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 목소리가 들려, 박수하 VS 수키 스택하우스 그들의 시끄러운 세상

Shain 2013. 6. 15. 13:17
728x90
반응형
처음 이 드라마의 시놉시스를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린 캐릭터는 미드 '트루 블러드(True Blood)'의 수키 스택하우스(안나 파킨)입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박수하(이종석)와 수키 스택하우스는 남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캐릭터입니다. 물론 '트루 블러드'는 뱀파이어, 늑대인간같은 신비로운 존재들이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이 원작이라 수키가 남의 마음을 듣는 능력도 요정의 핏줄 때문입니다. '목소리'의 박수하는 갑작스런 교통사고 덕분에 남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2년 일본에서 방송된 일드(혹은 같은 제목의 영화) '사토라레'에서는 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닌 내 생각을 남들에게 모두 전달하는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남의 마음을 듣는 능력이든 내 마음을 남들에게 들려주는 능력이든 확실한 건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에겐 두가지 능력 모두 불편하다는 점이죠.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원치 않은 세상의 소음 때문에 고통받아야하고 들려주는 쪽은 남들이 내 마음을 듣고있다는 생각에 도저히 제정신으로는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소리를 듣는 능력을 가진 박수하, 수키. 마음들 생중계하는 능력을 가진 사토미 겐이치,

'사토라레'는 특별한 초능력을 지닌 사토라레들을 위해 국가에서 그들의 마음이 들린다는 비밀을 본인은 모르게 하는 비밀팀을 구성한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운이 좋으면 본인이 초능력자임을 평생 모르고 살다 죽을 수 있습니다. 반면 수키나 박수하같은 '듣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들은 자신이 입을 다물면 그런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은 최소한 숨길 수 있습니다. 대신 웃으면서 자신을 대하는 타인들의 진심을 읽고 마음의 상처를 받거나 인간을 불신하게 되는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트루 블러드'의 수키 스택하우스는 주변인들의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든 수준입니다. 데이트하는 상대편 남자의 속셈이 빤히 보이니 미치지 않으면 다행이랄까요. 마음을 읽는 일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순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종종 애를 먹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듣지 않으려 노력하고 정신을 집중하려 애쓴 덕분에 그나마 좀 낫습니다. 그런 수키가 빌이라는 뱀파이어에게 호감을 느끼고 사랑에 빠진 건 다른 사람들과 달리 빌에게서는 전혀 마음의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이라 설정됩니다.

한편 '목소리'의 박수하는 타인의 마음이 들리는 인간치고는 매우 멀쩡하고 순수해 보입니다. 초능력을 이용해 학교 폭력배들과의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위증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도 하는 등 듣는 능력을 십분 활용해 '편리하게' 살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겪었던 무서운 교통사고 때문에 살인자인 민준국(정인웅)의 목소리가 들리고 자신을 짐스러워하는 고모부의 마음을 읽어내지만 그런 슬픔도 잠시 진실을 밝혀준 장혜성(이보영)을 지켜주겠다는 마음으로 고통을 이겨냅니다.

박수하는 타인의 진심에 상처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초능력을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인간은 동시에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존재라서 가끔은 순간적으로 나쁜 마음을 먹기도 합니다. 완벽하게 착한 사람도 없고 절대적으로 못된 사람도 없습니다. '사토라레'의 주인공이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마음의 소리 중에는 원초적인 욕망에 관한 것도 있고 상대방에 대한 무례한 추측도 있습니다. 아무리 순수한 사람들이라도 잠깐씩 스쳐지나가듯 나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듣는 사람들은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잠깐씩 나쁜 생각을 하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의 본질이 아니라는 걸 제일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또 가끔은 마음이 들린다고 해서 그 마음이 모두 진실은 아닙니다. 박수하에게는 어쩌면 자신의 초능력을 저주할 만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민준국이 박수하의 능력을 이용해 역으로 박수하를 휘저어놓은 것이 그 대표적인 에피소드라 할 수 있겠죠.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마음의 소리를 본질로 생각한다면 언제든지 혼란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살고 있음에도 약해지지 않고 맑은 얼굴로 다소 시크하게 장혜성을 지켜주는 주인공 박수하는 언제든지 '다크 수하'로 변신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초반부는 장혜성과 박수하의 만남, 그들을 둘러싼 서도연(이다희), 황달중(김병옥)이 얽힌 출생의 비밀 등 캐릭터들 간의 대립구조가 흥미로웠습니다. 캐릭터들 사이의 숨겨진 속사정도 이야기 전개에 큰 역할을 하겠지만 박수하가 하필 '목소리를 듣는' 능력을 가진 이유와 주인공들이 '법'과 관련된 일을 한다는 것도 알고보면 이유가 있을 것같단 느낌이 들죠. 이 사회에는 들어야할 목소리가 있음에도 귀를 닫고 있는 부분이 너무도 많습니다.

왜 마음의 소리를 듣는 능력이 필요했을까? 박수하의 생각은?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건 주인공 박수하가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자세히 묘사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트루 블러드'의 수키는 요정의 피를 물려받았고 주변에 뱀파이어를 비롯한 기이한 능력자들이 많아 그런 초능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었으나 박수하는 타인의 진심으로 인해 받은 상처가 어느 정도인지 아직까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장혜성과의 만남이 수하의 유일한 희망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지만 수하의 빛이 되어주기엔 아직 장혜성은 속물스러운 변호사이니 말입니다.

마음의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깊은 불신을 지닌채 살아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욕하고 감추고 싶은 게 있어서 거짓말을 하고 감히 남들 앞에서 표현하기 힘든 욕망을 표현하는 시끄러운 세상을 박수하는 어떻게 견뎌낸 것일까. 왜 드라마는 '듣는 능력'을 필요로 했던 것일까. 타인을 불신하면서도 장혜성은 믿는 박수하의 속사정이 에피소드로 한번쯤 묘사될 것같다는 생각이 듭니다(그런데 설마 박수하 동물의 소리까지 듣는 건 아니겠죠?).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