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우리 나라 드라마에서 매니악한 장르물이 제작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시청률을 의식하는 공중파 위주로 제작되는 드라마다 보니 본격 장르물 보다는 통속극이 인기를 끌고 '멜로'없는 드라마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배우 손현주의 전작인 '황금의 제국(2013)'은 그런 부분에서 이례적인 경우였죠. SBS '쓰리데이즈'가 100억 제작비가 투자된 대작이고 김은희 작가, 손현주가 출연으로 주목받긴 했어도 그런 한계 때문에 더 이상의 기대를 가지진 않았습니다. 첫회를 본 소감도 공중파에 딱 알맞는 드라마로 그럭저럭 볼만하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 정도면 미스터리와 현장감, 주제의식과 캐릭터를 잘 버무려놓았다고 평가할 수 있겠네요.
술집에서 소주를 마시다 헤어진 대통령 이동휘(손현주)와 재신그룹 회장 김도진(최원영)에겐 숨겨진 과거가 있는 것같습니다. 아마 디스켓 속의 내용이 두 사람의 대립을 쥐고 있는 비밀인듯 합니다. 90퍼센트에 육박하던 대통령 지지율은 10퍼센트대로 떨어지고 지금은 비리 문제로 특검 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신세입니다. 디스켓에 있던 내용은 아마도 재신그룹을 무너트릴 만한 사건일 것입니다. 재벌 김도진의 도움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동휘가 재벌과의 연결고리를 떼기 위해 디스켓 속 내용을 폭로하려다 역으로 공격당하는 시나리오가 떠오르더군요. 대통령은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진 캐릭터 같습니다.
경제수석인 아버지(이대연)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재래시장을 방문한 대통령 경호에 나선 한태경(박유천)은 의문사당한 아버지의 비밀을 조사합니다. 대통령에게 비밀스레 쪽지를 전한 양대호(고인범)는 대통령의 죽음을 예고하고 사망했습니다. 그 쪽지의 내용을 조사하던 한태경은 대통령 이동휘가 암살당할 것이란 의문의 정보를 알게 되고 휴가를 떠난 대통령을 쫓아갑니다. 대통령을 죽이려는 존재는 누구며 직접 쪽지를 건내받은 대통령 역시 그 내용을 알고 있을텐데 왜 청수대에 내려갔을까요?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가운데 한적한 시골 마을 전봇대에서는 EMP폭탄이 터집니다.
대통령 암살이라는 엄청난 사건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암살범의 정체가 이 드라마의 가장 굵직한 사건이고 그 주변을 지키는 비서실과 경호실의 긴장감은 충분히 전달된 듯 합니다. 비서실장 신규진(윤제문), 경호실장 함봉수(장현성), 경호본부장 김상호(안길강)의 무게감은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의 위엄을 표현하기엔 제격이었죠. 드라마의 대부분을 이끌어갈 한태경이란 주인공과 윤보원, 이차영(소이영)의 관계도 적당히 잘 배치되었습니다. 특히 경호실 한태경을 집중 압박하는 신규진 역의 윤제문은 역시나 무서운 존재감입니다. 함봉수 역의 장현성이 보여준 안정감을 송곳처럼 찌르는 느낌이더군요.
이 정도면 딱 한국 공중파에 알맞은 전개로 균형감 있게 이야기 거리를 보여줬다는 생각으로 합격점을 줄만합니다. 지나치게 암시적이거나 무거운 분위기로 이끌고 나가면 무리가 있겠죠. 이미 '신의 선물'도 충분히 묵직하다는 평가를 받는 판에 '쓰리데이즈'까지 긴장감으로 시청자를 압박하긴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다만 한두가지 눈에 보이는 문제는 전체적인 기둥 보다는 곁가지에 해당하는 세부적인 묘사나 캐릭터들인대요. 여러 팬사이트에서 시청자들이 비판하는 내용들 대부분이 일리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야기에 빈틈이 많다고 할까요?
주변을 경계하며 달리던 경제수석의 차량은 시속 200키로 쯤은 감당할 수 있는 고급 승용차인데 최고 속도가 160키로 정도 밖에 되지 않는 트럭, 그것도 암살자가 누구인지 알리려는 듯 떡하니 '재신'이란 마크를 달고 달리는 트럭을 따돌리지 못했다는 것도납득이 가지 않거니와 위장은 생각도 하지 않은채 윤보원(박하선) 앞에 나타난 트럭운전사와 암살자는 몰입을 방해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는 지적입니다. 덤프 트럭이 개조된 특수차량이고 음모를 꾸미고 있는 사람이 재신그룹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해 '재신' 마크를 달고 달린게 아닌 이상 엉뚱하긴 하죠.
또 스타크래프트 사이언스 배슬의 스킬인 EMP가 드라마에서 사용된 건 이번에 처음 본 것같은대요. EMP자체는 신선했습니다. 그런데 순경 윤보원이 2인 1조가 아니라 혼자 암살자를 뒤쫓는 과정이나 EMP가 청수대의 모든 전원을 다운시키는 묘사도 상당 부분 비현실적인 느낌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소형이라도 그 정도로 가까이서 EMP를 맞으면 사망할 것이라 합니다. 또 대부분의 최신형 정부기관, 대통령 숙소에는 EMP 대비책이나 비상 전원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고 얼마전 뉴스에서 밝혀진 내용대로라면 대통령 경호중에는 방해전파를 쏘아 주변 전파를 모두 차단하기 때문에 한태경처럼 아버지의 부음을 문자로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군요.
그 다음으로 가장 많이 지적받은 장면이 윤보원과 한태경의 대화장면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아버지의 죽음에 의문이 있다는 걸 알리는 중요한 내용이었는데 두 사람의 발음은 제가 듣기에도 많이 얼버무리는 것처럼 들리더군요. 박유천이나 박하선이 전작에서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그 장면은 둘 모두 발음이 이상 했습니다. 발음 문제라면 평소 소이현을 가장 걱정했는데 의외로 박유천, 소이현의 대화 장면은 괜찮더군요. 드라마팬들에게 지적받은 위 내용들은 사소한 것일 수 있지만 대통령 암살 음모가 밝혀지는 1회의 긴장감을 대단히 떨어트린 건 사실입니다.
'정전과 함께 들려온 세 발의 총성'은 '운'을 띄우기에는 적절했던 1회 설정이라 평가합니다. 그러나 위의 지적들이 박유천을 비롯한 여러 호평에 눌려 잘 보이지 않을 것같군요. '쓰리데이즈'에 불만을 표시하는 댓글에는 예외없이 악플이 달려 있습니다. 이 드라마 시청률의 대부분을 팬클럽이 책임지고 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쩌면 엉성하다고 지적된 사소한 설정 몇가지 보다 더 큰 문제는 비판은 용서치 않겠다는 이런 분위기 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드라마의 완성도 역시 중요한 문제인데 팬덤에 묻힌 것같군요. '쓰리데이즈'가 방송되면 방송 3사의 시청률이 평정되나 했는데 의외로 비슷한 양상입니다. 어쨌든 2회 방송에 입장이 갈릴 것긴한데 이 암살 음모 자체가 대통령의 공작은 아닌지 대통령 손현주의 매력은 이제부터 시작이니 한번 더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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