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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좀 잘 살자 '미스코리아'의 따끔한 일침

Shain 2014. 2. 27.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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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경제 위기가 닥치면 일단 나 혼자라도 살고 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하기 마련입니다. 여유부리다간 먹고 살기 힘들다는 생각에 인심이 더욱 각박해지고 기업은 기업대로 실적에 열을 올립니다.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사회를 확 바꿔놓은 큰 사건이었습니다. 많은 기업이 대량해고를 통해 몸집을 줄였고 평생직장 보다는 비정규직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미스코리아'의 오지영(이연희)는 그 과정에서 해고당한 엘리베이터걸 중 한명 이었죠. 멀쩡하던 대기업도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마당에 아이디어 하나 믿고 사업에 뛰어든 김형준(이선균)이라고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김형준은 돈달라며 공장을 부수는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면서 외국계 투자자인 고교 동창 이윤(이기우)를 찾아갑니다.

 

우리 서로 사랑하면서 '같이 좀 살자'. 97년 배경의 '미스코리아'가 우리 시대에 보낸 따끔한 메시지.

 

그러나 김형준과 오지영은 마지막회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오지영은 자신을 무시하며 동료들의 돈을 갈취하던 백화점 박부장(장원영)에게 통쾌한 복수를 했고 김형준은 비비크림을 바다화장품에 빼앗겼지만 틈새시장을 파고 들어 립글로스를 성공시킵니다. 다시 일어설 수 없을 만큼 좌절했지만 상대방이 치사하면 할수록 김형준과 오지영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더불어 오지영과 김형준은 자신들의 앞길을 방해했던, 지독하고 원수같았던 상대방에게 따끔한 메시지를 남깁니다. 미웠던 상대를 짓밟는 대신 함께 사는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김형준의 비비크림은 바다화장품에서 불티난 듯 팔려나갑니다. 내추럴한 화장을 특징으로 하는 비비크림이 대유행하지만 바다화장품은 진한 와인색 립스틱을 출시했고 김형준은 내추럴한 화장에 어울리는 립글로스를 개발해 바다화장품 립스틱 보다 훨씬 더 잘 나가는 상품을 만들어냅니다. 화가 나서 시비를 걸러 온 김강식(조상기)에게 김형준이 한 말이 압권이죠. 어떻게든 비비를 무너트리려는 강식에게 '형님만 생각 바뀌시면 그럼 다 행복할 것 같다'며 '같이 좀 잘 살자'라는 형준의 말에는 어려운 시대의 해법이 담겨있습니다. 언중유골(言中有骨)인 셈이죠.

'형님만 생각 바뀌시면 그럼 다 행복할 것 같다' - 뺐지 말고 '같이 좀 잘 살자'는 김형준의 일침.

 

그런가하면 오지영은 미스코리아 진이 된 자신에게 갑행세를 하려던 박부장(장원영)의 기를 꺾어놓습니다. 박부장의 만행을 폭로하는 대신 드림백화점 모델 담당자를 바꿔달라는 말로 유명세를 과시한 오지영에게 박부장은 절절 맬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오지영은 자신에게 갈취한 퇴직금과 월급을 들고 찾아온 박부장에게 돈을 갈취했던 다른 엘리베이터 동료들에게 사과하고 내 돈 보다 우선 그 동료들의 돈부터 갚으라고 하죠. 오지영이 선택한 방법은 자신을 괴롭힌 원수의 생계수단을 빼앗는 대신 빚을 갚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애리(이미숙) 역시 양춘자(홍지민)을 다시 받아들입니다. 귀가 얇은 양춘자는 돈때문에 부정한 짓을 한번 더 저질렀지만 마애리는 양춘자를 다독여서 빚을 대신 갚아주고 함께 일합니다. 마애리가 자신의 미용실 출신이 아닌 오지영을 돕고 미스코리아들에게 스폰서 제의를 하는 마담뚜를 흠씬 두들겨패주는 것처럼 서로를 적으로 여기기 보다  함께 가는 동료로 대하는 것이 함께 사는 길이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등장 캐릭터 모두가 한결같은 말을 하고 있죠.시대가 어려울수록 '사랑하며 같이 잘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입니다.

약자와 상생하는 것이 결국 진짜 살아남는 방법 아닐까? 마애리의 현명한 생존법.

 

동시에 이것은 97년을 향한 메시지라기 보단 팍팍한 현대사회를 향한 '돌직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90년대 이후 구멍가게가 망하고 창고형 마트가 자리잡고 서민들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졌습니다. 오지영의 아버지(정규수)가 유기농 콩나물을 키워 생존방법을 모색하듯 많은 서민들이 살려고 아등바등하지만 좌절하곤 합니다. 어쩌면 '함께 좀 잘 살자'는 메시지는

이 시대의 초식동물들이 남을 짓밟고 남의 것을 빼앗는 포식자들에게 던진, 드라마 '미스코리아'의 진짜 메시지가 아닐까

요?  같이 좀 잘 살자 - 따뜻하고 정이 듬뿍 담긴 작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말이었습니다.


 

 

 

이연희가 잘 하면 얼마나 잘하겠어 했는데?

드라마 '유령(2012)'을 보면서 제가 생각했던 것이 있습니다. 블로그에 비슷한 문장이 남아 있지 않을까 싶은데(최대한 완곡하게 표현했을지도) 이연희가 '유령'에 출연한 이유가 PPL 때문인지 연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이었던 것같습니다. 당시 이연희는 '유령'의 캐릭터를 소화하지 못했고 그냥 예쁜 얼굴을 가진 배우에 불과 했죠. 작년에 방송된 '구가의 서'에서 드라마를 이끄는 역할을 그럭저럭 잘 해내긴 했으나 그때도 '이연희에게 이런 면이 있구나'하는 느낌을 얻은게 전부였던 거 같습니다. 여전히 발성이 미숙했지만 '유령'에 비하면 그것도 엄청난 발전이었죠.

'미스코리아'의 오지영은 이연희가 아니면 절대 해낼 수 없을 역할입니다. 170센티의 장신과 예쁜 얼굴이 미스코리아 진 역에 딱 맞았고 때로는 청순하게 때로는 싼티나게 시선을 잡는 웃음도 확실히 본인에게 잘 맞는 옷이었습니다. 누가 표현한대로 배우 이선균이 여배우에게 가장 알맞은 캐릭터를 뽑아내는데 귀신인 것인지 아니면 서향숙 작가와 권석장 PD가 이연희의 자질을 가장 잘 뽑아낼 수 있는 좋은 캐릭터를 창조한 것인지 그건 딱 꼬집어 말할 수가 없습니다만 확실히 이연희와 제작진이 만든 시너지 효과는 생각 보다 꽤 좋았다는 것  입니다.

고단한 엘리베이터걸에서 당당한 미스코리아까지. 이연희의 발전은 생각지 못한 소득이다.

 

'미스코리아'에서 이연희가 보여준 첫번째 이미지는 '첫사랑'이었죠.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을 위안 삼아 과거를 추억하는 사람들에게 청순하고 깜찍한 모습으로 어필하며 시선을 확 사로잡더니 엘리베이터걸이 되어 삶은 계란을 몰래 먹고 '와이키키'하며 슬픈 눈으로 웃을 땐 어딘가 모르게 서럽고 애잔했습니다. 박부장에게 뺨을 맞고 돈을 갈취당하는 모습에 직장인의 애환을 떠올린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스코리아 본선 무대에서 활짝 웃고 있는 '오지영'은 당당함이 묻어나는 진짜 미스코리아 진이었습니다. 이연희가 그 이미지를 다 소화했습니다.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미스코리아'를 잘 만든 드라마로 평가하고 싶은 것은 허영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여성의 신체를 평가의 대상으로 여기는 '미스코리아' 대회를 통해 역설적으로 세상의 편견에 도전하는 오지영, 김형준의 성공기를 멋지게 그려냈고 마애리, 고화정, 정선생(이성민), 김재희(고성희)같은 버릴 곳없는 캐릭터를 다수 만들어냈다는 점입니다. 더불어 이연희라는 한 연기자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것도 시청자로서는 큰 소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연기자로서의 첫성공 축하합니다. '연기자는 연기를 잘 할 때 가장 예쁘다'는 시청자의 조언을 앞으로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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