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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닥터, 나는 박시온이 진단의학과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Shain 2013. 9. 2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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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의학이란 단어를 들어본 것은 미드 '하우스(House M.D.)'가 처음이었던 것같습니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분야인 탓도 있지만 질병을 치료하고 약이나 먹는 경우가 더 많으니 전문의들 네 명이 모여 질병을 연구한다는게 상당히 신기하게 느껴지더군요. 거기다 '하우스'는 아스퍼거 증후군인 그레고리 하우스라는 주인공을 내세운 까닭에 사회성 모자라고 괴팍하고 남의 입장 따윈 거의 고려하지 않는 듯한 천재 의사 하우스가 쇼의 중심이었습니다. 그에게 진단의학은 남이 해결하기 힘든 정답을 알아내는 게임처럼 보였고 의학사전과 논문을 달달 외운 듯한 그의 재능은는 놀랍기만 했습니다.

소아외과 레지던트가 되고 사랑을 느끼고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중인 박시온의 나날들.


우리 나라 의학드라마가 대부분 신파와 의사의 윤리를 강요하는 '의학 판타지'라면 '하우스'는 천재의사 캐릭터의 재미를 극대화시킨 판타지로 볼 수 있습니다. '굿닥터'에서 모든 병명과 증상을 꿰고 있고 환자의 상태를 머리 속으로 그려내는 박시온(주원)의 능력은 진단의학과장 그레고리 하우스가 보여준 능력과 많은 부분 흡사하죠. 그리고 하우스는 치료 전문이 아니라 병을 알아내 처방을 지시하는 쪽이라 거의 수술실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물론 중증 바이코딘 중독자에게 수술을 맡길 사람도 드물겠지만요.


박시온은 하우스처럼 천재적인 능력을 갖고 있으나 각각 고질병인 서번트 증후군과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졌다는 점에서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필수적인 천재들입니다. 그러나 하우스는 각종 성인의 삶을 즐길 줄 아는 성인 대접을 받는 반면 박시온은 여러 면에서 성인이기 보다는 종종 아이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드라마 '굿닥터'는 박시온이 차윤서(문채원)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녀를 보호해주려할 때는 '어른'으로 성장중인 소년으로 묘사하지만 그가 성장하는 과정은 격려와 지지가 필요한 아이들에 빗대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망치를 사러가는 박시온. 차윤서에 대한 사랑은 어린 박시온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성원대학병원에 처음 등장한 박시온은 어떤 면에서 보든 애물단지였습니다. 병원의 질서 보다는 환자가 우선이라며 가끔씩 통제가 되지 않고 어떨 때는 어릴 때 폭행당한 트라우마로 갑자기 쓰러지고 농담이나 거짓말에 익숙치 못해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는 그에게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마치 사람들과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늑대소녀(유해정)처럼 말입니다. 그런 시온이 늑대소녀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며 애정을 쏟고 윤서와 김도한(주상욱)의 도움으로 레지던트로 정착하면서 박시온의 비교대상은 음악에 재능을 가진 천재소년 규현(정윤석)이 됩니다.

박시온을 레지던트로 받아들이기로 한 김도한은 박시온을 지켜보며 암기력과 질병을 판단하고 경과를 예상하는 능력은 그 누구 보다 탁월하지만 박시온이 극복해야할 트라우마가 너무 많아 수술실에 넣기는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박시온이 소아외과 보다 소아 진단의학에 맞고 그것이 시온을 위하는 일이라 판단하고 박시온을 그쪽으로 보내려 하지만 박시온은 자신은 형과의 약속 때문에 외과의가 되어야 한다며 고집을 부립니다. 규현이 재능을 보이는 일과 규현이 하고싶은 일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규현을 위하는 일이냐는 질문을 박시온의 스승 도한에게도 똑같이 던지는 셈입니다.

아버지 때문에 기절하던 박시온이 엄마를 위해 아버지와 맞선다. 시온이 보여준 놀라운 변화.


시온이 굳이 소아외과의가 되겠다고 했던 것도 학대받던 어린 시절과 그런 시온을 돌봐주던 형 때문입니다. 극중에는 아동학대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여러 심각한 상황이 등장하는데 어린아이들은 보호와 배려와 도움이 필요하다는 면에서 박시온과 동일한 상황입니다. '장애인' 박시온은 몸집만 큰 어린아이라고 볼 수 있고 그때문에 김도한은 시온에게 레지던트의 야근도 하지 못하게 했었습니다. 남들 보다 정신적 성장이나 독립이 느린 상황이었고 서번트 증후군을 극복하는 훈련을 받고, 의학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남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더디게 성장해왔습니다.

시온은 종종 남들이 자신을 미워하고 불편해한다고 털어놓지만 박시온이 무사히 레지던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최우석(천호진) 원장을 비롯한 사회의 여러 배려와 보살핌 덕분입니다. 친부모가 해주지 못한 부모 역할을 누군가 대신 해준 셈입니다. 그런데 이제 홀로서기를 시작했고 꿈을 쫓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차윤서에 대한 사랑으로 박시온은 조금 더 어른이 되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기절하던 아버지 박춘성(정호근)에 대한 무서움을 이겨내고 미워서 잊어버렸던 엄마 오경주(윤유선)도 받아들이려 합니다. 윤서가 위험할 땐 감싸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박시온이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고 무엇 보다 남을 배려해준다는 뜻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극중에는 현실과 타협하며 조금씩 꿈에서 이탈하는 많은 어른들이 등장합니다. 김도한은 장애가 있던 동생을 사랑했지만 어느새 '좋은 의사'에 대한 생각을 잊었다고 고백하고 손에 굳은 살이 박힐 정도로 열심히 일한 서전이었던 고충만(조희봉) 과장은 이젠 쫓겨나지 않으려 눈치나 보고 나쁜 짓을 하다 병원 옥상에서 새똥 테러를 당하는 신세입니다. 정회장(김창완)과 손잡은 부원장 강현태(곽도원)는 큰병을 앓고 있는 아이 때문에 영리병원에 집착하는 듯하죠.

어른이 된다는 건 사랑한다는 것 보단 조금 더 복잡한 의미이다. 환자를 위해 칼에 찔린 김도한 교수처럼.


박시온이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그 '어른들'이 현실에 대해 책임지고 타협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를 때리기만 하는 아버지와 시온을 두고 도망쳐야했던 어머니의 고통을 이해하는 건 '서번트 증후군' 시온에겐 완전히 불가능한 일일까요? 어째서 사람들이 가끔 나쁜 선택을 하고 꿈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지 이해하는게 박시온의 숙제가 될지도 모릅니다. 늘 현실과 동떨어져 꿈꾸는듯한 박시온이 현실세계에 발을 디딘다는 건 어쩌면 그렇게 타인의 복잡함을 알고 판단하는데 있습니다. 이젠 몰래 과자를 먹는 환아들을 타이르는 의사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이 드라마 '굿닥터'가 서번트 증후군으로 태어나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란 박시온이 주인공이기에 가상의 인물 박시온이 성장하고 극복하는 내용이 그려지고 있습니다만 자폐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직장 적응은 그냥 꿈으로 치부해버릴 것이 아니라 상당히 중요합니다. 유사자폐와 자폐증을 구분하는 사람도 드문 현실에서 가끔 드라마가 현실과 괴리된 박시온의 꿈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게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하더군요. 드라마 초반에는 당신같으면 박시온같은 의사에게 수술을 맡기고 싶겠느냐고 묻는 시청자들도 많았죠. 박시온이 의사가 되려면 아직도 훨씬 많은 도움이 필요할 것입니다.

어쩌면 박시온 스스로 가장 잘 하는 일을 선택하는 것도 진짜 어른이 된다는 뜻 아닐까. 소아진단의학과도 괜찮다.


그리고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으로 자란 어린아이들도 나이가 들면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과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선택합니다. 의외로 많은 어른이 어린 시절의 꿈 보다는 가장 잘 하는 일을 선택하기도 하구요. 지금은 시온의 꿈을 위해 윤서가 격려해주고 김도한 교수가 특별한 훈련을 해주고 있지만 언제까지 박시온이 그런 배려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는 걸 스스로 깨닫는 날, 스스로 가장 잘하는 일인 진단 의학을 선택하는게 진짜 어른이 되는게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그런 과정이라면 박시온이 스스로 소아진단의학을 선택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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