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장혜성 법을 악용하는 민준국 어떻게 상대하나

Shain 2013. 6. 2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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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이 드라마는 평소에 잘 느끼지 못했던 부분을 자극하는 것 같습니다. 점이나 종교나 초능력같은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어머니의 꿈이 자식의 미래를 알아맞춘다는 신기한 경험을 할 때가 많습니다. 지독한 감기에 걸려 앓아 누웠거나 위험한 일을 당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 아랫니가 아픈 꿈을 꾸었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아본 사람들이 많을거에요. 아랫니가 아픈 꿈을 꾸면 자식들 중 하나가 아픈거라더군요. 인간은 신기하게도 평소에 걱정하고 염려하는 사람들의 일을 정확히 예언할 때가 있습니다.

민준국의 손에 죽게 된 어춘심. 어춘심의 뜨거운 모성애와 민준국의 섬뜩함이 충돌하다.


장혜성(이보영)의 어머니 어춘심(김해숙)도 혜성에게 끔찍한 일이 시작될 거란 것을 꿈으로 알아맞췄습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할아버지의 사건을 잘 해결한 혜성은 기쁜 마음으로 어춘심에게 전화를 겁니다. 전화한 그 순간이 민준국이 어춘심을 죽이려하는 그 순간이라는 것을 박수하(이종석)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법정에서 증언한 이후부터 장혜성의 비극은 서서히 다가왔다는 것을 꿈에도 모른채 장혜성이 물에 빠지는 위험한 꿈을 그렇게 액땜했노라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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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변호사가 된 장혜성은 변호사로서의 덕목을 하나 더 배웠습니다. 특히 한끼 식사와 맞먹는 요구르트를 건내주며 감사를 표시한 폐지줍는 할아버지를 보며 세상에는 말이 통하지 않고 나를 모욕하더라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야할 가해자도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법에 대해 잘 모르고 공짜 신문을 줍는게 왜 문제냐며 소리소리 지르는 할아버지에게는 계란빵 3개도 쉽게 사먹을 수 없는 경제적 어려움과 주변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끔찍한 외로움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몇년전 두꺼운 만화잡지를 사모으는 취미가 있어 이사할 때 마다 곤란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이사짐이 두세배로 늘어나고 공간이 부족해져서 큰 마음 먹고 모두 버리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도 이왕 버릴 거면 폐지줍는 할머니에게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단 마음으로 새벽 4시에 골목길을 돌던 할머니 한분을 집으로 모셔와 리어카 가득 책을 실어드린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는 감사하다며 나이어린 저에게 허리를 계속 굽히셨는데 그때 전 뭐 이정도로 고마워하실까 생각한 기억이 납니다. 폐지줍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걸 몰랐습니다..

변호해야할 범죄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국선변호사가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게 말로는 쉽습니다. 그러나 장혜성은 폐지줍는 할아버지의 처지를 이해한다는게 생각 보다 쉬운게 아니라는 걸 여러 면에서 깨닫습니다. 폐지 한묶음이 방세고 밥값이고 없을 때는 굶어야하는 절실한 처지를 직접 겪어보지 않고 어떻게 이해하며 합의하려 해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로 어떻게 애원하란 것인지 국선 변호사는 범죄를 저지른 상대방에 따라 좀더 시선을 낮추고 허리를 굽혀야했던 것입니다.

이 드라마는 첫회부터 지금까지 많은 복선과 단서를 제시해왔습니다. 정체불명의 연쇄살인범 레드존을 쫓기 위해 '스마일 마크'를 추적하는 드라마 '멘탈리스트(Mentalist)'처럼 이 드라마의 에피소드 부제목은 첫회부터 지금까지 극중 상황을 암시하는 노래 가사이거나 노래 제목입니다. 어제 방송된 에피소드 7화의 제목은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즉 어춘심의 악몽이 맞을 거란 뜻입니다. 장혜성이 엄청난 좌절감에 사로잡혀 허우적대거나 힘들어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어춘심의 죽음으로 시작된 혜성의 비극. 엄마의 꿈은 많은 단서를 내포하고 있다.


장혜성이 지금까지 맡았던 사건들은 장혜성에게 '법'에 대한 교훈을 주었습니다. 날나리이기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라는 억측과 자신의 치부를 들키기 싫었던 피해자 때문에 억울하게 누명을 쓴 고성빈(김가은) 사건과 법의 약점을 이용해 둘 다 무죄로 빠져나가려했던 쌍둥이 살인 사건을 통해 법으로 판단하는 것과 범죄자 개개인의 죄질과 진실을 판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변호사가 검사처럼 죄를 추궁하는 입장이 되어서도 안되고 무조건 범죄자를 옹호해서도 안된다는 어려움을 말입니다.

안타깝지만 어춘심은 민준국에게 살해당하게 됩니다. 경찰은 그 범인으로 민준국을 잡고 민준국은 국선전담변호인으로 차관우(윤상현)를 선임하게 된다는군요. 민준국은 어춘심을 살해하기전에 차관우와 장혜성이 사귈지도 모른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성실한 변호사인 차관우는 최대한 민준국 편에서 변호해야할 의무가 있지만 프로포즈까지 했던 장혜성의 어머니를 죽인 민준국을 편히 대할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는 입바른 소리 잘 하는 신상덕(윤주상)이라도 쉽게 조언해줄 수 없는 상황이 아닙니다.

차관우를 국선전담변호인으로 선임하는 민준국. 그가 진짜 노리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범죄자가 자신의 범죄 사실을 모두 증언하더라도 변호사는 그 내용을 밖으로 유출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장혜성이라도 차관우는 민준국의 죄를 털어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민준국은 박수하가 자신을 위치추적했다거나 폭행한 사실 또는 수하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이유로 협박해왔다고 주장하며 형량을 낮추거나 그 과정에서 장혜성의 슬픔을 자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살인을 저질렀으면서도 최대한 가벼운 형벌로 빠져나가려 하는 민준국의 심리에는 변호사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싶어하는 장혜성에게 복수하는 동시에 '법'을 조롱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이 드라마 보면 볼수록 로맨스, 미스터리, 호러에 판타지까지 재미있는 건 다 갖추고 있네요. 법조물로서의 매력도 있습니다. 어제 장혜성에게 전화를 걸며 자신을 죽이려는 민준국(정웅인)을 충고하고 혜성에게 복수하지 말라 유언을 남기는 어춘심의 연기는 끔찍하면서도 안타까웠습니다. 목숨이 위험한 순간임을 감추려고 민준국에게 협박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고 코가 맹맹하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는 어춘심의 모성애가 빛나던 장면이기도 하죠. 그리고 한편으론 민준국이 왜 이렇게 섬뜩한 복수극을 시작한 것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민준국이 보여준 키워드를 하나하나 꿰맞출 때가 다가오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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