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드 팬들은 미드 속에서 잘못 표현되는 한국 문화에 종종 분노하곤 합니다. 인기 미드 '로스트(Lost, 2004)'에서 '한강대교'가 작은 동네 돌다리처럼 묘사된 장면은 여전히 여러 사이트에 캡처 사진이 올라와 있고 극중 한국계 배우의 어설픈 한국말은 아직도 놀림거리입니다. 주연배우 중 하나였던 대니얼 대 김은 미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했고 '권진수'를 '꽈찌쭈'라고 발음합니다. 그의 발음을 흉내낸 '난 왜 행보카지 모테', '한강대교', '꽈찌쭈'같은 말은 유머란에 자주 올라오는 소재 중 하나입니다. 이외에서 여러 미드에서 잘못 묘사되는 한국어가 많은 한국인들의 웃음거리가 되곤하죠.
한국인들이 베트남식 삿갓을 쓰고 나오는 영화도 있고 어떤 미드에선 한국 '포항'이라는 곳에서 헬리콥터와 전투기를 동원해 전투신을 촬영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봐도 열대지방의 나무들 뿐인 곳을 포항이라고 하는 것도 기가 막힌데 언제부터 포항에 군사용 벙커와 추격전을 벌일 수 있는 넓은 공터가 있었는지 웃기고 비무장지대에 가고 민간인이 헬기를 동원하기도 하고 - 한국이 그런 전투를 벌여도 되는 만만한 원시지역으로 묘사되는게 황당 합니다. 그 때문에 가끔 한국 언론에서 미드 속 한국 왜곡이 심각하다며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딱히 애국심이 넘쳐나지 않더라도내가 사는 지역을 사실과 다르게 묘사하는 건 기분이 그리 좋지 않습 니다. 그 때문에 잘 모르는 지역을 묘사할 때는 최대한 자료 조사를 많이 해서 현지인들의 증언을 듣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특히 미국 드라마는 한국 팬이 꽤 많이 늘었기 때문에 요즘 한국에 대한 묘사를 정확히 하려 노력한다고 하죠. 그런데 한국 드라마 속에도 잘못 묘사되는 한국 문화가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실제 사실과는 상관이 없다'는 설명이 필요할 정도입니다. 직업에 대한 묘사가 잘못된 경우도 있고 그 직업에 대한 편견이 여과없이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화제를 끌고 있는 드라마 '참 좋은 시절'은 30, 40대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단 한번도 고향집으로 되돌아오지 않은 둘째 아들 강동석(이서진). 가족에 대한 속깊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책임이 너무 무겁고 상처가 커서 되돌아보기 싫은 상태를 아주 잘 묘사하고 있죠. 책임감이 컸던 만큼 죄책감은 더욱 커지고 보고 싶은 만큼 보러갈 수 없어 일만 하다 보니 어느새 15년이 지나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가 꽤 공감이 갔습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동시에 고향을 지긋지긋하게 생각하는 심리가 훌쩍 집을 떠난 사람들에게는
조금씩 남아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정작 '애증'의 대상이 된 고향에 대한 묘사는 뭔가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아웅다웅하며 사는 식구들의 공간인 고향은 경주라는 현실 세계에 세트장을 마련했는데 어딘가 모르게 가상세계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드라마 속에서 묘사하는 90년대의 경주는 아무리 봐도 80년대 중반의 경주같고 현재의 경주는 90년대의 경주같습니다. 특히 경북 사람들이라면 드라마 속에서 등장하는 사투리가 경북의 것이 아니라는 걸 금방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특히 차해원(김희선), 강동희(옥택연)가 쓰는 사투리는 아무리 들어도 경남 사투리죠. 대체 왜 사투리 고증에 무리수를 둔 건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80, 90년대는 지방에서도 교육 정책상 표준어가 대세였기 때문에 여학교같은 경우 적어도 학교 안에서는 사투리를 안 쓰는 아이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사투리 보다는 표준어처럼 말하는데 경상도 억양이 남아 있는 정도였지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어린아이들이 사투리로만 의사소통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한 기억이 납니다. 억양이란 것도 다른 지방에서 봤을 때 경상도 억양이구나 하지 당사자들은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등장인물들이 마구 남발하는 사투리 문화가 많이 과장되어 보이더군요. 억양은 어쩔 수 없어도 최소한 단어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나중에 기사를 찾아 읽어 보니까 원래는 경남 산청을 배경으로 제작하려던 드라마를 경주로 배경을 옮기면서 차이가 생겼다던데 그 덕분에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정서 중 하나인 지역색은 아무리 해도 그 맛이 살지 않습니다. 경주의 왕릉과 경주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으면서 그 안에서 묘사하는 사람들의 말은 경주의 것이 아니라니 이것 참 옥에 티라고 하기엔 너무나 기본적인 실수라 보기가 난감하네요. 이경희 작가가 가족들 간의 갈등이란 소재를 아주 섬세하게 잘 잡아낸 것까진 좋았는데 드라마 곳곳에 이런 묘사는 '로스트'의 '꽈찌쭈' 만큼이나 떨떠름합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한국어면 똑같은 한국어라고 생각하는 미국 사람들처럼 어차피 똑같은 사투린데 하는 마음으로 이 드라마를 보실 것입니다. 어차피 드라마인데 뭐 어떠냐 하는 마음도 드실 거구요. 수많은 농촌드라마들이 농촌의 현실을 외면하고 '농촌 판타지'를 만들어버린 것과 똑같은 현상입니다. 많은 드라마들이 '서울 사람들' 중심으로 제작되다 보니누군가에게는 일상 생활인 지방 문화가 제작자들에게는 어떻게 묘사되어도 상관없는 오락거리라는 걸 이럴 때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똑같진 않더라도 특징을 잡아내는 요령은 분명히 있을텐데요. 아무리 드라마 가 '판타지'라도 사실에 근거한 판타지와 날조된 판타지는 그 가치가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 좋은 시절' 관련 인터넷 기사엔 누군가의 연기를 칭찬하고 '사투리를 트집잡는다'며 욕하는 댓글이 자주 보입니다. 사투리가 거슬린다거나 그 지역 사투리가 아니라는 말에 그런 댓글을 다는 분들은 아마 제가 느낀 감정에 공감할 수 없는 사람들이겠죠. 아마 미드에서 한국 문화를 얕잡아보고 왜곡했다는 평가에 미국인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가 한국인도 아닌데 뭐 어쩌라고?'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미국 드라마야 원래 미국인을 위한 컨텐츠니까 그렇다고 치고 한국 드라마에서 왜 이런 씁쓸함을 느껴야하는지가 참 의문 이네요. '참 좋은 시절'은 서울 사람들을 위한 참 좋은 시절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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