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꽃보다 누나'에 출연중인 김희애씨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아 특별히 마련한 포스팅입니다. 특히 주연을 맡았던 '폭풍의 계절(1993)'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김희애씨가 故 최진실, 故 임성민, 박영규와 함께 주연한 이 드라마는 당시의 화제작으로 루 살로메같은 삶을 살았던 주인공 홍주의 인생이 화제가 되었죠. 당시 미스코리아 출신 연기자였던 김성령과 신인에 가까웠던 도지원, 윤동환 등도 이 드라마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김희애의 과거 드라마들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드라마이기 도합니다.
1983년 데뷰한 김희애는 벌써 연기자 생활 30년차의 중견 연기자 입니다. 80년대 중후반은 신선한 마스크의 연기자를 찾던 방송국의 노력이 돋보이던 시기였는데(미스코리아도 80년대 후반부터 연기자로 다수 발탁되기 시작했죠) 당시 주연급 여성 연기자들은 차화연, 원미경, 김청, 김미숙, 고두심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80년대 중반 주연급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어린(그것도 미성년자) 여성 연기자 무리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김희애입니다.
10대에 데뷔해 아직까지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그녀들은 지금도 연기하면 빠지지 않는 사람들이죠. 16살에 영화 주연으로 데뷔해 계속 주연급으로 활약한 김혜수, 16살에 아역으로 데뷔한 후 19살에 사극 주연을 맡았던 하희라, CF 모델로 출발해 '여명의 눈동자'라는 확실한 대표작을 만든 채시라, 20살에 데뷔 사극으로 기초를 다진 후 단아한 이미지로 자리매김한 전인화 등이 있습니다. 김희애는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게 활약했던, 독보적인 존재 였습니다.
19살에 출연한 드라마 '여심(1986)'에서 김희애는 주연 '다영' 역을 맡습니다. '여심'은 일일극이고 드라마 전체가 다영의 입장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경력이 짧은 배우에게는 꽤 힘겨운 작업이었습니다. 원래 김희애가 맡은 역은 소녀 시절의 다영이었고 중년이 되면 다른 연기자가 맡기로 했지만 김희애가 연기를 잘해 KBS에서는 김희애를 계속 출연시키는 모험을 감수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여고 3년생이던 김희애는 일주일에 학교를 두번 밖에 가지 못했지만 남들 보다 확실히 성장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여심'은 시대극이었고 드라마에서 보여준 김희애의 연기는 생각 보다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덕분에 1986년 7월에는 '가요무대'에 출연해 '우리 엄마'라는 노래를 직접 부르기도 했습니다. 요즘 김희애가 과거 발표했던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노래 동영상이 화제인 것으로 아는데 사실 '나를 잊지 말아요' 보다 먼저 노래를 부른 무대는 '가요무대'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19살의 김희애가 무대 위에서 열창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 입니다.
드라마 출연할 때의 모습 그대로 양갈래로 머리를 묶은 김희애가 눈물까지 흘리며 부르는 노래 소리 는 심금을 울립니다. 요즘은 가수나 아이돌이 연기자로 전향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80년대에는 지방공연 쇼무대에서 TV로 옮겨온 사람들이 많아 연기자가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생각 보다 많았습니다. '폭풍의 계절'과 '내일 잊으리'에서 김희애의 상대역을 했던 박영규도 앨범을 냈고 '꽃보다 누나'의 김자옥도 한때 드라마 OST를 불렀던 적이 있으니까요(팬들에게 잘 알려진 '공주는 외로워' 말구요)
이런 어린 연기자 출연 분위기는 김혜수에게로 이어졌는데 김혜수는 17살 어린 나이로 탤런트 길용우와 '사모곡(1987)'에 출연했습니다. 당시 여자주인공들은 어린 여배우로 넘어가는 추세였지만 남자 주연급 연기자들은 젊어도 30대 초반이라 연기자의 나이차이가 비난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길용우는 '사모곡' 출연 당시 나이가 33세였고 김혜수는 17살로 무려 16살의 나이차이가 나는데 연인 역할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다 김희애나 김혜수같은 배우들이 어려서 벌어진 일
입니다.
아무튼 그뒤로도 김희애는 멈추지 않고 발전합니다. 1987년에는 황신혜와 함께 '애정의 조건'이란 드라마에 투톱으로 출여하기도 했고, 88년에는 임채무에 대한 복수극으로 화제가 되었던 '내일잊으리'로 큰 인기를 끕니다. 이외에도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1990)', '조선왕조오백년 대원군(1990)', '아들과 딸(1992)'등에 출연하며 주연급 연기자로 우뚝 섰고 '폭풍의 계절'은 요즘 시청자들이 보고 있는, 팜므파탈에서 우아한 주부를 오가는, 김희애의 여러 얼굴을 가장 많이 보여줬던 드라마 가 아닌가 싶습니다.
'폭풍의 계절'은 출생의 비밀을 안고 태어난 홍주라는 여주인공과 그녀의 동갑내기 사촌이자 대조적인 성격을 가진 진희(최진실)의 삶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전혜린 같은 느낌의 어머니 이한숙(김성령)과 명문집안 출신의 영화제작자 혁인(윤동환)의 운명을 모두 물려받은 듯 , 쉴새없이 달려가던 홍주의 인생은 홍주를 사랑했던 주성혁(박영규)과 현우(임성민)의 삶까지 흔들어놓고 맙니다. 현우의 아내인 진희는 그 때문에 유산까지 하고 말지요. 마치 폭풍이 지나간 자리엔 폐허가 남듯 어머니 이한숙처럼 홍주의 삶도 짧게 끝나고 맙니다.
아무튼 약간은 남성적인 느낌으로, 말괄량이처럼 고등학교를 휘젓고 다니는 김희애와 현우와 사랑하고 이별하며 성혁과 갈등하는 김희애의 모습은 얌전하고 귀여웠던 최진실과 대비되곤 했습니다. 최진실은 88년 처음 '한중록'이라는 드라마에 출연하여 당시 한참 떠오르는 샛별로 급성장했던 시기라 이미 86년부터 주연급으로 활약한 김희애에 비해서는 다소 눌리는 느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죠. 최진실이 맡은 진희라는 역 자체가 격한 김희애의 캐릭터에 비해서는 존재감이 약했습니다.
아마 21세기에 이 드라마를 리메이크한다면 지나친 감정 과잉 그리고 사랑과 증오를 오가는 여주인공의 감정을 설득력있게 묘사하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되고 어떤 면에서 진지하고 지적인 이한숙이나 이홍주의 캐릭터가 요즘 사람들이 선호하는 타입은 아니죠. 그러나 그 시대에 김희애가 연기한 이홍주 만큼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다시 김희애가 만든다면 먹힐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구요. 지금의 연기자 김희애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그때의 김희애도 정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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