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목소리가들려, 법은 왜 저런 사람들까지 지켜줘야 합니까

Shain 2013. 7. 1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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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용인살인사건' 기사를 읽고 또 언론이 살해방법과 피해자 신상정보를 캐며 호들갑을 떨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범인의 잔인한 살해 방법을 영화의 한장면 그리고 엽기살인으로 주목받았던 오원춘과 비교하는 내용의 기사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더군요. 많은 국민을 놀라게한 이런 범죄를 영화와 비교하는 것도 불쾌했고 살해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것도 싫다고 생각하던 중 관심있는 내용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사형제도 부활'을 주장하는 그 댓글은 이번 사건의 범인이 미성년자라 15년 이상을 구형할 수 없으리란 내용이었습니다.


세계적 추세에 따라 우리 나라 역시 10대 청소년에게 만 18세 미만에게는 사형이나 무기형을 구형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범죄가 잔인해도 너무 어린 피의자는 소년법에 따라15년형 이상 구형받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용인살인사건의 범인이 미성년자라 사형당하지 않고 15년 뒤에는 멀쩡히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는 점에 사람들운 분노한 것입니다(현재까진 용인살인사건의 피의자가 정확히 몇살인지 그리고 소년법 적용대상인지 아닌지 공식적으로 공개된 내용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민준국과 똑같은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박수하를 무사히 구해낸 장혜성과 차관우.


요즘 오원춘 사건처럼 잔인한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사형반대론자라는 말에 '인권팔이'라며 비난하고 흥분하는 사람들이 있죠. 특정 정치권을 비난하기 위해 '인권팔이' 운운하는 말이 더 늘어나긴 했습니다만 저도 사형제도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반대하는 이유는 단 하나, 가해자의 인권이 아니라 사형 집행인의 인권 때문입니다. 범죄자가 사형받아 마땅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누군가 대표로 그 범죄자를 처벌할 의무는 없습니다. 차라리 흉악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평생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는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는 쪽입니다.

그러나 저 역시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저지른 피의자가 국선변호사 혹은 국선전담같은 법의 도움을 받고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보호받을 수 있다는 사실엔 분노합니다. 혹은 권력자나 돈많은 자들이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거대 로펌의 힘을 빌리거나 증거를 조작해 유유히 빠져나가고 형집행정지를 악용해 부끄러움 없이 탈옥하는 행위를 혐오합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취재한 사모님같은 사람이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용인살인사건의 범인이 나이가 매우 어려 15년 뒤에 풀려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판사는 민준국을 무죄판결한 똑같은 법조항을 근거로 박수하의 무죄를 판단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는 '무죄추정 원칙'에 의해 풀려난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진짜 살인자인 민준국(정웅인)이고 또다른 한사람은 민준국을 죽이지 않았음에도 기억상실증과 정황, 간접 증거 때문에 살인자라는 누명을 쓴 박수하(이종석)입니다. 그리고 국선전담 변호사 장혜성(이보영)은 자신의 어머니 어춘심(김해숙)을 죽인 민준국이 무죄 판결을 받는 것을 그것도 자신이 좋아했던 동료 변호사 차관우(윤상현)의 딱 부러진 변론으로 풀려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장혜성이 그때 느낀 그 심정이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도 가벼운 벌을 받고 풀려나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들이 느낀 그 마음일 것입니다. '무죄추정, 합리적인 원칙 다 개소리다. 피해자가 되어보니 원칙 수단 개소리다. 변호사는 개자식이고 나 역시 그 개 같은 변호사다'라는 장혜성의 대사는 억울한 피해자 가족의 목소리인 동시에 사건사고 소식을 들을 때 마다 국민들이 느껴야하는 감정과 똑같습니다. 다단계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장혜성의 머리끄덩이를 잡으며 '그런 놈 변호하려고 법대 들어갔냐'며 테러하는 심정이 딱 그 마음이죠.

증거없이 살인범으로 몰려 25년형을 받은 황달중은 중병에 걸려 형집행정지를 받는다.


그런데 한편으론 박수하가 무죄추정으로 풀려나는 모습은 어쩐지 안심이 되고 다행이다 싶습니다. 의지할 곳도 믿을 곳도 없는 박수하는 장혜성이 아니었으면 서도연(이다희) 검사가 주장하는대로 범죄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뚜렷한 증거도 없는 살인죄 때문에 25년간 복역하고 있는 황달중(김병옥)이 그랬던 것처럼, 딸도 못 보고 죽을 병에 걸려 형집행정지를 받은 그 불쌍한 아버지처럼 박수하도 감옥에 가야할 수도 있었습니다. 기억상실증으로 자기방어능력이 없고 고아나 다름없는 박수하에게 법은 최소한의 안전망을 제공한 것입니다.

법은 점점 더 발전하고 변호사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우리 나라의 '억울한 옥살이'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단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최근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로 고생한 사람들은 무려 1562명(출처: 국민일보 기사). 주변사람들에게 범죄자로 낙인찍히고 인생을 저당잡혀도 그 피해보상금은 생각 보다 적습니다. 서다연처럼 범죄 여부를 밝혀내기 위해 악착같은 검사도 필요하지만 코끼리 퍼즐의 80%를 맞췄다고 해서 코끼리가 살인하는 퍼즐그림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몹시 위험합니다.

지난번에도 적었듯이 그 어떤 법도 민준국의 유죄와 박수하의 무죄를 정확히 구분하지 못합니다. 검사와 판사, 변호사는 완벽한 인간도 아니고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 느슨하게 판결하면 민준국이나 용인살인사건 범인같은 사람들이 풀려나고 촘촘하고 엄격하게 판결하면 박수하도 황달중처럼 평생 감옥에서 보내야합니다. 결국 장혜성이 다시 한번 법을 믿어보기로 한 것처럼 국선전담변호사들이 가끔 최악의 범죄자를 변호해야하는 것처럼 가끔은 씁쓸해도 법적 보호장치를 남겨둘 수 밖에 없겠죠.

법은 민준국과 박수하를 구분할 수 없다. 다시 한번 법의 실체를 깨닫는 두 변호사.


여기저기 댓글을 읽어보니 '용인살인사건'의 피의자는 소년법 적용대상자는 일단 아닌 모양입니다. 즉 살인 구형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드라마 속 민준국이나 다른 강력 사건 범죄자들처럼 소년법으로 보호했다면 법이 왜 저런 사람들까지 지켜야하나 분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법이 가끔씩 헐겁게 보이는 이유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혹시모를 억울한 한 사람을 위한 것이겠죠. 여전히 법의 울타리 안에서 범죄자도 보호받는다는 느낌은 지워지지 않겠지만요.

드라마 속 어춘심은 장혜성에게 의미심장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 법대로 살다가는 이 세상 사람들 다 장님 된다. 너한테 못되게 하는 사람들 널 질투해 그러는 거다. 그 사람들 미워하지 말고 불쌍하게 여겨라'라는 말을 말입니다. 오늘같이 끔찍한 범죄를 듣게 된 날에는 어춘심의 유언이 참혹하게 느껴집니다만 민준국이 어쩌다 박수하의 아버지를 죽였는지 왜 살인을 시작했는지 장혜성과 박수하가 그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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