으로 홀로서기를 하고 싶어했으나 홍수의 변은 사실이라며 대전에서 통곡하는 명성왕후 때문에 망신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정치적 안목 보다 감정적으로 대처하고 자신의 지지세력인 서인과 결탁해 아들을 좌지우지하고 싶어했던 대비는 명성왕후 쪽이지만 극중에서는 인선왕후가 그렇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드라마가 전반적으로 한방외과술의 실제 기록을 극화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캐릭터들의 개연성과 역할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은 전부터 있었습니다만 그 문제점이 가장 크게 드러난 캐릭터가 대비였던 것 같습니다. 청나라에 볼모로 다녀왔던 경험많은 여성이 왜 백광현의 안티가 될 수 밖에 없었고 어째서 서인들의 손을 들어줬느냐 하는 부분이 간단하게나마 설명이 됐어야 했는데 지금은 그저 편견에 빠진 고집스런 아낙네로 보일 뿐입니다. 이외에도 갑자기 주변인으로 전락한 이성하(이상우)나 장인주(유선)의 캐릭터가 지적받고 몇가지 부분은 시청자의 정보 부족으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드디어 터져버린 출생의 비밀. 강지녕이 왜 관비가 되어야 하냐고?

어제 방송에서 강지녕(이요원)은 드디어 자신이 백광현과 바뀌었단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누리던 것이 모두 광현이의 것이었는데 자신이 빼앗았다며 자책합니다. 현대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그들의 신분관계가 갈등의 원인입니다. 광현은 왜 그리 지녕을 보호하려 했으며 지녕은 왜 자책부터하는 것일까요. 극중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자신의 이익 보다 상대의 안위를 훨씬 더 생각하는 사람들이라 그리 슬퍼한 것이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는 감히 윗전의 것을 누렸다는 사실을 더욱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의외로 많은 시청자들이 왜 강지녕과 백광현의 신분이 다시 바뀌면 안되는 것인지 의문을 가졌다고 합니다. 즉 백광현이 출생의 비밀을 절대로 폭로하지 않으려 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강지녕이 양반이 아닌 천민이 되면 그대로 첩으로 데리고 살거나 면천되도록 노비 문서를 사면 될 것을 왜 어렵게 굳이 이대로 덮고 가는지 모르겠다고 질문한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는군요. 특히 진척(뱃사공) 백석구(박혁권)의 딸로 돌아가면 그만인데 왜 관비가 되어야 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진척이 천민이긴 해도 노비는 아니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결국 제작진은 강지녕이 관비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백광현의 대사 한줄로 설명했다.

개인적으로 당연하게 강지녕의 진짜 신분이 '노비'라고 생각해왔던 입장에서 이 부분은 제작진의 설명 부족과 조선시대 신분 질서에 대한 무관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오해가 아닌가 싶습니다. 강지녕이 노비인 이유는 크게 세가지입니다. 첫번째는 아버지 백석구가 도망노비이기 때문에 그 신분을 그대로 물려받아서입니다. 그러나 백석구가 '어차피 노비의 자식으로 자랄 아이'라는 말을 한 적은 있어도 그의 신분이 노비인지는 정확히 밝혀진 적이 없습니다. 두번째는 이미 한번 관아에 관노로 등록이 된 노비이기 때문에 면천 혜택을 받지 못하면 노비가 되어야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노비들의 신분이 세습되었다는 노비세전법과 무의탁 어린이를 거두어 노비로 삼으면 3개월 뒤에는 부모가 나타나도 빼갈 수 없다는 자전구휼 관습은 교과서에서는 읽었어도 실질적으로는 잘 와닿지 않는 내용입니다. 극중 목숨이 위험해진 어린 광현이 목장에 나타났 때 추기배(이희도)는 광현을 살리기 위해 목장 주인에게 노비로 쓰라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한번 노비대장에 오른 아이는 속량이나 면천 절차를 밟기전엔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백석구의 신분이 노비가 아니라도 지녕은 이미 한번 관노가 되었기 때문에 면천 절차는 무시되고 다시 노비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출생의 비밀과 인선왕후의 발제창. 이 모두가 한꺼번에 맞물려 터져버렸다. 어의 백광현의 마지막 관문.

세번째는 어린 지녕이 양주 관아에 저지른 죄 때문입니다. 관노 시절에 관아에 큰 손해를 끼치고 도망노비가 된 지녕은 양반으로 신분이 회복되어 모든 죄가 덮혔으나 다시 예전 신분으로 돌아가면 고스란히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강군관(서범식)의 말대로 관노가 되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조선 시대 사람들인 이명환이나 장인주, 이성하, 백광현은 이런 정보들을 서로서로 공유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신분이 뒤바뀌면 지녕이 노비가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 당연하지만 시청자들에게는 그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아 이런 소동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든 50회 가까이 끌고오던 출생의 비밀은 드디어 폭로되었습니다. 동굴 속에서 죽어가던 백석구의 얼굴을 기억해낸 지녕이 얼마나 슬퍼할까요. 백광현도 백광현이지만 광현의 그림자처럼 살아야했던 어린 지녕의 딱한 인생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백광현이 어의가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은 인선왕후입니다. 그 어떤 환자 보다도 고집스럽고 독선적인데다 옹저오발증 중의 하나인 발제창이니 아무리 외과전문의 백광현이라도 힘든 시술입니다. 그 유명한 천(川)자형 절개로 기록된 종기치료이기도 하고 의관 백광현을 유명하게 만든 사건이기도 합니다.

실패한 마의 이명환의 마지막 발악도 발악이지만 성공한 마의 백광현의 마지막이 다가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마의'의 깨알같은 시대 고증이 잘 살아나지 못한게 아쉽고 또 캐릭터의 설정이나 시대상황에 대한 친절한 소개가 부족한 면도 있었습니다만 한 의료인의 인생을 재조명하고자 했던 뜻은 만족스럽게 마무리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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