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 목소리가 들려, 박수하가 적나라하게 보여준 법의 불편한 진실

Shain 2013. 7. 5.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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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전담변호사는 도입한지 10년이 되지 않은 새로운 제도지만 8, 90년대에는 돈없는 피의자를 돕기 위해 국선변호사 제도가 운영되었고 지금도 운영 중입니다. 다른 사건과 국선 사건을 함께 맡는 변호사들은 성의없는 변론으로 비난받곤 했습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장혜성(이보영)이 변호석에서 대충 변론하는 것처럼 대놓고 형식적이진 않지만 그만큼 변호가 필요한 피의자들에게 관심이 없었단 뜻입니다. 국선전담변호사 제도는 이렇게 있으나 마나한 국선변호인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국선전담은 국가가 지정한 사건만 전담합니다.

기억을 잃고 피의자 신분으로 법정에 서게된 박수하. 수하의 무죄판결은 쉽지 않다.


남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이 있던 박수하(이종석)은 어떻게 된 일인지 그 능력과 함께 기억을 잃었습니다. 그가 적대시하던 민준국(정웅인)은 생사가 불분명한채로 왼손만 실내낚시터에서 발견된 상태합니다. 국선전담 장혜성과 국선 차관우(윤상현)이 국민참여재판에서 주장한대로 민준국은 어딘가에 살아있는 거 같습니다. 박수하와 실내낚시터에서 충돌하고 무언가 말을 주고 받은 것은 확실한데 어째서 박수하는 기억을 잃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수하는 얼핏 울부짖는 민준국의 얼굴을 떠올렸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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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성과 차관우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박수하가 무죄란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자신을 위해 아버지의 살인을 증언해준 장혜성을 지켜주겠다고 그렇게 말했던 박수하가 민준국을 죽이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민준국이 혜성의 어머니인 어춘심(김해숙)을 잔인하게 살해했을 때 박수하가 민준국을 직접 죽이리라 마음먹긴 했지만 그건 장혜성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지 수하가 그렇게 잔인하고 독해서는 아닙니다.

시청자들은 지금까지 주욱 장혜성과 박수하의 입장에서 이 드라마를 봤습니다. 그래서 굳이 편을 가르자면 억울한 박수하와 장혜성 편이고 김공숙(김광규) 판사가 민준국의 무죄를 선고할 때 감정적으로 부당하다고 느낍니다. 비록 드라마에서 보여주지 않았지만 어춘심을 협박하며 장혜성에게 전화하도록 한 민준국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박수하가 살인자라는 여러가지 심증과 물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수하에게는 무죄판결이 당연하다 느낍니다.

시청자는 박수하가 무죄라고 생각하지만 법은 그의 무죄, 유죄를 구분할 수 없다.


법은 기억상실증에 걸려 혼란스러워하는 박수하처럼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죄를 판단할 의무가 있습니다. 시청자들은 민준국과 박수하를  다른 잣대로 보고 있지만 법은 민준국과 박수하가 드러낸 살인의 증거만 보고 판결해야합니다. 형사의 말을 듣고 내가 사람을 죽였을거라 생각하다가도 변론하는 장혜성 덕분에 내가 죽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며 헷갈려하는 박수하처럼 혹시 죄인을 놓치면 어쩌나 혹시 죄없는 사람을 가두면 어쩌나 고민하는게 법제도입니다. 민준국이나 박수하나 법 앞에서는 똑같은 피의자 신분일 뿐이란 뜻이죠.

기억을 잃은 수하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신이 어쩌면 민준국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합니다. 민준국의 왼손이 발견된 실내낚시터에서 민준국과 박수하 두 사람은 격하게 싸웠고 김충기(박두식)가 읽어준 일기장으로 자신이 장혜성을 특별하게 생각했으며 민준국을 죽일 이유가 있었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민준국은 살아 있고 이 상황은 작가의 트릭이겠지만 드라마 속 장혜성이나 박수하도 시청자들도 박수하가 무죄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날 밤의 일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죠.

장혜성은 민준국이 살아있을거라며 박수하의 무죄를 주장했다. 무죄 판결 받을 수 있을까.


박수하는 억울한 피해자의 입장에서 지금은 억울한 가해자의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양쪽의 상황 모두 법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민준국이 살인죄로 기소되었을 때는 심증과 상황 증거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무죄 판결을 받았고 박수하는 반대로 무죄를 입증할 증거가 없어 거짓말로라도 죄를 인정하고 감형 시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신상덕(윤주상) 변호사는 술에 취해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던 황달중(김병옥)이 무죄를 증명하지 못해 서대석(정동환) 판사에게 25년형을 구형받았던 과거를 언급합니다.

시청자들은 한때는 피해자가 되고 한때는 가해자가 되는 박수하를 통해 법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억울하게 적용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고 있습니다. 무죄를 받아서는 안되는 민준국이 풀려나고 무죄를 받는게 당연한 박수하는 무죄를 주장하다 평생 감옥에서 썩을 수 있다는 이 불편한 진실이 시청자들을 자극합니다. 동시에 떠오르는 것이 최근 인터넷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곤 하는 '가해자 인권' 논란이죠. 현장검증받는 가해자들의 얼굴을 가리고 형사소송법 325조로 증거가 부족한 피의자에게 무죄선고를 내리는 이유는 박수하같은 억울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박수하가 증명한 불편한 진실. 세상에 그 어떤 법도 민준국과 박수하를 정확히 가려낼 수 없다.


때로는 민준국같은 심각한 범죄자가 풀려나더라도 박수하같이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이 제도를 유지해야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박수하처럼 억울한 죄수가 생기더라도 민준국같은 범죄자를 잡기 위해 법을 강화해야하는 것일까요. 시청자들이 느끼는 법감정대로 민준국에게는 유죄를 박수하에게는 무죄를 주는 그런 완벽한 법제도는 이 세상에 없는 것같습니다. 검사와 판사, 변호사가 그 법의 허점을 최대한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고 국가에서도 여러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덧붙여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경우엔 법에서 보장하는 보상금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미국은 그 금액이 꽤 커서 감옥에서 풀려나면 백만장자가 되기도 하죠. 그러나 살인죄로 사형을 당한 경우엔 그마저 불가능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사형제도가 폐지 수순을 밟았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박수하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사형까지 받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법이 민준국과 박수하를 정확히 가려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 어느 나라의 그 어떤 법도 살인자와 무죄를 정확히 가려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흥미로운 법정드라마는 참 간만에 봅니다. 볼 때 마다 아슬아슬한게 끝마무리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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