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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천명'에 상당히 재미있는 소품과 캐릭터가 등장했습니다. 가상의 새로 알려진 '짐새'와 조광조와의 인연으로 널리 알려진 갖바치 천봉(이재용)입니다. 살모사같은 독있는 짐승만 잡아먹는다는 짐새로 술을 담그면 '짐독'이 되는데 그 짐독은 무색, 무취, 무미의 독으로 은수저로도 검출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드라마는 짐독을 추출한 민도생(최필립)이 김치용(전국환)의 협박에 견디지 못해 세자 이호(임슬옹)의 탕약에 짐독을 넣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짐새가 뭔지는 몰라도 옛사람들이 사용한 짐독의 정체는 비소가 아니었을까 추측하는 사람도 있고 파푸아뉴기니 섬에 사는 '피토휘'라는 독을 가진 새가 짐새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확실한 건 극중 문정왕후(박지영)의 인종 독살설 만큼이나 정체가 불분명하지만 흥미로운 소재라는 점입니다. 거기다 이호에게 연락한 갖바치 천봉은 무려 비밀결사조직 '심곡지사'의 수장입니다. 야인 이미지가 강하던 갖바치가 예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적극적인 캐릭터로 재탄생했습니다.
나라를 세우고 역사적인 사건을 일으킨 영웅들에 대한 드라마는 흔합니다. 사서에서 입이 닳도록 그들을 치하하는 것도 모자라 후세의 사람들까지 그 영웅성을 칭찬하니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의 뜻을 알 것도 같습니다. 반면 역사에 적히지 않은 인물들에 대한 드라마를 왜곡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민중사극'을 제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평등'의 시대인 현대사회에서 왕과 영웅들만 주인공이 되는 것은 불합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많은 사극들이 사서에 실린 왕실 역사를 재조명하는 동시에 같은 시대를 살아간 백성들의 생각과 삶을 묘사하려 노력했습니다만 기록이 많지 않아 창작의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그리고 오늘 포스팅하려는 '갖바치'라는 인물은 그런 사극들이 대표적으로 선택한 백성들의 대변인같은 존재입니다. 실존인물인 것은 분명한데 이름도 없고 생몰연도도 불분명한 갖바치는 조선 중종, 명종 시기를 드라마화할 때 빠지지 않는 특별한 인물입니다.
백정과 갖바치에 대한 차별은 일제강점기까지도 지속되어 1923년에는 차별반대를 외치는 '조선형평사'가 창립되었습니다. 갖바치는 상투를 틀지 못하게 하고 여성은 치마에 검은 단을 대어 입고 네발로 기어야하는 등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갖바치는 아무리 예쁘고 비싼 갖신을 만들어 돈을 벌어도 산발한 머리와 초라한 행색으로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서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편 드라마 '여인천하(2001)'에 묘사된 갖바치와 '조선왕조오백년 풍란(1985)'의 갖바치는 당대 최고의 학자 조광조에게 스승 대접을 받습니다. '풍란'에서는 중종 조차 갖바치에게 흥미를 갖습니다. 이들 드라마에서 묘사된 갖바치는 '연려실기술'에 실린 갖바치와 조광조의 일화 그리고 홍명희의 역사소설 '임꺽정'에서 묘사된 실존인물 이장곤의 처숙부, 백정이자 갖바치였던 양주팔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입니다.
벽초 홍명희는 '기묘록'의 갖바치와 '기묘록보유'에 실린 이장곤 설화를 적절히 조합시켰습니다. 연산군 시절 유배지에서 도망친 이장곤은 백정 마을에 숨어지내며 백정의 딸과 결혼했으나 중종반정으로 신분이 복귀된 후에도 그 의리를 배신하지 않고 아내를 정실로 삼았다 전해집니다. 또한 안성 칠장사에 전하는 임꺽정과 병해대사의 이야기도 소설 속에 엮어 갖바치 출신의 병해대사가 임꺽정의 스승이 되는 과정도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갖바치에 대한 기록은 짧으나 유명인물들을 휘두르는 창작 캐릭터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러 드라마와 소설이 짧게 기록된 갖바치를 이렇게 왕과 사대부, 민란의 우두머리 모두가 존경하는 캐릭터로 만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갖바치를 존중한 조광조와 백정 아내와의 도리를 지킨 이장곤은 어떻게 보면 신분과 계급을 넘어 우리 모두 똑같은 인간이라는 백성들의 염원이 담긴 설화였을 것입니다. 웬만한 양반네 보다 높은 학식을 갖추었던 갖바치는 단순한 야인이 아니라 신분이 낮아도 양반 보다 뛰어난, 민중의 자존심이 담긴 캐릭터라 볼 수 있습니다.
기록이 전하긴 전하지만 반쯤은 가상의 인물인 갖바치는 그동안 홀로 주인공 역할을 하기 보다는 조광조를 비롯한 정치인들과 의견을 나누는 학자이거나 엄청난 능력을 가진 주인공들의 조력자 내지는 조언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조선 왕조 이야기를 묘사한 '풍란'에서 정치권과 민중세력을 오가는 역할로 제법 집중조명되는 듯했으나 당시 정치적 상황 때문에 '풍란' 자체가 조기종영되었다고 합니다.
'천명'에서는 갖바치가 '천봉'이란 이름을 갖고 좀 더 공격적인 캐릭터로 거듭납니다. 세자 이호 앞에서 중종을 강력하게 비판합니다. 조광조의 뜻을 받드는 사림파 관료와 선비들을 규합해 '심곡지사'란 조직을 만든다고 하는데 정확한 한자가 나오지 않아 알 수 없으나 '心曲志士' 즉 그들이 받드는 조광조를 뜻하는 단어가 아닌가 싶네요. 이정길, 임혁 등이 연기한 갖바치는 남모르게 숨어사는 도인 이미지가 강했으나 '천명'의 천봉은 최원(이동욱)에게 심비혈허(백혈병) 치료법을 두고 조건을 건다고 합니다.
최원이 민도생의 살인 누명을 뒤집어쓰고 의금부도사 이정환(송종호)가 최원의 사건을 맡고, 문정왕후는 양위하겠다는 중종(최일화)과 권력의 향방을 살피는 세자 이호를 두고 교묘한 행보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문정왕후가 불길 속에 뛰어들어 짐짓 이호를 구하려 했다는 제스처를 하고 경원대군(서동현)과 나를 지키려한 동생 윤원형(김정균)의 짓일지도 모른다며 세자에게 자수하니 이호는 어쩌지 못하고 화재사건을 덮습니다. 역사속 인종의 화재사건도 그런식으로 유야무야된 것이 사실이구요.
흔히 사서에 기록된 인종은 효심이 깊은 병약한 왕입니다. 대윤파와 소윤파가 치열하게 싸우는 궁궐 안에서 인종은 정말 계모에게 효도하고 싶었는데 계모가 사납고 욕심이 많았던걸까요. 점잖은체하는 문정왕후의 처세가 인상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 모두 생존경쟁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 쪽이다 보니 살기 위해 역사에 휘말려 도망자가 될 최원과 랑(김유빈)의 처지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군요.
짐새가 뭔지는 몰라도 옛사람들이 사용한 짐독의 정체는 비소가 아니었을까 추측하는 사람도 있고 파푸아뉴기니 섬에 사는 '피토휘'라는 독을 가진 새가 짐새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확실한 건 극중 문정왕후(박지영)의 인종 독살설 만큼이나 정체가 불분명하지만 흥미로운 소재라는 점입니다. 거기다 이호에게 연락한 갖바치 천봉은 무려 비밀결사조직 '심곡지사'의 수장입니다. 야인 이미지가 강하던 갖바치가 예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적극적인 캐릭터로 재탄생했습니다.
'풍란(1985)', '임꺽정(1996)', '여인천하(2001)'에 등장한 야인 갖바치가 '천명'의 천봉으로 거듭나다.
많은 사극들이 사서에 실린 왕실 역사를 재조명하는 동시에 같은 시대를 살아간 백성들의 생각과 삶을 묘사하려 노력했습니다만 기록이 많지 않아 창작의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그리고 오늘 포스팅하려는 '갖바치'라는 인물은 그런 사극들이 대표적으로 선택한 백성들의 대변인같은 존재입니다. 실존인물인 것은 분명한데 이름도 없고 생몰연도도 불분명한 갖바치는 조선 중종, 명종 시기를 드라마화할 때 빠지지 않는 특별한 인물입니다.
상투도 틀지 못하고 기어다녀야하는 신분의 갖바치가 조광조와 정치를 논했다?
백정과 갖바치에 대한 차별은 일제강점기까지도 지속되어 1923년에는 차별반대를 외치는 '조선형평사'가 창립되었습니다. 갖바치는 상투를 틀지 못하게 하고 여성은 치마에 검은 단을 대어 입고 네발로 기어야하는 등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갖바치는 아무리 예쁘고 비싼 갖신을 만들어 돈을 벌어도 산발한 머리와 초라한 행색으로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서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편 드라마 '여인천하(2001)'에 묘사된 갖바치와 '조선왕조오백년 풍란(1985)'의 갖바치는 당대 최고의 학자 조광조에게 스승 대접을 받습니다. '풍란'에서는 중종 조차 갖바치에게 흥미를 갖습니다. 이들 드라마에서 묘사된 갖바치는 '연려실기술'에 실린 갖바치와 조광조의 일화 그리고 홍명희의 역사소설 '임꺽정'에서 묘사된 실존인물 이장곤의 처숙부, 백정이자 갖바치였던 양주팔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입니다.
벽초 홍명희는 '기묘록'의 갖바치와 '기묘록보유'에 실린 이장곤 설화를 적절히 조합시켰습니다. 연산군 시절 유배지에서 도망친 이장곤은 백정 마을에 숨어지내며 백정의 딸과 결혼했으나 중종반정으로 신분이 복귀된 후에도 그 의리를 배신하지 않고 아내를 정실로 삼았다 전해집니다. 또한 안성 칠장사에 전하는 임꺽정과 병해대사의 이야기도 소설 속에 엮어 갖바치 출신의 병해대사가 임꺽정의 스승이 되는 과정도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갖바치에 대한 기록은 짧으나 유명인물들을 휘두르는 창작 캐릭터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천명'의 갖바치는 세자 이호에게 양위를 받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해달라 청한다.
기록이 전하긴 전하지만 반쯤은 가상의 인물인 갖바치는 그동안 홀로 주인공 역할을 하기 보다는 조광조를 비롯한 정치인들과 의견을 나누는 학자이거나 엄청난 능력을 가진 주인공들의 조력자 내지는 조언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조선 왕조 이야기를 묘사한 '풍란'에서 정치권과 민중세력을 오가는 역할로 제법 집중조명되는 듯했으나 당시 정치적 상황 때문에 '풍란' 자체가 조기종영되었다고 합니다.
'천명'에서는 갖바치가 '천봉'이란 이름을 갖고 좀 더 공격적인 캐릭터로 거듭납니다. 세자 이호 앞에서 중종을 강력하게 비판합니다. 조광조의 뜻을 받드는 사림파 관료와 선비들을 규합해 '심곡지사'란 조직을 만든다고 하는데 정확한 한자가 나오지 않아 알 수 없으나 '心曲志士' 즉 그들이 받드는 조광조를 뜻하는 단어가 아닌가 싶네요. 이정길, 임혁 등이 연기한 갖바치는 남모르게 숨어사는 도인 이미지가 강했으나 '천명'의 천봉은 최원(이동욱)에게 심비혈허(백혈병) 치료법을 두고 조건을 건다고 합니다.
'심곡지사'의 수장 갖바치는 그 어느 갖바치 보다 혁명적이다. 딸의 치료법을 두고 최원에게 조건을 건다고?
흔히 사서에 기록된 인종은 효심이 깊은 병약한 왕입니다. 대윤파와 소윤파가 치열하게 싸우는 궁궐 안에서 인종은 정말 계모에게 효도하고 싶었는데 계모가 사납고 욕심이 많았던걸까요. 점잖은체하는 문정왕후의 처세가 인상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 모두 생존경쟁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 쪽이다 보니 살기 위해 역사에 휘말려 도망자가 될 최원과 랑(김유빈)의 처지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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