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옛날 옛적 그 드라마

춤추는 가얏고, 끝까지 존중받지 못한 예인의 삶

Shain 2013. 5. 2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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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드라마 '구가의 서'를 보다 보니 '예기(藝妓)'라는 단어가 등장하더군요. 춘화관의 천수련(정혜영)이 기생이 된 청조(이유비)에게 예기가 되라고 권유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예기는 흔히 알려져 있는 기생들과 달리 가무나 서화같은 재능을 파는 기생으로 몸을 팔던 '창기'와 구분을 한다고 했습니다. 천수련이 청조에게 자기 한몸 지킬 능력을 갖추란 뜻으로 자신의 특기인 오고무를 가르치려 하는 모양입니다. 풍류를 따지던 옛사람들은 예기의 재능을 높이사 그들의 의사를 존중하곤 했다고 합니다.

제가 '예기'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본 것이 거의 20년전인 거 같습니다. 지금의 '구가의 서'와 같은 시간에 방영되던 '춤추는 가얏고(1990)'라는 드라마에서 '예기'라는 단어가 등장하더군요. 기생 이금화(고두심)는 일제강점기 때 명창으로 이름을 날리던 유명한 예기였습니다. 예기는 노류장화라 불리던 다른 기생들과 달리 술자리에서 춤과 노래 이외의 요청을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싸들고 와서 졸라도  이금화가 자신을 거절하자 그 자리에서 음독을 시도하는 남자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기생이나 게이샤의 이미지가 색을 판다는 쪽으로 인식되어 있고 또 관청에 소속된 관기들이 주로 그런 목적으로 이용되었기에 굳이 구분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의외로 예기들의 역할은 상당히 폭넓고 다양했다고 합니다. 특히 유명한 권번에서 오랫동안 예술을 교육받고 익힌 기생들은 현대 사회의 연예인들과 유사한 역할을 했으며 일제강점기 때도 음지에서 공연하며 판소리를 비롯한 각종 국악을 발전시킨 당사자들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국악인들에 대한 시선에 예전같지 않고 나름대로 존경받고 있지만 한때는 기생을 모두 창기로 취급하거나 예인을 천시하는 풍조가 있었습니다. 그들에 대한 나쁜 인식은 오늘날 연예인들을 '딴따라'로 부르게 된 현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반면 '춤추는 가얏고'의 주인공 금화는 자식들에게는 종종 미안하고 험난한 삶이 한스럽기는 해도 예기로 살며 춤추고 노래했던 그 시절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할머니가 되어 며느리까지 본 그녀에게 젊은 예인으로 살던 그때는 자존심이고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소리와 갸앗고 소리가 깊어질수록  여자 이금화의 삶은 순탄치 못했습니다. 팔아넘기듯이 권번에 금화를 넘긴 아버지는 기생으로 번 돈을 가져가더니 금화가 첩살이하러 들어간 집에 들어가 돈을 요구하는 듯 행패를 부리기도 하고 첩으로 살면서 낳은 아이는 모두 두고 나와 다시 기생으로 살기도 했습니다. 이리저리 불려달리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그때 아버지가 다른 아이 여섯을 낳고 그중 몇은 구십이 다 된 나이까지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금화와 함께 살던 아들 무영(강인덕)과 막내딸 무희(오연수)는 지긋지긋하게 힘든 삶을 견디지 못해 물에 빠져 함께 죽으려한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굴곡진 삶 만큼이나 자식들의 삶도 평탄치 못한데 업이라면 업인지 두 남매 모두 대금과 가야금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지금도 기생집에서 대금을 불며 대금부는 팔자를 버리지 못하는 무영은 대학나온 멀쩡한 부인을 두고도 기생집에서 어울린 여자와 몰래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리저리 흘러간 어머니의 삶을 비난하면서 자신도 똑같은 삶에 휘말린 것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적인 두 장면을 꼽으라면 권번 동기들과 함께 생일상을 받는 금화 앞에서 며느리 은수(김해숙)가 대금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입니다. 대금 소리를 좋아하면서도 남편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던 며느리는 예술하는 사람들끼리 통하는게 있다는 금화의 말에 춤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시어머니 앞에서 장단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하자 무영의 아들을 낳은 기생이 갑자기 나타나 마치 경쟁하듯 춤을 춥니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던 시어머니와 남편을 받아들이는 은수가 이 장면으로 설명이 되었죠.

두번째 장면은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었던 유당(김무생)과 금화의 마지막 공연입니다. 북을 치는 유당은 금화가 낳은 아이의 아버지인 동시에 금화가 평생 동안 그리워한 예술의 동반자입니다. 계속해서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추고 혼신을 다하는 모습이 뭔지 모를 여운을 남기더군요. 어떻게 보면 '예술가'라는 직업의 이해하기 힘든 정신세계를 이런식으로 눈에 보이게 표현할 수 있구나 그렇게 느꼈던 것같습니다.

점잖을 때는 꼿꼿하고 예의바른 모습으로 상대방을 대하지만 성질을 참지 못하고 퍼부을 땐 힘들게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한 노파. 자식들도 불평하고 그에게 인간문화재 타이틀을 물려받으려던 국악과 교수도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아무도 그녀의 가얏고에 대한 열정을 존중하지 않고 예기나 창기나 뭐가 다르냐며 비아냥대도 금화는 가야금 연주를 위해 온힘을 기울입니다. 소재면에서도 연기면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진지함이 엿보이는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는 지금도 활동중인 배우 오연수의 데뷰작으로 풋풋하던 그녀의 어린 시절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극중 재벌가의 사생아로 설정된 윤오(유인촌)와 연인인 그녀는 어머니의 가야금을 전수받으며 이금화와 갈등합니다. 예술을 선택한 한 여성과 그 가족들에게 이어지는 예인의 기질, 그리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똑같은 삶을 이어받는 자식들의 고민까지 흥미롭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두심씨는 이 드라마로 1990년 MBC 연기대상을 수상했습니다.

한가지 더 알려둘 것은 이 드라마엔 약간 껄끄러운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당시 방송할 때도 '이 드라마는 특정인물과 관계가 없다'는 내용의 자막이 자주 올라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박재희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이 드라마는 실존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드라마에 묘사된 이금화의 인생이나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는 극중 캐릭터 이금화와 국악과 교수의 갈등같은 내용은 가야금 산조의 명인 함동정월의 삶을 모티브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엔 인터넷도 없고 독자게시판은 더더욱 없던 시절이라 크게 소문은 나지 않았습니다만 방송국에서 실존인물을 모델로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소문내자 당사자에게 항의하는 등 국악인들의 반발이 꽤 심했다고 하더군요. 예인으로서의 자부심에 상처를 받을 것이고 원치 않게 TV에 자신에 삶이 공개되고 상업화되었다는 점이 화가났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전 문화부장관인 김명곤씨의 블로그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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